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57)
로판 속 공무원 957화(958/985)
세르베트 공작성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카토반 공작가의 가신들이 몰려왔다.
공작성 구석구석에서 일제히 등장한 가신들, 사용인들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좀비에게 쫓기는 인간이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어. 아니면 마트에 진입했다가 좀비에게 포위당한 수색대의 기분이라거나.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공작 각하와 부군 각하를 뵙습니다!”
아무튼 가장 먼저 달려온 집사장─ 시칠라 백작은 이마가 바닥에 닿을 기세로 허리를 숙였다.
완벽한 직각이라 쓴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트릭시와 정식으로 혼인하며 카토반 공작가의 부군이 된 것도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카토반 공작가 가신들의 진심 의전을 보면 흠칫흠칫한다.
분명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도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더라. 아무래도 가신들의 나이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버지보다 연상이지.’
당장 시칠라 백작만 해도 아버지보다 연상인 50대 중년이다. 작위 귀족으로 지낸 시간도 나보다 압도적으로 기니, 나이와 경력 면에서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카토반 가문의 부군인 나는 공작인 트릭시와 비슷하거나 약간 아래의 대우를 받는 존재잖아. 내가 가신들에게 존대를 하거나 깍듯한 모습을 보이면 도리어 가신들이 고통스러워한다.
게다가 나는 평범한 부군이 아니다. 120년 동안 솔로였던 세르베트 공작의 짝이며, 혈육이 없던 카토반 공작가에 세 공녀를 안긴 영웅이야. 아마 내가 평민이었어도 가신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을 거다.
“공녀님들도 어서 오십시오!”
홀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시칠라 백작의 시선은 나와 트릭시의 다리 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다리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세쌍둥이에게 향했다.
“아져씨 안녕! 오랜만이야!”
“웅! 오랜만!”
“아져씨 오랜만~”
세쌍둥이의 해맑은 대답에 시칠라 백작의 표정은 급속도로 녹아내렸다.
고작 대화를 나눈 걸로도 저런 반응이라니.저러다 성불하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다.같은 공간에서 살 때는 어떻게 하려고.
‘역시 세르베트에 머무르게 하는 건 시기상조인가?’
순간 탐욕이 솟구쳤지만 빠르게 억눌렀다.
진정하자, 이 정신 나간 놈아. 나도 우리 아이들을 보면 웃음이 쉴 새 없이 나오지만, 아무 문제 없이 같이 먹고 놀고 자고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신들도 할 수 있다.
“약속한 때가 코앞이라 우리 아이들이 지낼 곳도 구경할 겸 같이 왔다. 우리가 확인하지 않아도 완벽하겠으나, 그래도 실제로 지낼 아이들의 판단을 받아야지.”
“부군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희의 시야보다는 공녀님들의 시야가 더 중요하지요!”
내 말에 시칠라 백작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뜨겁게 타오르는 저 눈빛.세쌍둥이가 ‘나 이거 시러.’ 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건물을 뜯어고칠 기세였다. 어쩌면 마탑과 연계해서 파괴와 재구축을 광속으로 진행할 수도 있고.
무려 트릭시의 자식들이 지낼 곳이다. 이는 세르베트 공작령만의 중대사가 아니라 마탑의 중대사기도 하다. 과장 좀 보태면 대륙 마법계 전체가 주목하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을 터.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어쨌거나 다시 허리를 숙이는 시칠라 백작을 향해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리 세쌍둥이가 지낼 방은 가끔씩 공작성에 올 때마다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 때마다 방이 변하더라. 유행에 조금이라도 뒤처진, 공녀님들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낡아버린 방은 의미가 없다나?
열정을 넘어 광기 수준의 행보라 경이로울 정도였다. 세쌍둥이가 내년에 5살이 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내년에도 방을 뒤엎었을 거고, 내가 오늘 오지 않았다면 연말 기념 마지막 리모델링이라며 공사를 진행했을 수도 있다.
