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62
제 162 화
딱딱하게 굳은 아이들이 경악에 입만 뻐끔거리자 히야스가 손짓하며 청년을 재촉했다.
“뭐하고 있어? 어서 차를 내오지 않고.”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일행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유일하게 히야스가 누군지를 모르는 청년만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결국, 의아함을 참지 못한 그가 은하의 팔뚝을 살짝 치며 물어봤다.
“누구셔?”
그러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유림이 아닌 히야스에게서 튀어나왔다.
“난 여기에 있는 이 빌어먹을 녀석들의 교수, 히야스라고 해. 반가워.”
“이 애들의 교수…… 아! 그럼 클레이즈의 교수님?”
“그래.”
“아, 안녕하세요!!”
교수라는 한마디에 청년의 얼굴이 상기됐다. 클레이즈의 학생보다 더 보기 힘든 사람이 클레이즈의 교수 아니겠는가.
어디에 가도 꿀리지 않을 굴지의 실력자!
그는 마치 유명인을 만난 것처럼 한층 들뜬 목소리로 주문을 확인했다. 그러곤 차를 내오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동안 아홉 명은 생각했다. 왜 히야스가 여기에 있는 걸까. 이 인간이 대체 왜 여기서 주문을 한 걸까. 왜 이 인간이 천연덕스럽게 이러고 있는 것인가 등등.
사람 수가 많은 만큼 다양한 생각과 의문이 떠올랐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의 결론은 같았다.
‘죽었다.’
집합 시간에서 40분이 지났다. 이런 상황에서 히야스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바로 복귀하지 않은 아이들을 잡으러 온 걸 테지.
유림은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이마를 짚었다.
아오, 진짜. 여긴 또 어떻게 찾았대?
나머지 일행도 입을 꾹 다문 채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히야스는 그런 애들을 보며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러곤 난간을 잡고 풀쩍 뛰어올라 테라스로 넘어왔다.
“읏챠-”
피곤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는 옆 테이블에서 의자를 빼 와, 유림과 은하 사이에 놓은 뒤, 다리를 꼬며 앉았다.
“다들 기운도 좋아. 이 날씨에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다니. 추위도 못 느낄 만큼 아주 신바람 나게 놀았나 보지?”
“…….”
“그러고 보니 유림과 은하의 고향이 이 근처라고 했지? 그래서 그런지 아주 찾기 힘든 곳에 잘 있었네.”
유림이 쓰게 웃어 보였다.
“……여긴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아- 그냥 걷고 있는데 누구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지.”
순간 모두의 시선이 은하에게 향했다. 은하는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피력하듯 고개를 붕붕 돌렸지만 믿어주는 이는 없었다.
물론 진범인 유림 또한 은하를 의심했다.
뭐, 사실 이게 아니더라도 히야스가 아이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모두 다 그가 준 위치 추적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유림은 히야스의 눈치를 살피며 별 쓸모도 없는 변명을 했다.
“……진짜 조금만 쉬다 가려고 했어요.”
“괜찮아. 어차피 아무도 안 왔으니까.”
순간 아이들이 뚝- 하고 멈췄다.
뭐? 뭐라고?
“아무도 안 와요……?”
“그래. 간땡이가 부었는지, 한 놈도 제시간을 지키지 않았지.”
“…….”
“정말이지 이 빌어먹을 놈들을 얼마나 더 귀여워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
모두의 얼굴이 더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워졌다.
정원이 서른 명인 곳에서 아홉 명이 결코 적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땡땡이를 친 건, 리리아나 히야스의 성격으로 봤을 때,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3 정도는 안 와도 어련히 알아서 들어오겠지 하고 넘기리라 여겼다(더욱이 이곳은 유림과 은하의 고향과 아주 가깝다는 걸 알고들 있으니까). 그런데 설마 그런 생각을 한 이가 자신들뿐만이 아니었다니.
“…….”
모두의 기분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 것도 모르는지, 히야스는 퉁명스럽게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봤다. 그리고 태평히 뭐가 맛있을까나~ 하고 흥얼거리며 찬찬히 읽었다.
