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9)
여명 교단이 처음부터 대륙의 주류 종교였던 건 아니고, 에넨도 처음부터 유일신이지는 않았다. 여명 교단이 막 태동했을 당시의 대륙은 여러 신이 날뛰는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렇기에 유일신 에넨의 뉴비 시절은 일개 태양신에 불과했다.
일개라는 단어와 태양신이라는 단어가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유일신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태양신도 따위에 불과하지. 황혼 교단이 섬기는 신도 당시에는 대지신이었다나?
그 시절의 영향인지 여명 교단은 시신을 태워서 하늘로 보내는 화장 문화, 황혼 교단은 시신을 온전한 상태로 땅에 묻는 매장 문화를 선호한다. 물론 중요한 건 그런 그런 게 아니다.
“우리의 주께서는 하늘에서 대지 위의 모든 것을 굽어 살피십니다.”
“그게 그런 의미였나.”
태양신(하늘에서 거주함)은 대지신(태양을 못 피함)의 담당 일진이었다. 대지신 나부랭이의 힘을 받은 이교도? 절대 에넨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심지어 다른 신과 교단을 전부 두들겨 패며 종교 승리를 찍은 이후, 에넨의 힘은 더욱 막강해졌다. 자신이 아닌 다른 신의 힘을 품은 이교도 정도는 금방 간파할 수 있을 정도.
여기에 대지신과 극카운터인 상성마저 추가된다? 황혼 교단이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여도 타니안에게는 의미가 없다. 투명인간이면 뭐하나, 그 위에 시뻘건 페인트를 끼얹어서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데.
“물론 저는 전지전능하신 주가 아닌 그 분의 편린을 잠시 하사받은 입장입니다. 추적 성법의 범위도 좁고, 지속 시간도 짧죠.”
당연한 말이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타니안의 추적이 모든 대륙을 범위로 24시간 지속 된다면 이미 황혼 교단은 본인들이 사랑하는 대지신 곁으로 갔을 테니.
그래도 은밀함 원툴로 살아가는 황혼 교단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유일한 장점을 파훼하는 존재가 영 거슬렸을 거다. 범위가 좁아? 지속도 짧아? 어쩌라고, 재수 없게 걸리면 그대로 몰살인데.
‘어쩐지 교황 암살 시도보다 성자 암살 시도가 더 많더라니.’
일단 극카운터부터 치우자는 생각이었나 보다. 왜 그리 성자에 집착하나 했는데 이제야 알겠네.
‘병신.’
알겠지만 여전히 이해는 못하겠다. 그렇게 상황이 꼬였으면 개종이나 할 것이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황혼 교단을 고집하는지.
광신도의 품격을 다시 한 번 느끼며 턱을 매만지자 의기양양한 타니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런 능력이 있다면 확실히 타니안과 함께 요격하는 것이 좋다. 놈들이 누구를 목표로 달려오는지 아는 상황이니 범위도 문제없고.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하지.”
“…불안한 말이군요.”
그런 내 대답에 타니안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것은, 나에게 아무 권한이 없다는 말…
하지만 어쩌겠나. 이번 일의 최고 책임자는 내가 아니다. 여기서 내가 타니안의 제안을 넙죽 받아버리면 외무성 장관에게 머리끄덩이 붙잡혀서 끌려간다. 암살 대상을 최전선으로 데려가는 미친 새끼가 어디 있냐고 말이다.
사실 조금 무섭다. 장관 둘을 모으고 그 앞에서 ‘암살 대상을 암살자들 가까이 보내면 쉽게 잡을 수 있어요!’ 같은 말을 대체 어떻게 꺼내야 하지?
‘돌겠네.’
그래도 부원이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스스로 나서려는 용기를 보이는데, 아무리 갈굼이 두려워도 고문으로서 전달 정도는 해야겠지.
용기를 내서 어떻게 말을 꺼낼 수는 있었다.
“감찰부장. 아무리 업무가 힘들어도 목이 잘리는 것보다는 힘든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감찰부장이 퇴직을 원하는 건 내 익히 알았지만, 생에도 미련이 없는 줄은 미처 몰랐소.”
그리고 반응은 열렬했다. 시발, 차라리 짧게 욕을 하지 ‘님 미쳤음?’을 길게 말하네.
어색하게 미소를 지은 외무성 장관과 시큰둥한 특무성 장관의 연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 같지만, 예상한 범위의 반발이다.
“효과는 확실합니다.”
“그건 인정하오. 그래서 아직 자리에 앉아있는 거지.”
효과도 시원치 않은 이상한 대안을 들고 왔다면 당장 판을 엎었을 거라는 말. 이건 긍정적인 신호다. 외국 주요 인사의 안위가 걸린 문제임에도 바로 판을 엎지 않을 정도면, 타니안의 추적 성법이 꽤 매력적으로 들린다는 소리니까.
문제는 내가 더 이상 깔 패가 없다. 조금만 더 흔들면 마지못해 승낙할 것 같은데, 그 흔들 수단이 없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통할 것 같은 말들을 꺼냈다.
“만일 황혼 교단을 하나라도 놓치면 제도에 소란이 생깁니다. 그걸 방지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마종공 각하께서 나서시는 이상 그럴 일은 없소.”
안 먹히네.
