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55)
로판 속 공무원 955화(956/985)
백작이 황태녀와 함께 상황 폐하의 거처로 향했다.
실로 기묘한 조합이었다. 황태녀 혼자 상황 폐하를 뵈러 갔다면 손녀가 할아버지와 놀기 위해 간 것이라 생각할 테고, 백작 혼자 상황 폐하를 뵈러 갔다면 나름 중요한 일이 생긴 거라 생각했을 거다.
물론 황제를 무시하고 상황 폐하께 향하는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나, 적어도 백작과 황태녀, 상황 폐하의 조합보다는 백작과 상황 폐하의 독대가 상식적이지 않던가.
‘상황 폐하께서 호출하신 건가?’
덕분에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상황 폐하께서 백작과 황태녀를 직접 호출하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허나 상황 폐하께서는 무언가 필요한 것이 생기면 은밀하게 행동하시지 않는다. 황제이자 리브노만의 가주인 나의 권위를 존중하셔서, 모든 행동을 내가 알 수 있게 진행하신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터졌다? 상황 폐하의 결정이라기보다는 백작의 독단이라고 보는 게 맞다.
‘무슨 일이지?’
그렇기에 혼란스럽다. 백작이 나를 상대로는 할 말과 못 할 말을 가리지 않고 쏟아내지만, 상황 폐하께도 그럴 만큼 정신 나간 놈은 아니다. 오히려 상황 폐하를 뵐 일이 생긴다면 나에게 달려와 제발 도와 달라고 사정할 놈이지.
그럼에도 백작이 상황 폐하를 뵙기로 결정하다니. 그것도 황태녀를 대동한 채로.
‘도저히 짚이는 게 없군.’
해서, 백작에게 용무가 끝나면 바로 집무실로 오라 하였고.
“그, 티티가 근래 풀이 죽은 것 같아서, 티티의 남매들을 보여주려고… 결례를 무릅쓰며 상황 폐하를 찾아뵈었나이다.”
상상 그 이상의 답변을 듣고 말았다.
내가 부르면 툴툴거리면서 오는 놈이 자기 스스로 상황 폐하를 뵈러 간 것이 맞다는 발언. 그 사유가애완견을 위해서라는 경이로운 답변.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이라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내가 아니라 상황 폐하도 짐작하지 못한 사유였을 거다.
‘백작도 나이를 먹은 건가.’
이내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나이를 먹으면 다소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것이 사람이다. 비록 백작은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지만, 어지간한 노인과 맞먹는 풍파를 겪었다. 육체적 나이와 별개로 정신적 나이는 상당할 터.
“백작.”
“예, 폐하.”
“여기에는 짐과 백작밖에 없으니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네. 무슨 일로 상황 폐하를 뵌 건가?”
부드럽게 타일렀으나 백작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아니, 설마. 진짜 그게 이유라고? 상황 폐하를 자청해서 뵌 이유가 애완견 때문이라고?
전대 궁내성 장관, 더 넓게 쳐도 아우스엔 시장 정도가 아니면 안부 인사를 건네기도 두려운 분에게 그런 이유로?
“핫.”
반사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하!”
백작이 일반적인 귀족들과 상당히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기행을 펼칠 줄은 몰랐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 세상 어느 귀족이 애완견을 위해서 뒤로 물러난 전대 군주를 뵈러 간단 말인가. 어느 귀족이 황족을 이토록 편하게 대한단 말인가.
만일 내가 백작의 성품을 몰랐더라면 황족을 능멸하는 역신이라 여겼을 거다. 백작과 황실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느슨했다면 황실의 총애에 기고만장한 간신이라 여겼을 거다.
백작이 황실과 제국을 위해 바친 헌신, 공적이 없었다면 그냥 미친놈이라 생각했을 거고.
‘이거 참.’
그러나 백작은 성품, 황실과의 관계, 헌신과 공적을 모두 갖추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행이지만 납득하고 웃어넘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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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납득은 할 수 있다. 내가 백작을 이해하지 않으면 누가 백작을 이해하랴.
