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7)
제국과 신성교국의 관계는 우호에 가깝다. 정확히는 여명 교단이 리브노만 황가에 호의적인 거지만, 황가와 교단이 각국을 지배하니 어차피 같은 말이다.
우호 관계가 된 계기는 단순하다. 제국을 세운 에이만카 대제가 제국 건국년을 기준으로 한 제국력을 버리고 여명 교단의 창립년을 기준으로 한 성력을 도입했으니까. 여명 교단 입장에서는 리브노만 황실이 사랑스럽게 보이겠지.
사실 제국력이 어지간히 개같은 역법이기는 하다. 제국이 바뀔 때마다 제국력 1년도 변해서 어제까지는 제국력 150년이던 년도가 갑자기 기원전 400년으로 변하는 기적을 볼 수 있다. 그 지랄을 대륙은 두 번이나 겪었다.
“온 대륙이 에넨의 자식이며 에넨의 빛을 따르노니, 어찌 인간사를 대륙의 기준으로 두겠는가.”
그러나 에이만카 대제는 네 번째 제국력을 도입하는 대신 성력 도입을 선언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안 그래도 기세등등하던 여명 교단의 위상은 미친 떡상을 맞이했다.
오죽하면 각국 국왕 즉위식에는 추기경이 참가하는 반면, 황제 즉위식에는 아직까지도 교황이 직접 참가하며 축사를 할 정도일까. 그런데 그냥 도네 받은 만큼 리액션 한다고 생각하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하네.
아무튼 리브노만 황가, 더 나아가 제국은 여명 교단과 우호적 관계다. 그리고 누군가와 사이가 좋다면 누군가와는 사이가 틀어지는 법.
“3년 전에도 제국에 이를 드러냈었지.”
황혼 교단에 대한 분노와 경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특무성 장관의 모습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새끼들은 3년 전에도 제국에 엿을 날렸다.
여명 교단과 우호 관계가 되면 필연적으로 황혼 교단과는 적대 관계가 된다. 여명 교단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주류 종교가 되려는 황혼 교단 입장에서 제국도 적이나 다름없겠지.
그래서 제국의 시선이 북방에 쏠려 있던 3년 전, 황혼 교단은 제도에 잠입하여 제국을 담당하던 추기경을 암살했다. 단 한 번의 암살로 제국과 신성교국을 동시에 엿 먹인 사건이었다.
“한 번 성공하니 두 번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봅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군.”
내 말에 특무성 장관의 말은 더더욱 일그러졌다.
사실 나도 불쾌한 건 매한가지다. 차라리 타니안이 아카데미에 있을 때 암살을 시도했다면 이해라도 하지, 다른 곳도 아니고 제국의 심장인 제도를 노려?
이건 정말로 제국을 우습게 봤기에 가능한 일이다. 요행으로 한 번 성공했다고 이리저리 떠도는 이교 새끼들한테 제국이 호구로 보였다니, 참을 수가 없다.
‘내가 호구한테 부려지는 새끼가 되잖아.’
내 명예와 위신을 위해서라도 제국을 우습게 보는 머저리들은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 불로 정화해주마, 더러운 이교도들.
“곧 전쟁성에도 알릴 예정이네. 황혼 교단이라면 그쪽도 이를 갈지 않겠나?”
‘황혼 교단을 찢어 죽이는 29가지 방법’을 생각 중인 특무성 장관을 뒤로 하고 외무성 장관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 전쟁성도 황혼 교단에 원한이 많지.
전쟁성은 3년 전 사건으로 인해 황제에게 정말 비 오는 날 먼지 날 정도로 털렸다. 이미 북방에서 죽을 쑤고 있는데 이제는 제도까지 뚫렸다고, 이러다가 황궁이 뚫릴 지경이라고 말이다.
특히 제도 방위 역할을 맡은 근위 1군단은 그 분노를 정면에서 맞았다. 군단장에서 방면군 사령관 승진을 눈 앞에 두던 당시 근위 1군단장은 좌천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역까지 당했을 정도.
전역 당한 군단장은 황혼 교단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컸는지 여명 교단 성기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황혼 교단을 친히 잡아 죽이기 위해서.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기에 전쟁성에게 황혼 교단 얘기를 꺼내면 그때의 트라우마가 자극되어 당장 잡아 죽이자고 달려올 것이다. 일단 인력이 부족할 일은 없겠네.
“요격 준비를 하려면 서둘러야겠군요.”
“그래야지. 제도에서 교전이 벌어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다. 제도에서 단순한 암살 수준이 아니라 교전이 발생하면 그건 책임자 몇 명 좌천되는 수준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셋이 모가지는 반납해야 할 수준.
하필 요즘 황제의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좋았지, 절대 좋을 일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미 북방에서 변경백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고해서 신경이 곤두섰을 텐데, ‘3년 전에 제도에 온 애들이 또 들어 왔습니다.’ 같은 소리를 한다? 바로 재판 없는 처형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곱씹을수록 열이 뻗친다. 타니안이 성국에 있을 때는 잠잠하던 녀석들이 이제 와서 시동을 건다고? 심지어 아카데미에 있을 때도 소식이 없던 것들이?
