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90)
로판 속 공무원 990화(991/1009)
처음 보는 사촌들과의 만남은 당연하게도 어색했다. 내가 처음 보는 사람과 공적으로는 웃을 수 있지만, 사적으로도 훈훈하게 대화할 정도로 친화력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내향적 히키코모리에 가깝지.
그래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사촌들의 나이는 셋 다 나보다 아래였다. 아버지가 칠남매 중 맏이셔서 가장 먼저 결혼하시기도 했고, 결혼하자마자 바로 나를 임신하신 수준이라 사촌들 중에서는 내가 최연장자라고 하더라.
실로 다행인 일이다. 가주이자 2세대 중 맏이라니. 권위가 제대로 섰어.
‘에리히랑 나이는 비슷한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카롤리나, 요한, 모리스를 바라봤다.
권위를 확보하고 나니 뒤늦게 위화감이 들었다. 전부 나보다 연하기는 하다만, 카롤리나는 에리히와 동갑인 데다 나머지 둘도 나이 차이가 그리 심하지 않다. 이는 아카데미에 다녔다면 에리히의 동급생이거나 후배였을 수 있다는 말.
헌데 왜 사촌이 아카데미에 있다는 걸 몰랐을까. 성이 크라시우스가 아니라 데아스트여서, 아우구스트 숙부가 크라시우스와 철저히 거리를 두던 시기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얘네도 미취학인 건가.’
궁금했지만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미취학의 서글픔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기에.
그리고 내 사촌이면 아카데미 졸업장 따위는 없어도 돼. 아버지가 숙부, 고모들과 진정한 가족이 된 덕분에 만난 가족들이니, 사촌들의 희망 진로 정도는 내가 도울 의향이 있다.
원래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이 추천장 아니겠나. 신분제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당장 나부터도 핏줄의 힘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니까.
“압빠.”
“응?”
그렇게 2세대인 나와 에리히, 세 사촌들이 모여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 페디가 쪼르륵 달려와 내 다리에 달라붙었다.
“쩌어기 자근하라버지는 아는대, 형이랑 누나는 누구야?”
그 말에 다리에 붙어있던 페디를 들어 올렸다.
우리 페디. 오촌 당숙이랑 당고모가 궁금했구나. 아주 적절한 호기심이다.
“인사하렴. 여기 누나가 페디 당고모고, 형들은 당숙이야.”
“당고모? 당슉?”
그 말에 페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한다. 솔직히 당숙이나 당고모는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 아니잖아. 그러니 6살 꼬꼬마인 페디에게 있어 당고모와 당숙은 미지의 단어로 느껴질 거다.
“그래. 아빠 사촌 동생들이야. 우리 페디한테는 로베르트랑 에두아르트 같은 동생들.”
“아!”
구체적인 예시를 들자 페디의 눈이 반짝였다.
뒤이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다른 아이들도 쪼르륵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이들 머릿속에 ‘로베르트와 에두아르트 = 좋은 동생 = 아빠의 좋은 동생 = 대충 에리히 삼촌 같은 거’ 라는 공식이 성립한 것 같다.
“땅고모! 땅숙!”
“안냥하새요!”
“아빠 동생! 아빠 동생!”
“어이구야.”
순식간에 몰려오는 미니 웨이브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인사라도 해주지 않겠습니까?”
“그, 그럴까요?”
그러다가 멍하니 아이들을 보던 사촌들에게 권하니, 셋 중 연장자인 카롤리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해도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직 셋 다 미혼이라 아이들을 꺼리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야.
“네가 페디고, 너는…”
“마리아애요!”
“그래, 마리아. 귀가 참 예쁘구나.”
카롤리나의 칭찬에 마리아의 귀가 파닥거렸다.
그 파닥거림을 시작으로 어색했던 2세대 회합의 장도 부드럽게 변했다. 아이들이 난입하면 분위기가 고조되는 법이고, 처음 보는 오촌 조카가 뽈뽈뽈 돌아다니면 친부인 나한테 이것저것 묻게 되니까.
‘고맙다.’
품에 있던 페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페디가 적절한 시기에 질문을 한 덕에, 다른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합류한 덕분에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위태로운 대화가 안정적으로 변했다.
크라시우스 2세대들이 친해진다면 전부 3세대의 공로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큰 오라버니? 먼저 와 계셨습니까?”
때마침 점점 훈훈해지는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을 소식도 들려왔다.
칠남매 중 막내인 엘린 고모. 어찌 보면 아버지가 칠남매 연회를 결정한 계기나 마찬가지인 분이니, 이 연회의 숨겨진 주인공이자 칠남매의 연결점 같은 분.
“엘린.”
“아, 엘린도 왔구나. 막내 매부도 어서 오시지요.”
직접 막내 고모를 향해 다가가는 아버지와 아우구스트 숙부를 보다가, 막내 고모와 함께 온 새로운 사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환장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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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만 가장 어색한 손님의 등장에 속으로 탄식을 흘렸다.
막내 고모의 자식들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촌들이나, 나와 엮인 적은 한 번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썩 좋지 않은 사유로 인해.
나르젠 백작가를 포함한 사법 명가들에 대한 대규모 감찰을 했을 당시, 저 사촌들도 감찰성 정보부로 인계됐었지. 그나마 형식적인 질문만 하고 즉각 귀가시켰다지만 평온하게 자란 귀족가 자제들이 감찰성 구경을 한 것부터가 좀.
“페디야.”
“웅?”
“저기 처음 보는 형이랑 누나들 보이지? 저 사람들도 우리 페디 당숙, 당고모니까 가서 인사해.”
“웅!”
“엄청 좋은 사람들이니까 재밌게 놀고. 알았지?”
“아랏써!”
그렇기에 페디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엘린 고모 쪽으로 보냈다.
