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01
제 101 화
“크악! 더 이상은 못 먹어!!”
비명과 함께 학생 하나가 뒤로 넘어갔다. 이걸로 열두 명째였다.
레이먼은 방긋 웃으며 넘어진 학생에게 다가갔다.
“하하하하. 손님, 포기하시는 건가요?”
“안 먹어. 아니, 못 먹어! 이게 정말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양이 맞아?”
“당연하죠, 손님! 저 뒤에 까무잡잡한 아이 못 봤습니까? 저 가녀린 몸으로 손님이 먹은 것보다 더한 양을 손님 앞에서 먹지 않았습니까!”
조금 전, 지금처럼 항의하는 손님의 말을 막기 위해 은하가 시범을 보였다. 물론 성공했다, 그것도 너무나 쉽게. 그래서 그 또한 쉽게 생각하고 도전한 거였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수의 면발은 띵띵 불었고, 국물은 마르지 않는 샘이라도 된 듯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었다.
결국, 그는 먹던 것을 내팽개치며 항복을 외쳤다. 국수가 위에서 계속 붇고 있는지 속이 더부룩했고 배가 개구리마냥 볼록 튀어나왔다.
남학생은 레이먼에게 원래의 네 배나 되는 값을 낸 뒤, 묵직한 배를 끌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후후후. 조심히 가십쇼~”
레이먼은 돈을 챙겨 계산대에 앉아 있는 디하르에게로 갔다. 그리고 ‘칭찬해줘~’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 잘하지?”
“응. 잘해.”
“것 봐~ 나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그치?”
“그래.”
조금 전, 루아의 말에 따라 장사를 시작한 그들은 부족한 인력을 어디서 충원할까 하다 그나마 한가한 레이먼에게 부탁을 했다.
이에 상황을 알게 된 그가 한달음에 달려와 일을 도와주었고, 이제는 마치 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손님들을 이끌고 있었다.
하민은 잠깐의 쉬는 시간을 위해, 기다리는 손님에게 대기표를 나눠주고 천막의 입구를 내렸다.
국수를 삶느라 얼굴이 시뻘게진 은하가 땀을 훔치며 밖으로 나왔다. 후끈한 주방에서 나오니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레이먼이 은하를 향해 반나절 동안 모은 돈주머니를 들어 보였다.
“깜둥, 나 쩔지.”
“뽀송이 대박!”
은하는 의자를 끌고 와 모두가 모여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장사 엄청 잘된다.”
“잘하면 내일 안으로 물량이 다 빠지겠어.”
“하아…… 림은 괜찮으려나?”
하민의 한마디에 모두가 축 늘어졌다. 은하는 푸우우-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상 위에 엎어졌다.
“루아한테 연락해 볼까?”
레이먼이 키르를 꺼내며 그리 묻자 하민이 괜찮다며 쓰게 웃었다.
“아냐. 이것저것 조사할 거 아니야. 방해하기 싫어. 거기다 이미 뭐가 나왔다면 연락해 줬겠지.”
그 말에 레이먼이 뚱한 표정으로 돈주머니를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했다. 찰그락. 동전이 부딪치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뭐가 나왔으면 연락을 해줬을 거라고? 글쎄…….
“연락은커녕, 바로 적진에 쳐들어가지 않을까?”
***
“안녕하세요. 조각 동아리의 회장님이시죠? 반가워요~ 1클래스의 루아라고 합니다. 이쪽은 륜이고요.”
루아의 인사에 조각 동아리의 회장이라 불리는 남자가 미간을 찡그렸다.
짧게 친 단정한 머리에 각진 안경을 쓴 키가 큰 남자였다. 조금 까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루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상대방을 훑어봤다.
걸치고 있는 액세서리나 하는 행동을 보니 척 봐도 귀족이었다, 그것도 꽤 잘나가는. 이거 재밌네.
클레이즈 내에서도 손꼽히는 외모의 루아가 사내를 향해 씨익 웃자, 그가 헛기침하며 물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죠?”
