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24
제 124 화
클레이즈 축제 역사상 가장 우습고도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상류에서 출발한 여덟 팀. 그러나 개중 도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8형의 배만 결승선을 넘었을 뿐이었다.
하류에서 기다리던 학생과 교수들은 다음 도착자를 기다렸으나 한참이 지나도록 그 누구 하나 내려오지 않았다. 이에 결국 일부 교수와 학생들이 선수들을 찾아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 몇 분 후, 그들은 참혹한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처참하게 부서진 배들과 기절한 학생들. 유일하게 깨어 있는 유림과 하민은 얼빠진 얼굴로 눈만 깜빡였고, 아슈팔은 어디로 갔는지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의 뒤통수를 치고 먼저 출발했던 레이먼과 요한은 반으로 갈라진 배와 함께 홀딱 젖은 몰골로 강가에 쓰러져 있었다(후에 레이먼이 재우와 코니룸에게 끌려간 건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이다).
즉, 학생 중 멀쩡하게 배를 몰고 골인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멀쩡한 배 자체가 없었다.
꽤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여태껏 동시에 도착하거나 모두가 다 함께 탈락해 우승자가 없었던 적은 있었지만 이러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간부 교수들이 긴급회의를 열었다.
“긴급회의 소집. 모두 바쁜데 불러서 미안해.”
해우의 말에 그의 왼쪽에 앉아 있던 히야스가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라고 해봤자 꼴랑 넷밖에 없잖아.”
“거기다 개중 셋은 할 일 없는 잉여 인력이었고.”
뒤를 이어 리리아가 투덜거렸다.
그녀는 다리를 꼬며 원탁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긴급회의답게 모든 교수가 아닌 딱 네 명만이 모이게 되었다. 그중 셋은 형별 토너먼트를 구경하던 해우, 리리아, 히야스였으며 나머지 하나는 근처에서 쉬고 있던 다단이었다.
리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한탄했다.
형별 토너먼트가 끝나면 작은 소공연과 불꽃 축제를 즐기다 거하게 한 잔 마시려 했는데, 회의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더욱이 제자들하고 술자리까지 약속해 놓은 상태였다.
“으~”
리리아가 아쉽다는 듯 입을 샐쭉이며 툴툴거렸다.
“해우야, 우리 이거 빨리 끝내자. 나 내일 바쁘단 말이야. 아니, 오늘도 바빠.”
“난 졸린데. 그냥 대충 해.”
리리아와 히야스의 투덜거림에 해우가 싱긋 웃었다. 그는 자신의 양쪽에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하고 상큼하게 말했다.
“히야스, 방구석에 영원히 묻혀 살고 싶으면 계속 떠들고, 리리아도 손에 물 묻히며 살고 싶으면 계속 떠들어. 난 둘 다 상관없으니까.”
“…….”
“…….”
싸한 침묵. 3초의 정적 후 리리아는 시선을 돌려 해우를 외면했고, 히야스는 목을 젖힌 채 깔끔한 천장만 바라봤다.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단은 앞에 놓인 차를 마시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특유의 저음이 기분 좋게 방을 울렸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아, 맞다. 그래야지. 일단 우리가 지금 모인 건 알다시피 오늘 있었던 형별 토너먼트의 우승자 때문이야.”
“배만 도착했다고 하던데. 이러는 걸 보니 사실인가 보군.”
다단의 질문에 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 배만 도착했어.”
“그 외에 도착한 사람은?”
“없어. 다른 애들은 다 기권 비슷한 상태였고, 뭐 제정신인 사람도 몇 되지 않았으니 말이야.”
“재미있군. 여태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잖아.”
“그러니 이렇게 회의를 하는 거겠지?”
