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50
제 150 화
모타 作
이런 디하르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루아가 좀 더 바싹 다가서며 훈계하듯 말했다.
“너 지금 몇 년째인지 알아? 자그마치 9년째야. 이제 슬슬 할 때가 되지 않았어?”
“하긴 뭘 해?”
“뭐긴 뭐야. 고백이지.”
“고백이라…….”
“안 할 생각이야?”
“아니…… 그보단 지금은 때가 아니잖아.”
그 말에 루아의 미간이 구겨졌다. 고백에 때가 어딨다고 이런단 말인가.
“그냥 확 해버려. 너 이러다가 다른 사람한테 유림이 뺏긴다.”
“샨한테?”
“샨? 여기서 샨이 왜 나와?”
정말로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이었는지 루아가 눈을 깜빡였다. 잠시 후, 그녀가 아! 하고 손뼉을 쳤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레이먼이 네가 샨 어쩌고저쩌고했다던데…… 설마 아직도 샨이 유림을 연애 대상으로 본다 생각하는 거야? 네 감이 좋은 건 인정하지만, 이번은 아닐 거야.”
“어째서?”
“샨이 유림에게 가지는 건 모성애지 연애 감정이 아니거든.”
“그건 그때의 이야기지. 바뀌었을 수도 있잖아.”
루아가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또 떨어져 살았으니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늘 그 모양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딱히 저 말에 동의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너희는 왜 그렇게 샨이 가지는 감정이 연애 감정이 아니라 생각하는 거야?”
“잊었어? 연구실에서의 사고 직후 샨이 깨자마자 유림을 보고 했던 말 말이야.”
기억한다. 그 누구보다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기억해…… 샨이 유림일 ‘엄마’라고 불렀던 거 말하는 거지?”
“그래, 그 뒤로도 한동안 그렇게 불렀고. 나중에 요한이 정정해 줄 때까지 그랬잖아. 하여튼 깨자마자 그런 말을 하고 쫓아다닐 정도로 유림을 엄마라 생각했던 녀석이야. 그 태도가 과연 쉽게 바뀔까? 난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아버지가 연애 대상이 되진 않을 것 같은데.”
“그건 또 무슨 패륜적인 발언이야.”
“비유하자면 그렇다 이거지-”
비유의 예가 글러 먹었다. 애초에 유림과 샨은 피가 통하지 않았고, 단지 샨이 그렇게 인식했을 뿐이니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어. 그 당시 샨의 정신연령이 어린아이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성인이니까. 거기다…… 샨이 날 봤던 눈빛은 단순히 엄마를 뺏길 것 같은 아이의 눈이 아니었어. 그건…….”
“연적을 보는 눈이었다, 이거야?”
정확하겐 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눈이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고민하고 찜찜해하는 거다.
디하르는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그의 태도에 루아가 혀를 찬 건 당연했다.
대체 뭔 생각과 고민이 이리도 많은지. 설령 샨이 유림을 사랑한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랑은 쟁취하는 건데.
하긴. 그게 가능한 성격이었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지.
루아는 부채로 자신의 뺨을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정 뭐하면 내가 살짝 떠볼까?”
“뭘?”
“너 어떻게 생각하냐고.”
루아의 대답에 디하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장난으로라도 물어보지 마.”
“어째서? 안 궁금해?”
안 궁금할 리가. 하지만 남을 통해 그 대답을 듣고 싶진 않았다.
“괜히 눈치라도 채서 부담 느끼면 어떡해.”
“이런 쪽으론 둔해 빠져서 물어봐도 모를걸?”
순간 유림이라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렇다면 그게 더 슬픈 거 아닐까? 자신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디하르가 갑자기 시무룩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자, 루아가 쯧쯧 혀를 찼다.
“너는 늘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야.”
“너희가 단순한 거겠지.”
“화끈한 거라고 해줘.”
루아는 그리 말하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네가 싫다면 안 물어볼게. 근데 내 눈엔 정말로 네가 샨보다 더 승산 있어. 그리고 나 너랑 유림이가 진짜 잘 됐으면 한단 말이야.”