“차기 성자의 부탁을 들어줘서 빚을 쌓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글쎄, 차기 성자의 빚보다는 신성교국의 추기경단의 시선이 더 거슬리네만.”
이것도 안 먹히네.
“저희끼리 요격하면 제도 근처 지형이 격변할 텐데, 혹여나 황제 폐하께서 노여워 하시지 않을런지.”
“흐음.”
“그건 그렇네만.”
오, 이건 먹혔다.
이번에도 안 먹히면 포기하려고 했지만 다행히 세 번째 말은 두 장관 입장에서도 마음에 걸렸나 보다. 하긴 공무원 입장에서는 먼 외국의 유감 표명보다 눈 앞에 있는 황제의 분노가 더 신경 쓰이는 법이니까.
사실 요격도 제도에서 교전이 벌어지는 것에 비해 괜찮은 거지, 제도가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교전이 발생하는 것도 어지간히 문제다.
그런데 민간인이 볼 수 있을 정도의 폭격,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지형 격변을 일으켜 ‘여기서 싸움 났어요’ 같은 홍보를 한다? 이 역시 황제가 불쾌해 할 일이다. 어디까지나 제도가 뚫리는 것보다는 나으니 감수하는 거지.
“…감찰부장이 이리도 원하는데 괜찮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외무성 장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타니안이 최전선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신성교국에서 날아올 항의, 제도 근방에서 화려한 난장판을 피우고 황제에게 들을 쓴소리 중에 차라리 전자를 선택한 모양.
그 와중에 내가 원한다는 말을 강조하여 책임을 자연스레 나에게 돌렸다. 맞는 말인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감찰부장.”
“예.”
“감찰부장과 묵광대면 충분할 것이라 믿소.”
특무성 장관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타니안 옆에서 철저하게 버틴다면, 타니안이 제도 밖으로 나가도 괜찮다는 조건부 허용.
“물론입니다, 각하.”
당연히 나도 그럴 생각이기에 빠르게 수락했다. 내가 미쳤다고 손가락만 베여도 내 목에 절취선이 생길 수도 있는 주요 인사를 방치할까.
내 대답에 특무성 장관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외무성 장관도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착잡함을 표했다. 아무리 황제의 분노가 더 무섭다지만 그래도 외국의 항의도 귀찮은 건 마찬가지.
최종적으로 승인을 한 지금 시점에서도 이게 맞나 싶겠지. 이해한다. 최악과 차악 중에 차악을 선택한 것에 불과하니까. 나도 착잡한 건 마찬가지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냥 평소처럼 루이제 옆에 붙어서 웃기만 해도 충분하다. 애초에 그럴 거라 생각하고 데려왔으니 뭐 바랄 게 있을까.
“내가 병사들의 희생을 막을 정도로 대단한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민간 피해는 막아야 하지 않겠냐.”
그런데 올리버랑 같은 행동을 하니 무시할 수가 있어야지.
‘하여간 종교인들은.’
신실한 종교인보다 무교가 많은 세상에 살던 사람인지라 이해하기 어렵다.
뭐, 그래도 괜찮지. 이 정도 신념 차이야 충분이 이해할 수 있다.
“마종공께는 감찰부장이 전달하게.”
망할.
이 짬처리는 이해 못하겠네 진짜.
결국 몇 시간 만에 다시 마종공을 찾아갔다.
“아가? 무슨 일이니?’
두 번째 방문에 귀를 쫑긋거린 마종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업무 얘기를 하고 돌아간 놈이 다시 업무 문제로 왔을 거라 생각하지는 못하겠지.
“그, 각하.”
그리고 내 설명을 들은 마종공은 문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암살 대상을 오히려 최전방에 배치하는 신개념 요격 방식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양.
“…요즘은 독특한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는구나.”
입을 다물고 있던 마종공이 힘빠진 목소리를 냈다. 힘이 빠졌다고는 해도 자세하게 듣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차이지만.
아마 120세에 도달한 자신이 요즘 트랜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안 그래도 나이를 신경 쓰는 마종공 입장에서는 절로 우울해지는 상황이겠지.
하지만 오해다. 이건 요즘 트랜드도 아니고, 미래의 트랜드가 되어서도 안 된다. 괜히 장수종에게 이상한 상식을 주입시켜서는 곤란하다.
“특수한 상황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다시는 이럴 일이 없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구나.”
목소리는 힘을 찾았지만 축 늘어져 있는 귀는 제자리로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충격이 컸나?
“아, 각하. 저번에 주신 포션은 감사히 마시고 있습니다.”
공작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떠나면 후환이 두렵다. 괜히 오늘 일에 앙심을 품고 이상한 방법으로 복수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주제를 돌리기 위해 포션 얘기를 꺼내며 감사 인사를 하니, 그제서야 귀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역시 이게 정답이네. 어르신에게는 주신 거 잘 먹고 있다는 감사 인사가 최고지.
“몸에는 잘 맞니?”
“예. 매일 효과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별일 없겠다.
“부족하면 마탑으로 오렴.”
“아, 판매하시는 겁니까?”
이거 정작 판매는 안 해서 맛만 보다 끝나나 걱정했는데 잘 됐네.
“그냥 줄 테니 몸만 오면 된단다.”
‘오.’
어머니 마종공의 은혜는 내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