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70)
로판 속 공무원 970화(971/985)
마종공의 남편이라는 위명 덕분인지, 아니면 못생겨 보일 수 있는 첨탑을 합법적으로 대량 건설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기 때문인지─ 다행히 트릭시 뿐만 아니라 다른 마법사들도 18 첨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솔직히 트릭시가 내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순간부터 다른 마법사들의 지지는 예정된 일이지만, 마법사들도 나름 긍지를 가진 존재들이다. 만약 트릭시가 이상한 방향을 가리키면 냅다 달려가기보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존재들이지.
즉, 18 첨탑은 나와 아무런 연이 없는 마법사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제안이라는 뜻이다. 실로 다행인 일이야.
‘만국기 대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다시 논의를 이어가는 마법사들을 보며 흡족히 입꼬리를 올렸다.
박람회가 열리면 만국기가 허공에 휘날리며, 국제기구 본부 앞에는 각국의 깃발이 휘날린다. 이는 클리셰를 넘어서 세상의 진리나 마찬가지인 현상.
허나 대륙 역사상 최초의 공중 건물이고,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단합의 상징이다. 고작 깃발 따위로 열국의 단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건 아쉽지 않겠나.
그러니 첨탑이다. 드높고도 거대한 18개의 첨탑은 대륙에 존재하는 18개국을 상징한다. 18개의 첨탑을 한곳에 세운 것은 대륙의 아름다운 단결을 상징한다. 이보다 직관적이며 화려한 과시는 없을 터.
’18개국에서 변동이 일어나면 박살을 내야지.’
만약 전쟁이나 내분으로 인해 18개국에서 변동이 생긴다? 그건 사랑과 정의, 평화의 이름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기존 국가에서 독립하려는 세력은 최대한 억제하고, 타국을 멸망시키려는 악덕 국가는 단호히 응징해야지.
그게 꼬우면 스테판의 영광을 처음부터 다시 지으면 된다. 첨탑 개수를 조정해야 한다면 그 원흉이 책임지고 조정하는 게 옳으니까.
물론 그 국가의 국고만으로. 당연히 각국의 기부도 없이. 마음 같아서는 귀족들의 기부도 막고 싶은데, 그건 너무 과도한 내정 간섭이니까 참는다.
Z2dKbDJFSCtSbEo3WFlpUEN0eDQxU1NXeTkzNVRXUVdTbGFETWhpNmRXY2UzaVp1N0FmYzBmQUM4cHh0Umg5aw
‘응?’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미묘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연회실 문틈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 세쌍둥이가 보였다.
작고 새하얀 머리가 세로로 나란히 튀어나온 아름다운 광경. 마치 만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걸 어쩐다.’
이윽고 슬며시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아저씨, 아줌마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호기심이 생긴 것 같다. 그러니 저택 내에서도 다소 깊숙한 곳에 있는 연회실까지 온 거겠지. 심지어 남매들이나 동물 친구들 없이 단 셋이서.
여기까지 온 걸 기특하게 여겨서 들어오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무작정 들어오는 게 아니라 문밖에서 눈치를 보고 있잖아. 얼마나 사랑스러워.
‘그래도 나랏일을 방해하면 곤란한데.’
부성애와 국익 중에 무엇을 택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마법사들을 보니, 정작 마법사들은 첨탑의 구체적인 형태 및 첨탑 간의 적절한 간격을 두고 뜨거운 논쟁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좋아. 조용히 한다면 잠깐 들어온 건 괜찮겠어. 저 정도 기세면 작은 아이 셋이 들어와 봤자 발걸음 소리도 못 들을 거야.
“얘들아. 이리 온.”
그렇기에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세쌍둥이에게 손짓을 했다. 동시에 왼쪽 검지는 입술을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도 보냈다.
누가 봐도 명확한 수신호에 세쌍둥이의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번졌다. 그 와중에도 아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조심조심 들어왔지만 말이야.
기특하다, 우리 딸들. 이렇게 세심하고 착한 아이들이 고작 4살이라니. 우리 딸들은 그 흔한 사춘기도 안 올 거다. 확신할 수 있다.
‘아빠 미워 같은 말도 안 하겠지.’
