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8)
방학을 앞두고 귀국을 준비하던 중 류티스 형제님이 찾아왔다.
“귀국하고 다시 아카데미에 복귀하는 건 번거롭지. 차라리 졸업까지 아카데미에 머무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그리고 꽤나 흥미로운 제안을 꺼냈다. 방학 중에도 아카데미에 머문다라, 그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니까.
마침 류티스 형제님의 명분도 납득할 수 있는 범위였다. 나나 류티스 형제님, 라테르 형제님 정도 되는 인물은 단순한 이동에도 소모되는 물자가 상당하다. 심지어 그 이동거리가 국경을 넘을 정도면 더욱 심하겠지.
괜히 방학마다 물자를 소모할 바에는 차라리 아카데미에 머무르며 절약하는 것. 이미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신분을 얻은 이상 강력하게 주장하면 못할 것도 없다.
“제국에 왔으니 제국의 경관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역시 마음에 들어할 줄 알았다.”
류티스 형제님의 작전을 지지하겠다는 대답에 류티스 형제님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그 날, 타국에서 온 세 명의 임시 동맹이 체결됐다.
그리고 얼마 후, 본국에 계시는 스승님께 연락이 왔다.
– …그래, 이 기회에 견문을 넓히는 것도 괜찮겠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하.”
– 제국에는 신실한 동포들이 많다. 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잊지 말고.
“예, 예하.”
다행히 본국에서도 승인해줬다. 이미 나와 두 형제님이 작정하고 버티기에 돌입했으니 본국에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 괜히 강제 귀국 명령을 내리면 내부에 문제가 생겼음을 광고하는 꼴이니까.
그리고 제국은 대표적인 친교단 국가. 차기 성자인 내가 제국에 머무르며 제국 고위직과 안면을 틀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니 결국 넘어가기로 한 것 같다.
– 교황 성하께서 걱정하실 테니 연락은 자주 하거라.
“하하, 알겠습니다.”
스승님께서도 간단한 안부 인사와 함께 연락을 끊으셨다. 이제 방학 동안 어떻게 루이제 자매님과 함께할지 고민하면 된다.
“내 집에서 머물면 된다.”
하지만 고민할 것도 없이, 제과 동아리 전부가 제도에 있는 고문 형제님의 저택에 가게 됐다.
흐음, 이건 예상 외의 상황인데.
제도로 가는 인원 중에 제과 동아리가 아닌 인원 둘이 추가되고, 아카데미가 아닌 고문 형제님의 저택에서 생활하는 예상 외의 상황이 발생하기는 했다.
물론 방학 동안 귀국하여 루이제 자매님과 만나지 못하는 최악에 비하면 이 정도 의외 정도는 웃으며 반길 수 있는 상황이다. 딱히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다만 제도에 도착한 날, 황태자의 환영사를 들으니 갑작스러운 방문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대가를 치르면 충분하겠지.’
아직 제국에 공식적으로 전달하지는 않았지만, 본국에서 제국 출신 사제 몇 명에 대한 시성을 진행할 예정이다. 황태자 귀에 그 소식이 들어가면 불쾌함을 거두고 웃으며 반겨주겠지.
아무 준비도 없이 제국에 머물려고 한 것은 아니다. 손님으로서 주인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건 당연한 이치. 이건 류티스 형제님과 라테르 형제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무난한 제도 생활이 시작됐다. 이제 정말로 루이제 자매님과 어떤 일정을 보낼지 고민하면 된다.
– 황혼 교단이 움직였다.
그럴 예정이었다.
“황혼 교단, 말씀입니까?”
– 그래.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시는 스승님의 모습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황혼 교단, 그 저주스러운 이름.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사악한 이교도의 만행이 떠오른다. 우리의 주, 에넨을 부정하며 존재하지 않는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어리석은 자들. 에넨의 자식을 혐오하며 무분별한 폭력을 휘두르는 잔인한 자들.
그리고 나의 고향, 나의 가족, 나의 이웃을 해한 증오스러운 자들.
“목표는 저겠군요.”
– 그렇겠지. 이미 제국에도 전달했다. 제국도 황혼 교단이라면 치를 떠니까.
“허면─”
–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내가 입을 열기 무섭게 스승님은 단호하게 말을 끊으셨다.
– 네가 조금이라도 다치면 교단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가만히 있거라. 제도만큼 안전한 곳은 없어.
“교단의 일입니다.”
– 손을 놓겠다는 건 아니다. 당연히 너를 호위하는 전력 일부가 황혼 교단 토벌에 동참할 거다.
“…….”
– 타니안.
“알겠습니다.”
결국 스승님은 황혼 교단 토벌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답을 듣고 나서야 따가운 시선을 거두셨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신신당부하시며 연락을 끊으셨을 정도.
하지만 어찌 가만히 있을까. 황혼 교단이다. 나의 원수, 우리의 주를 부정하는 역적, 평화를 위협하는 맹수인 그 황혼 교단이다.
물론 내가 황혼 교단의 손에 다치거나 죽는 일이 생기면 그 여파는 상당하다. 제도에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게 옳은가? 효율적이고 안전하지만, 과연 옳은 일인가?
스승님은 추기경이다. 단순히 주를 향한 믿음뿐만 아니라 정치력도 갖추어야 추기경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 시선으로 볼 때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이 맞다.