마치 응원하듯 루아가 디하르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니까 너도 고민 그만하고 확실하게 표현해. 정 불안하면 후야제의 전설이라도 이용하던가.”
“후야제의 전설?”
“몰라? 후야제에서 고백해서 이루어지면 평생 간다는 전설이 있대. 낭만적이지 않아?”
어느 부분이 낭만적인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대로 있다간 계속 시달릴 것 같았기에 알겠다고 말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루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러나 싶어 고갤 돌리니 언제 왔는지 히야스와 아슈팔이 유림의 옆에 있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두 사람이 유림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
“…….”
눈앞에서 유림을 뺏긴 두 사람이 서로를 빤히 바라봤다.
과연 유림을 다시 데려올 것인가 말 것인가. 물어 무엇하겠는가. 가만있어야지.
“……저 둘은 좀 무서운데. 안 엮이는 게 좋겠지?”
“응.”
결국, 두 사람은 ‘8형만의 오붓한 대화를 하나 보지-’라는 때아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조용히 유림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
“뭐하는 거예요?”
“뭐긴 뭐야. 8형 끼리 오붓하게 놀자 이거지.”
히야스의 말에 유림이 ‘우엑’ 하면서 썩은 표정을 지었다. 언제부터 오붓했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표정이 안 좋네. 우리보다 오렌지가 좋다 이거야?”
“헐. 비교할 걸 비교해요. 어떻게 오렌지랑 비교하려 해요?”
“그러고 보니 이번 주 수업을 안 했군.”
“당연히 교수님과 선배가 최고죠.”
수업 앞에서 취향과 기호를 팔아버린 유림이 간신배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치? 유림이는 날 가장 존경하니까.”
그건 또 어디서 들은 망언입니까.
유림은 혓바닥까지 올라온 말을 꾹꾹 눌러 삼키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진짜 무슨 일인데요?”
“별거 없어. 그냥 수다 떨면서 놀자 이거지. 축제 기간에 못 봤잖아.”
“못 보긴 뭘 못 봐요. 토너먼트 끝나고 잠깐 봤잖아요.”
“그게 언제 적인데 그래. 나 안 보고 싶었어?”
“선배, 날씨가 참 좋아요. 그죠?”
“어이, 지금 교수 말을 씹는 거야?”
“아, 선배는 최강자전 때 뭐하셨어요?”
“내 말을 계속 씹는다 이거지. 좋아, 이번 주치 수업을 해야겠…….”
“보고 싶었어요, 교수님.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 나도 우리 제자들 보고 싶었어.”
크게 웃어재끼는 히야스를 보며 유림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졸업하는 날 꼭 이 인간의 뒤통수를 크게 갈겨줄 거라고.
“좋아. 그럼 오래간만에 본 기념으로 춤이나 출까?”
“엑?! 징그럽게 뭐예요! 차라리 수업할래요!”
정말로 싫은지 수업을 하겠다며 펄펄 뛰는 그 모습에 히야스와 아슈팔이 키득거렸다. 두 사람은 유림의 반응이 재미난지 이것저것 던지며 계속 떠들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데몽은 다른 형에 비해 유달리 친해 보이는 세 사람의 모습에 옅게 웃었다. 그때 테이블에 음료를 나르던 하민이 다가왔다.
“왜 혼자 있어?”
“시끄러워서. 나 이런 분위기 완전 싫어하거든.”
“나도 그런데. 그보다 8형은 진짜 사이좋다.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지.”
“림도 대단해. 히야스 교수님이나 아슈팔 선배나 가까이하긴 좀 힘든 분위기인데.”
데몽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 두 사람은 학교 내에서도 쉽게 다가가기 힘든 인물로 손꼽히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들과 웃고 떠들며 장난까지 치다니. 여러 의미로 대단했다.
“뭐, 본인도 딱히 원해서 저렇게 친해진 건 아니겠지만 말야. 어라? 그건 뭐야?”
