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23
제 123 화
레이먼의 뻔뻔한 도주에 유림은 저게 정말 내 친구가 맞나, 하는 때아닌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아슈팔을 바라봤다.
그는 레이먼이 가든 말든 상관이 없는지 계속 두 선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유림에게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물론 선배들에게도.
“…….”
코니룸은 칼을 칼집에 꽂고 허리춤에 넣어 둔 카드 더미를 꺼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가만있을 순 없었다. 더욱이 저렇게 기고만장한 레이먼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코니룸이 카드를 꺼내자 그 생각을 읽었는지 재우가 저와 코니룸의 늄을 활성화시켜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렸다. 어차피 아슈팔을 이기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가 아닌가.
재우와 코니룸은 서로를 힐끗 쳐다보더니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키의 방향을 확 틀었다. 그들의 행동에 두 배가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슈팔이라 해도 두 사람을 동시에 잡진 못할 것이다. 둘 다 잡히는 것보단 하나라도 살아남는 것이 좋지 않은가. 운이 좋으면 둘 다 사는 거고 말이다.
두 사람은 아슈팔을 사이에 두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져 돌진했다. 어마어마한 가속에 은하와 테오가 고개를 숙였다.
굉음을 내며 물살을 가르는 두 배. 갑작스러운 그들의 움직임에 아슈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역시!’
재우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천하의 아슈팔이라 해도 이런 상황을 쉽게 막진 못할 것이다.
눈 깜작할 새 앞까지 온 두 사람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며 속력을 높였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슈팔이 ‘천재’라는 것을 말이다.
아슈팔은 손끝을 뻗어 엄지와 검지를 마주쳤다.
딱, 하는 경쾌한 소리가 물을 울렸다. 그리고,
콰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대한 두 개의 바위기둥이 강을 뚫고 솟아올랐다.
“앗!”
“으힉!”
코니룸과 재우는 눈앞에 나타난 방해물에 황급히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그보다 물살이 밑에서 치솟는 게 더 빨랐다.
“제길!”
“이런!!”
“꺄악!”
“악!”
재우는 은하를 둘러메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코니룸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지고 있던 카드에 늄을 부여해 크게 만든 뒤, 테오의 뒷덜미를 잡고 그곳으로 뛰었다.
“으힉?!”
“크헉!”
은하와 테오에게서 짤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네 사람이 도망치기 무섭게 배는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배의 파편이 물 위를 둥둥 떠다녔고, 큼직한 바위기둥엔 배가 들이받은 흔적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었다. 그 충격이 어찌나 강했는지를 알려주는 참혹한 광경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8형의 배가 부서졌을 때보다 더한 모습이었다.
그악스러운 광경에 모두가 입만 떡 하고 벌렸다. 가장 질겁한 건 바로 아슈팔 옆에 있던 유림이었다. 선배들의 실력이었기에 탈출한 거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골로 갔을 것이다.
지, 진짜 죽일 생각이었어? 이건 수영이 아니라 수장이잖아?!
강가까지 헤엄쳐 간 재우가 은하를 땅에 내려놓았고, 코니룸도 반대편 강가에 테오를 내려다주었다. 3형과 1형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사이에 끼어버리고 말았다.
두 개의 거대한 바위기둥과 강물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레이먼의 성물들.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에서 오직 아슈팔만이 흡족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슈팔은 그런 상황이 흡족한지 보기 드물 정도로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볼까요? 평화스럽게…… 말이죠.”
평화스럽게라니……. 대체 어느 부분이 평화이고 또 어느 부분이 제대로 된 이야기인지 반박하고 싶은 그들이었으나 누구도 그러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비명이 숲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악-!!”
클레이즈 최강자전 역사상 가장 참혹한 경기, 그리고 학생들이 그 진상을 가장 궁금해하는 이 경기는 후에 클레이즈 42대 전설 중 35대 전설로 남아 ‘아- 슈팔의 분노’라 불리게 되었다.
***
레이먼은 키득거리며 배를 몰았다. 분위기를 보니 이대로 안전하게 1등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좋아 좋아~ 이제 소원은 우리 거다~ 그치, 요한?”
과연 좋아 좋아~ 로 끝날 수 있을까.
요한이 그리 생각하며 묵묵히 배를 몰았다.
“뭐야. 반응이 너무 싱겁잖아. 우리가 1등인데 좀 더 기뻐하라고.”
“기뻐하는 중이야.”
“대체 그 표정이 어디가 기뻐하는 건데?”
“누구처럼 헤픈 것보단 낫지.”
“아~ 하긴 루아처럼 헤픈 것보단 낫겠다.”
너 말하는 거야, 너.
요한은 레이먼을 한번 흘끔 쳐다본 후, 한숨을 내쉬며 말을 삼켰다.
“후후후~ 좋아 좋아. 뒤에 남을 깜둥이가 좀 걱정되긴 하지만~ 그 또한 좋은 경험이겠지.”
요한은 그 말을 고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앞으로 겪게 될 너의 고통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라고.
그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시선을 위로 했다. 그리고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레이먼을 불렀다.
“레이.”
“응?”
“네가 수영할 줄 알던가?”
“그럼~ 우리 중엔 가장 잘할걸?”
그 말에 요한이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먼은 그가 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나 싶어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였다, 얼굴에 그림자가 생긴 것은.
