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81)
로판 속 공무원 981화(982/985)
장인공의 검은 일시 회수되었다.
황제에게 하사받은 검이라도 황궁 안에서, 그것도 제국의 모든 작위 귀족들이 모인 신년하례식 중에 들고 다니는 건 곤란하니까. 덕분에 검을 가져왔던 시종은 도로 검을 든 채로 홀연히 사라졌다.
실로 다행인 일이다. 아무리 작은 문장이라지만 유심히 살펴본다면 눈치챌 수 있는 크기였다. 그런 검을 들고 작위 귀족들 사이를 누빈다? 반드시 ‘검자루에 새겨진 문장은 뭡니까?’ 라는 질문이 나왔을 터.
그랬다면 2월까지 갈 것도 없이 새해부터 소란스러웠을 거다. 처음 보는 문장이 내 하사품에 새겨져 있고, 개인 문장을 가질 수 있는 건 황제와 공작뿐이기에. 공작의 부군이 개인 문장을 가지고 있으면 온갖 추측이 난무하지 않겠나. 그중에는 분명 공작위 계승 얘기도 나올 테고.
‘그런 추측이 나오면 일이 꼬인다.’
우리는 공작(엄마)-대리(아빠)-차기 공작(딸)의 형식으로 세르베트 사령탑 자리를 인계할 생각이다. 이는 작년 초부터 정한 사항이니 나름 철저하게 준비한 일이다.
헌데 귀족들이 ‘세르베트 공작위가 부부 사이에 계승된다!’ 라는 오해를 하며 수군거린다면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대리 형태로 계승할 생각이었는데, 마치 귀족들의 반대와 흉흉한 민심으로 인하여 공작위 계승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잖아.
물론 적극적으로 해명하면 어떻게든 수습되겠지. 그래도 겪지 않아도 될 일은 피하는 게 옳다. 고작 대리에 불과하더라도 세르베트 사령탑의 시작을 구설수로 뒤덮을 수는 없기에.
‘식겁했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단상 위의 황제를 노려봤다.
저 망할 누렁이. 저놈도 들키면 곤란하다는 걸 알기에 즉각 검을 수거한 것이겠다만, 애초에 문장을 새기지 않았다면 곤란할 일도 없지 않나?
이해할 수가 없다. 마치 나를 어디까지 놀릴 수 있나, 어느 선까지 가야 참사가 터지지 않나 스릴을 즐기는 미치광이처럼 느껴진다. 제국에 핵폭탄 발사 버튼 같은 게 있다면 혼자 누르고, 혼자 취소하는 걸 반복하면서 놀 놈이야.
그러다 아슬아슬하게 발사 직전에 멈추면 신기록을 세웠다며 좋아하겠지. 크레이지 스트롱 맨이 따로 없다.
“축하한다.”
“아, 장인어른.”
그렇게 황제가 단상에서 물러날 때까지 바라보던 중. 첫째 장인어른의 목소리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장인공 각하의 걸작을 황제 폐하의 손을 거쳐 받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아부 아닌 아부를 반사적으로 출력했다.
장인어른은 장인공의 검이 내 성유물이 될 예정이라는 걸 알고 계신다. 조상의 검이 성유물로, 그것도 멀쩡히 살아있는 사위의 성유물로 지정된다는 사실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지.
그럼에도 성유물 지정의 필요성과 외손주들의 애교로 애써 납득하고 넘어가셨는데, 모든 작위 귀족 앞에서 조상의 작품이 새로운 하늘을 열 보물로 진화했다. 장인어른 입장에서는 흡족하기 그지없는 일.
“그러니 축하한다고 말한 것이다. 걸작 중의 걸작을 손에 넣은 것도 경사스러운 일이거늘. 만인이 보는 앞에서 폐하께 하사받지 않았느냐.”
