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60
제 160 화
데몽은 그런 두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 시선을 느낀 유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 뭐랄까……. 너 묘하게 즐기는 거 같아서 말이지. 평소라면 돈지랄한다면서 못 하게 할 애잖아.”
“그거야 당연하지. 여기 있는 나무조각 경품들 내가 납품하는걸.”
“…….”
순간 데몽이 입을 다물었다.
아주 잠깐 어이가 가출했다 돌아왔다.
“뭐?”
유림은 테오에게 들리지 않게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여기 있는 것들 내가 만든 거야.”
데몽의 얼굴이 더할 수 없을 만큼 복잡미묘해졌다. 그러나 유림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뭐, 제대로 된 건 큰 상점에 납품하지만 간단하게 심심풀이로 만든 건 여기에 내. 따로 물건값을 받는 건 아니고, 대신 수입에서 일부를 떼어 받는달까?”
“……그니까 손님이 돈을 남발하면 남발할수록 네가 많이 번다 이거야?”
“그렇지. 이거 나름 짭짤한 부수입이라고.”
데몽은 유림을 빤히 바라보더니 테오를 바라봤다. 잡아 죽일 듯이 다트를 노려보는 녀석. 그사이 또 한 판이 끝났는지 다시 핀 다섯 개를 주문하고 있었다. 즉 그녀의 배당이 또 높아진 것이다.
그는 다시금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이내 다른 곳에 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유익하단 걸 깨달았다.
“어디 가게?”
“응. 다른 애들은 뭐하나 보게.”
“글쎄. 그냥 여기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데몽은 괜찮다며 몸을 돌렸다. 그러곤 어딜 갈지를 고민하듯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레이먼과 은하가 설탕 과자를 만들고 있었다. 둥그런 설탕 과자 위에 다양한 모양의 틀을 찍어, 핀으로 그 모양 그대로 떼는 거였다. 그러나 제대로 성공한 것이 하나도 없는지 입안에 과자를 한 아름 문 채, 계속 소다가 섞인 설탕 반죽을 만들고 있었다.
이쯤 되니 저것들이 떼는 것을 성공하기 위해 계속하는 건지, 설탕 과자를 먹기 위해 하는 것인지 구별이 되질 않았다. 거기다 분위기가 왠지 꽁냥꽁냥해 근처에도 가고 싶단 생각이 안 들었다.
데몽은 저기 말고 다른 곳은 없나 하고 다시 고개를 둘렀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오락장 한쪽 구석에서 루아를 비롯한 나머지 세 명이 낮술을 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단하군…… 대낮부터 술이라니…….”
“달은 안주가 풍부하거든. 특히 산양 꼬치구이나 돼지 양념 꼬치가 일품이지. 너도 가서 먹어봐. 진짜 맛있다고.”
한량처럼 보이는 저 무리에 합류하라고? 차라리 유림의 말대로 그냥 여기 있는 게 더 나았다.
“……아니, 그냥 여기 있을래.”
그리고 그 말에 그녀가 그럴 줄 알았다며 크게 웃었다.
“시끄러워.”
“하하하하. 아, 웃겨.”
유림은 데몽을 향해 얄밉게 웃어준 후, 디하르에게 다가갔다.
그의 옆에 쌓여 있는 손바닥만 한 나무 조각상들. 다트도 안 하고 그 앞에서 뭘 하나 했더니, 조각상의 개수를 세고 있었다.
“아홉 개…… 흠…….”
“벌써 아홉 개나 땄어?”
유림이 대단하다며 눈을 반짝였다. 테오를 부추긴 것과 달리 이건 순수한 감탄이었다.
“대단하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고민이 돼서.”
“뭐가?”
“다른 사람들 것도 챙길까 해서 말이지.”
그제야 유림은 디하르가 일행 수에 맞춰 조각상을 따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 샨과 요한 것도 챙기게?”
순간 디하르의 어깨가 흠칫하고 떨렸다.
단순한 기분 탓일까. 유림의 목소리로 듣는 ‘샨’이란 호칭이 어쩐지 전에 비해 다정해진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샨의 마음만 신경 썼지, 그녀의 감정은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유림은 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쩌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게 아닐까?
갑자기 입안이 바싹 말라가며 조급함이 일었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조심스럽게 꺼낸 질문에 유림이 고갤 끄덕였다.
“물어봐.”
디하르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생각을 정리하더니 이내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냈다.
“있잖아, 넌…….”
그때였다.
“오오오!! 했어! 했다! 드디어 맞췄어!!”
드디어 과녁을 맞히는 데 성공했는지 테오가 환호성을 질렀다. 우렁찬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거듭된 실패로 인해 쌓였던 오기와 분노가 싹 다 가시고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치밀어 올랐다. 테오는 제 모든 감정을 표출하듯 정체를 알 수 없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유림은 활짝 핀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 손뼉을 치며 칭찬해 줬다.
“오오! 테오! 딴 거냐?!”
“땄어~! 내가 뭘 땄는지 알아?! 보라고!!”
그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손바닥을 쫙 펴 보였다. 그러자 그 위엔 유림의 검지만 한 크기의 병아리 나무 조각이 있었다.
마치 엄청난 것을 딴 것처럼 의기양양함이 가득했다. 말은 안 했지만, 표정만 두고 보자면 ‘너는 이런 거 못 하지?’였다.
“잘했어~ 잘했어~”
유림은 연신 키득거리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칭찬하듯 말이다. 그러곤 한마디 덧붙였다.
“뭐, 2천 량밖에 안 하는 작은 장신구지만 이게 어디야. 그치?”
