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82)
로판 속 공무원 982화(983/985)
요즘 들어 하늘 베기를 공개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내가 왜 아카데미에서 하늘을 베었을까. 왜 대토벌 전쟁에 참전했던 지휘부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던 일을, 나만 함구하면 누구도 모를 일을 굳이 만천하에 공개했을까.
물론 도르곤의 2차 봉기 덕분에 꽁꽁 숨겼어도 언젠가는 하늘 베기를 썼겠다만, 전쟁 중에 사용한 필살기와 평상시에도 사용한 퍼포먼스는 다른 법이다. 전자는 군사 기밀로 엮어서 꽁꽁 숨길 수 있었어.
허나 내 하늘 베기는 군사 기밀이 아니라 나─ 아니, 제국의 상징이 되었다.점점 인간 칼 크라시우스에서 하늘 베기 토템 칼 크라시우스로 전락하는 기분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하늘이 아니라 산을 베었어야 됐는데.’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차라리 하늘이 아니라 산을 베었다면 이렇게 시달릴 일이 있었을까?
하늘은 베어봤자 아무런 피해가 없고,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알아서 붙는다. 덕분에 화려한 이펙트와 달리 뒷수습 문제는 없다시피 하다.
반면 산을 베어버리면 피해도 어마어마하며, 반으로 갈라진 산을 붙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펙트가 화려한 만큼 뒷수습도 화려하게 진행해야 하니, 함부로 남발할 기술은 아니다.
‘산을… 베었어야 했어…’
그러니 산을 베어야 했다. 그랬다면 황제가 심심할 때마다 산을 베라고 시키지 않았을 테니.
“성스러운 분이시여?”
“아, 예. 듣고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과거의 실책에 절절히 후회하던 중. 맞은편에 앉은 아우스엔 대교구장의 목소리에 정신을 다잡았다.
대화 중이던 사람, 그것도 같은 공무원이 아닌 교계의 거물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건 큰 무례다. 그럼에도 정신이 다른 곳으로 팔린 걸 보면 나도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새해부터 모든 작위 귀족들, 아우스엔 대교구의 사제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듯이 하늘을 베었으니까.
이게 뭐가 공작 대리 칼이냐. 제국 제일 광대 칼이지. 난 귀족이 아니라 평민으로 태어났어도 대성했을 거야.
“성스러운 분께서 본 대교구에 기부해 주신 검은 제가 1차적으로 축복을 내리고, 신성교국으로 인계한 후에 교황 성하께서 성유물 지정 예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2월 전까지는 성유물이 될 터이니 다니스 공사에 차질이 생길 일은 없습니다.”
아무튼 내가 빠르게 정신을 부여잡자, 대교구장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교단의 적극적인 협조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그런 대교구장에게 여러 의미로 감사 인사를 올렸다.내 유체이탈을 묵인해 준 것과 교단의 적극적 협조에 대하여.
만일 교단이 광속으로 성유물 지정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다니스 대교구 대성당 건설은 늦어졌을 거다. 그리고 무려 대성당 공사가 어긋나면 동 다니스 건설 자체에 적색등이 들어올 것은 자명한 일.
‘황제가 직접 선언한 국책 사업이 시작부터 삐걱인다라’.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심지어 그냥 사업도 아니고 신년 1호 사업, 대륙의 새로운 질서를 상징하는 사업이잖아. 그게 삐걱인다면 관련자 전원의 모가지가 간당간당해진다.
…
‘좋은 건가?’
관련자 전원의 모가지. 진짜 물리적인 모가지를 자르지는 않을 테니, 오히려 좋을지도?
아니, 아니지. 괜한 기대는 하지 말자. 그놈이라면 강제 은퇴가 아니라 추가 업무를 형벌로 내릴 놈이니.
“감사하다니요. 동 다니스에 자리 잡을 조약 기구는 교단과 교국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황제 폐하의 자비와 배려로 인해 신성교국이 참관국으로 합류할 것이며, 설령 참관국이 되지 못하더라도 대륙의 평화를 위한 일 아닙니까.”
그 와중에 작게 웃음을 흘린 대교구장은 성호를 그으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저희가 성스러운 분께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성유물이 필요하다는 저희의 투정에 이리도 귀한 검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성스러운 분께서 한 번이라도 걸치신 의복으로도 충분히 만족하였을 텐데.”
“교황 성하께서 즉위하시고 처음 지정하는 성유물입니다. 그럴 가치가 있어야 하고, 만인의 탄성을 받아야 하겠지요. 그러니 마땅히 귀한 것을 주의 것으로 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어, 과연. 성스러운 분의 뜻은 실로 고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내 말에 대교구장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제국의 다섯 기둥 중 하나인 울켄 공작의 걸작이요, 황실 보물고에 있던 명검이며, 하늘을 베는 업적까지 깃든 검이다. 그런 검을 교단의 체면을 생각하여 넘겨주었다고 말하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그것도 무료로.
‘대가를 받아봤자 어디다 쓰겠어.’
교단은 성유물로 지정할 물건을 정당하게 구입하겠다고 했으나,얘네가 파산 직전의 절박한 상황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안 그래도 지갑이 빈약한 사람을 털어먹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지.
그래서 그냥 무료로 기부했다. 절대 받을 수 없다던 대교구장에게 겨우겨우 소매넣기까지 하면서.
‘이게 맞아.’
어차피 내가 돈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잔뜩 쌓인 돈을 추가로 받는 것보다는 교단에게 마음의 빚을 얹어두는 것이 이득이다. 교단 역시 성인의 기부에 입을 싹 닦고 넘어갈 집단이 아니기도 하고.