루아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여유롭게 웃었다. 그리고 능청스럽게 말을 꺼냈다.
“실은 제 친구가 곤란한 일을 겪어서요. 좀 도와주셨으면 해서 찾아왔어요.”
“도움이요? 아쉽게도 잘못 찾아오신 듯싶네요. 친구분이 어떤 곤란함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제가 도와드리긴 힘들 겁니다. 학생회나 전문 집단에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뇨. 선배님만이 도와주실 수 있어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아는 그런 그를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
“누명을 썼거든요. 조각 파괴범으로요.”
“…….”
그제야 루아가 하고자 하는 말을 파악했는지 청년이 표정을 굳혔다.
“그 부분이라면 정말 도와드릴 수 없는 것 같군요. 누명이 아니라 범인이 맞으니까요.”
“아뇨. 범인은 제 친구가 아니에요.”
“그럼 누구죠?”
그 질문에 루아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길고도 유려한 손가락이 가볍게 까딱였다. 시계추가 움직이는 것처럼 일정한 속도였다.
“글쎄요. 누굴까요?”
그러더니 이내 가볍게 손가락을 돌려 건너편에 앉은 청년을 가리켰다.
“선배님이 더 잘 알 거 같은데 말이죠.”
“…….”
“범인은 근처에 있다- 뭐 그렇달까요?”
꿀꺽.
청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범인이란 겁니까?”
“정답. 자작극을 벌이실 거면 제대로 벌이셨어야죠.”
“증거는요? 제가 했단 증거가 있습니까?”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뻔뻔하게 웃는 청년의 모습에 루아가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대작, 거기다 야밤에 간부들만 옮겼다는 전시 작품들, 그리고 조각이 산산조각 났다는 거에 비해 너무나 깨끗한 잔디 상태. 또 뭐가 필요할까요?”
그리고 그 말을 잇듯 옆에 있던 륜이 거들었다.
“애초에 대작은 없었던 거죠? 하지만 이미 말한 거 철회할 수도 없고. 그래서 이런 일을 벌이신 거 아닌가요? 유림의 얼굴은 학교 내에서 꽤 유명한 상태고, 아침마다 운동하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었겠죠. 때마침 장소도 겹치겠다, 그래서 유림이 뛸 시간에 맞춰 일을 준비한 거 아니었나요?”
“……뭔가 큰 오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만, 자작극이 아닙니다. 내 작품은 완성했어요.”
“그럼 어째서 야밤에 옮긴 거죠? 동아리원들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그야 축제 때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기 위해서죠.”
“그럼 그제 밤이 아닌 어젯밤에 전시를 하셨어야죠. 축제는 오늘부터니까.”
“이것저것 준비하기 위해서 하루 정도는…….”
루아의 질문에 청년이 땀을 흘리며 답했다. 그러나 그 답도 얼마 안 가 륜의 말에 막혀 버렸다.
“아뇨, 그것도 말이 안 돼요. 선배님께서 원하시는 대로라면 다른 분들 건 미리 전시해 두고, 선배님의 그 대작만 어제 옮겼으면 됐을 거예요.”
“그건 구성상 문제가…….”
“그것 말고도 또 있습니다. 망치로 조각들을 깨부셨다면 그에 대한 가루들이 엄청나게 날렸을 겁니다. 사람 손으로 하루 만에 그렇게 완벽하게 치울 순 없죠. 거기다 조각이 부서져서 망가진 거라면 분명 땅이 패거나 하는 등의 흔적이 남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죠. 그 큰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없었고요. 즉 다른 곳에서 미리 부숴서 가져오신 겁니다.”
청년은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이렇게 꼬릴 잡힐 줄이야.
루아는 거기에 쐐기를 박듯 여유롭게 입꼬릴 말며 말을 이었다.