이 아빠는 믿는다. 그런 흉측하고 참담한 단어는 분명 입에 담지 않을 거라고.
“음? 공녀님들?”
“아.”
쪼르르 달려온 세쌍둥이를 막 품에 안으려던 찰나. 수군거리던 마법사 중 한 명이 뒤를 돌아봤다.
“각하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져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역시 공녀님들께서 오셨군요!”
마법사의 말에 내 실수를 깨달았다.
마법사들은 기운에 민감한 존재들이고, 모든 사람들은 고유의 기운을 갖고 있다. 그런데 트릭시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기운이 세 개나 쪼르르 나타났다? 이건 높은 확률로 세쌍둥이의 출현을 암시하는 거지. 마탑의 마법사들이라면 절대 모를 리가 없다.
“아, 아빠. 우리 조용히 들어왓는대…”
“우리 시끄러웟서? 더 조용히해야 됏어?”
“더 조용히… 힘든대…”
그리고 자신들이 소란스럽게 들어와서 들켰다고 착각했는지, 세쌍둥이는 귀를 축 늘어뜨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민망했다. 부성애에 눈이 멀어서 당연한 상식을 잊고 말았구나.
“얘들아. 엄마는 일하고 있으니까 다른 데서 놀라고 했잖니.”
‘아.’
어느새 마법사들 사이에 있던 트릭시가 성큼성큼 세쌍둥이에게 다가왔다.
“그, 트릭시? 밖에 있던 걸 내가 들어오라고 했어. 애들은 잘못 없어.”
덕분에 반사적으로 세쌍둥이를 옹호했다.
밖에서 조용히 구경만 하던 아이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한 건 나니까. 나 때문에 아이들이 트릭시에게 혼난다면 사춘기까지 갈 것 없이 오늘 ‘아빠 미워!’를 들을 수 있다.
그건 안 된다. 상상만 해도 내장이 뒤틀리고 이목구비에서 피를 토할 일이야.
“하지만 연회실 근처에 오지 않았다면 들어오라고 할 일도 없었겠지. 나는 아이들에게 다른 곳에서 놀라고 했단다.”
‘그건 그렇지.’
순간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참았다. 여기서 옹호를 포기하면 미운 아빠가 돼버려.
어쩌지.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회의가 일그러진 마탑주 버전 트릭시를 달랠 수 있지? 트릭시가 이런 상황에서는 은근 엄한데.
“각하. 이왕 공녀님들이 오신 김에 잠시 쉬는 건 어떻겠습니까?”
“쉬자고?”
이 끔찍한 고뇌를 끝낸 건 내가 아닌 부탑주였다.
“조만간 마도의회의 마법사들도 올 텐데, 저희를 돕기 위하여 대륙 반대편에서 오는 친구들입니다. 저희가 정한 사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보다는 함께 논의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것도 상당히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 부탑주였다.
옳은 말이다. 제국의 땅에 세워질 제국 소유 건물이니 제국이 주도하는 게 맞으나,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하청을 부리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 곤란하다.
물론 마법사들은 트릭시가 턱 끝으로 부려도 기뻐할 테지만, 그래도 제국과 유벤 사이가 조금 어색해질 수도 있으니.
“하긴. 큰 틀은 우리가 잡아야겠지만, 작은 부분은 함께 논하는 게 좋겠지.”
실제로 부탑주의 명분은 엄한 눈매를 하고 있던 트릭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이들이 엄마 말을 어겨서 회의가 끊긴 것은 혼나야 할 일이 맞다. 그러나 어차피 잠시 쉬어야 했던 회의로 둔갑한다면 혼낼 필요가 없지.
“우리 아가들. 엄마한테 오렴.”
이윽고 평소처럼 부드러운 얼굴로 변한 트릭시는 양팔을 펼쳤다.
“엄마. 화 안나써?”
“응. 안 났어. 대신 앞으로는 엄마 말 잘 듣고, 이렇게 몰래 오지 말아야 한다?”
“웅!”
“참. 여기 아저씨, 아줌마들한테는 죄송하다고 하고.”
“우우웅…”
“재송해여…”
“미안해애애애…”
빠른 상황 정리에 마법사들도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쌍둥이를 위하여 마법사들이 온갖 마법으로 재롱 잔치를 부렸다는 건, 오직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자.