“상황 폐하께서도 아시는가?”
“상황 폐하께옵서는 소신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환대해 주셨을 뿐,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가.”
실로 다행스럽게도 이 진실을 아는 자는 나뿐인 것 같다.
아마 상황 폐하께서도 백작을 존중하고 신뢰하셔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 거겠지. 백작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황태녀의 대부로서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정작 그 생각은 황태녀가 아닌 애완견을 위한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이것도 충심이라면 충심인가.’
좋게 생각하자 백작의 애완견─ 티티는 상황 폐하께서 직접 하사하신 아이지 않나. 그 아이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은 상황 폐하의 하사품을 각별히 여긴다는 뜻이다.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자. 그래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
“백작. 그래서 티티는 어디 있나?”
“황태녀 전하와 함께 소신의 저택으로 향했습니다. 황후 폐하의 시녀장이 함께 하고 있으니 염려치 마소서.”
그 말에 다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황태녀는 티티를 비롯한 백작의 애완동물들을 좋아한다.즉 티티를 아끼는 것은 상황 폐하를 향한 존중을 넘어 황태녀를 향한 배려지 않겠나.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상황 폐하와 미래의 황제인 황태녀를 동시에 만족시킨다라. 백작은 실로 지고의 충신이다.
“그럼 급하게 돌아갈 필요는 없겠군. 온 김에 차라도 한잔하고 가게.”
이제 나도 만족시키면 3대를 흡족게 한 경이로운 충신이 되겠어.
“저, 폐하. 차라고 하셨으면서 왜 바닥을─”
“루센 왕국에서는 이게 차일세. 대륙 위에 서는 황제라면 능히 각국의 문화 차이를 존중해야지. 백작도 유념하도록.”
“예, 폐하…”
아껴두었던 만년설의 차 한 병을 백작에게 건넸다.
마침 급한 업무는 마무리되어 숨을 고르고 있던 찰나다. 가볍게 한 병씩 마시며 대화를 나눌 시간은 충분하다.
“그보다 백작. 티티는 어쩌다 풀이 죽었던 건가? 백작이 티티를 소홀하게 대한 건 아니었을 텐데?”
“근래 티티의 새끼가 둘이나 독립했습니다.”
“아, 그 일 때문이었나? 확실히 풀이 죽을만했군.”
상당히 합리적인 이유였기에 바로 납득했다.나도 우리 카롤루스와 캐롤라인이 황궁 밖으로 독립하게 된다면 서글플 터이니.
‘새끼라.’
그건 그렇고 티티는 벌써 새끼를 낳고 독립까지 이루어지고 있는데, 상황 폐하께서 기르는 아이들은 언제쯤 번식을 할지 모르겠다. 남매끼리 있어서 상대를 짝으로 보지 않는 건가?
뭐, 다행히 네 마리 다 젊은 편이니 때가 되면 짝을 만나겠지. 여차하면 내가 상황 폐하께 새로운 개들을 선물로 드리면 되는 거고.
“앞으로 10마리는 더 독립시킬 생각인데. 티티가 소신을 물지는 않을지 걱정됩니다.”
그 와중에 백작은 보드카 병을 매만지며 진지하게 한탄했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도 실소가 절로 나오는 광경이다. 제국의 실권자라는 귀족이 애완견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게 말이 되나.
다른 귀족들과 이 유쾌한 광경을 공유하고 싶으면서도, 제국의 권위를 위해서 숨기고 싶기도 하다.
이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새끼들이 떠나기 시작했어요.
저 멀리 있는 하얀 사람 곁으로 하나. 주인님 집에 자주 오는 큰 사람 곁으로 하나.그리고 주인님의 부모님 곁으로도, 주인님의 동생 곁으로도 하나가 갔어요. 벌써 넷이나 나랑 제니 곁을 떠났어요.
슬퍼요. 평생 나랑 제니랑 같이 있을 것 같은 애들이었는데! 평생 같이 살 줄 알았는데 떠나서 슬퍼요!
