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39
제 139 화
“내부의 적이라니…… 그런 게 정말로 존재할까?”
하진의 말에 진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예요?”
“난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아. 개인적인 의견으론 케이의 억측이라고 봐.”
“전 확실히 있다고 봐요.”
이즈네가 반박하며 말을 꺼냈다.
“그들은 실존해요. 그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걸 누가 증명하는데?”
순간 말문이 막혀 버린 이즈네였다. 그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두 사람도 하진을 바라보며 말을 삼켰다.
하진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혀를 찼다.
“우리가 내부의 적을 짐작하는 건 어디까지나 몇 년 전에 있던 교수 계승식과 케이의 반응 때문이잖아. 안 그래?”
“그렇죠.”
“하지만 만약 그게 정말 사고였거나, 아니면 케이가 말하는 ‘내부의 적’이 아닌 다른 단체 때문이라면? 대체 그들이 뭐기에 노리는 것조차 확실치 않은 놈들을 존재한다 떠들고 준비한단 말이야. 차라리 그 시간에 학교의 발전에나 힘쓰는 게 옳다고 봐.”
냉정할 정도로 확실한 반박에 할 말이 없어진 세 사람이었다. 다단은 그런 하진을 보며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어떻게 보면 그들의 실존 자체가 확실치 않은 게 사실이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케이가 그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단 거야.”
“거기다 우리를 의심하고 있고요.”
이즈네가 다단을 거들었다. 그리고 진유 또한 자신의 말을 이었다.
“노골적으로 보내왔죠,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하진도 그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덴 케이가 학창 시절 때와 달리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설령 정말로 내부의 적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선배, 동기, 후배를 의심하고 싶진 않았다. 자신의 스승들을 죽인 살인자로 말이다.
그러나 저를 제한 모두는 다 내부의 적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진은 할 수 없단 생각에 해우에게만 털어놓았던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내비쳤다.
“좋아- 이렇게 된 거,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을 솔직하게 꺼내지.”
하진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애초에 덴 케이는 뭐 때문에 내부의 적에 확신하는 거지?”
“……네?”
이즈네의 두 눈이 깜빡였다.
“그거야 교수님들의 죽음이죠.”
“그 이전의 우리는 모든 것이 백지였어. 교수님들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내부의 적인지 뭔지 하는 것들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고. 단지 무언가가 있다고 느낄 뿐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때? 우리는 내부의 적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을지 유추하고 그들이 왜 담당 교수가 되었을지, 그리고 여태껏 무엇을 해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 내 의문은 간단해. 대체 이걸 케이가 어떻게 알았고, 이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 사이에 퍼지게 되었냐 이거야.”
“……!!”
하진의 말에 진유가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그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질문을 받았다는 듯 크게 놀라며 입술을 질겅였다. 놀란 것은 이즈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다단만이 의외라는 듯 하진을 흘겨보고 있었다.
“그렇군.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덴 케이도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건 아니겠지. 누군가가 말을 했든, 직접 관련이 되었든 알게 된 계기가 있었을 거야.”
“저도 그 부분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보스는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요.”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하진은 그들의 반응에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덴 케이에게서 시작된 거지. 녀석만이 알고 있는 거고.”
그리고 옷걸이에 걸려 있는 외투를 챙겼다. 그 행동에 세 사람이 그를 바라봤다.
“가시게요?”
“더는 할 이야기 없어, 난 내부의 적을 믿지 않으니까- 또 너희를 의심하고 싶지도 않아.”
그러더니 이내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유림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싸늘하게 들려왔다.
자신은 알고 있었다, 이사장님이 어떻게 연구와 동아리에 대해 알고 있는지…….
자신의 아버지, 그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하진이 나가고, 싸늘한 공기가 방 안을 맴돌았다. 진유는 자신의 의문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케이가 우리에게 연구와 동아리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나요?”
“아뇨……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이야기가 어디서 퍼진 거죠?”
그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유림은 이로 인해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그들의 말대로 이사장님이 연구와 동아리에 대해 떠들지 않았다면…… 그건 그들 사이에 있는 ‘내부의 적’한테서 나온 이야기란 것을.
“여기까지 하지. 어차피 우리가 고민한다 해서 나오는 답도 아니니까.”
다단의 말에 이즈네와 진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도 미심쩍은지 표정이 그리 좋진 않았다.
“그럼 저도 이만 일어나 볼게요.”
이즈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다급히 방을 뛰쳐나갔다. 진유 또한 유림이 두고 간 장부를 챙기며 다단에게 물었다.
“다단은 어떻게 할 건가요? 전 장부를 반납하고 최강자전을 보러 갈 생각인데.”
“음…… 난 네 책이나 빌려 가려 했는데, 바로 갈 건가?”
“그럼 다단이 저 대신 문단속해 주세요. 열쇠는 우편함에 넣어주시고요.”
“우편함 열쇠는 가지고 있는 건가?”
“물론이죠.”
진유가 주머니에서 연구실 열쇠를 꺼내 다단에게 건넸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진유는 다단에게 가볍게 인사한 후 방문을 닫고 나갔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다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유의 책장으로 다가갔다. 유림이 숨어 있는 책상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
유림은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발목을 주물럭거렸다.