‘이제 멈춰야지.’
그래서 확실한 공사 완료를 위해 세쌍둥이를 데려왔다. 세쌍둥이가 ‘나 이 방 조아!’ 라고 하면 광기의 리모델링도 멈추지 않겠나.
이 광기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세쌍둥이뿐이다.
시칠라 백작이 안내한 방을 보자마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방이 화려하고 거대할 것이라는 건 당연히 짐작했다. 공작가의 직계이자 차기 공작이 지내는 방인데, 작고 누추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방을 3개나 마련한 것? 이 또한 당연한 일이다. 요람에서 꾸물거리는 시기라면 모를까 세쌍둥이는 이제 자기 힘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는 나이다. 방 하나에 몰아넣기는 좀 그래.
허나 내 눈앞에 보인 방은 그저 크고 화려한 방이 아니었다.
‘이게 뭐야.’
마치 밤하늘을 보는 것처럼 검은 천장. 별을 표현한 것처럼 반짝이는 벽지들.
그리고 바닥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동물 인형까지.
‘진짜 뭐야.’
뒤이어 시칠라 백작이 가볍게 박수를 치자 밤처럼 어두웠던 방은 대낮처럼 변했다. 검은 천장은 푸른 하늘처럼 변하고, 벽지에 박힌 별들은 구름처럼 변했다.
마지막으로 동물 인형들이 뽈뽈뽈 움직이던 바닥은 초원처럼 변모했으니, 방이 아니라 어느 공원에 있는 기분이다.
‘이게 공작가의 진심인가.’
당혹감에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도 나름 아이들을 위해서 저택을 꾸민 편이다. 혹여나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복도 전체에 매트리스를 깔았고, 날카로운 모서리는 뭉툭하게 만들었으며, 딱딱한 쇠도 최대한 대체품을 사용할 수 있게 조치했다.
그런 나조차 이런 미친 방은 만들지 못했다. 300년 동안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군림한 공작가가 진심을 내면, 마탑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 이런 게 탄생하는구나.
‘저번에 봤을 때는 이런 거 아니었잖아.’
그보다 잠깐 못 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지금까지 본 방들은 이런 방들이 아니었다고.
설마 여태껏 나한테 보여준 방은 블러핑이었나? 세쌍둥이를 위한 완벽한 서프라이즈를 위해서?
“우와아아아아!”
“인형이 움직여!”
“구름, 신기해~”
정말로 그게 목적이었다면 대성공이다. 어른인 나조차 감탄이 절로 나오는 방인데 아이들은 어떻겠나. 작은 자연을 가두어둔 듯한 모습에 세쌍둥이는 눈을 반짝이며 뛰쳐나갔다.
이 아빠와 엄마의 다리에서 벗어나 드넓은 방을 향해서. 이제 아빠랑 엄마한테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얘들아…’
그 모습을 씁쓸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1년 중 길어봤자 한 달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지낼 방이다. 그런 방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다행인 일이나, 이렇게 격렬하게 좋아하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약간 좀 낯설어하고, 아빠 곁에서 벗어나기 싫어하고, ‘여기도 좋지만 우리 집이 더 죠아.’ 같은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큰 걸 바란 건 아니야. 딱 그 정도만 바랐어.
“구름! 구름 움직여!”
“풀! 복슬복슬해! 신기해!”
“움직이는 인형두 신기해.”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씁쓸하고 서운하지만 넘어가자. 내 안타까움보다는 아이들의 행복이 우선이니까.
게다가 이런 방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면 감수성이 메마른 게 아닌가 우려해야 할 정도다. 솔직히 황태녀도 이 방을 보면 뒤집어질 거야.
‘나도 이런 거 만들어야 하나.’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우리 저택에 이런 거 하나 만들어 보면─
‘아니다.’
바로 포기했다.나도 3개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1인 1실로 제공할 자신은 없다.
