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96)
로판 속 공무원 996화(997/1009)
조만간 기묘한 소문 하나가 유령처럼 제도를 배회할 것 같다.
감찰성 장관과 마종공이 나란히 제도를 돌아다닌 소문? 거물들의 산책이라 주목할 만한 일이기는 하다만, 귀족의 산책은 제도에서 그럭저럭 흔한 일이다.
부부만이 아니라 5살 딸들도 함께 산책을 한 소문? 이는 가정이 화목하다는 걸 과시할 수 있는 요소지, 뒷얘기가 나올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티티와 주니, 마네, 미네가 산책에 동행했다는 소문? 놀랍게도 제도 귀족들과 시민들은 동물의 산책에 매우 관대하기에 이는 논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티티와 성수들의 맹활약은 제도를 동물 친화척인 도시로 만들기에 충분했지.
그럼에도 제도를 헤집을 유령이 나타날 거라 확신한 이유는 단 하나.
“트릭시. 들어가도 될까?”
“…….”
“그, 트릭시. 말이나 소나 인간의 친구인 건 똑같잖아. 말 타고 돌아다닌 거랑 다를 게 없어.”
“…….”
세쌍둥이 덕분에 소를 타고 제도를 돌아다닌 트릭시가 너무도 강렬해서. 아직 성체로 거듭나지 못한 소를 타고 다니는 엘프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그렇다.
부부 산책, 가족 산책, 동물 산책은 아무 문제가 없다. 헌데 그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지고, 고귀한 공작이 말이나 마차가 아닌 소를 타고 움직이는 건 좀, 시선이 많이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로 인해 트릭시는 산책 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저택에 복귀한 뒤로는 방으로 들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깨어는 있는데…’
방문을 두드리다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일단 문 너머에서 다소 가파른 호흡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트릭시가 기절을 했거나 텔레포트로 가출을 한 건 아니다. 그저 수치심을 억누르기 위하여 침묵을 지키는 것뿐.
그렇기에 고민이다. 조금 더 트릭시를 달래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은 혼자 있을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할지.
‘혼자 두는 게 나으려나.’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래, 몇 시간 정도는 혼자 두자. 내가 트릭시였어도 지금만큼은 혼자 있고 싶을 거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거리를 벌릴 거야.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통신구로 말해줘. 바로 가져올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방에서 멀어졌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트릭시의 칩거는 몹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가족들과 사용인들에게는 ‘갑자기 마법적 영감이 떠올라서 연구 중이래.’ 라고 둘러댄 덕분에 아무도 트릭시의 칩거를 의심하지 않더라.
심지어 우리 세쌍둥이도. 만약 세쌍둥이가 엄마의 칩거에 당황하거나 울면 어쩌나 걱정했거늘, 그런 참사는 터지지 않아 다행이다.
다행이 맞나 의문이지만 아무튼 다행이라 생각하자.
“…칼.”
라고 생각한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트릭시의 서글픈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같이 세르베트로 가자꾸나. 은퇴식이 얼마나 준비 중인지 보게…”
그러고는 다시 문이 닫혔다.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은 일방적 통보였으나 괜찮다. 적어도 저 칩거가 내일이 되면 끝난다는 뜻이니까. 오늘 하루만 방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외출을 재개한다는 선언이니까.
‘고마워.’
실로 위대한 결단에 눈가가 절로 뜨거워졌다.
그런 수치를 당하고도 하루 만에 이겨내고자 노력하다니. 역시 대륙 제일의 대마법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오늘만큼은 검사 나부랭이가 고귀한 마법사보다 못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대륙 제일 검인 나조차 소를 타고 제도를 배회했다면 사흘 정도 통곡했을 테니.
…
‘어쩔 수 없지.’
위대한 결단을 한 트릭시(가 있는 방문)를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부인이 큰마음을 먹었다면 남편 된 도리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부인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가지는 것이 남편의 의무이자 권리 아니겠나.
“주니야.”
– 음머어어?
그렇게 되뇌며 휴식 중이던 주니에게 다가갔고,
“이따 나랑 같이 산책 갈래?”
조심스레 2차 산책을 권했다.
마종공이 소를 타고 다녔다는 소문? 그건 감찰성 장관이 소를 타고 다닌 소문으로 덮는다. 트릭시만 기행을 저지른 게 아니라 부부가 나란히 저지른 걸로 만든다.
또한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나 기행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행이 아닌 하나의 서프라이즈이자 유행이 된다. 요 몇 주 동안 주니를 타고 돌아다니면 ‘아, 감찰성 장관이 요즘 소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터.
– 음머어어어어!
내 눈물겨운 제안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던 주니는 벌떡 일어나 꼬리를 살랑거렸다.
기세를 보니 나를 등 위에 태운 채 제도를 수십 바퀴 질주할 것 같다.
‘이 정도면 훌륭한 남편이지.’
주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씁쓸히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나에게 아내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기꺼이 체면을 내던지고 카우-라이더가 되겠다고 말하겠다.
오늘부터 이 세계의 북부 대공은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송아지 탄 검둥이다.
약속대로 트릭시와 함께 세르베트 공작령으로 이동했다.
“어서 오십시오, 공작 각하! 부군 각하!”
그리고 늘 그렇듯이 우리 부부를 가장 먼저 반겨준 사람은 세르베트 공작령의 집사장, 시칠라 백작이었다.
이쯤 되면 놀라울 지경이다. 분명 세르베트 공작령에서 가장 바쁜 사람일 텐데, 어떻게 열에 아홉은 이 사람이 반겨주는 걸까. 혹시 집무실이 아니라 야외에서 업무를 보는 편인가?
