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85)
로판 속 공무원 985화(986/1009)
아무래도 미니 인절미들은 티티의 현명함을 제대로 이어받은 것 같다.
리트리버는 원래도 귀엽지만, 작은 사이즈여야 더 귀엽다는 걸 알고 있을 만큼 현명하다. 그래서 자기들이 독립하기 전까지는 이 악물고 작은 체구를 유지한 거야.
분명 그럴 거다. 그게 아니고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듬직해졌네.’
중심만 잘 잡으면 한 손으로도 들어 올릴 만한 크기를 자랑하던 미니 인절미. 테레사보다도 작아서 테레사가 거대 인형처럼 안고 좋아하던 미니 인절미.
불과 몇 주 전까지는 그 정도 사이즈였거늘. 오랜만에 타일글레헨 백작성에 방문하니 노랑이처럼 듬직하고 거대한 인절미가 반겨주었다.
– 멍!
심지어 울음소리도 더 우렁차고 위엄이 넘치게 진화했다. 대체 요 몇 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큰오빠!”
“어, 응. 우리 테레사. 잘 지냈니?”
“웅! 네리랑 가치 잘 지내써!”
– 멍!
그래도 거대 인절미─ 아니, 네리 옆에 착 달라붙어 있던 테레사는 이 폭풍 성장이 기꺼운지 활짝 웃고 있었다.
네리도 테레사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는지 테레사 옆에서 꼬리를 쉴 새 없이 흔들고 있고.
‘잘 지냈으면 됐다.’
그래, 서로 만족하고 지냈으면 됐어. 애초에 리트리버는 소형견이 아니라 대형견이잖아. 테레사에게 작은 놀이 상대를 주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소형견을 찾아서 주는 게 옳았다.
예를 들면 장생이라거나 장생이라거나 장생이 같은 애.
“아. 자근오빠두 안녕.”
“이제야 작은오빠를 봐주는구나…”
이윽고 테레사는 평온한 목소리로 에리히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를 대할 때와 비교하면 명확한 차이가 느껴지는 태도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리 테레사는 에리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게 확실하다.
애석하게도 에리히는 테레사가 아기에 불과했을 무렵, 큰 소리를 내다가 잠에서 깨운 경험이 많으니까. 그때의 원한이 쌓이고 쌓여 에리히를 덜 좋아하게 된 거지.
‘싫어하는 건 아니니 됐어.’
물론 어디까지나 ‘나와 비교하면’ 덜 좋아하는 수준이니 중재할 생각은 없다.
막말로 에리히를 보자마자 울고불고 떼를 쓰거나, 보기 싫어서 도망치거나, 주먹과 발길질을 하는 건 아니니까. 마음속 호감도 순위의 차이는 테레사의 의지에 달린 거지, 아무렴.
“참, 아빠랑 엄마는 어디 계시니?”
“쩌어기 뒤애! 나랑 네리가 먼저 왓서!”
그렇게 흡족한 마음으로 테레사에게 부모님의 위치를 물으니, 테레사는 복도 쪽을 가리키며 해맑게 외쳤다.
그렇구나. 우리 테레사, 이제 어른 둘 정도는 가볍게 따돌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구나. 게다가 아버지는 제국군 원수로 활동하셨을 만큼 명성 높은 무인인데.
‘미래가 밝아.’
나도 모르게 테레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얘도 우리 크라시우스의 피를 진하게 이은 것이 확실하다. 벌써부터 이런 용맹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이다니. 최소 기사단장급의 인재가 아닐까 싶어.
그래도 우리 막내는 공인의 길을 걷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랏일을 하며 고통받는 건 나랑 에리히, 이렇게 둘로도 충분해.
‘셋이나 있으면 하나는 행복해도 되잖아.’
그럼에도 만약에, 아주 만약에 테레사가 기사의 길을 택한다면 내 영지 소속 기사로 만들자. 내 휘하에서 일을 하면 고통받을 일도 없으니까.
절대 군단 소속 기사나 황실 기사단원으로는 만들 수 없다. 그쪽 루트를 밟으면 빼도 박도 못하는 공무원이니.
“테레사.”
“우웅?”
“테레사는 아빠랑 엄마랑 오빠들이랑 사는 게 좋지?”
“웅! 나! 펴어어엉생 가치 살고 시퍼!”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오빠가 우리 테레사의 바람을 꼭 이루어줄게. 전대 타일글레헨 백작의 딸이자 현 타일글레헨 백작의 여동생으로서, 평생 백작령에서 놀고먹게 해줄게.
미래에는 타일글레헨 백작의 고모로서 존중과 대우를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형.”
“왜.”
“왜 나한테는 이런 거 안 물어봤었어?”
대답할 가치도 없는 말이기에 조용히 테레사를 안아올렸다.
넌 내 대리로 활동해야 하니까 물어봐도 의미가 없었어. 네가 백수가 되려면 내가 아니라 제국법과 관례에 항의를 해야 됐으니.
에리히가 본격적으로 항의하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착하셨다.
에리히도 차마 부모님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는 없었는지 스르륵 입을 닫더라.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 효자라 다행이다.
“아가들은 다 친정으로 갔다고?”
“예. 신년하례식 때 장인어른들과 인사 정도는 나눴지만, 그래도 가문 사람들을 전부 만나지는 못했으니까요. 마침 할 일도 없으니 잠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잘 했단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건 중요한 일이지. 아무리 크라시우스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어도 그 아이들의 친정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친정이 있는 부인들은 친정으로, 없는 부인들은 각자의 영지나 지인들을 만나러 향한 상황. 이말에 어머니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혹시 ‘이왕이면 다 같이 오지 그랬니.’ 라며 아쉬움을 표하시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평소에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봬서 그런지 며느리들의 친정 방문에도 덤덤히 반응하셨다.