“참으로 과분한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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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새로운 하늘을 열어젖힐 그 검은 제국을 넘어 대륙 역사에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니. 이는 나와 바렌티의 기쁨이기도 하다.”
실제로 장인어른의 표정은 온화함과 흐뭇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차피 사위의 성유물이 되어 땅에 묻힐 검이었는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사되었다면 영원토록 만인의 기억에 남으니까.
‘남도 아닌 직계 조상의 걸작이 역사에 남는다라.’
듣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올 일이기는 하다. 후손으로서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어.
그리고 땅에 묻힌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비유지, 알고 보니까 진짜로 지하에 매장되는 건 아니더라. 실제로는 대성당 지하실에 고이 보관되는 것이었다. 장인어른이 다니스 대교구에 요청한다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뜻.
이 정도면 황실 보물고에 잠들어 있을 때보다 사정이 좋다. 이건 검 입장에서도 진화, 출세가 맞아.
“그건 그렇고.”
입꼬리를 올리며 수염을 매만지던 장인어른이 내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검자루에 있던 문장은 뭐냐.”
‘아.’
그러고는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내용을 직설적으로 속삭이셨다.
그러네. 장인어른이 비록 공작위에서 물러난 무작위 귀족이지만, 그래도 전직 공작이자 현직 공작의 친부로서 단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 계셨다.
심지어 장인어른은 육체적 능력도 경이롭지 않던가. 사위 놈 손에 들린 조상의 검에 처음 보는 문장이 있다? 아마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을 거다.
“그게, 말입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미 보신 걸 부인할 수도 없다. 게다가 조상의 걸작에 후손조차 모르는, 속된 말로 개조 당한 문장이 있다면 장인어른의 기쁨이 분노로 돌변하기에 충분한 사유다. 괜히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허접하게 변명하면 그대로 장인어른 손에 칼 플립 Z가 되겠지.
“장인어른. 이건 아직 폐하와 극소수의 장관, 저와 부인들, 세르베트의 가신, 봉신들만 아는 기밀입니다.”
“상당히 많이 알고 있군. 그거 기밀 맞느냐?”
상당히 논리적인 지적에 순간 입이 막혔다. 확실히 은퇴식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그런가, 기밀 운운하기에는 아는 사람이 제법 많다.
‘마음 편히 말해도 되겠네.’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동네방네 떠들 이야기는 아니지만 철저하게 숨길 필요는 없고, 장인어른 정도면 공작위 변동 정보에 접근할 자격이 충분하다. 이거 굳이 포장할 필요 없이 솔직하게 말하면 되겠어.
“2월에 트릭시가 공작위에서 물러날 겁니다.”
장인어른의 호흡이 잠깐 멈춘 게 느껴졌다. 마치 과도한 정보 유입으로 인해 두뇌 활동이 일시 정지한 것처럼.
“물론 마리아가 차기 공작이 되기에는 너무 어리니, 마리아가 장성하기 전까지는 제가 공작 대리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장인어른께서 보신 문장은 제 개인 문장이고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장인어른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장만 응시하셨다.
신년하례식은 큰 소란 없이 흘러갔다.
졸지에 ‘낡은 하늘을 베어내고 새로운 하늘을 열 영웅’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귀족들에게 둘러싸이기는 했다만, 귀족들에게 둘러싸이는 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겪은 일이니 새삼스럽지 않다. 아마 내년에도 겪을 일이니 괜찮아.
그렇게 무난하게 흘러간 신년하례식 중 유일한 특이사항이 있다면,
“호오. 공작 대리라.”
“와! 쬬까! 이재 나랑 동끕이야!?”
“동급은 좀 그렇고, 바로 아래 정도가 옳은 표현 아닐는지.”
이왕 장인어른께 밝힌 기밀. 그냥 다른 공작들에게도 전부 밝혀버렸다.
