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59
제 159 화
“이게 작은 마을이라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데몽이었다.
“사람 엄청 많다.”
두 번째로 입을 연 것은 하민이었고.
“지금 축제 기간인 거야?”
그 뒤를 이어 디하르가 물었다.
유림과 은하는 그런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볼 거 없다고 떠들던 유림의 말과 달리 마을은 시끌벅적했다. 마을 곳곳에 작은 천막과 노점이 설치되어 있었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거기다 길을 따라 푸른색과 붉은색의 등이 일렬로 길게 나열되어 사혈 특유의 전통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겨댔다.
화려한 분위기만큼 사람들도 가득했다. 현지인, 관광객, 상인. 타국에서 온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마을의 중앙에 있는 호수엔 사공들이 등을 단 작은 배를 띄우며 손님들을 모으고 있었고, 사방에선 흥겨운 풍악이 흘러나왔다.
이곳저곳에서 별천지에 가까운 진기한 광경과 물건들이 펼쳐져 있었다.
유림은 놀란 아이들을 보며 짧게 설명해 주었다.
“사실 축제는 아니야. 그냥 장날일 뿐이지.”
장날.
사혈엔 며칠에 한 번씩 여는 장 말고도 한 달에 한 번씩 마을별로 큰 장이 열렸다. 지금 그들이 있는 달의 경우는 이 달의 마지막 날부터 다음 달 2일까지가 그 기간이었다. 큰 시장인 만큼 소난을 비롯한 주위 작은 마을의 상인들도 달로 모여들어 노점을 열었다. 실로 유림과 은하가 장사를 했던 것도 이 기간이었다.
유림은 익숙한 풍경에 쓰게 웃었다.
학교가 생각을 하고 이 날짜를 잡은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녀가 아는 교수들의 성격상, 분명 100% 우연으로 날짜가 겹쳤을 것이다.
역시나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두 교수가 마을의 모습에 입을 턱 하고 벌렸다. 혼란스러움에 눈동자가 갈피를 잃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야…… 여기 사혈에서 제일 조용한 곳 아니었어?”
“몰라. 나도 지금 혼란스러우니까 좀 닥쳐.”
일부러 제일 조용한 나라와 마을을 골라왔건만 이 별천지는 뭐란 말인가.
리리아와 히야스는 앞의 광경을 보며 뒤에 있는 저 병아리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축제(정확히는 장)라니. 이런 상황에서 가만있을 애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실로 몇몇 아이들이 탈주를 시도해, 히야스는 친하지도 않은 애의 뒷덜미를 잡아다 무리로 합류시켜야 했다.
의도치 않게 복잡해진 상황에 두 사람은 뜻하지 않은 인솔자로서의 각오를 다잡으며, 아이들을 좀 더 확실하게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금 정신이 팔린 애들 몇몇을 끌고 와 합류시킨 뒤, 모두를 데리고 예약해 놨던 숙소로 향했다.
클레이즈의 1클래스들이 머물게 된 여관은 달에서 가장 크고 경관이 좋은 곳이었다.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나무만으로 견고하게 짜인 벽에, 기와지붕의 처마 끝이 곡선을 그리며 뾰족하게 올라가 있는 사혈의 전통 가옥 느낌이 물씬한 곳이었다.
더욱이 앞엔 마을의 모든 풍경이, 그리고 뒤쪽엔 호수의 꼬리 부분과 산이 보여 어느 방에서 봐도 경관이 일품이었다. 때문에 이 마을에서 가장 값이 비싼 여관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통 큰 클레이즈는 돈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듯 이 여관 전부를 통째로 빌려 버렸고, 그 덕에 아무런 제약 없이 원하는 방을 고를 수 있게 된 아이들이었다.
방은 클레이즈의 기숙사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형식이었다. 물론 그보단 더 컸고, 침대가 없었다.
바닥에서 자본 적이 얼마 없었던 아이들은 조금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푹신한 이불과 따뜻한 방바닥을 확인한 순간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라며 들떴다.