저택 전체를 뒤엎었던 나조차 듣도 보도 못한 리모델링이다. 그렇다면 카토반의 가신들이 최초로 개척한 작품이라는 건데, 이런 건 제작하는 사람들도 노하우가 쌓여야 제작 비용이 감소되는 편이다. 이 타이밍에 이런 방을 주문해 봤자 비싼 가격으로 많이 만드는 것에 불과해.
…
“저, 트릭시?”
“왜 그러니?”
흐뭇한 표정으로 세쌍둥이를 바라보던 트릭시가 고개를 돌렸다.
“이런 거 만들려면 얼마나 필요할까?”
두근거린다. 이런 방을 하나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 얼마나 많은 재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그리고 그런 방을 우리 아이들 숫자만큼 만든다면 창고를 몇 개 정도 열어야 할까.
“우리 저택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동물들이 있잖니.”
Z2dKbDJFSCtSbEo3WFlpUEN0eDQxZmx0ODk1UmJiQVRLTDhJSGxvL0NWN2VpT1hkM2l2N0tudFJ1b2x0V3l3eQ
우회적인 대답에 도로 입을 다물었다.
만들려면 만들 수는 있지만, 그냥 있는 거에나 만족하라는 말이었다.
‘많이 비싸구나.’
아니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늘어날지 장담할 수 없어서 포기하는 건가?어째 가격 문제보다는 그쪽이 더 설득력 있다.
“아져씨! 다시 어둡개 만들쑤 잇서?”
“하하, 물론입니다. 공녀님들이 원하시면 금방이지요.”
“우아아아!”
그 와중에 시칠라 백작은 연속으로 박수를 치며 방의 낮과 밤을 자유자재로 뒤바꿨다.
저러니까 시간을 지배하는 대마법사처럼 보인다.
***
백작과 마종공이 공녀들과 함께 세르베트 공작령으로 이동했다.
대충 어떤 일로 갔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제 올해도 끝나가니, 내년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됐지.
‘공작 대리라.’
내년이면 마종공이 공작위에서 물러난다. 그 뒤를 이어 백작이 세르베트 공작 대리가 된다.
사실 철혈공의 은퇴가 아니었다면 올해 일어났을 일이지. 1년 사이에 공작이 둘이나 교체되는 사태를 막기 위하여 내년으로 연기했을 뿐.
‘칼 세르베트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
내년부터 백작이 가지게 될 풀네임을 떠올리자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일개 귀족이 미들네임을 가지게 되다니. 그것도 세르베트를 미들네임으로 사용하다니. 작년의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욕을 내뱉었을 텐데.
하지만 현실이다. 백작은 세르베트 공작 대리가 되어 세르베트라는 이름을 품게 된다. 비록 정식으로 공작이 되는 건 아니나, 공작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된다.
‘슬슬 확실하게 정해야겠어.’
한참이나 웃음을 흘린 후, 서랍 깊숙한 곳에 박아두었던 종이를 꺼냈다.
이제 백작의 공작 대리 등극도 코앞이다. 그렇다면 백작에게 내릴 이름도 완전히 확정 지어야 한다.
이게 여유가 있으니까 계속 다른 생각이 떠오르더라. 좋은 칭호가 생각나서 확정 지으려다가도 다른 게 생각나고, 다시 확정 지으려고 하면 또 좋은 게 생각나고. 아주 끝도 없이 아이디어가 솟구쳤지.
‘너무 화려한 건 피해야 한다.’
요 몇 개월 동안 추리고 추린 후보를 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정식 세르베트 공작이 되는 건 아니기에 나 또한 정식으로 이름을 하사할 수는 없다. 최대한 자연스레 사교계에 이름을 흘려야 한다.
귀족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이름을. 모두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일 이름을.
“크흐.”
다시 터져 나온 웃음을 급히 삼켰다.
웃지 말고 후보에만 집중하자. 백작이 공작 대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면, 나도 진심으로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