“여긴 신기하게 케이크에도 채소가 들어가네. 오~ 고구마 말린 것도 있군. 이런 건 맛있나? 아, 다들 밥은 먹었냐?”
“……아뇨.”
“그럼 하나씩 주문하도록 해. 분위기로 봐선 저녁밥도 없을 것 같으니까.”
“…….”
히야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꼰 다리를 까딱이며 말했다.
“그보다 곰 잡으러 간 애들은 잘됐나 몰라. 검 뚱땡이가 애들 사냥…… 아니, 잡겠다고 지금 온 마을을 들쑤시고 있는데.”
“…….”
“…….”
“흠- 뭐, 검 뚱보 성격이면 이미 녀석들이 곰이 되어 잡혀왔겠지만.”
“…….”
“…….”
“하하하. 그래도 그 녀석 사람은 죽이지 않으니까.”
“…….”
“…….”
“하여튼 너희도 밥 먹어라. 마지막 만찬으로 하기엔 좀 허하겠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이렇게라도 만족해야지. 안 그래?”
얄미우리만큼 익살스러운 미소가 히야스의 입가에 걸렸다.
일행은 그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순간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그대로 메뉴판을 보며 저녁 식사를 대신할 만한 것을 골랐다. 다소 암울한 표정으로 말이다.
클레이즈 여행 1일 차.
화려하게 자유를 즐긴 학생들은 리리아의 ‘때릴 거야!’라고 했던 말을 몸소 체험했고, 이 아담한 마을에 ‘곰도 때려잡는 애들을 때려잡는 대단한 교수!’라는 소문을 퍼트리게 되었다.
그리고 ‘너희가 이렇게 나왔으니 나도 똑같이 하겠다!’라고 선포한 리리아는 다음 날 동이 트기도 전부터 사라져 점심이 한참 지나서야 돌아와 무려 반나절-전날 저녁을 못 먹은 애들은 거진 하루-동안 아이들의 배를 쫄쫄 굶게 하였다.
***
클레이즈 여행 2일 차는 생각보다 여행다운 여행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늦은 점심을 먹은 뒤, 비행선을 만드는 공방으로 견학을 가게 되었다. 그리 큰 곳은 아니었지만, 최초의 비행선이 만들어진 곳답게 쉽게 볼 수 없는 비행선의 부품이나 초기 비행선의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재 공방을 맡고 있는 공방주는 아이들에게 공방을 안내하며 관련된 역사나, 비행선을 제작하는 간략한 방법 등을 재미나게 설명해 주었다.
별것 없다던 유림과 은하의 말과 달리 아이들은 꽤나 유익하고 뜻깊은 견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두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견학이 끝난 후에, 근처 공원에서 간단한 휴식 시간을 가진 뒤, 달의 최고급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고, 이후엔 달의 명물인 야간 탈놀이를 다 함께 구경했다.
뭐, 활기찬(?) 애들답게 이번에도 어제처럼 몰래 빠져나가려는 탈주자들이 있었으나 얼마 못 가 리리아에게 끌려오게 되었다.
여행 3일 차도 비슷했다. 첫날 큰 교훈을 얻은 탓인지 절대 자유 시간을 주지 않기로 결심한 선생들은 제법 빠듯한 일정을 강행했고,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장의 마지막 날을 구경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저녁 두 선생은 아이들에게 ‘내일은 종일 자유롭게 지내도 된다’며 파격적인 자유 시간을 선사했다. 이 때문에 일행은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내일 어떻게 할지를 계획했다.
“내일 뭐하지?”
레이먼의 질문에 은하가 시선을 위로 하며 곰곰이 할 만한 것을 생각했다. 달의 장날도 끝났고 크게 구경할 만한 것들은 이미 다 했기에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다시 그 오락장 가볼까?”
륜의 말에 데몽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거긴 넘기자. 모처럼 여기까지 나왔는데 갔던 곳 또 가긴 뭐하니까. 거기다 솔직히 거기 돈 낭비가 너무 심해.”