우리 만능 페디. 부디 이 아빠의 원죄를 깨끗하게 없애줘…!
점심이 되자 크라시우스의 피를 가진 사람들이 전부 모였다.
1세대, 아버지를 주축으로 한 7명.
2세대, 나와 에리히, 테레사를 포함하여 22명.
3세대, 페디를 필두로 하여 총 14명.
‘어마어마하네.’
순수하게 크라시우스의 피를 가진 사람만 해도 43명이다. 크라시우스의 배우자들을 제외해도 무려 43명이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3세대의 숫자. 14명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나, 저 14명은 나와 에리히의 자식을 합해서 나온 숫자다.
‘우리만 낳았구나.’
무심코 에리히와 어색한 시선 교환을 했다. 저놈도 나를 바라보는 걸 보니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물론 아버지가 칠남매의 맏이니 우리가 다른 사촌들에 비해서 빨리 결혼하고 빨리 출산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설마 22명의 2세대 중에 우리만 3세대를 낳았을지는 몰랐다.
아니, 애초에 나도 에리히도 결혼 적령기 끝자락에 결혼했거나 조금 지난 편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가 유일하다고?
‘대체 왜.’
이해할 수가 없다. 적어도 22명 중 상위 5, 6명 정도는 자식을 낳았을 줄 알았거늘. 자식은커녕 결혼한 사람도 드물어.
‘트라우마 때문에 그런 건가?’
그나마 가능성 높은 가설은 숙부와 고모들의 트라우마다.
강압적이고 냉철한 친부로 인해서 우중충한 환경에서 살아왔고, 장성하니 팔려가듯이 결혼을 해야 했다. 비록 팔려간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지만 충격이 없던 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자식들에게는 강압적인 부모가 되지 말자.’ 라는 마음을 품었다면 이 기묘한 상황도 납득할 수 있다.
‘업보가 짙구나.’
이쯤 되면 실소가 나올 정도다.
이미 20년도 전에 돌아가신 분의 영향력이 아직까지도 이리 강렬하다니.대체 언제쯤 그 흔적이 전부 사라질는지 탄스러운 따름이야. 내가 현직 가주로서 힘을 내야 하나?
“오늘에서야 인사를 드리게 되었지만, 형님의 명성은 옛날부터 들어왔습니다.”
홀로 그런 고민을 하며 침묵하던 중. 모리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제 명성… 말입니까?”
“예. 성인이 되자마자 관료의 길을 택하시고, 최연소 부장 기록과 장관 기록을 갈아치우시지 않았습니까. 질투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신 분이니, 마음속으로 크게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그거 민망한 말이로군요. 저 말고도 훌륭한 관료들은 많은데요.”
“훌륭한 관료라면 있을 수도 있지요. 허나 살아있는 성인은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완벽한 말에 다시 입이 닫혔다.
그건 그렇지. 역사를 뒤져보면 나보다 뛰어난 공무원은 많고 많지만, 공무원 겸 살아있는 성인은 내가 유일무이할 거다.
“감히 형님 수준으로 성공하는 건 바라지도 않으나, 저는 무엇도 이루지 못하고 이러고 있으니 민망할 따름입니다.”
“이제 막 아카데미를 졸업한 나이 아닙니까. 그 나이에 아무것도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나 에리히가 특이한 거고요.”
“그렇습니까? 이거 형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위안이 되는군요.”
작게 웃음을 흘리는 모리스를 보다가 다른 사촌들도 둘러봤다.
당연하게도 2세대 중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은 나와 에리히뿐이었다. 칠남매 중 둘째인 아우구스트 숙부의 자식들도 제대로 된 정착을 하지 못했는데, 다른 사촌들은 오죽할까.
허나 그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방금 말한 것처럼 그 나이에는 그게 당연한 일이며, 귀족가 자제는 공무원의 길을 택하는 것보다 가문의 일을 돕는 경우가 잦으니.
…
“모리스 동생?”
“예, 형님.”
“아직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루고 싶은 꿈같은 건 있습니까?”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귀족가 자제는 가문의 일, 혹은 영지 업무를 돕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모리스에게 꿈이 있다면 빠르게 그쪽으로 나가는 것도 좋지 않겠나.
마침 모리스는 삼남매 중 막내. 백작가의 막내니 이것저것 물려받을 건 많겠다만, 그래도 백작위와는 거리가 있으니 공무원 루트나 군인 루트를 밟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게 말입니다만.”
내 말에 모리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민망하다는 듯 볼을 긁적거렸다.
“사실 제국군을 이끄는 지휘관이나 참모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 아버지께서 그… 형님도 아시지요?”
“아, 물론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것 같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우구스트 숙부는 전승공이 건설 중인 사관학교 1세대 교관 내정자다. 자기 아버지가 사관학교 교관으로 영입되었다면 아들이 제국군에 흥미를 갖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제국군이라.’
사촌 동생의 장래 희망을 머리에 저장한 후, 다른 동생들에게도 질문을 건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동생들 장래 희망 정도는 알아둬야지.
***
동생들, 제수들, 매부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슬쩍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칼의 주도로 인해 아이들도 그럭저럭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소 어색한 느낌은 있지만 첫 만남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네가 고생이 많구나.’
오히려 그 어색함 속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칼에게 고맙고도 미안할 따름이다. 못난 아비로 인해 아들이 고생하고 있어.
‘음?’
다만 칼 옆에 있는 에리히의 표정이 이상했다.
꾹 입을 다물면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는, 그러면서도 미간은 슬며시 찌푸려진 것이 무언가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혹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음에도 고발하거나 만류하지 못하는 관료. 대충 그런 모습과 유사했다.
‘왜?’
혼란스럽다. 대체 무슨 대화 중이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정작 다른 아이들의 표정은 멀쩡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