사실 숨기기 애매한 정보기는 했다. 무려 100년 동안 군림한 공작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인데, 적어도 같은 공작들도 알고는 있어야지. 애초에 마지막까지 숨기다가 일이 터지고 나서야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은 알고 있었는데 나는 몰랐다고?’ 라며 자존심이 상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현직 공작인 내가 모르던 정보를 전직 공작과 몇몇 장관이 알고 있었다. 이보다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공작의 이름이 울 일이야.
“이거 1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일들이 연달아 터지는군. 작년에는 철혈공이 물러나더니, 올해는 참.”
아무튼 2년 연속 공작 은퇴라는 어마어마한 정보에 황금공은 픽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연신 시가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이 정보를 어떻게 써먹어서 한탕 벌어볼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의 황금공이라 가슴이 푸근해졌다. 저 양반의 행동 루틴은 우직하고 신뢰감이 있어.
“이거 나와 아버지 때문에 막내 매부가 괜한 짐을 진 건 아닐지 걱정되는군.”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이미 트릭시도 마음을 먹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그저 적절한 시기를 고르고 있었을 때, 마침 장인어른이 먼저 판을 깔아주셨을 뿐이지요.”
“음.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여.”
뒤이어 막내 공작에서 탈출하게 된 형님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공작 등극 1년 만에 공작 ‘대리’라는 압도적 막내가 생겼다. 은근히 다른 네 공작의 눈치를 보던 형님 입장에서는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 같지 않을까.
가족의 기쁨은 내 기쁨이지만, 문제는 내가 형님의 고통을 승계했다는 거겠지.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여명공은 마음이 놓인 것 같지만, 나는 조금 아쉽다네. 칼 군이 공작 대리가 된다면 칼 군이라 부르는 것도 곤란하지 않겠나. 공작 대리를 편하게 대할 수는 없으니.”
“아닙니다. 꼭 칼 군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제가 비록 대리지만, 그 이름이 각하의 세월과 연륜을 도모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 와중에 전승공이 끔찍한 말을 하기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난 그냥 칼 군이다. 어디까지나 공작 자리를 따뜻하게 데워두고 있는 칼 군이야. 전승공에게 칼 군이 아니라 공작 대리라는 직함으로 불리면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아.
“하하, 칼 군이 원한다면 마땅히 그리해야지. 2월부터는 같은 공작으로서 잘 부탁하네, 칼 군.”
“이왕이면 ‘같은’이라는 단어도 좀 빼주시면…”
“어허. 우리가 대리를 무시하면 누가 대리의 권위를 존중하겠나. 비록 우리 중에서는 막내일지언정, 우리보다 아래로 취급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말게.”
단호한 말에 침통히 고개를 숙였다.
상냥하지만 잔인한 기묘한 사람이다…
***
이번 신년하례식 마지막 날은 이전과 다른 일정을 소화했다.
신년하례식에 참석한 모든 귀족들과 아우스엔 대교구의 사제들이 모인 일정. 심지어 양위 이후로 외부 활동을 철저히 지양하시는 상황 폐하마저 자리를 빛내주신 일정.
‘야외 하례식은 처음이군.’
황궁이 아닌 야외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일정. 마탑의 협조를 통하여 상당한 규모의 인원들이 그 마지막 일정을 위해 다니스로 이동했다.
새로운 하늘을 열어젖히고, 대륙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기 위하여.
“낡은 하늘을 베어버리고! 새로운 하늘을 외치라!”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새로운 역사. 이 순간에 내가 있다는 것, 내가 주도한다는 것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외쳤다. 지금만큼은 일국의 군주, 대륙의 황제가 아닌 역사의 증인으로서 외쳤다.
“””낡은 하늘을 베어버리고! 새로운 하늘을 외치라!”””
이내 다니스에 모인 자들도 나와 같은 외침을 내뱉었고,
‘흐으.’
하늘이 갈라졌다.기존의 상식과 질서는 오늘에 이르러 미래와 끊어졌다.
이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돌아갈 생각도 없이 앞으로 달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