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69
제 169 화
“뽀송, 화이팅!!”
“륜! 찌가 움직여요!”
양옆에서 떠드는 은하와 루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데몽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뒤늦은 후회가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않는 건데. 그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자신의 아둔함을 욕했다.
레이먼과 은하, 그리고 륜과 루아. 척 봐도 각이 나오지 않는가. 물론, 한쪽은 연인 사이가 아니지만 루아가 륜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양쪽 옆에 둘씩 모여, 열심히 낚시하는 남자애들과 그 옆에 바싹 달라붙어 응원이며 뭐며 이것저것 떠들고 있는 여자애들. 어찌나 알콩달콩한지 봄에나 피우는 화사한 꽃들이 사방에 깔린 것 같았다.
데몽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찌를 바라봤다.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물결에 따라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처음 실수로 놓쳤던 한 마리를 제외하곤 아무런 입질이 없었다.
이젠 하다하다 물고기조차 나를 외면하는 건가.
아…… 나 외로운 거 아니다. 그냥 오늘따라 낚시가 잘 안 돼서 그래.
그래, 그런 거야…….
데몽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절대 외로워서 양옆의 두 쌍이 짜증 나는 게 아니라고.
그때였다. 주머니에 넣어둔 통신구가 진동을 울렸다. 데몽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통신을 받았다.
“네-”
「데몽?」
“하민이냐?”
「너희 어디야?」
그 질문에 데몽이 짜증을 가득 담아 대답했다.
“어디긴 어디야. 사랑과 짜증이 넘치는 낚시터지.”
「옆에 은하 있지? 지금 당장 애들하고 북쪽 바다로 와줘. 은하라면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을 거야.」
“북쪽 바다?”
아니, 호수도 모자라 바다? 이 이상 무슨 사랑이 넘치는 여행을 만들려고…….
데몽은 귀찮단 의미로 손을 내저었다.
“귀찮아. 그냥 너희끼리 놀아.”
「급하니까 빨리!!」
통신구를 통해 하민의 거칠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데몽이었다.
주변에 있던 네 아이도 하민의 목소리에 하던 행동을 멈추고 통신구를 응시했다.
그제야 하민의 목소리가 평소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다급하단 것을 깨달았다.
“뭐야, 너희 무슨 일 있어?”
데몽이 낚싯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네 사람도 하던 걸 멈추고 통신구 쪽으로 모였다.
은하는 왠지 모를 불길함에 두 손을 꽉 쥐며 물었다.
“하민아, 무슨 일이야?”
「은하야, 너 북쪽 바다 알지? 거기에 동굴 있는 거 알아?」
동굴?
은하는 미간을 구기며 북쪽 바다를 떠올렸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에 그곳에는 동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할아버지한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하지만 하도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잘 모르겠어, 하여튼 북쪽 바다는 알아. 너희 거기 있는 거야?”
「응. 바로 이쪽으로 와줘.」
바로 와달라니. 루아는 그 말이 너무나도 불길하게 느껴져, 혹여라도 하민이 통신을 끊을까 황급히 물어봤다.
“갑자기 뭔데? 무슨 일인데 이러는 거야?”
그리고 이 물음에 하민이 이를 갈며 말했다.
「……림과 디하르가 없어졌어.」
“……뭐?”
예상치 못한 말에 다섯 사람이 숨을 삼켰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둘이 사라졌다니?”
「바닷가 근처의 동굴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지진이 났어.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두 사람이 없었어.」
하민의 말에 데몽이 머리를 헤집었다.
정말이지 이게 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한유림 얜 인생에 뭐가 꼈냐? 아니, 어떻게 자기 집 앞마당에서도 이런 사고에 휘말려?!
“젠장. 너희는 괜찮아?”
「나랑 테오는 괜찮아. 문제는 림과 디하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거야. 혹시 몰라 동굴을 몇 번 오갔는데도 흔적조차 없어, 다른 길도 안 보이고.」
“염병할 일이군…… 알았어. 일단 우리가 그쪽으로 갈게.”
그리고 그 말과 함께 통신을 끊은 데몽은, 외투를 걸친 채 네 사람과 함께 유림과 디하르가 사라졌다는 북쪽 바다로 달려갔다.
***
“우악!”
우왁…… 우왁…… 우왁…… 우왁…… 우와…… 우…….
한심한 비명이 동굴 안에서 메아리쳤다.
가까스로 넘어질 뻔한 몸을 지탱한 유림이 벽에 손을 짚으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괜찮아?”
걱정스러운 디하르의 얼굴에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상태가 영 아니라 그렇게 답해 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아까 넘어질 때 발을 심하게 삐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화끈거리고 팅팅 부어오르고 있다. 거기다 걸을 때마다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가장 큰일인 것은 아직도 출구의 ‘출’ 자도 못 찾았다는 것이다.
아, 젠장. 이게 뭐야. 혹시 반대편으로 가야 출구가 있는 걸까? 아니, 애들이 구하러 올 때까지 그냥 그 자리에서 기다릴 걸 그랬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지 부정적인 생각만 계속 들었다. 그때 디하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까?”
“응?”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유림이 멍청하게 반문했다.
“잠깐 쉬었다 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어.”
“아…… 그럴까?”
