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16
제 116 화
흡사 기름에 떨어진 물방울이 튀듯 사방으로 물이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에 따라 거대한 그림자가 유림의 얼굴 위에 드리워졌다.
제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자태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푸른 비늘, 그리고 붉게 타오르는 동그란 눈동자.
“엑?!”
유림의 눈이 호두알만 해졌다.
배 위로 넘어간 물고기가 매끈한 꼬리를 한번 흔들더니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유림이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잠깐. 지금 뭐야? 뭐가 내 머릴 넘어간 거야?
설마…….
“고등어?!”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마리의 고등어가 또다시 튀어 올라 유림의 머리를 지나쳐 갔다.
어마어마한 물보라와 함께 배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유림은 떨어지지 않으려 배를 꽉 잡았다.
놀란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륜과 크라마 또한 멍청한 얼굴로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일하게 아슈팔만이 특유의 느긋함과 평화로운 얼굴로,
“맛있겠다.”
라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떠들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요?! 아니, 이게 아니라, 여기 강이잖아요! 대체 고등어가 왜 강에 있는 거야?! 것도 저렇게 큰 놈이?!”
“왜긴 왜야. 불렀으니까 왔지.”
“네?”
불렀으니까 왔다니, 이건 또 무슨 돼지 똥 싸는 소리란 말인가.
유림이 이해가 가지 않다는 눈으로 아슈팔을 멀뚱히 바라보자 다시금 그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번엔 륜과 크라마의 시선도 함께 이동되었다. 그러자 6형의 학생 하나가 특유의 녹빛 늄을 뿜어내고 있는 게 보였다.
6형. 동물이나 신물들과 교감해 그들을 부리는 사람. 쉽게 말해 소환이 특기인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거대 고등어 소환?”
“응.”
이게 지금 ‘응’ 하고 끝날 사안입니까? 내 키의 두 배만 한 것들이 넘어갔는데?!
“빨리 도망쳐요! 저렇게 거대한 놈 세 마리가 팔딱팔딱 뛰면 배가 뒤집힐 거라고요!”
“힘들어.”
“아니, 어째서요?! 빨리 가면 되잖아요!”
“강이 끓고 있어.”
“네?”
이번엔 시선이 강으로 향했다. 강물이 마치 물 끓듯 보글보글 기포를 토해냈다. 다행히도 유림의 배 쪽은 안전했지만, 바로 앞쪽의 물이 심하게 끓고 있어, 지나갈 수는 없었다.
갑자기 멀쩡하던 강이 끓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 강물에 늄을 부여했단 건데…….
유림이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예상대로 5형 학생 하나가 강에 늄을 부여하며 비열하게 웃었다.
“캬캬캬. 네놈들이 물고기를 소환해 봤자지! 매운탕이나 되어버리라고!!”
미친! 이 와중에 그런 유치한 대사가 떠오르긴 하냐? 이게 대체 뭐하는 짓거리야?!
유림이 속으로 씩씩거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6형이 입가를 비틀며 소리쳤다.
“기지는 인정하지. 하지만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는다고!”
마치 소설의 한 장면을 보듯 참으로 듣기 힘든 대사였다. 그리고 뒤를 이은 6형 학생들의 손짓에 고등어가 5형의 배를 향해 튀어 올랐다.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으나 5형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하늘에 독 그물을 만들었고, 거기에 걸린 고등어들이 괴기스러운 소리를 내며 파닥거렸다.
키에에엑-!
쿠웨에엑-!
유림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두 귀를 막았다.
저거 고등어 아니야? 왜 저딴 소리가 나와? 거기다 저 그물은 또 뭐야!
“하하하. 우리가 네놈들 수법에 한두 번 당하냐? 이럴 줄 알고 미리미리 독 그물을 연습했단 말씀!”
“뭐라고?! 젠장! 이렇게 질 순 없지!”
그냥 아무나 지라니까?! 아니, 그전에 그 유치한 대사부터 멈춰!
유림은 망했다고 생각하며 앞을 바라봤다. 그 순간 원 형태의 진이 하늘에 생성되더니 그 속에서 거대한 새가 고개를 내밀었다. 신물이었다.
미친!
유림이 황급히 아슈팔을 찾았다.
“선배, 우리 그냥 가요. 선배는 이 끓는 물 없앨 수 있잖아요!”
“글세, 난 머리만 채울 생각으로 와서…….”
이 인간이 지금 이런 말이 나와?
유림은 륜과 크라마에게로 방향을 돌렸다.
“여기서 도망칠 방법 없을까? 왜, 3형은 신체 강화계잖아! 끓는 물도 버티는 단단한 몸으로 강화해서 배를 앞으로 던져 버리는 거지! 어때?!”
“뭐, 그것도 가능한 방법이다만…… 아쉽게도 여긴 발을 디딜 땅이 없잖아, 물 위에 서 있을 수도 없고. 하하하.”
난처하게 웃는 륜의 모습에 유림이 머리를 헤집었다.
만약 데몽이 있었다면 이 물을 다 얼려서 식혀버릴 텐데. 아니지, 애초에 일이 이렇게 귀찮아진 게 그 녀석 때문이구나!
이를 갈며 머리칼을 움켜쥐던 유림이 마치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표정을 굳혔다. 작은 입술 틈새 사이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륜, 너 무기 몇 개 가지고 있어?”
“호신용 단도라면 서너 개 정도.”
그 말에 유림이 꺼내보라며 손짓했다.
“하나 정도는 버려도 되지? 내가 지금 가져온 나뭇조각이 없어서 말이야.”
“그건 상관없지만, 단도는 갑자기 왜?”
“왜긴 왜야, 앞으로 나가야지.”