방은 2인, 3인, 7인 이렇게 세 종류가 있었는데 유림과 은하 그리고 루아는 3인실에 들어갔고 남자애들은 여섯 명이 7인실에 모두 몰아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데몽이 강력하게 2인실을 주장했으나 나머지 아이들에 의해 상큼하게 기각되고 말았다.
유림은 가방을 방의 구석에다 집어 던진 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와 동시에 찬 공기와 흥겨운 풍악 소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으~ 역시 쌀쌀하구나.”
“그래도 클레이즈에서랑 큰 차이는 없는 거 같아.”
유림도 루아의 그 말엔 동감했다.
사혈은 지리상 대륙보다 겨울이 조금 더 길고 추웠는데, 아직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서지 않아서인지 클레이즈랑 별 기온 차가 없었다. 물론, 오늘이 그냥 따뜻한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애들이 놀기엔 날이 제법 괜찮아 보였다.
“근데 신기하다. 아까 비행선 위가 더 따뜻했던 거 같아. 원래는 거기가 더 추워야 하는 거 아니야?”
“비행선은 전체적으로 보온 마법과 저항 마법이 걸려 있으니까. 거기다 우리가 탄 거 엄청 좋았던 거야. 보통은 아무리 좋은 비행선이라고 해도 고도는 못 잡아주거든. 근데 아까 거기선 귀가 안 먹먹했잖아.”
“진짜 그러네?”
“왕가가 타는 거여서 그래. 우리 진짜 엄청난 대접을 받고 있는 거라고.”
창틀에 팔을 걸치며 웃는 유림을 보며 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애들 왔나 보다.”
짐 정리를 다 끝낸 레이먼네가 왔을 거라 생각한 루아가 한달음에 달려나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예상과 달리 방문한 이는 다름 아닌 리리아였다.
“교수님?”
어느새 머리를 높게 틀어 묶은 리리아가 문 앞에 서서 미소 지었다.
“방은 어때? 마음에 들어?”
“네. 마음에 들어요.”
“경관도 최고고요.”
“다행이네. 아, 방은 따뜻하지?”
그녀는 아이들이 묵을 방의 바닥을 만져 봤다. 손바닥을 타고 따뜻한 온기가 올라왔다.
음~ 이 방도 따뜻하네. 좋아, 이 정도면 문제없을 거야.
리리아는 그 뒤로도 방문의 손잡이나 방 안을 둘러 살피더니 이내 문제가 없어 보임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난방도 잘되고. 혹시 난방이 꺼지거나 뭐가 잘 안 되는 게 있다면 내 방으로 와. 이 복도 끝 방이니까. 알았지? 내가 없으면 히야스나 여관 직원을 찾아가고.”
“네.”
“그리고 지금부터 저녁 7시까지 자유 시간이야. 그러니까 마음껏 놀다 와도 돼.”
리리아의 말에 세 사람이 두 눈을 깜빡였다.
“……교수님, 지금 저희 막 도착했는데 한 시간도 아니고 무려 다섯 시간이나 자유 시간이라고요?”
“왜? 싫어?”
싫긴요. 겁나 좋습니다. 단지 교수님들이 일정을 너무 막 짜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유림이 싱긋 웃으며 좋다는 뜻을 보이자 리리아가 그녈 따라 웃으며 흘러내린 옆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대신 저녁은 다 같이 모여서 먹을 거니까 7시까진 숙소 1층으로 모여야 해. 지급한 용돈은 마음껏 써도 되고, 가능한 조별끼리 움직일 것! 또 마을 밖으로 나가도 안 돼. 알았지?”
꼼꼼하게 주의 사항을 하나씩 알려주는 그 모습에 세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네. 알겠어요.”
“그 전에 꼭 돌아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리리아는 마음에 든다는 듯 웃다 다시금 떠오른 주의 사항에 손가락을 하나 펴 보이며 말했다.
“아, 교복도 꼭 입고 다녀. 사복 입으면 때릴 거야!”