“이리 마중 나올 필요는 없단다. 지금 세르베트에 필요한 건 나보다 너잖니.”
“각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 세르베트는 각하가 계시기에 번영할 수 있는 것이며, 제가 누리는 영광과 권한은 각하의 허락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제가 각하께 예를 갖추지 않으면 누가 세르베트를 위해 헌신하겠습니까!”
“그, 렇구나.”
트릭시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부드럽게 입을 열었으나, 열정적인 대답에 바로 반박당했다.
사실 저런 열정을 가지고 있기에 공작령 하나를 이끌 수 있는 거겠지. 능력과 열정, 책임감 중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어찌 제국의 다섯 기둥 중 하나를 이끌 수 있었겠나.
‘저 마음이 앞으로도 영원하기를.’
나도 모르게 시칠라 백작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봤다.
시칠라 백작의 나이를 고려할 때, 마리아가 공작이 될 때까지 집사장으로 지내달라 부탁하는 건 잔인한 짓이다. 그래도 내가 공작 대리로 지낼 동안은 훌륭히 집사장의 업무를 수행하겠지.
분명 그럴 거라 믿는다. 난 시칠라 백작의 건강과 능력을 믿어.
“저, 하온데 각하.”
“왜 그러니?”
“제도에서 조금 특이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 말에 트릭시의 귀가 흠칫 떨렸다.
무얼 걱정하는지 알겠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시칠라 백작이 들었을 소문은 트릭시의 걱정과 다른 소문일 테니까.
“그게, 그으… 부군 각하께옵서.”
잠시 입을 다문 시칠라 백작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막상 입을 열기는 열었지만 이걸 계속 말해도 되는지 고민하는 것처럼.
“편히 말해도 된다. 어차피 들을 말이라면 집사장을 통해 듣는 것이 낫지.”
내 말에 시칠라 백작은 살며시 눈을 감았고,
“부군 각하께옵서 소를 타고 제도 시내를 질주하셨다고 합니다.”
“으, 으응?”
내 처절한 아내 사랑을 절절하게 증명하였다.
“게다가 광장 분수대에서 소의 발굽을 닦아주셨다는 얘기도 있던데, 이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흙이 많이 묻었길래 조금 닦아줬지. 아주 좋아하더군.”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지만 트릭시도 시칠라 백작도 입을 다문 채 나를 바라봤다.
‘됐다.’
해냈다. 시칠라 백작이 나에 대한 소문만 언급한 걸 보면, 트릭시의 수치를 분담한 것을 넘어 아예 독점하는 것에 성공했다.
소를 타고 질주하며 소의 발굽을 친히 닦아주는 장관. 이런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진다면 트릭시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혹여나 트릭시를 언급하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장관 각하께서 시내를 질주하셨다던데, 마종공 각하가 아니라 장관 각하를 잘못 본 거 아니냐?’ 라는 말이 돌아왔겠지.
그거면 됐다. 내 명성을 대가로 트릭시의 체면을 지켰다면 그보다 기쁜 일도 없어.
…
‘개새끼.’
물론 트릭시에 대한 소문이 아니라 내 소문만 퍼진 건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아무리 날뛰어도 제도 시민들의 어그로를 전부 끄는 건 무리니까.
그리고 제도의 정보를 통제하고 유도할 수 있는 사람은 제국에 단 한 명. 태양전 누렁이밖에 없다.
‘아주 좋다고 통제했겠지.’
트릭시의 승우(牛) 소식이 들리기 무섭게 소를 타고 질주한 나. 황제가 얼마나 웃으며 정보 통제를 지시했을지 짐작이 간다.
망할 새끼지만 고마운 새끼. 빚을 졌지만 기쁘지는 않은 새끼…
“앞으로도 종종 주니를 타고 다닐 생각이다. 소에게는 말과는 다른 안정감이 있으니까.”
씁쓸함을 억누르며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트릭시의 명예가 지켜졌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 주제로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다.
***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공작 각하와 부군 각하께 은퇴식 준비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보고했다.
다행히 카토반의 가신들이 한마음이 되어 힘을 모은 덕에, 은퇴식은 실로 완벽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내가 집사장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그만큼 이번 일은 카토반과 세르베트를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할 일이다. 100년이 넘게, 말 그대로 한 세기 동안 군림하신 각하께서 물러나시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그런 기념비적인 날을 허무하게 장식한다면 죽어서 조상들을 볼 면목이 없다.
“각하의 은퇴를 알고 있는 각 공작가에서 축사를 작성 중이라 들었습니다. 각하의 위엄을 고려하여 축사는 대리인이 아닌, 네 공작께서 직접 읽기로 하셨습니다.”
“그거 참 고마운 일이로구나.”
“전부 각하께서 네 공작가에 베푼 은혜 덕분이겠지요.”
부드럽게 미소 지으신 공작 각하께 고개를 숙인 후, 이번에는 부군 각하께 보고를 드렸다.
“또한 축사가 끝나면 부군 각하께서 단상에 오르시어, 공작 각하께 세르베트 공작의 인장을 인계받으실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각하의 개인 문장이 새겨진 깃발도 함께할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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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기억해두도록 하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부군 각하의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말았다.
이제 정말로 코앞이라는 게 체감됐다. 정말로 내가 살아있을 때 카토반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이, 비록 대리라지만 새로운 공작이 군림하는 것이 체감됐다.
‘영광스러운 일이지.’
살아서 공작 각하의 혼인과 공녀님들의 탄생을 보고, 이제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셨던 각하의 은퇴까지 본다라.
이거 죽어서 천상으로 가면 아버지의 질투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