륜은 유림이 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일을 할 애는 아니기에 허리춤에 두었던 단도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하나면 돼?”
“일단은. 해보고 부족하면 하나 더 빌릴게.”
“알겠어. 근데 그걸로 뭘 하려고?”
“변형시킬 거야, 이 단도를.”
“뭐?”
놀랍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륜을 보며 유림이 입가를 비틀었다.
흐르는 물이 계속 끓는다는 건, 계속 강에 늄을 부여하고 있단 소리였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 흐름만 끊으면 여길 빠져나갈 수 있단 거였다. 그러니 아주 잠깐이라도 시전자의 정신을 흩트려 놓아야 했다.
유림은 륜의 단도에 늄을 집중시켰다.
단도가 은은하게 빛나더니 이윽고 길고도 날렵한 창으로 변형되었다. 그제야 유림이 뭘 하는지 눈치챈 륜이 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줘, 내가 던질게.”
“진짜?”
유림에게 창을 건네받은 륜이 창을 몇 번 고쳐 잡더니 이윽고 다리의 폭을 어깨너비만큼 벌리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라마 선배, 출발할 준비하세요.”
“선배도요.”
두 후배의 말에 크라마와 아슈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자리를 잡자 륜이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숨을 삼킴과 동시에 팔과 다리, 어깨에 대량의 늄을 집중했다, 최대한 위력적이고 위협적이게. 곧이어 그가 있는 힘껏 창을 내던졌다.
기다란 창이 긴 호선을 그리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시합의 승패보단 저들끼리의 싸움에 열을 내고 있는 5형과 6형의 배 사이로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쾅-
무언가 터지는 듯 다소 과격한 소리와 함께 물이 튀며 거대한 파문이 일었다.
“……!!”
“……!!”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들어온 습격에 5형과 6형이 숨을 삼키며 자세를 낮췄다. 그와 동시에 반응하던 신물들이 행동을 멈추었고, 끓고 있던 물은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잔잔해졌다.
륜과 유림이 동시에 소리쳤다.
“선배!”
“선배!”
그리고 그 말을 신호 삼듯 아슈팔과 크라마가 배를 출발시켰다.
벙찐 얼굴로 저들을 바라보는 5형과 6형을 향해 유림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럼 저희는 먼저 가볼 테니, 마저 하세요- 아무나 이겨라~ 화이팅!”
하는 다소 생뚱맞은 소리와 함께 말이다.
쫓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달리 5형과 6형의 배는 따라오지 않았다. 뒤 쪽을 보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고 있던 유림이 그제야 안도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어쩐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정말이지, 여기 와서 별걸 다 해본다니까.”
작게 키득거리는 유림의 모습에 륜이 옅게 따라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가 몸에 걸어 두었던 늄을 풀며 말했다.
“그러게. 이런 식으로 요란하게 던져 본 거 처음이야.”
“역시 신체 강화계. 위력 한번 무시무시하더구먼.”
데몽과 달리 륜이 제대로 마법을 쓰는 걸 처음 본 유림이 다소 감탄을 섞어 말하자 그가 민망했는지 뺨을 긁적였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사람처럼 물어왔다.
“근데, 너 형별 토너먼트 신청 안 하지 않았어?”
륜의 질문에 유림이 멋쩍게 웃었다. 생각해 보니 은하를 제외하곤 자신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게 된 건지 설명해 주질 않았다.
“8형은 사람이 둘밖에 없어서 의무 참가래. 마침 소원도 필요하고 해서 그냥 하기로 했어.”
“소원? 뭐?”
그 질문에 유림은 조금 답하기가 뭣해졌다.
아버지 이야길 하는 게 꺼려진다기보단, 정확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말해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근데, 뭐라 말하지? 아버지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이사장님하고의 이야기도?
유림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어물쩍거렸다. 그러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뭣해 대충 넘기기로 했다.
“나중에, 지금은 뭐라 하기 좀 애매한 상태라. 확실해지거든 이야기 해줄게. 하여튼 최강자전보단 이게 좀 더 승률이 높아 보여서 하기로 했어.”
유림의 말에 크라마가 아슈팔을 슬쩍 쳐다봤다. 륜은 크게 이해하지 못한 듯했지만, 크라마는 유림의 짝이 아슈팔이란 것만으로도 왜 이게 승률이 높다 한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슈팔은 생각보다 유명했다. 유림이 들어오기 전까진 유일한 8형이었고, 모든 교수가 인정하는 천재였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다음 이사장 후보라는 이야기까지 돌았겠는가. 그런데 그런 그를 등에 업고 출전하다니.
물론 아슈팔이 머리만 채워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지만, 크라마는 이런 유림의 전략이 부전승으로 이기겠다는 것과 진배없어 보였다.
“이제 급류군.”
불쑥 말을 꺼내는 아슈팔 덕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졌다.
“급류요?”
유림이 아슈팔 쪽으로 몸을 바싹 붙이며 물었다. 그의 단정한 머리가 작게 끄덕였다.
급류라니. 물살을 타면 더 빨리 갈 테니 잘만 하면 앞의 배들과 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
유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아슈팔이 배에 늄을 좀 더 부여했다.
“꽉 잡아, 속력을 낼 거니까.”
유림이 자세를 낮춘 후, 고개를 끄덕였다.
“넵.”
유림은 배에 부착된 손잡이를 꽉 잡았다. 신발에 늄을 부여해 혹시라도 미끄러지지 않게 고정하며 말이다. 륜과 크라마 또한 그들과 함께 속돌 높일 생각인지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림은 바싹 긴장한 채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슈팔의 끄덕임과 동시에 급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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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