하긴. 종종 보는 며느리들을 굳이 새해에도 보겠다고 소환하는 건 어머니 성품에 맞지 않아. 어머니가 그렇게 고집이 세거나 권위에 집착하는 분은 아니니.
“사돈들께서도 딸이랑 외손주들을 보게 돼서 기쁘시겠어.”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감사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체력은 최대한 빼서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후후, 다들 친절하시구나.”
작게 웃음을 흘린 어머니는 힐끗 테레사를 바라보셨다.
네리와 함께 방 안을 우다다다 달리고 있는 테레사. 고작 테레사 한 명으로도 이렇게 강렬한데, 아이들의 체력을 뺀 상태로 돌려보내겠다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감사한 말씀일까.
덕분에 우리 성수들도 오랜만에 느긋한 휴가를 맛보고 있다. 아이들이 돌아와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평소보다 여유롭게 놀아줄 수 있을 터.
“참, 그래도 라우라는 자이겔 남작령에 있어서 금방 올 수 있단다. 잠깐 오라고 할까?”
“괜찮습니다. 유모도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야지요.”
“네. 장모님에게는 제가 따로 찾아가 인사드리겠습니다.”
에리히의 말에 어머니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유모가 에리히의 장모가 된 것도 몇 년이나 지났거늘, 여전히 어머니와 유모는 서로를 사돈이라 부르는 것을 조금 민망해하신다. 특히 에리히가 유모에게 장모님이라고 하면 어머니가 웃고, 세라가 어머니에게 시어머니라고 하면 유모가 웃었다.
언제쯤 익숙해지실까 싶지만 충분히 이해한다. 두 분이 워낙 절친한 사이어야 말이지.
“칼.”
“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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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어머니와 이런저런 근황 얘기를 하던 중. 침묵을 지키던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며늘 아가들은 1월이 끝나기 전에 돌아오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금방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1월 안에는 올 겁니다.”
“그런가.”
내 대답에 아버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셨고,
“네가 괜찮다면 2월 초에 자리를 빛내줬으면 하는 곳이 있다.”
“제가… 말입니까?”
“정확히는 너희다. 너와 에리히, 테레사. 그리고 며늘 아가들과 손주들 전부.”
크라시우스 전원이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라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길래 나나 에리히만이 아니라 가문 전체가 우르르 움직이는 거지? 그것도 2월 초라는 애매한 시기에?
1월 초면 새해 기념이라는 명분이 있고, 3월 초는 대다수의 집단이나 기관이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다는 명분도 있다. 헌데 그 중간인 2월 초는 대체.
“아우구스트가 그때 연회를 열겠다는구나.”
‘아.’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바로 이어지는 첨언에 납득했다.
아버지가 말하는 아우구스트라면 한 명밖에 없다. 아버지의 바로 아래 동생인 아우구스트 숙부. 현재 데아스트 백작가의 부군인 분.
확실히 크라시우스 칠남매가 다시 모일 연회는 아우구스트 숙부가 준비하기로 했었다만, 그게 2월 초로 잡혔구나.
‘하필이면.’
너무 절묘한 시기라 식은땀이 흘렀다.2월 초면 트릭시의 은퇴 직전이지 않나.
크라시우스 가문 전원이 모인 연회가 벌어지고 며칠 후에, 크라시우스 가주가 공작 대리로 등극한다? 이거 누가 봐도 등극 대리 직전, 가문원끼리 단결하고 축하를 나눈 회합이다.
그렇다면 대리 등극이 발표되자마자 숙부, 고모들에게 온갖 귀족들이 찾아가 귀찮게 할 수도 있다. 혹시 미리 들은 게 있느냐고, 공작 대리께서 따로 남긴 말씀은 없었느냐고.
어쩌면 얼굴도 보지 못한 내 사촌들, 결혼을 빠르게 했다면 오촌들까지 시달릴 가능성이 있어.
‘어쩌지 이거.’
곤란하다. 마음 같아서는 불참하거나 날짜를 미루면 어떻겠느냐고 하고 싶다. 허나 아우구스트 숙부가 얼마나 성심을 다하여 연회를 준비했는지 짐작되기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남매들뿐만 아니라 조카들, 조카손주들도 부르는 건 아우구스트 숙부도 큰 결심을 한 요청이다. 특히 연회를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던 남매 회합을 지속하겠다고 다짐한 거기도 하다.
그런 숙부의 용기와 결심을 짓밟고 싶지는 않다. 조카로서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는 없어.
“저, 사실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2월에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자 아버지가 먼저 반응하셨다.
일이 있기는 하다. 누구도 상상 못할 거대한 일이.
“2월 중순 정도에 말입니다만─”
며느리의 은퇴와 아들의 대리 등극.
이 경이로운 소식을 들은 부모님의 표정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다.
아버지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연회를 취소하거나 나보고 오지 말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아마 아버지가 숙부, 고모들에게 미리 언질을 주겠지. 연회 중에 폭탄선언이 하나 있을 거고, 연회가 끝나고 나면 한동안 이래저래 시달릴 거라는 중요한 언질을.
‘조카가 아니라 역병이네.’
조금 자괴감이 들었다. 가족들이 모여서 즐겨야 할 자리에 폭탄을 터뜨리는 가주라. 이게 역병이 아니면 대체 뭘까.
– 멍!
“아.”
그리고 저택으로 복귀하자마자 반겨주는 티티의 모습에 탄식이 나왔다.
애석하게도 크라시우스 회합만이 아니라 티티 설득 문제도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자보다 후자가 더 심각한 문제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황태녀한테 새끼 좀 주지 않을래?’ 라는 말을 꺼내야 할까. 그것도 티티가 노여워하지 않고, 나에게 상처 입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나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