해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거 진짜 귀찮은 상황이라고~”
전대 한 번도 없던 상황이 나왔다는 건 꽤나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었다. 축제 기간 중간인 데다, 다른 시합도 아닌 전교생이 다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 형별 간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
즉, 결론이 제대로 안 나면 뒤가 상당히 귀찮고 번거로워진단 의미였다. 더욱이 형별 토너먼트의 담당은 해우가 아니던가. 다른 교수들에 비해 배의 배는 귀찮아질 것이 뻔했다. 덧붙여 이게 결정 나지 않으면 바로 뒤에 있을 클레이즈 최강자전의 사기에도 문제를 끼쳤다.
“그래서? 해우 네 생각은 어떤데?”
“나?”
“그래. 무슨 생각이 있던 거 아니었어? 난 그렇게 느꼈는데.”
리리아의 질문에 해우가 침음을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결승선을 기준으로 삼고 싶어.”
“결승선을 기준으로 삼다니?”
“말 그대로야. 여덟 척의 배 중 결승선을 넘은 건 한 척밖에 없잖아. 애들이 안 타긴 했지만, 어쨌든 도착 지점에 도착한 게 그 배뿐이니 그걸 인정하는 게 어떨까 싶어.”
그 말에 히야스가 고개를 내렸다.
“그니까 배라도 먼저 도착한 우리 애들한테 1등을 주겠다 이거야?”
“왜? 별로야?”
히야스는 아무렇지 않다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비협조적이란 해우의 불만이 뒤를 이었지만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애초에 그는 누가 1등을 하든 관심이 없었고, 그저 자신의 아이들이 나간다 했기에 구경하러 갔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뭐, 이왕이면 아슈팔과 유림이 우승하는 편이 좀 더 좋긴 했으나 그러지 않는다 해도 딱히 상관없었다.
히야스에겐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할 거란 걸 파악한 해우가 대상을 다른 두 사람에게로 돌렸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이미 결정했으면서 떠보는 건 뭔 심보람.”
리리아의 말에 해우가 싱긋 웃었다.
“그래도 내 독단적인 것보다 과반수의 의견이었다는 편이 덜 귀찮으니까.”
“그러니까 결론은 정해져 있지만 혼자 떠들면 불만이 너한테만 갈 것 같으니 우리도 승낙해라~ 뭐 그런 거야?”
“리리아가 오늘따라 유달리 까칠하네. 나한테 불만이 많았나 봐.”
“하하하……. 아니, 뭐 그렇다 이거야.”
까칠은 무슨. 자기가 이미 다 결정해 놓고선 의견을 물어보니 기가 막혀 이러는 거지.
리리아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다 쳇 하고 혀를 찼다. 그리고 이 질문을 다단에게로 넘겼다.
“다단은 어떻게 생각해?”
“흠- 난 크게 나쁘지 않다고 봐. 하지만 괜찮겠어? 과연 다른 학생들이 쉽게 납득할까?”
“상관없잖아. 내가 그렇다는데 지들이 뭐라 그래.”
“…….”
조금 전까지 귀찮아질 거 같다며 우려했던 사람 맞아?
리리아와 히야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해우를 바라봤다.
“그럼…… 결론은 8형이 우승?”
리리아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선 2형한테 주고 싶었지만 누가 봐도 2형은 아니었고, 그러자고 이 큰 이벤트의 우승자를 뽑지 않자니 그건 그거대로 뭣했다.
역시 그냥 이 방법이 가장 좋으려나?
“좋아. 나도 8형한테 주자에 한 표.”
리리아의 대답에 히야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한 표. 솔직히 누구든 상관없으니까, 너 알아서 해.”
두 사람의 승인에 해우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다단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단, 너는?”
“나도 괜찮은 거 같아. 이런 결과도 나름 재밌고 말이야.”
“좋아. 그럼 8형이 우승한 걸로 공표한다.”
세 사람이 알았다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해우는 자신의 안건이 통과(?)되었다는 사실에 흡족해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생각보다 빠르고 시원하게 끝난 회의.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형별 토너먼트의 규칙은 상류에서 출발한 배들 중 가장 빨리 결승선에 도착하는 배가 우승하는 거였으니까. 결론적으로 ‘배’가 가장 먼저 도착한 8형이 우승을 하는 게 맞는 말이 아니던가.
