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 9 Master Inspection Technique RAW novel - chapter 126
“다… 다 왔다.”
풀썩.
“일단 이 아이들을 저희들이 있는 숙소로 데려가는 게 좋겠어요. 옷은
그냥 이대로 입혀서 가요. 어서요.”
위태로운 걸음으로 자신들에게로 다가와 갑자기 웃으면서 쓰러지는 아
이들을 재빠르게 받으며 로니엘이 다른 사람들을 재촉했다.
“혼자 둘 모두를 들기는 그럴 테니 하나는 내가 들지.”
이안의 일이 아니면 요쳥 없이는 먼저 움직이는 법이 없던 그렌이 먼저
나서서 한 아이를 들었다.
“별 일을 다 보겠군. 이안이라면 모를까 저 녀석이 스스로 이런 일을 다
하다니.”
베너트가 중얼거리자 푸스칸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도
그렌의 행동이 기이해 보인 것이다. 그런 둘을 돌아본 로니엘이 알 듯 모
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그만 가는 게 좋겠습니다. 두 분도 어서 오세요.”
“가보면 왜 그 놈이 이런 이상한 일을 했는지 알겠지.”
끝까지 그렌이 착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베너트였다.
자신이 묵던 방에 들어가서 아이들이 둘로 싸고 있던 회색 모포를 걷자
이안이 놀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런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이따위 물건을 채울 생각을 했는지.
정말 나쁜 놈들이에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어쩌다 이렇게 돼서…”
이안은 자신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두 엘프 남매의 머리를 안쓰럽게
쓸어 넘겼다. 화를 거의 낸 적이 없었지만 아이들의 팔목과 발목에 채워져
있는 물건을 보니, 아이들이 받았을 고통이 생각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안이 이 정도로 화를 냈는데 그녀보다 더 화를 잘 내는 베너트가 가
만히 있을 리 있을까? 정말 태어날 때부터 싫어했다고 생각 되어지는 엘
프의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일이 남일 같지가 않았다. 자신의 동족들도
당하고 있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는 성격 파탄자가 아니었다. 때문에 아무리 싫은 엘프들이라도
이런 아픔을 겪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엘프들을 싫어하지만 증오
하지는 않았다.
“진짜 그때 그 썩을 인간 녀석 보다 더 망할 인간들이군. 저런 족쇄를
채우는 인간 놈들은 모조리 잡아서 지들도 저런 아픔을 당하도록 족쇄를
한 열개씩 채워서 땅굴에 묻어버려야 해. 에잇. 망할 놈들.”
한참 욕을 하고도 계속 씩씩 거리는 베너트를 보던 이안이 다시 로니엘
을 보았다.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눈치다.
“로니엘은 할 수 있죠?”
이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 챈 그렌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타이레스님이 아끼는 인간이라도 그건.”
회의적인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이란. 그것을 건 시전자가 아닌
이상 걸린 마법을 강제로 풀려면 시전자보다 최소 세 단계는 더 강한 마
법사가 있어야 했다.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런 팔찌는 최소 5클래스 마스터 이상의 마법
사가 만든다던데 그럼 캐리안 정도의 마법사가 아니면 타격 없이 족쇄를
풀 수가 없었다.
그것을 잘 아는 그렌이니 이런 반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드워프들도
얼핏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와 같은 반응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로니엘과 이안의 대화가 그런 셋의 생각을 와장창 깨
뜨렸다.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잖아요.”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또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랬
어요. 자 어서 아이들이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줘요.”
“알았어요. 디스펠 매직.”
대답과 함께 외친 짧은 시동어. 사전 주문 따위는 하나도 외우지 않았지
만 마법은 그대로 잘만 시전 되어 로니엘의 손에서 생긴 은빛 기운이 아
이들의 팔목과 발목으로 뻗어나갔다.
철컹.
은빛 구체가 여덟 개의 족쇄에 모두 스며들었다싶은 순간, 끔찍한 고통
을 안겨주었던 족쇄가 모두 스스로 풀어졌다.
“이제 회복만 하면 되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로니엘이 또 아이들의 이마에 두 손을 얹으며 외친다.
“리커버리.”
이런 상황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그렌과 두 드워프들은 어리벙벙
한 표정으로 풀잎 향을 머금은 따뜻한 연녹색 기운이 아이들의 몸 전체로
스며드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끝나자 그들은 이렇
게 말했다.
“저 인간이 캐리안님 정도의 마법사란 말인가?”
무표정했던 얼굴 대신 그렌을 그렇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로니엘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선…
“형님, 정말 탁월한 선택이셨습니다. 로니엘이 저 정도의 마법사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흐흠. 뭐 어느 정도 재간은 있을 줄 알긴 했지. 누가 뭐라 해도 타이레
스님께서 무언가를 가르치려 했던 인간이었으니까. 그래도 저 정도일 줄은
솔직히 몰랐다.”
“아무튼 형님 덕에 저희 마을 드워프는 로니엘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
걱정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겠군요. 저 정도 실력인데 노예 사냥꾼 놈들
이 대수겠습니까? 크하하하.”
이렇게 베너트가 무척이나 시원하게 웃으며 푸스칸과 즐거운 대화를 나
누고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기와 달콤한 차 내음.