2천 량?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금액이 튀어나와서 그런 걸까. 그가 미간을 구기며 자신이 쓴 돈을 계산했다.
다트 핀 하나에 5백 량씩 한 세트당 다섯 개로 총 2,500량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테오가 한 건 총 열여섯 차례로 가격으로 바꾸면 4만 량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병아리를 내려다봤다. 매끈한 나무로 조각된 병아리가 마치 삐악삐악거리며 저를 약 올리는 것 같았다.
테오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마지막 비수를 꽂는 유림이었다.
“참고로 그거 내가 만든 거다?”
“…….”
“우리 집에 가면 그거 산처럼 쌓여 있어.”
“…….”
인간적으로-이미 충분히 비인간적이었지만-‘네가 여태까지 쓴 돈 중 일부가 나한테 들어와’라는 말까진 하지 않은 유림이 그를 향해 풋 하고 작게 웃어 보인 뒤, 모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테오는 그런 유림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다 시선을 제 손바닥에 있는 병아리 조각으로 내렸다.
그니까 지금 내가……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거에 4만 량이나 처발랐단 거야?
허무하리만큼 순식간에 사라진 자신의 돈, 그리고 씁쓸하게 흘러간 자신의 시간과 열정.
테오는 눈물을 머금으며 병아리 나무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왠지 삐악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한편, 아직도 쭈그려 앉아 달고나에 열중하고 있던 두 사람은 유림의 등장에 입을 오물거리며 위를 쳐다봤다.
“림이다.”
“그러게.”
“이제 슬슬 자리 옮기자. 그것도 좀 그만 먹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이제 곧 7시인데?”
레이먼이 달고나를 챙기며 시계를 확인하자 유림이 츳츳 혀를 찼다.
“뭘 모른다니까. 원래 장은 야시장이 최고거든? 거기다 달은 밤이 더 본격적이야. 등불 켜면 장난 아니거든. 제대로 된 술판과 내기판도 밤에 펼쳐지고.”
“밤에만 하는 탈놀이도 있어.”
은하까지 덧붙이자 레이먼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진짜?! 오오~ 좋아 좋아! 그럼 좀 더 놀다 가자! 늦어봐야 얼마나 늦겠어!”
그는 그대로 일어나더니 술판을 벌이고 있는 친구들을 부르러 갔다, 후엔 디하르와 데몽도.
이에 일행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고 모처럼 느긋한 낮잠을 즐긴 리리아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오래간만에 푹 자서 그런지 몸이 개운했다. 그녀는 길게 뻗은 팔을 움직여 몸을 풀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두운 밤그림자가 방 안을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켠 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짧은 바늘과 긴 바늘이 7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집 시간인 7시를 11분이나 넘긴 것이다.
내가 그 정도로 피곤했었나? 미치겠네, 정말.
리리아는 흘러내린 머리를 다시 고쳐 묶고, 옆에 벗어두었던 외투를 챙긴 뒤,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우왓!”
시커먼 인영이 제 방 앞 복도에 기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 히야스?”
“……이제 일어났냐?”
화가 났는지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게 깔렸다. 리리아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가까스로 물었다.
“네, 네가 왜 여기 있어?”
“……몰라서 묻냐?”
“깨우지 그랬어. 하하…….”
“깨웠지. 다만 어디의 누구 씨가 너무 잘 처자느라 안 일어난 거겠지.”
“내가 그렇게 깊이 잤어? 들어와서라도 깨우지…….”
히야스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리리아는 제가 한 말실수를 인정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만일 그가 저를 깨우기 위해 방에 들어왔다면, 남의 방(더욱이 숙녀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거 아니라며 가만두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하하. 미안 미안, 그보다 애들은? 설마 나 기다리고 있어? 배고프겠다.”
“…….”
순간 히야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그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리리아는 미안함에 두 손을 모았다.
“……집합 시간을 내가 정해놨는데 정작 기다리게 해서 미안.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래 잘 줄 몰랐어. 진짜 미안해.”
“정반대야…….”
“응?”
“네가 1등이라고.”
“…….”
리리아가 고개를 들어 히야스를 바라봤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1등이라고?”
“그래…….”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저 1등이란 게 뭘 뜻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11분이나 지났던데?”
“그래…….”
“근데 정말 내가 1등이라고?”
똑같은 질문에 같은 답을 반복하기 귀찮았는지 그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아의 예쁜 얼굴이 서서히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덤으로 목소리도 점차 낮아졌다.
“……연락은?”
“아무도 안 받아.”
그리고 그 말과 함께 히야스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긴 숨을 내쉬었다.
리리아가 동그란 눈을 느릿하게 두어 번 깜빡였다. 그러더니 이내 더할 수 없을 만큼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병아리들이…… 감히 한 놈도 약속 시간을 안 지켜?”
그녀는 흥얼거리며 외투를 걸쳤다.
“그래. 말 잘 들으면 우리 학교 애들이 아니지. 이것들을 대체 어떻게 족치지?”
산뜻하고 상큼한 말투와 달리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좋아좋아~ 모처럼 만에 사냥한다 생각하고 즐기고 오자고.”
정말로 사냥을 나갈 것처럼 구는 터에 히야스는 이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럼 난 여기서 애들 기다리고 있을게. 너 혼자 가서 잡아와.”
“뭔 개소리야. 너도 가야지.”
리리아가 그의 어깨에 사뿐히 손을 올렸다. 곧이어 누구라도 반할 만큼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가서 싹 다 싸잡아 오자고.”
그리고 그 말에 진심으로 썩은 표정을 짓는 히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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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