다리 상태도 그렇고 또 내심 원했던 말이었기에 유림은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디하르는 바닥을 살핀 뒤, 그나마 평평하고 깔끔한 곳으로 유림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잠깐 쉬기로 했다.
유림은 두 다리를 쭉 뻗고 동굴의 벽에 기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시큰거리는 오른발을 옆으로 뉘어 부은 부분이 땅에 닿게 했다. 차가운 바닥의 냉기가 열이 오른 발목을 찜질하듯 감쌌다.
“다친 거야?”
갑자기 이게 뭔 소린가 싶어 눈만 깜빡이자 디하르가 유림의 오른쪽 발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계속 오른쪽 다리 신경 쓰고 있잖아.”
정말이지 쓸데없을 정도로 예리했다.
유림은 아니라고 하자니 뻔한 거짓말 같고, 그렇다고 하자니 괜한 걱정을 심어줄 거 같아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그때 디하르가 유림의 앞쪽에 앉아 다친 발을 살폈다.
“많이 부었네. 아까 넘어질 때 삔 건가?”
“응…….”
발목을 만지는 손길이 퍽이나 조심스러웠다.
유림은 멍하니 디하르를 바라봤다. 문뜩 세월이 흘렀음이 체감되었다. 어릴 땐 좀 더 동글동글하고 귀여웠었는데, 이렇게 선이 굵지도 않았고.
근데 지금은 누가 봐도 성인이라 할 만큼 듬직하게 자라 있었다.
“……확실히 우리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어?”
“뭔가 좀 어릴 때에 비해서 많이 큰 거 같아서.”
유림의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디하르는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재회한 지 반년이 되어 가는데 지금에 와서 이걸 깨닫다니. 한편으론 지극히도 그녀다웠다.
디하르가 계속 웃자 마치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유림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아니, 전에도 이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오늘은 체감이 확 온달까. 전에는 그냥 ‘와 많이 컸다.’면 지금은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 뭐, 이래.”
비유도 너무 유림이다웠다.
“사춘기를 보냈으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게 정상이지. 그래도 다들 옛 얼굴은 남아 있잖아, 성격도 크게 안 변했고.”
그건 그랬다.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정하고 섬세한 성품 때문에 그가 이렇게 자랐음을 뒤늦게 자각한 걸 수도 있었다.
“응, 맞아. 그나마 티 나게 바뀐 거라면…… 샨 정도일까?”
샨.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그 이름에 순간 디하르의 표정이 뚝 하고 굳었다. 그러나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옛 추억에 빠져 있던 유림은 애석하게도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디하르는 최대한 태연을 가장한 채 반문했다.
“샨도…… 그대로이지 않아? 사고 직후에 좀 이상해지긴 했지만, 그건 후유증이었고 지금은 다시 괜찮아졌잖아. 바뀌었다기보단 원래대로 돌아왔다가 맞겠지.”
물론 그때에 비해 사회성이나 상식과 지식이 늘어났지만, 성격만 두고 보자면 비슷했다.
하지만 유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음. 그런 거면 좋겠는데…….”
그런 거면 좋겠다니. 이 뜻 모를 말은 또 뭘까.
생각해 보면 샨과 유림은 종종 이렇게 정체 모를 말을 하고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릴 때의 사고 직후에도, 이렇게 다시 만난 뒤에도.
확실한 건 이 두 사람에게 자신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단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그리고 유림은 샨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디하르는 유림 몰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이런 건 직접 물어봐야지만 알 수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결국, 그가 조금 용기를 내 제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유림아.”
“응?”
“……넌 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예상치 못한 질문에 유림이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게 무슨 소리야?”
“별 뜻 없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별 뜻 없다는 것치곤 표정이 좀 진지했다. 유림은 디하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친구잖아.”
“그냥 친구?”
친구 앞에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한가?
유림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어…… 그치? 근데 그건 왜?”
“……아냐. 가끔 보면 네가 샨을 좀 특별하게 대하는 것 같아서.”
아…… 그거 때문에 물어본 거였구나.
유림은 저도 모르게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샨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걸.”
정말로 당연하다는 투였다. 하지만 이 대답이야말로 디하르에게 있어 그 어떤 답보다 이해할 수 없는 거였다.
유림이 샨을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 샨은 어린애가 아니었고, 유림과 만나기 전, 혹은 사고 후처럼 사고가 심각할 정도로 더딘 것도 아니었다.
근데 어째서 저리도 당연하게 말한단 말인가.
“……왜?”
“왜냐니, 그야…….”
그리고 그제야 유림은 자기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작은 입매가 굳게 닫혔고, 마치 이걸 무마할 대답을 찾는 것처럼 고민하는 표정이 얼굴에 그려졌다.
흡사 입학시험 때 사라진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난처하다는 듯 지었던 그 표정과 비슷했다.
“역시…… 너희 둘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거야?”
“…….”
긍정의 의미가 담긴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면 될 것을, 뭐가 그리 미안해 그조차도 하지 못하는 걸까.
디하르는 왠지 서운한 마음에 좀 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네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샨하고 관련이 되어 있는 거야?”
“……반은 맞아.”
반은 맞다고?
“그럼 나머지 반은?”
“……그건 나 자신과 관련된 일이야.”
“너 자신과?”
“응…….”
유림이 난처한 듯 쓰게 웃곤 입을 다물었다.
결국, 또 여기까지였다. 유림은 늘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서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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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