그래도 엄청 슬픈 건 아니에요. 다 좋은 곳으로 갔으니까요. 하얀 사람이랑 큰 사람, 주인님의 가족들은 다 좋은 사람이니까요! 거기서도 잘 지낼 거라 믿어요!
– 멍!
그래서 축 늘어져 있는 제니를 위로했어요.
걱정 말아요, 제니! 다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있을 거예요! 내가 내 남매들이랑 떨어졌지만, 주인님 집에서 잘 지내는 것처럼!
– 끼이잉…
내 위로에 제니의 꼬리가 겨우 살랑거리기 시작했어요.
마음이 아파요. 이건 괜찮은 척하는 거예요. 내가 위로하니까 괜찮아진 척 노력하는 거예요!
어쩌죠? 어떻게 하면 좋죠? 주인님한테 부탁해서 새끼들을 만나러 가야 할까요? 하얀 사람 곁으로 간 애는 힘들겠지만, 다른 애들은 가까우니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좋지 않아요. 매번 만나러 가면 제니만 더 힘들어질 거예요. 마음이 아플 때마다 보러 가면 영원히 마음이 낫지 않으니까요.
“티티! 제니 아직도 울고 잇써?”
– 멍!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제니가 좋아하는 작은 사람이 나왔어요.그것도 제니가 좋아하는 고기를 들고요!
잘 왔어요! 와줘서 고마워요! 맛있는 걸 먹으면 제니의 마음도 더 풀릴 거예요!
“제니! 이거 먹어! 주방장 아저씨가 맛잇는걸로 준비했대!”
제니도 작은 사람의 말에 슬쩍 다가와 고기를 입에 물었어요.
많이 먹어요 제니! 많이 먹어야 힘이 나고, 힘이 나야 기분이 좋아져요!
“티티도 먹어! 이건 티티꺼야!”
– 멍!
작은 사람의 말에 고기를 한 입 먹고 제니 쪽으로 밀어줬어요.
나보다는 제니가 먼저 먹어야 돼요! 그렇다고 내가 아예 먹지 않으면 제니가 걱정하니까요! 한 입은 먹어야죠!
“티티도 제니도 울지마. 나두 자끈 애들 떠나서 슬프지만, 다 잘지내고 있때! 아빠가 그랫서!”
– 멍멍!
– 멍…
나도 제니도 그 말에 바로 대답했어요.
맞아요! 분명 다 잘 지낼 거예요! 우리 주인님도 그렇게 말했으니 틀림없어요! 데려간 사람들도 다 좋은 사람이었─
“그리구 티티랑 제니가 기운차려야 짜근 애들 더 생겨! 짜근 애들 떠나면 더 만들면대!”
– 멍?
이번에는 고개를 기울였어요.
새끼, 다시 만들어? 없어지면 새로 만들어?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이미 새끼들이 열넷이나 있어서, 그 애들이랑 같이 지내는 걸로도 즐거워서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새끼!’
작은 사람의 말! 좋은 말인 것 같아요!
맞아요! 새끼가 우리 곁을 떠나면 새로운 새끼를 낳으면 돼요! 언젠가는 그 아이들도 우리 곁을 떠나겠지만, 우리 새끼들이 늘어나면 그걸로도 만족해요!
주인님도 작은 주인님들이 여러 번 낳았잖아요! 나랑 제니도 여러 번 낳으면 돼요!
– 멍!
– 멍멍!
제니도 꼬리를 더 빠르게 흔들었어요.
나랑 같은 마음인 것 같아요!
***
루치아노의 저택에 다녀온 티티의 표정이 묘해졌다.
피로에 찌든 것 같으면서도 행복에 겨운 미묘한 표정. 대체 저게 무슨 표정인지 의문이다.
“무슨 일 있었어?”
내 말에 티티는 그저 헥헥거리기만 했다.
그것이 부부 사이의 대사를 치렀다는 뜻이라는 건,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