향긋한 나무 향이 나던 마을의 집과는 다른 내음이었지만 어쩐지 집에
있을 때처럼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가출 한지 거의 8일만에 다시 맞는 그 느낌에 휴이는 기분 좋게 잠에서
깨어났다.
“이제 일어났니?”
맨 처음 눈을 뜨니 연녹색 머리에 커다랗고 동그란 눈을 가진 여자 엘
프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무척 귀엽게 생겨서 누가 봐도 첫 눈에 호감이
철철 갈 것 같은 인상이었지만 그보다는 자신들과 같은 뾰족한 귀가 더
눈에 들아왔다.
불과 8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물 나도록 봐오던 모습인데 며칠간 노예
사냥꾼에게 붙잡혀서 고생을 하다 보니 뾰족한 귀만 보고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진짜 우리 동족이었어. 아 이제 살았다.’
아픔에 시달리고 있었던 터라 정신이 가물가물 했는데 정말 동족이었다.
그리고 그 동족이 자신들을 거둬준 것이다.
이제 정말로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면 다시는 세상
에 나오지 않을 거다. 최소한 가출로는 말이다.
“괜찮니? 아직도 아파?”
안도감과 감격에 젖어 대답하는 것도 잊던 휴이에게 이안이 다시 묻는다.
“어? 그러고 보니 아프지 않네?”
이제야 몸이 어떻게 된 지 알아차린 휴이가 신기한 듯 자신의 몸을 보
며 말했다. 기쁜 마음에 혹시나 하고 옷소매를 올려보니 족쇄 같던 팔찌가
보이질 않는다.
‘다른 곳도?’
재빨리 다른 쪽 소매도 걷어 올려보는 휴이에게 이안이 말했다.
“다른 곳에도 없어. 네 동생 거까지 저기에 앉아있는 형이 없애줬거든.”
그 말에 확인작업을 하다 말고 이안이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긴 청은발을 뒤로 살짝 묶은 남자는 이제껏 보아왔
던 수많은 동족들을 뒤져보아도 적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인간
이었다. 그런 그에게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깨어나자마자 이렇게 쌩쌩한 걸 보니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로니엘은 꼬마 엘프들이 깨어나는 걸 보려고 다른 일행과 같이 지금까
지 이안의 방에 남아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먼저 깨어난 남자 아이가 이안이 어쩌다 한 말에 자신을 보더니,
한참을 기다려도 말을 걸 기미가 보이질 않자 먼저 말을 건 것이다.
예전에 에밀리를 처음 봤을 때 지었던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그러자
남자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로니엘의 미소를 따라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동생과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아직 어려 보이는데 자고 있는 여동생을 대신해 인사를 하며 오빠 노릇
을 하는 남자 아이를 보니, 로니엘은 알게 모르게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
다.
‘나도 챙겨야 할 여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저 심정 잘 알지.’
가만히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으니 잠잠하던 아로나가 불쑥 말을
건다.
[로웨나는 이미 결혼 했으니 네가 챙길 필요는 없지 않아? 황태자라는
엄청난 지위에 있는 남편이 있잖아. 에밀리 하나나 잘 챙겨.]
‘그렇긴 해도 로웨나도 내 동생이잖아. 남편을 만나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간간히 신경 써줘야지.’
[하여간 가족 하나는 끔찍이도 챙긴다니깐. 너 정도 경지에 올라서도 이
렇게까지 가족에 연연하기도 힘든데 말이야.]
‘후후. 나 같이 특이한 자가 하나쯤 있는 것도 순리겠지. 셀 수 없이 많
은 다양한 것들이 골고루 조화를 이루는 것이 세상이니까. 이제 여자 아이
도 깨어날 것 같으니 말 시키지 마. 둘 모두 일어났으니 이제 이것저것 좀
물어봐야겠어.’
[알았어. 뭐 나도 저 엘프 꼬맹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니까 어서 물어보
기나 해.]
아로나와의 대화를 끝낸 뒤, 로니엘은 이번에도 먼저 여자 아이에게 가
볍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여자 아이 또한 좀 전에 남자 아이가 했던 반응
과 비슷한 모습으로 로니엘을 보다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신 모두에게 감사드려요. 오빠와 저희를 구해주신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빠인 남자 아이보다 한 층 더한 인사였다. 가만 보니 남자 아이가 여
자 아이를 챙기는 것 보다 동생이 오빠를 더 챙기는 것 같았다. 누나 같은
여동생을 보니 로니엘은 또 다시 로웨나와 에밀리를 떠올렸다.
‘그 둘에게 저런 모습은 어쩌면 평생 못 볼지도… 그래도 귀여우니까 됐
지.’
방 안에서 있던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이제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유
리나라는 여자 아이를 보며 로니엘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 다시 유리나
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휴이와 유리나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자신들의 방에 가서 한참 꿈나
라를 유람하고 있을 때, 침대에 누워 있던 로니엘이 눈을 떴다.
‘좋은 꿈을 꾸려면 저들부터 처리를 해야겠지?’
로니엘은 맞은편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 그렌이 깨지 않게 조심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작은 외침과 함께 하얀 빛에 싸여 어딘가로 사
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