물론 황혼 교단이 성국에서는 별 성과를 내지 못한 반면 제도에서는 암살에 성공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제도 방위의 한 축인 마종공의 부재와 대토벌 전쟁이라는 변수 때문이지, 정상적이라면 제도 근처에도 못 올 새끼들이다.
그래, 만만하다면 더 이상 만만하지 않게 조정을 해줘야지. 그것이 제국 공무원의 의무.
“감찰부장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
그렇게 의무감을 불태우는 사이 외무성 장관이 나를 소환한 용건을 꺼냈다.
“황혼 교단을 요격하는 것에 감찰부장과 묵광대도 나서줬으면 하네.”
예상한 요청이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니안이 제과 동아리에 속하는 이상, 나도 타니안의 보호를 위해 나서야 할 이유가 있으니.
“그리고 감찰부장이 마종공 각하께 지원 요청을 했으면 좋겠는데.”
“예?”
이건 예상 못했는데.
두 장관은 자세한 내용은 전쟁성과 협의하고 알려주겠다는 말과 함께 마탑으로 가는 길을 배웅해줬다. 말이 좋아 배웅이지 사실상 내쫓은 거나 다름없었지만.
웃는 얼굴로 짬을 때린 외무성 장관은 그렇다 쳐도, 인상을 쓰고 있던 특무성 장관마저 마종공 얘기가 나오자마자 재빠르게 나를 마탑으로 내보냈다. 망할, 귀는 열려 있었구나.
‘돌겠네.’
마종공을 먼저 찾아가는 것은 조금 껄끄럽지만 그래도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마종공 앞에서 꺼내야 하는 내용이 황혼 교단인 건 많이 껄끄럽다.
“아가, 내가 잘못 들은 거니?”
봐라, 지금도 열렬한 반응이지 않나.
처음 마탑주실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먼저 인사를 오니 기쁘다는 말을 하며 반겨주던 마종공이었다. 덕분에 그럭저럭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딱 황혼 교단을 언급하기 전까지만.
“송구하오나 각하께서 들으신 게 맞습니다.”
마종공의 열렬한 눈빛에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최대한 바닥으로 내리 깔았다. 분노 상태인 마종공의 눈빛은 꽤 따가웠으니까. 나는 죄가 없다, 나는 그냥 메신저다.
다행히 내 무고함을 알아줬는지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따끔거리는 시선이 가라앉았다.
“괜찮으니 고개 들렴.”
“감사합니다, 각하.”
슬쩍 고개를 드니 무언가 깊게 생각 중인 듯 눈을 감고 있는 마종공의 모습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기만 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폭풍전야 같았다. 차라리 아무 말이라도 해줬으면.
“3년 만이구나.”
침묵 끝에 눈을 뜬 마종공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작은, 그러나 차가운 목소리에 절로 몸이 떨렸다.
‘개새끼들.’
놀라울 지경이다. 단 한 번의 행동으로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어그로 가성비가 대단하다면 대단한 개새끼들인데.
“운이 좋은 줄도 모르고, 감히.”
“이교에 눈이 먼 어리석은 광신도 아닙니까.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말에 마종공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황혼 교단이 얼마나 미친 것들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가 마종공이니까.
황혼 교단이 가장 득세했던 시기가 90년 정도 전이라고 하니, 그때면 마종공이 한창 젊었을 때─
“아가.”
“아, 예.”
싸늘한 목소리 때문에 순간 생각을 읽힌 줄 알고 놀랐다.
“그때는 자리를 비워서 미처 그것들을 상대하지 못했단다.”
“예, 알고 있습니다.”
제국의 추기경이 에넨이 점지한 것보다 빠르게 에넨의 곁으로 가버린 그 날, 마종공은 북방으로 보낼 지원군을 꾸리기 위해 본인의 영지로 간 상태였다.
제도 방위의 한 축인 마종공이 자리를 비운 사이 터진 참사. 어떻게 보면 마종공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적 용무도 아닌 전쟁 지원을 위한 부재였기에 마종공은 오히려 황제에게 위로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내가 버티고 있는데도 제도를 노리는구나.”
황제가 마종공은 죄가 없음을 공인하여 책임은 피했지만, 굴욕과 수치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국의 귀족인 마종공이 제국을 벗어날 수는 없기에 참고 지내던 인고의 나날.
“스스로 수렁을 향해 달려오고 있어.”
인고 끝에 잡아 죽이고 싶었던 것들이 스스로 달려오는 기적이 찾아왔다.
마종공은 기꺼이 황혼 교단 요격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반응을 보니 오히려 마종공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황혼 교단을 격퇴했으면 나중에 탈탈 털렸을 것 같은데.
하긴, 나라도 죽이고 싶어 벼르던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빡침과 허무함이 공존했을 거다.
아무튼 다행이다. 특무성에 전쟁성, 마종공까지 나선다면 이미 상황이 끝난 거나 다름없으니까. 도대체 저 새끼들은 무슨 용기로 제도에 들이박는 거지?
‘이해가 안 되네.’
애초에 광신도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지만 오늘따라 더욱 기괴하게 느껴진다.
아니, 광신도만이 아니라 종교에 신실한 녀석들은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나?
“혹시 제도 근처에 괜찮은 숲 있습니까?”
“숲?”
저택에 복귀하자마자 다가오는 타니안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얘는 갑자기 왜 숲을 찾아. 삼림욕이라도 할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