“선배님, 선배님은 애초에 전시할 생각이 없으셨죠? 그곳의 잔디는 너무 지저분했어요. 땅도 고르지 않았고요. 그런 곳에서 전시하는 바보는 없을 거예요.”
청년은 이를 꽉 깨물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어쨌건 이들에겐 확실한 물증이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가 앞머리를 쓸며 숨을 골랐다.
“후…… 좋습니다. 하지만 그럼 이상하지 않나요? 만약 제가 그랬다면, 집행회에선 왜 가만있는 거죠? 그곳만큼 확실한 동아리가 어디 있나요.”
청년의 말에 루아가 ‘아!’ 하고 운을 뗐다.
“그 부분은 저희도 이상해서 생각을 많이 해봤죠. 우리가 금방 알아낸 이 사실을 왜 그들이 몰랐던 걸까……. 생각해 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하더군요.”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선배와 집행회 회장님 사이에 뭔가가 있는 거죠?”
루아의 말에 청년이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킥킥거리며 낮게 웃었다.
“잘 모르시나 본데, 학생 집행회는 외압을 받지 않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더욱이 그렇게 크고 거대한 동아리가 작은 예술 동아리를 위해 그런 편협적인 일을 할 리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마치 한 방 먹였다는 듯 그의 얼굴에 희열이 가득했다. 그러나 루아는 그 말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도리어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가 턱을 괸 채, 손가락을 까딱였다. 가볍게 깜빡이는 눈동자, 이윽고 그녀의 입꼬리가 얄밉게 올라갔다.
“그 외압이 클레이즈 밖에서 시작된 거라면요?”
“……!”
“뭐- 대표적으로 한쪽은 귀족이고 다른 한쪽이 하인 비스름한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 말에 청년의 표정이 뚝 하고 굳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만든 당사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집행회가 조각 동아리 회장을 도와준 이유는 이거였다.
“아무리 클레이즈가 신분의 벽이 없다 해도 그런 경우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클레이즈에서 평생을 살 것도 아니고, 가족이나 가문이 관련 있다면…… 말이죠.”
“…….”
루아는 턱을 괴고 있던 팔을 푼 뒤,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매끈하게 뻗은 다리를 꼬아 거만하고도 숭고한 자태를 뽐냈다.
“뭐, 자세한 건 캐묻지 않을게요. 선배가 어떤 가문인지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요.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붉은 입술이 긴 호선을 그렸다.
“이즈네 교수님이 이 사실을 알아도.”
이즈네. 그 세 음절에 청년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교수님은 아무것도 모르시는 거 맞죠? 유림의 일을 따지러 집행회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한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동아리장에게 가보라고. 그 말에 느낌이 딱 왔죠. 이런 상황에서 교수님이 아닌 동아리장을 거론했다는 건 교수님께서 이 사건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건 역으로 말했을 때, 이즈네 교수가 이 사건을 몰랐으면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했다.
“그 정의로운 교수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요?”
“…….”
“선배, 어떻게 하실래요? 이쯤에서 알아서 정리하실래요? 아니면 저희가 이즈네 교수님을 뵈러 갈까요?”
청년은 주먹을 꽉 쥐며 륜과 루아를 노려봤다. 이가 절로 갈렸다. 그러나 그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이즈네를 찾아가면 일이 어찌 될지는 안 봐도 뻔했기에.
“……알겠습니다.”
결국, 그가 한숨을 내쉬며 항복을 외쳤다.
루아와 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로써 유림은 무죄가 증명된 것이다.
다행이다. 복잡하지 않게 금방 끝나서 정말 다행이야.
륜과 루아는 진심으로 안도하며 청년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한 학생이 쾅 소리가 나도록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가 거친 숨을 내쉬며 모두를 바라봤다.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 하아…….”
“아니, 괜찮아. 무슨 일이지?”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이곳에 있는 모두를 당혹하게 할 만큼 어마어마한 말이 터져 나왔다.
“용의자가… 그러니까 한유림이…… 도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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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