뭔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테오가 표정을 구기며 괜히 구시렁거렸다. 유림은 밥을 먹으며 테오의 등을 토닥여줬다.
물론 유림의 위로가 위로로 느껴질 린 없겠지만 말이다.
“그럼 어디 가게?”
“그전에 우린 여기 뭐가 있는지도 모르잖아, 가볼 만한 곳들도 다 가봤고.”
륜의 말에 루아가 유림의 어깨에 머릴 기대며 물었다.
“아가씨, 어디 갈 만한 곳 없나요? 아니면 놀 만한 곳이나.”
“글쎄, 뭐가 있으려나.”
유림의 대답이 시원찮자 쌍둥이가 시선을 은하에게로 돌렸다.
“깜둥, 뭐 할 거 없냐?”
“재밌는 거. 막 여기서밖에 즐길 수 없는 거.”
“음…… 잘 모르겠다. 아니면 다 같이 우리 집이나 갈까? 사실 나 시간 나면 우리 집에 갈 생각이었거든.”
은하의 말에 쌍둥이를 비롯한 몇몇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열었다.
“너네 집?”
“아,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분명 여행 초까지만 해도 이 근처에 은하와 유림의 집이 있으니 자유 시간을 길게 주면 소난에 들러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만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럼 내일은 소난에 가볼까?”
“가서 은하네 부모님도 뵙고 유림이 살던 집도 보면 되겠다.”
장소를 정한 일행이 한마디씩 떠들었다. 상기된 표정과 들뜬 목소리가 마치 어마어마한 곳에라도 가는 것 같았다.
“그럼 내일 일정을 짜볼까?”
유림은 숟가락을 쪽쪽 빨며 내일 일을 계획하는 친구들을 바라봤다.
소난은 일정을 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말 볼 게 없는데…….
솔직히 달이야 그나마 구경할 거라도 있고, 외곽으로 나갈 수라도 있지만 소난은 정말 촌 그 자체였다. 유림과 은하도 그냥 산을 쏘다니고 낚시나 하고 논 게 전부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이 들뜬 목소리로 연신 떠들었다.
“은하네 너무 오래 있으면 실례일 테니까 인사만 드리고 유림이네 집으로 가는 것도 좋겠다.”
“외박되려나? 가능하면 거기서 자고 와도 좋은데.”
“자면 어디서 자게?”
“어디긴 어디야. 한유림네지. 애당초 은하네는 가족들이 있을 텐데 우리가 어떻게 거기서 자.”
“아, 그러네. 유림은 혼자 사니까 가능하겠다. 근데 우리가 다 들어갈 만한 크긴 돼?”
“림네 집 우리 모두 다 들어갈 수 있어.”
“그럼 됐네.”
유림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집을 숙소로 잡고 계획을 짜 내려갔다.
내 의사는 없는 거냐? 아니, 그 이전에 그 두 교수가 외박을 허락해 주긴 할까?
유림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의문을 밥과 함께 꾹꾹 씹어 삼키며 모두를 바라봤다. 그때 하민이 유림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림, 혹시 우리가 너희 집 가는 거 싫어?”
“응?”
“어쩐지 반응이 좀 시큰둥해서.”
그제야 유림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을 안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유림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좀 미안한 듯 뺨을 긁적였다.
“아, 미안. 그냥 별생각이 없어서.”
그러곤 덧붙였다.
“거기다 나 내일 할 일 있어서 너네랑 따로 다닐 생각이었거든.”
“어?”
뜻밖의 대답에 일행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할 일이 있다고?”
“뭔데?”
“비밀. 하여튼 집에 들렀다가 따로 행동할 거야. 그니까 소난 관광은 은하랑 해.”
그들은 예상치 못한 말에 크게 당황하며 대체 뭘 하려는 거냐고 물어봤지만, 유림은 피식거리며 웃기만 할 뿐 대답해 주진 않았다.
다만 은하만이 뭔가를 눈치챈 듯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유림은 오늘 일찍 자야겠단 생각을 하며, 남은 밥을 다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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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