한참을 쭈그려 앉아 있어 그런지 다리가 찌릿찌릿하고 저렸다.
젠장. 언제 나가시는 거야.
아까도 갑작스럽게 들어와 자신을 곤란케 하더니 이젠 나가지를 않아 미치게 하고 있다.
유림은 최대한 몸을 웅크리며 숨을 죽였다. 그때 다단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덴 케이는 내부의 적을 확신하고 있어…… 그렇다면 그 정보를 준 이가 있겠지.”
그러더니 턱을 쓸며 책장을 눈으로 훑었다.
“문제는 그게 누구냐 이건데…… 케이가 내부의 적과 한편일 리는 없고…… 그렇다면 내부의 적이었던 자를 알고 있는 건가?”
마치 자신의 고민을 말로 풀듯 다단이 계속 중얼거렸다.
“위험하겠군…… 덴 케이도, 그리고 그 배신자도.”
그리고 그대로 허리를 숙여 낮은 층에 꽂혀 있는 책들을 훑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한유림.”
아주 태연하게 말이다.
***
최강자전 8강 첫 번째 조.
3형 학생과 은하가 시합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직접적인 공격형이 아니었기에 은하는 루아에게 선물받은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나왔다.
3형이라니.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솔직히 16강을 어떻게 치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을 차리니 8강에 올라와 있었다. 거기다 다음 경기가 데몽과 테오의 경기라 자신의 경기가 그 앞이라는 사실도 까먹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자신이 이기면 데몽과 테오, 둘 중 한 명과 붙으리라.
마주하고 있는 두 선수, 그 중앙에 있는 리리아. 그녀는 둘의 팔찌를 확인하고 인사를 시키더니 호각을 불어 시합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그러기 무섭게 후퇴부터 하고 보는 은하였다. 그녀는 마치 목줄을 풀어놓은 강아지마냥 경기장을 뛰어다녔다.
해우는 응급반이 있는 간이 천막 아래서 학생들의 시합을 진행하는 리리아를 빤히 바라봤다. 그때 뺨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떨어졌다.
순간 저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고만 그였다. 고개를 돌리니 세룬이 애처럼 웃고 있었다.
“세룬 교수님, 하하…… 쫄았잖아요.”
“흐음~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쫄으셨을까?”
“별생각 안 했어요. 그보다 방금 차가운 거 뭐였어요?”
“시원한 얼음 음료!”
세룬의 말에 해우가 손을 쭉 내밀어 달란 행동을 취했다.
세룬은 키득거리며 음료를 건넸다. 그리고 의자를 끌고 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올해는 16강이 너무 빨리 끝났네요.”
“원래 16강은 기권자들이 좀 있잖아요.”
“32강에서 몸 생각 안 하고 나대서 그래요. 하루 안에 결승까지 치러진다는 걸 생각해야지. 그보다 진짜 무슨 생각을 그리했어?”
반말과 존댓말을 오가는 묘한 화법에 해우는 말려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정말 별생각 안 했어요.”
그 말에 세룬이 익살스럽게 말했다.
“에이~ 표정이 그게 아닌데?”
“하하하. 아니라니까요.”
“내가 맞춰볼까? 지금 나머지 교수들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하고 생각했죠?”
“……!”
세룬의 말에 해우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들켰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드물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뭐……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긴 하죠.”
“흐음~ 주제가 궁금한 걸까, 내용이 궁금한 걸까~”
그의 의중을 정확히 파고드는 세룬의 모습에 결국 해우가 졌다는 듯 쓰게 웃었다.
“네. 교수님 생각대로 걔들이 내부의 적에 대해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해우 생각은 어떤데요?”
“하진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 답에 세룬이 즉각 말했다.
“거짓말.”
“…….”
“해우는 하진이처럼 의롭지 못하잖아요, 숭고하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내부의 적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거지?”
해우는 숨을 삼키며 세룬을 바라봤다. 귀엽단 생각이 들 정도로 명랑하던 평소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서늘하고도 날카로운 남자가 앉아 있었다. 흡사 먹이를 잡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발톱을 세우는 짐승 같았다.
자신들과 달리 정식으로 계승받은 유일한 교수.
해우는 숨을 고른 뒤, 입꼬리를 틀며 그를 마주했다.
“그러는 교수님은 어디까지 알고 계시죠?”
목소리의 톤이 바뀌자 세룬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자네가 알고 있는 것보단 많이 알고 있지.”
“자신만만하시네요. 아니면 설마 교수님도 그겁니까? ‘내부의 적’.”
“글쎄…… 과연 뭘까?”
해우는 이 사람에겐 정말 못 당하겠다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린 외모와 작은 체구 때문인지 표정 또한 쉽게 읽히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어떤 방법을 써도 그의 속내를 파악하는 게 무리라는 것을 깨달은 해우는 사족을 다 떼고 솔직하게 묻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거죠? 케이보다…… 많은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내부의 적이 그토록 원하는 한 가지를 내가 알고 있단 거예요.”
“그건 교수님이 내부의 적이 아니라고 제게 어필하는 건가요?”
“글쎄요. 애초에 우린 서로를 믿지 못하잖아. 안 그래?”
사실이었다. 해우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건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하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 사실을 알면 서운해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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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