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53
제 153 화
제9교시 [우리 여행갑니다… 아마도요]
“에취!”
재채기와 함께 콧물이 터져 나왔다. 옆에서 더럽다며 오만상을 찌푸리는 데몽을 뒤로한 채, 유림이 코를 풀었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콧물도 계속 나오고.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후야제의 밤. 히야스를 끌고 얼음 서고로 향한 유림과 데몽은 그로부터 거짓말 조금 보태 24시간 내내 얼음 서고를 뒤졌다.
문제는 옷차림에 있었다. 파티의 중간에 빠져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티 때 입었던 옷 그대로 가게 된 것이었다. 물론, 저번처럼 망토를 만들긴 했지만, 안에 입은 드레스가 워낙 얇았던 탓인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데몽도 마찬가지였다. 겨울 예복은 조금 이른 것 같아 얇은 가을용 정장을 입고 왔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결국, 감기에 걸린 두 사람은 끙끙거리느라 하루를 버리고, 그 다음 날이 돼서야 이곳에 다시 오게 되었다.
“히야스 교수님하고 아슈팔 선배는?”
“으…… 오늘 바쁘다고 둘이서 돌래.”
유림의 대답에 데몽이 콧방귀를 끼었다.
“바쁘긴 무슨. 귀찮아서겠지.”
엊그제 자신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이곳을 조사하는지를 보고, 일찍부터 내뺀 것이리라.
유림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코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들의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젤리카였다.
“안젤리카 씨.”
“몸은 괜찮습니까?”
“으으, 죽을 것 같아요. 킁. 그보다 안젤리카 씨는 용케 이런 곳에 사네요.”
“그런가요?”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지 마요. 감기까지 걸린 이쪽이 뭣해지잖아요.
정말로 건강해 보이는 그 모습에 유림이 아예 휴지로 코를 틀어막으며 입을 다물었다. 데몽도 마찬가지였다.
빙계인 자신도 감기에 걸리는 이곳에서 저렇게 멀쩡하게 있다니.
“하여튼 대단하다니까.”
“무서운 거겠지.”
안젤리카는 두 사람의 말을 칭찬으로 받곤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런 뒤 물었다.
“그보다 원하는 것은 찾았나요?”
둘이 동시에 입을 뚝 다물었다. 곧이어 그들의 얼굴에 썩은 미소가 걸렸다.
내부의 적의 목적이 얼음 서고(정확히는 어마어마한 양의 고서와 정보)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늄의 진리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두 사람이 이곳의 모든 고어를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 어마어마한 양을 일일이 찾아볼 수도 없었다. 거기다 애당초 모든 것이 꽁꽁 얼려 있었기에 책을 꺼내 읽어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간혹 ‘늄의 진리’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을 찾아도 마찬가지였다.
데몽은 안경을 고쳐 쓰며 안젤리카를 바라봤다.
“안젤리카 씨, 혹시 여기에 있는 얼음들 다 녹일 순 없는 겁니까?”
“녹일 순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고 있죠.”
“어째서죠?”
“클레이즈의 시작부터 그래 왔으니까요.”
그 말에 유림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어? 야, 데몽. 너 저번에 분명 만들어진 지 5년밖에 안 된 얼음이라 하지 않았냐?”
“맞아. 이거 만들어진 지 5년밖에 안 된 얼음이야.”
“근데 시작부터 그래 왔다고?”
유림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데몽을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물어볼 대상이 틀렸음을 깨닫고 안젤리카를 찾았다.
“안젤리카 씨, 이 얼음 5년 된 얼음 아니에요? 데몽이 그러는데요?”
“맞습니다.”
정확히 봤다는 투에 데몽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설마 몇 년에 한 번씩 얼음을 녹였다 다시 얼리는 건가요?”
“아뇨, 그러진 않습니다. 다만…… 5년 전에 얼음이 녹아 부득이하게 다시 얼린 겁니다.”
“무슨 소리예요?”
안젤리카는 조금 난처한 듯 미간을 구겼다. 그러더니 이내 괜찮겠지- 라고 작게 중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원래 이 서고는 1형의 교수님들이 비밀리에 관리해 왔습니다. 그들의 힘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었죠. 즉 의자를 계승받을 때, 이에 대한 모든 것을 교육받게 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번 계승은 사고에 의해 급작스럽게 일어난 것이죠. 그 때문에 이 서고의 얼음이 유지되지 않고 증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럼 여길 하진 교수님께서 얼린 건가요?”
유림의 질문에 안젤리카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여긴 제가 한 겁니다.”
“…….”
“…….”
유림과 데몽은 대체 이 인간의 정체가 뭘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검도 쓰고 날아도 다니고 이런 것도 얼리고 참 대단하네…….
“어…… 음…… 왜 안젤리카 씨가 했어요?”
“이곳의 관리자에게 부탁받았거든요.”
관리자. 다시금 등장한 그 이름에 데몽이 눈을 날카롭게 했다.
“대체 그 관리자가 누구기에 안젤리카 씨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거죠?”
“그건 제 입으로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데몽과 유림이 불만이라는 듯 입을 샐쭉거렸다. 정말이지 관리자가 누구기에 이렇게 싸고도는지 모르겠다. 분위기로 보니 이사장님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전임 교수님들 사이에 한 분이 있다는 건데…….
“대체 누구인 거야.”
“뭐, 아예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확신이 안 간다고?”
그 말에 데몽이 멋쩍게 웃더니 종이와 펜을 꺼냈다.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유림이 연성해 준 거였다.
그는 그 위에 지도처럼 얼음 서고의 책장 위치를 그려 나갔다. 책을 꺼내볼 수도 없고,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시작한 일이었다.