“성스러운 분의 신실함은 제가 반드시 성하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천상의 주께서 모든 걸 알고 계시는데 그럴 필요야 있겠습니까? 허나 예하의 뜻이 그러하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허허, 이거 잊지 말고 꼭 전달해야겠군요.”
그 말을 끝으로 적당히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대교구장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저택으로 돌아가면 바로 1차 축복을 내릴 예정인 것 같으니, 빨리 물러나야 서로에게 이득이다. 쓸데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대륙적 사업만 조금씩 조금씩 늦춰질 뿐이니.
그리고 사흘 후. 장인공의 검이 신성교국으로 인계됐다는 말과 함께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하나 날아왔다.
[ 전대 성하께서 직접 만드시고, 현 교황 성하께서 축복을 내린 십자가입니다. 부디 이 작은 십자가가 성스러운 분과 그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무려 살아있는 두 교황의 정성이 담긴 십자가가.
‘메이드 인 교황 십자가라.’
흡족스럽다. 비록 재료는 나무지만 귀금속이나 보석으로 만든 십자가보다도 귀한 십자가가 아닐 수 없다. 공의회를 이끈 전대 교황이 직접 만든 십자가인데, 그깟 재료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할까.
어쩌면 이 나무조차 전대 교황이 직접 선별하거나 축복을 내린 나무일 수도 있다. 그러면 그 가치는 더더욱 올라가겠지.
게다가 이 십자가 앞에 ‘작은’이라는 표현을 붙였다. 이는 내 기부를 십자가로 퉁치지 않고, 훗날 제대로 보답하겠다는 뜻.
‘가정에 행복.’
물론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우리 가족의 행복을 빌어줬다는 거지만.
어떠한 금은보화보다 그 한 마디가 제일 큰 선물로 느껴진다. 전대 교황과 현 교황이라 그런지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
태양전 누렁이도 나이를 먹으면 인간의 마음을 깨닫게 될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장인공의 검이 신성교국으로 건너간 동안 제국은 동 다니스 건설 부지를 빠르게 평탄화했다.
성유물이 도착하면 바로 대성당을 세울 수 있게. 대성당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곳에 스테판의 영광을 짓기 위해.
아무리 공중 건물이라도 24시간 내내 공중에 둘 수는 없는 법. 조약 기구의 회의 기간을 제외하면 평범하게 지상에 있어야 하니, 스테판의 영광이 머무를 장소도 마련해야 하지 않겠나.
건물을 두고 머무를 장소라고 하니 어감이 이상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어긋나도 하루나 이틀 정도면 충분하겠네.’
이윽고 신성교국에서 보낸 십자가를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했다.
제국의 부지 평탄화 속도와 아우스엔 대교구장이 알려주었던 성유물 지정 의식 과정. 대충 둘을 비교해 보면 부지 공사가 끝나기 전에 성유물이 올 것 같고, 설령 늦더라도 공사 종료 이틀 후에는 도착한다.
이틀 정도면 나쁘지 않다.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하기 전, 사기 진작 명분으로 술판을 벌이거나 기도를 연다면 이틀은 금방 가지.
‘이제 세르베트에만 신경 쓰면 되겠어.’
하늘도 갈랐고, 성유물로 지정할 검도 넘겼고, 적절한 시기에 돌아올 것도 확인했다. 그럼 더 이상 스테판의 영광과 동 다니스 건설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 내가 공사나 개발과 연관된 놈은 아니잖아.
이제 트릭시의 은퇴 및 내 대리 등극에만 집중하면 된다. 2월 중순까지 몇 주 남지 않았─
“주인님.”
“응?”
등 뒤에서 들리는 집사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루치아노 경의 저택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소 의외의 말인지라 고개를 기울였다.
YW9peUx5cktZYXhyU2hzY1VsMkQ0UVIxTFRHZlpkMm5HenN2REM0V2pGWTdsazVoNlBKZzJYWTAyV2dONW9Ocw
루치아노가 나한테 할 말이 있다면 굳이 집사한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직접 했을 거다. 그러니 집사를 거친 연락을 시도했다면 루치아노가 아닌 부인의 연락일 가능성이 높은데, 부인이 나한테 갑작스레 연락할 일이 있나?
‘애들이 놀러 간 것도 아닌데?’
우리 아이들이 루치아노의 저택에 있다면 또 모를까, 루치아노의 저택에는 티티만 쪼르륵 달려간 상태다. 1월이라 추운 날씨지만 2차 임신을 한 제니의 배가 상당히 부풀어서…?
‘설마.’
배가 부푼 제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제니 곁을 지키는 티티. 마지막으로 집사에게 연락을 취한 부인까지.
“집사. 혹시.”
“예. 제니가 새끼를 낳고 있다 합니다.”
“오.”
오.
***
기뻐요! 기뻐요!
오늘은 눈도 내려서 춥지만, 이상하게 춥지가 않아요! 온몸이 따뜻해요!
이상한 일이지만 왜 이러는지 알아요! 엄청 기쁘고 행복한 일이 생겨서 그런 거예요!
– 멍!
꼬리를 흔들며 제니의 얼굴을 핥아줬어요.
고생했어요, 고생했어요 제니! 이번에도 예쁘고 귀여운 새끼들을 잔뜩 낳았어요!
“이번에도 건강하게 잘 낳았구나. 고생 많았어, 제니.”
제니를 돌봐주는 사람도 그렇게 말했어요! 정말 고생 많았어요, 제니!
– 끼이잉…
내 위로에 제니도 힘겨운 목소리로 대답해 줬어요.
무리할 필요 없어요! 지금은 그냥 누워있어요! 제니랑 기쁨을 나누는 건 이따가 하면 돼요!
“티티야!”
– 멍!
나랑 당장 기쁨을 나눠줄 주인님이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