그제야 하민의 손에 들린 음료를 봤는지 데몽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커다란 쟁반 위에 상큼해 보이는 푸른색의 음료가 놓여 있었다. 거기다 얼음을 넣어서 마시는 건지 옆엔 커다란 얼음통도 있었다.
“아, 이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더 가져다 놓으려고. 너도 마셔볼래?”
하민은 얼음을 넣은 뒤, 데몽에게 음료 하나를 건넸다. 손잡이부터 시원한 느낌이 전해졌다.
날도 선선한데 손에 차가운 게 닿아서 그런 걸까. 순간 한기가 쑥 하고 올라왔다.
“생각보다 차가운데.”
“어라? 너 찬 거 못 느끼는 거 아니었어?”
이건 또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데몽은 하민을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도 사람이거든?”
“하하하. 난 너 빙계 마법사라 추위나 차가운 거 못 느끼는 줄 알았어.”
“그냥 내성이 좀 있을 뿐이야.”
자신이 무슨 괴물도 아니고. 너무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던 거 같다.
언제였지? 아, 얼음 서고였다. 그때 한유림이 추위 안 타면 망토 달라고 뭐라 했었어.
그는 하민과 유림을 번갈아 보며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뭔가 찝찝한 느낌이 달라붙었다. 아까 유림의 방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왜지?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킨 데몽이었다.
소름 끼치는 생각 하나가 머리를 파고들어 자리했다. 그는 옆 테이블에 음료를 내려놓은 뒤, 하민이 뭐라 말을 걸기도 전에 몸을 돌려 유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유림.”
그 소리에 유림이 고갤 돌아봤다.
“잠깐 나 좀 보자.”
“어??”
갑자기 나타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대뜸 보자니.
왜 저러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데몽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히야스와 아슈팔에게 잠시 다녀온다 말한 뒤 그를 따라갔다.
데몽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사람들이 가장 없는 테라스로 나갔다. 그러곤 문을 꽉 닫은 채, 몇 번이나 더 주위를 확인했다.
그 행동에 괜히 불안해진 유림이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잠깐만.”
다시금 근처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까 우리가 했던 대화 중에 뭔가 놓친 느낌이 하나 있다고 했잖냐.”
“응. 그랬지.”
“혹시 그거…… 얼음 서고가 아닐까?”
데몽의 말에 유림이 눈을 홉뜨며 숨을 삼켰다. 잠시 후, 목소리가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맞아! 그거야!!”
“쉿! 시끄러워. 목소리 좀 낮춰.”
데몽이 황급히 유림의 입을 틀어막으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테라스 근처에도, 또 이 주변에도 사람은 없었다.
“좀 조용히 해. 내가 왜 여까지 널 끌고 나왔겠어.”
“미안…… 어쨌든 얼음 서고 맞아. 이제야 왜 우리 둘만 찜찜했는지 알 것 같네. 애초에 거기에 간 사람이 너랑 나밖에 없으니 생각할 수 있는 사람도 우리밖에 없었던 거야.”
물론 은하와 샨도 그곳에 갔지만, 은하는 그곳을 살필 시간이 없었고, 샨은 대화 당시 그 자리에 없었다.
근데 어째서 이렇게 중요한 걸 잊고 있었을까. 샨의 등장에, 내부의 적 때문에 아무리 정신이 없다 해도 까먹기엔 너무나 수상쩍은 곳인데.
스스로의 무신경함에 답답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이걸 까먹을 수 있지? 얼음 서고에 있던 고서의 양만 봐도 딱 연결이 되는데.”
과거 세계가 비슈아드 국가로 통일되면서 모든 언어는 대륙어로 통일되었다. 그리고 그건 소수 민족을 제하곤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그렇기에 그들이 ‘고어’라고 부르는 것들은 비슈아드 왕국 이전에 존재했던 언어이며 고서 또한 그 이전에 만들어졌단 의미였다.
내부의 적은 늄의 진리를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비슈아드 왕국 이전의 시기를 언급했다.
답이 딱 나오지 않는가. 내부의 적은 그 고서를 찾고 있었던 거다. 정확하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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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