레이먼이 ‘어라?’ 하는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위로 향하는 순간 검은 그림자 하나가 7형의 배 위로 떨어졌다.
***
강의 하류는 제법 시끄러웠다. 시합이 시작된 지 두 시간이 넘었음에도 그들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들끼리의 소축제를 만들어 즐기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리리아와 해우, 그리고 히야스는 교수들의 지정석인 거대한 천막 아래 앉아 결승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올핸 좀 늦네. 이쯤 되면 슬슬 오지 않았나?”
리리아가 추운지 담요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그러게. 거기다 조용해. 작년처럼 불이 난 것도 아니고, 재작년처럼 폭우가 내린 것도 아니고. 유일하게 난 거라면 좀 전에 들렸던 거대한 울림하고 비명 정도인데…… 설마 지금 시작한 건 아니겠지?”
“음…… 모르겠다. 올해는 워낙 의외성 아가들이 많아서 가늠이 안 가네. 누가 이길 거 같아?”
“4형 아니면 7형? 뭐, 마음은 재우가 이겼으면 하지만, 그래도 담당인 형이 이기는 편이 보기엔 더 좋겠지?”
해우의 말에 리리아가 풋 하고 코웃음을 쳤다.
“4형은 못 이길걸? 우리 형에 코니룸이 나갔다고. 솔직히 승산은 우리 2형이 가장 높을걸?”
“누가 그래.”
“어머, 2형이 제일 유능한 건 이미 밝혀진 사실 아닌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네. 그래서 2형이 우승을 한다, 뭐 이런 말이 듣고 싶은 거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사실이라 이거지. 그치, 히야스?”
리리아가 뒤쪽에 앉아 있는 히야스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그에게 응낙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과일 주스에 빠져 있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 불렀냐?”
그 모습에 리리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방구석 폐인. 방 밖에서라도 좀 화사하게 지내면 어디가 덧나니? 왜 여기서도 왕따 놀이야.”
“뭐래, 이 검뚱땡이가. 니들 연애 놀이 하는데 내가 왜 껴.”
히야스의 말에 해우와 리리아가 뺨을 붉혔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진짜 아니야-”
“그래?”
“그래. 전부터 누차 말하지만, 우리 진짜 그런 사이 아니야. 난 시동생 많은 집 부담돼.”
“나도 딱히 기사 마누라는 별로야. 이왕이면 참~ 하고 상냥한 여성이 좋지.”
해우의 말에 리리아가 움찔하고 떨었다.
“뭐야. 그럼 난 참하지도 않고 상냥하지도 않단 거야?”
“음? 음…… 뭐.”
매섭게 치켜뜨는 눈매에 해우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리리아가 쀼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흥.”
그녀는 두고 보잔 말을 남긴 채 히야스의 주스를 빼앗아 들이켰다. 맛있어서 아껴 먹고 있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씨, 내 주스. 아껴 먹은 건데.”
“나중에 사줄게.”
“이자 쳐서 받을 거다. 하여튼 그래서 뭐라 말했는데?”
그제야 대화의 원 주제를 기억해 낸 리리아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우승 말이야. 우리 2형이 할 것 같지 않아?”
“글쎄다. 난 누가 이기든 상관없어. 그보다 대체 언제 끝나냐? 졸려 죽겠구먼.”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히야스의 모습에 리리아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너희 애들이 나갔는데도 응원 안 해?”
“딱히. 지들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아슈팔이 출전했잖아.”
리리아의 말에 히야스가 작게 웃었다. 아슈팔이 출전한 게 뭐 어떻다고 이리들 호들갑인지. 물론 실력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지만, 그 태평한 성격에 이런 걸 적극적으로 참여할 리 없었다.
“글쎄다. 제대로 움직일지나 의문이다. 하여튼 사고나 안 쳤으면 좋겠어.”
“그건 또 뭐야?”
“워낙 별난 녀석들이니까. 뭔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으니, 원.”
히야스가 가볍게 키득거리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때 결승선을 바라보던 해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야, 히야스……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조금 얼빠진 목소리였다. 리리아와 히야스는 하던 대화를 멈추고 해우를 바라봤다. 당혹감이 어린 그의 시선이 결승선에 고정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무슨 일인가 싶어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장내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흡사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았다.
모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결승선만 보고 있었다.
대체 왜들 그래?
히야스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앞을 가리고 있는 천막의 흘러내린 천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의 시야에 골인 지점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걸 바라본 순간, 저도 모르게 배를 부여잡고 폭소하기 시작했다.
“풉…… 푸하하하하하하.”
어찌나 웃긴지 칠칠치 못하게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앞에서 리리아가 담뱃불 위험하다며 핀잔을 주고 있음에도 말이다.
“아- 미쳐. 내가 진짜 이 맛에 교수를 한다니까.”
히야스는 새어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골인 지점을 다시 바라봤다.
강의 하류. 토너먼트의 우승자를 맞이하는 결승점에 한 척의 배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어떠한 사람도 없이 오직 텅텅 빈 배 한 척만 말이다. 그리고 그 배에 보라색 가로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을 본 히야스는 또다시 배를 움켜쥐며 폭소하고 말았다.
형별 토너먼트 최초로 ‘배’만 골인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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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