“성자는 빛으로 나아가기에 성자다. 교단의 존립, 신성교국의 미래가 아닌 그저 빛을 바라보기에 성자다.”
교단의 초대 성자가 내린 가르침. 모든 성자 후보는 그 가르침을 교황 앞에 읽으며 성자의 길을 걷는다.
나는 성자 후보다. 효율적인지 아닌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내가 나서는 게 옳다.’
황혼 교단의 목표는 나다. 내가 제도에 있는 이상 제도 진입을 노릴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선량한 동포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적당히 숲으로 빠져야지. 아마 그것들은 좋다고 덤벼들 것이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우연히 숲에서 놀고 있는 사이에 그것들이 덤벼든 것인데.
제가 미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우연이니 용서 바랍니다.
***
타니안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느긋하게 숲에서 삼림욕이나 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어째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다.
그리고 타니안은 행동을 주도하는 타입이 아니다. 차라리 류티스가 숲의 위치를 물으면 물었지, 타니안은 먼저 나서지 않았다. 고문이 부원의 성향도 모르면 내 1학기는 내다 버린 시간이지.
평소와 다른 타니안, 마침 황혼 교단의 접근 중이라는 보고.
“황혼 교단이냐?”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타니안이 모를 리가 없다. 타국인 제국에도 황혼 교단에 대한 정보를 알린 신성교국이 정작 당사자인 타니안에게 연락 하나 없을 리가.
“이런, 알고 계셨습니까?”
“부원이 위험한 상황인데 고문이 모르겠나.”
그 말에 타니안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네가 제국에 꾸역꾸역 머무르겠다고 억지를 부려서 나도 고생하는 거 아니냐. 염치가 있으면 미안하긴 하겠지.
순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숲을 찾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유인할 생각인가.’
타니안이 제도에 있다면 황혼 교단의 목표는 제도 잠입이다. 당연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병사뿐만 아니라 민간인 피해도 발생할 수 있다.
그걸 막기 위해 아예 제도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민간인 피해가 생길 일도 없으니까.
그래,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얘가 성자 후보가 맞기는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 마라.”
그래도 타니안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맞다. 암살 대상은 안전한 곳에 있어도 신경 쓰이는 법인데, 아예 최전방에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어차피 제도에서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요격을 할 예정이다. 심지어 특무성, 전쟁성, 마종공이 합심하여 죽일 각오를 다지고 있으니 타니안이 우려하는 피해가 생길 일은 없고.
“그것들이 제도까지 올 일은 없을 거다. 황혼 교단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이를 가는 사람들이 오죽 많아야지.”
괜찮다는 의미로 타니안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방금 타니안의 말도 무리한 부탁이지만, 직업에 맞는 부탁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 이게 성자지. 이게 내가 아는 성자의 모습이지.
평소에도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좋았을 걸. 사랑에 눈이 멀어 눈치, 지능, 양심 전부 탈착한 끔찍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게 효과적일 텐데.’
아마 루이제도 성자스러운 모습을 보면 반할 거다.
그러나 루이제도 반할 것 같은 모습(추정)으로 각성한 타니안의 고집은 말 몇 마디로 누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제가 직접 싸운다는 말은 아닙니다.”
“싸울 수는 있고?”
“하하, 성자도 전투 능력은 갖추고 있습니다.”
가볍게 웃은 타니안이 다시 진지하게 표정을 굳혔다.
“황혼 교단이 위협적인 이유는 은밀함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지.”
마땅한 기반도 없는 것들이 아직까지도 대륙을 돌아다니며 버티는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은밀하고 신속한 것들이라 도저히 박멸하기 어렵다.
갑자기 나타나서 순식간에 깽판을 치고 유유히 사라진다. 그 새끼들이 믿는 신이 몇 안 되는 신도들에게 능력을 듬뿍 줬는지 아주 미칠 노릇. 이번처럼 제도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미리 알아챈 것이 오히려 드문 일이다.
“그 은밀함을 없앨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기에 타니안의 말은 상당히 솔깃한 말이었다.
“은밀함을 없앤다?”
사실 황혼 교단 요격은 대충 그것들이 올 것 같은 루트에 온갖 함정을 깔고 마종공이 광역 마법을 폭격할 계획이었다. 보이지 않으니 그냥 있을 것 같은 곳을 통째로 날린다는 확실하고 화끈한 방안.
물론 그런 무식한 방법은 무리가 많다. 마종공이 뒤엎은 지형을 다시 복구해야 하고, 그 정도로 화려한 폭격이면 제도에서도 보인다. 민간인들이 불안에 빠질 수 있지.
그래도 어쩌겠나,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인데. 만약 하나라도 놓쳐서 제도에 돌입하면 내 모가지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런데 은밀함을 없앤다? 그러면 그냥 움직이는 샌드백인데?
“황혼 교단이 성자를 노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상징성 때문으로 알고 있는데.”
“상성 때문입니다.”
자신만만하게 입을 연 타니안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게 말을 이었고─
“…그게 된다고?”
“괜히 저를 노리는 게 아닙니다.”
게임 캐릭터였다면 밸런스 말아 먹었다고 원성을 들을 능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아니, 진짜 신의 아들인가? 황혼 교단 상대로 극카운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