마도의회의 마법사들이 제도에 도착한 날. 아우스엔 대교구에서 연락이 왔다.
제국의 귀족이자 성인인 분에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부디 편한 때에 와주셨으면 한다는 연락이.
말로는 편한 때라고 했지만 정말로 편한 때에 갈 수는 없다. 정황상 이번 연락은 ‘스테판의 영광 및 동 다니스 건설 홍보기획관’인 칼 크라시우스에게 한 연락일 것이기에. 돈 대신 대교구 설치라는 어마어마한 카드를 내민 교단이니, 그 성의를 봐서라도 느긋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
“성스러운 분을 뵙습니다.”
그렇기에 서둘러 성 파로나스 대성당으로 향하자 아우스엔 대교구장이 반겨주었다.
“갑작스레 만남을 청하여 송구스럽습니다. 교단의 사정으로 인해 성스러운 분을 번거롭게 한 것은 아닌가 민망하군요.”
“그런 말씀은 마시지요. 가까운 곳에 있는 반가운 이웃을 만나는 일이거늘, 어찌 번거롭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리 말씀해 주시니 참으로 기쁠 따름입니다.”
가볍게 웃음을 흘린 대교구장은 탁자 위에 다과를 올려둔 사제가 나가자, 바로 차를 들이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안하게 왜 그래.’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용건이기에 대교구장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대교구장은 전대 교황 시절에는 교단의 2인자나 마찬가지였고, 현재도 원로 중의 원로로 대우받는 거물이잖아. 그런 사람이 차로 속을 달랠 정도라면 대체.
“성스러운 분의 귀중한 시간을 방해한 것이니, 바로 용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다니스 대교구 설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안타까운 말이었지만 그 이상의 동요는 없었다.
새로 건설하는 도시에 대교구를 설치하는 일이다. 오히려 문제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교단도 파산 직전이라는 비극만 아니었다면 다니스 대교구를 설치하려고 했을까.
“실로 안타까운 일이군요. 무슨 문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허나 한숨을 내쉬는 대교구장 앞에서 너무 덤덤한 것도 예의가 아닌 법. 도의적으로 무슨 일 때문인지 물어봤고,
“다니스 대교구 대성당 아래에 묻을 성유물이 없습니다.”
‘아.’
생각보다 심각하고 거대한 대답이 돌아왔다.
“성스러운 분께서도 아시다시피, 대성당을 짓기 전에는 해당 지역과 연이 있는 성인의 유물을 지하에 묻습니다. 성인께서 보호 아래 인부들이 무사히 공사를 마치기를. 공사가 끝나면 성인께서 대성당을 보우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전통이지요.”
“예하. 제가 알기로 다니스와 연관된 성인은…”
“애석하게도 없습니다. 다니스는 뮤노 제국의 도시였는데, 뮤노 제국이 군림한 시기에는 본 교단이 탄생하지도 않았지요.”
심지어 다니스가 유적지로 몰락하던 시기에도 여명 교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다니스와 연이 있는 성인 같은 건 아무리 찾아도 없을 수밖에.
‘어쩌냐 이거.’
곤란하다. 차라리 돈이 없거나 사람이 없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 텐데, 이런 문제면 답이 없잖아.
“그래서 말입니다만. 성스러운 분께 감히 청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에게, 말씀이십니까?”
나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대교구장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 나한테 부탁을 한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을까. 과거로 가서 여명 교단 탄생을 2천 년 정도 앞당길 수도 없잖아. 아무리 성인이라도 그런 건 불, 가능…?
‘설마.’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눈가가 떨렸다.
“성스러운 분께서 스테판의 영광 건설과 동 다니스 건설을 위하여 노력하고 계시니, 다니스와 연이 있는 성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
“그러니 성스러운 분의 물건이라면 대성당 아래에 묻어도 충분치 않을까 싶은데.”
‘그만해.’
내 처절한 마음속 외침에도 불구하고 대교구장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실로 부끄러운 말이지만, 혹시 적당히 이야기를 붙일만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겠습니까? 성스러운 분과 연관된 것으로 말입니다.”
살아있는 성인의 성’유물’을 만들자는 미친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