책장이 어떤 식으로 나열되어 있고, 또 후에 이곳에 오게 되었을 때 대충 어느 제목의 책들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으려고 말이다. 덧붙여 동굴의 위치나 라의 문이 연결된 곳도 표시해 두었다.
“야, 유림. 나 위쪽에서 볼 테니까 너 이쪽에서 그리고 있어. 알겠지?”
“응. 알았어.”
“안젤리카 씨, 부탁합니다.”
안젤리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의 허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책장 위로 뛰어올라갔다.
4m의 높이를 단숨에 올라온 무시무시한 점프력에 데몽은 정말이지 괴물 같은 인간이라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안젤리카 씨도 클레이즈 졸업생인가요? 몇 년도 입학자세요?”
“아뇨. 전 이곳의 학생이 아닙니다.”
“예? 근데 어떻게 클레이즈 안에 계신 거죠?”
클레이즈는 외부에서 초청하는 교수가 아닌 이상 모든 일을 클레이즈의 학생이나 졸업생들이 했다. 어지간해선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이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보자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안젤리카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의 자산이어서 가능합니다.”
아버지? 아주 잠깐 의아해한 데몽이었으나 곧 이내 그 아버지가 히야스임을 기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뜩 든 생각에 다시 입을 열었다.
“자산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쉽게 말해 하민 군의 귀여운 곰 두 마리와 비슷한 거죠.”
“……그 곰들이 귀엽다는 말은 일단 넘어가고, 그거와 비슷하다뇨? 마조와 새디는 소환수 아닌가요? 설마 안젤리카 씨 교수님하고 계약관계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근데 입학도 아니고, 이곳에 들어오는 게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이해가 안 되네요. 그럼 안젤리카 씨는 언제 클레이즈로 온 거죠?”
“아버지께서 입학할 때 같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안젤리카들하고 같이요. 그러다 관리자에게 부탁을 받아 저 혼자만 이곳에서 지키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께선 썩 내켜 하지 않으셨지만, 당시 사람이 없었거든요. 아무에게나 부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요. 다행히도 제가 빙계와 상성이 좋은 늄을 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확하게 이해할 순 없었으나, 어쨌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겠다 생각한 데몽이 계속 질문을 던졌다.
“아무한테나 부탁할 수 없었다니…… 그건 내부의 적 때문인가요?”
“반은 맞고 반은 아닙니다.”
“반은 아니라뇨?”
“내부의 적이 직접적으로 거론된 것은 이사장님께서 계승받은, 그러니까 약 4년 전부터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께서 계승받은 직후엔 그 이야기가 돌지 않았어요. 단지 관리자님께서……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며 아버지께 부탁한 거죠.”
안젤리카의 말에 데몽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 저 말은 이곳의 관리자가 이미 내부의 적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단 소리가 아니던가.
근데 왜 관리자는 히야스 교수님을 믿은 걸까?
“저 안젤리카 씨, 좀 불편한 질문을 하나 해도 됩니까? 어째서 그 관리자는 히야스 교수님을 믿었나요?”
안젤리카가 침음을 삼키며 생각을 정리하더니 답을 내놓았다.
“음…… 믿었다기보단 확실히 아니라고 볼 수 있었던 거죠.”
“어째서요?”
“저와 아버지의 관계 때문에요.”
안젤리카 씨와 그분의 관계……?
참으로 미묘한 어투에 데몽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했다.
안젤리카 씨는 왜 히야스 교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걸까?
양부? 하지만 그러기에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얼마 나지 않아 보였다. 히야스 교수님의 나이는 스물일곱. 그리고 안젤리카는 그보다 많아야 다섯 살 정도 어려 보였다. 그가 신이 내린 노안이 아니라면 말이다.
거기다 안젤리카는 히야스가 입학할 때 따라왔다고 했다. 그럼 열아홉 살이었단 건데, 그런 나이의 사람에게 아버지라 부른다고?
한참을 고민하던 데몽은 답이 나오지 않자 그냥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안젤리카 씨, 왜 히야스 교수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는 거죠?”
“아버지니까요.”
“양부 관계인가요?”
“양부가 아니라 정말로 아버집니다. 아버지께서 절 살려주셨으니까요. 정확한 건 말씀 못 드립니다만 아버지로 인해 제가 살아 있는 거죠. 이 다리도 가지고 있는 거고요.”
살려줘?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생명의 은인 비슷한 건가요?”
“그렇죠.”
데몽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나요?”
“정확하겐 본능적인 거였습니다. 저분이 내 아버지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처음 보는 사람한테 대뜸 ‘아버지-’라고 하신 거예요?”
“아뇨, 알던 사이였어요. 같은 마을에 살던 이웃집 형이었죠.”
“……예?”
데몽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이건 무슨 개소리지?
이웃집 형이 자신을 살려줬다고 그를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아는 형이 날 구해줬다고 그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냔 말이다.
“……히야스 교수님이 확실히 이상한 분이긴 하네요, 그걸 받아들이다니.”
“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조금 씁쓸해 보이셨죠.”
“뭐라 안 하셨나요?”
“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래-’라고 했습니다.”
이건 뭐, 미친놈이 쌍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아는 동생이 정신이 이상해져서 ‘아버지’ 하고 부르면 정정해 줘야지, 왜 그대로 둔단 말인가.
데몽은 세상 최고의 난제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처럼 파리한 얼굴을 했다.
정말이지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때 그의 귀로 안젤리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만약 그 상황에서 아버지가 정정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진 모르겠지만…… 지금의 저에겐 아버지입니다. 그건 아마 죽을 때까지 변함없을 거예요.”
본능적인 것.
데몽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세상에 참 이상한 놈 많다며 얼음 서고의 책장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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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