해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결과를 공표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히야스는 그런 해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었다.
아슈팔과 유림이 결승선 근처에도 가지 않았음에도 우승하다니. 이 얼마나 멋진 부전승이란 말인가.
***
펑,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하나를 시작 삼아 하늘로 쏘아지는 빛의 기둥. 마치 하늘에 별처럼 박혔던 것들이 빛의 비가 되어 땅을 향해 쏟아졌다.
눈부신 빛의 향연. 형별 토너먼트가 끝나는 날 밤의 경사스럽고도 거대한 마법 불꽃 축제.
모든 학생이 환상적인 하늘의 모습을 보며 환호성을 내뱉었다. 쪽빛 눈동자를 가진 단 한 명의 청년만을 빼고 말이다.
“뽀송이, 괜찮아?”
은하의 질문에 레이먼이 알 수 없는 곡소리를 내며 고개를 떨구었다. 팔이고 다리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혼날 만했어. 코니룸 선배랑 재우 선배 엄청 화냈다고.”
은하의 핀잔에 레이먼이 입을 샐쭉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후배를 패냐?!”
중류에 기절에 있던 재우와 코니룸이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 아닌 레이먼을 화장실로 끌고 간 일이었다. 그리고 레이먼은 그곳이 얼마큼 은밀하고 위험한 장소인지를 알게 된 후에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정말이지 은하가 이렇게 치료해 주는 게 아니었다면 족히 2주일은 골골거렸을 것이다.
“그러게 적당히 하지 그랬냐~”
은하의 옆에서 약 올리는 루아의 모습에 레이먼이 씩씩거렸다. 그는 멀쩡한 왼쪽 팔을 휘휘 저으며 저리 가라고 손짓했다.
“시끄러. 초장부터 거하게 한 누구들하고 말 섞기 싫거든? 따지고 보면 니들이 가장 먼저 끌려갔어야 했어.”
“후후훗~ 난 잘난 오빠 덕분에 무사히 넘어갔지.”
“그니까 더 짜증 난단 거야.”
레이먼에게 화가 나 있던 두 선배는 초반에 사고를 친 1형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정확히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다 레이먼에게로 쏟아졌다). 결국 1형의 발칙한 행동까지 더해 두 배의 화를 받게 된 레이먼은 앞으로 그 두 사람에겐 절대로 까불지 말아야겠단 다짐을 하며 눈물을 머금었다.
루아는 그런 레이먼이 웃긴지 깔깔거리고 웃다 터지는 폭죽 소리에 시선을 위로 했다.
하늘이 어찌나 번쩍이고 화사한지 꼭 동화 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멋지다~ 나 이렇게 많은 마법 폭죽은 처음 보는 거 같아.”
“응. 진짜 멋져.”
은하도 고개를 붕붕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지만 심통이 난 레이먼의 눈엔 저 하늘조차 미워 보였다.
“뭐가 멋져. 시끄럽기만 하고만.”
“하여간 저 성질머리 하곤.”
남매가 서로를 노려봤다. 그때 은하가 입을 열었다.
“근데 뽀송, 너 왜 물에 빠져 있었어?”
“응?”
“너랑 요한, 먼저 출발했잖아. 난 당연히 네가 1등 할 줄 알았거든.”
“맞아. 니들 어떻게 된 거야?”
루아까지 더한 질문에 레이먼이 긴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떨궜다.
사실 그도 두 사람의 말처럼 7형이 1등을 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녀석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그래. 레이먼이 자신의 우승을 확신하며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 때, 검은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뒤의 일은 정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인물에 의해 7형의 배가 두 동강 났으며 레이먼과 요한은 그대로 물에 빠지고 말았으니까.
제길. 설마 방해꾼이 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욱이 그게 걔일 줄은.
요한이 수영할 줄 아냐고 물었을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방해꾼이 하민이밖에 없는 게 더 이상했다. 분명 더 있었을 텐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날 공격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우리가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정말이지 여러모로 배신이었다.
===============
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