리리아의 앙증맞은 협박에 세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절대로 늦지 말라 당부한 후 방을 나갔다.
“리리아 교수님, 진짜 너무 예쁘시다.”
“들었어? 때릴 거래. 왜 이렇게 귀여우시냐.”
“진짜 해우 교수님 완전 복 터졌네.”
루아의 말에 유림과 은하가 두 눈을 깜빡였다.
“응? 두 분 그런 사이야?”
“진짜?”
“어? 너네 몰랐어? 두 분 그렇고 그런 사이잖아. 저번에 하민이 말해줬어.”
세상에. 그럼 출발 직전 리리아 교수님이 말했던 두근두근의 상대가 해우 교수님이었던 건가?
유림은 꽤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 생각하며 창에 기댄 몸을 일으켰다.
“그보다 이제 자유 시간이네?”
그 말에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봤다.
7시까지 자유 시간이라…….
“…….”
“…….”
“…….”
순간 세 사람의 얼굴에 익살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들은 그대로 지갑을 챙겼다. 그리고 남자애들이 묵고 있는 방으로 쳐들어갔다.
보다 즐거운 자유 시간을 위해서 말이다.
일행 사이에 현지인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좋은 일이었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어디가 더 싸고 좋은지, 또 같은 가격이라도 어디 가야 더 맛있는 걸 많이 먹을 수 있는지 알았다. 그뿐인가, 이 별천지 속에서 시간 낭비 없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알짜배기 장소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유림과 은하가 그랬다.
한 달에 한 번 달에 나와서 장사를 했다는 사실이 뻥이 아님을 증명하듯 아이들이 원하는 음식, 원하는 상점, 그리고 원하는 놀이터로 안내했다. 덧붙여 어느 길을 이용해서 가야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는지도 말이다.
어쨌든 두 사람 덕에 맛난 걸 입에 문 채, 세 시간에 달하도록 이것저것 쇼핑하며 구경하던 일행은 조금 쉴 겸 호수 공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근처에 있는 작은 오락장에 시선이 뺏겨 결국, 그곳에서 놀게 되었다.
“으아아! 또 못했어!!”
테오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나 진짜 등신인가?”
“등신은 사실이지만 이런 일에 등신임을 자각하지 마.”
“닥쳐, 데몽!! 난 등신이 아니다!!”
“……뭐라는 거야.”
다시 의욕을 불태우는 테오를 경멸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데몽을 보며 옆에 있던 유림이 크게 웃어 재꼈다.
“하하하하. 그냥 내버려 둬. 이런 것도 재밌잖아.”
이게 재밌다고?
데몽이 눈썹을 들썩이며 테오를 바라봤다.
그들이 도착한 이 작은 오락장엔 간이 낚시, 뽑기, 경품 다트 등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테오가 하는 것이 바로 경품 다트였다.
제법 먼 거리에서 다트를 던져 흔들리는 과녁에 맞히면 그에 해당하는 상품을 주는 것이다.
테오가 열을 내는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태 단 하나도 못 맞혔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하겐 옆에 있는 디하르가 반 이상을 맞혔는데 그는 하나도 못 맞혔단 것이었다.
테오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더니 손을 번쩍 들며 주인을 찾았다.
“아저씨! 여기 한 세트 추가요!!”
“야! 너 지금 여기서 얼마를 쓴 줄 알아?!”
“시끄러! 사나이가 핀을 들었으면 작은 나무 원숭이라도 가져가야 하는 거야!!”
테오가 쓴 돈을 다 합치면 그 나무 원숭이 열댓 마리는 살 수 있었을 테지만, 유림은 딱히 그 사실을 꼬집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키득거리며 그를 좀 더 부추겼다.
“오오~ 멋있다, 테오! 이렇게 된 거, 저 원형판의 중앙을 노려! 거대한 수석을 따가는 거야!!”
“좋아좋아!! 오오오오!!”
결국, 테오가 기합을 한껏 집어넣은 뒤, 다시 핀을 들었고, 그 옆에 있던 유림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낄낄거리며 그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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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