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8
제 18 화
“레이먼, 뛰어!!”
숲을 울리는 루아의 목소리에 맞춰 레이먼이 전속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앞엔 니아고가 약 올리듯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뛰어가고 있었다. 뒤뚱거리면서도 어찌나 잘 뛰는지 기가 차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레이먼이 이를 악물며 달렸다.
뛰는 건 정말 정말 싫었지만, 앞에서 뛰어가는 저 닭대가리를 잡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레이먼이 많은 나무를 지나치며 그 사이사이로 니아고를 몰았다. 그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선 루아가 그들을 살핀 채 전력으로 뛰고 있었다. 혹시라도 계획했던 방향과 다른 곳으로 뛸지 모르는 니아고를 대비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니아고가 계획대로 뛸 수 있게끔 벽을 만들고 길을 틀었다. 두 사람이 뛰고 있는 방향은 같았다. 바로 이 작전을 짠 인물이자 그들의 동지인 테오가 있는 장소로 사람들이 별로 없는 숲의 서쪽 외곽이었다.
휘이이잉.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머리끝이 그을려 꼬부랑거리게 말린 테오는 제 우스꽝스러운 머리 상태와 달리 비장한 표정으로 육중한 검을 들어 올렸다.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루아와 레이먼의 뜀박질 소리. 테오는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의 남은 거리와 시간을 생각하며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됐다. 바로 시야에 레이먼이 들어오는 그 순간이어야만 했다.
테오는 두 다리를 어깨너비만큼 벌린 뒤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니아고와 레이먼이 등장했을 때, 검을 잡고 검에 미리 부여해 둔 늄을 발동했다.
위잉.
붉은 기운이 은백색의 날 위에 감돌았고, 늄이 발동된 것을 알리듯 쇠가 강하게 울려왔다. 그리고 그 울림이 최고로 달했을 때, 테오가 검을 들어 크게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검의 움직임과 함께 폭발이 일어나고, 테오의 앞에 있던 어마 무시한 양의 나무가 그 힘에 휩쓸려 무너졌다. 엄청난 소리와 위력에 니아고가 방향을 잃고 주춤거리더니 구석을 향해 뛰었다.
테오는 기세를 몰아 니아고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검을 휘둘러 나무를 베었다. 한 치의 흩트림 없이 완벽한 자세와 균형으로 휘두르는 검의 움직임에 따라 폭발음이 숲을 울렸고, 그 힘에 눌려 나무들이 니아고 주위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콰앙!
콰아아앙!!
숲을 울리는 폭음과 함께 강렬한 섬광이 눈앞에서 반짝였다.
어느새 말발굽 모양으로 니아고와 레이먼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나무들. 무성한 가지와 잎을 가진 나무답게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한 치의 틈도 없이 견고한 벽을 이루고 있었다.
니아고는 갈피를 잃고 자리에 멈춰 섰다. 나무들이 주위를 감쌌고, 유일한 출구엔 레이먼이 서 있었다. 나무를 넘어가는 건 무리였다, 니아고는 날 수 없는 새였으니까.
결국, 레이먼을 피해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생각했는지, 그가 있는 쪽으로 새까만 털을 휘날리며 돌진했다.
“어림없지!”
니아고가 궁지에 몰리면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뛸 것이라 이미 예상하고 있던 레이먼은 손을 움직여 나무에 숨어 있던 성물들을 불러냈다.
레이먼의 부름에 나타난 성물들은 우아한 초록의 깃을 뽐내며 니아고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 뒤 놀리기라도 하듯 까르륵거리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나무 벽과 시야를 어지럽히는 성물들. 니아고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레이먼이 루아를 불렀다.
“루아!”
레이먼의 외침에 맞춰 루아가 나무 위로 뛰어올라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걱정하지 말라고!”
완벽하게 고립된 니아고, 루아는 그걸 확인하곤 힘껏 팔을 내렸다.
“이야야얍!!”
우렁찬 목소리가 기세 좋게 숲을 울렸다.
쿠르르릉.
묵직한 울림과 어둑해지는 하늘, 그리고,
콰아아아앙!!
니아고를 향해 강렬한 벼락이 떨어졌다.
키에에엑!!
떡 벌어진 부리에서 나오는 괴상망측한 비명과 함께 번쩍이는 시야에 레이먼이 팔로 제 눈을 가렸다. 테오 또한 두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큰 울림과 눈이 아플 정도로 강한 빛이었다.
슈우우 하고 연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옅은 침묵이 그들의 주위에 내려앉았다.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쳤고, 좀 전까지만 해도 요란했던 숲이 어느새 본연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레이먼은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며 앞에 펼쳐진 결과를 바라봤다.
“아…….”
“뭐야? 성공했어?”
나무 벽 때문에 니아고의 위치가 잘 보이지 않았던 테오가 나뭇더미를 타고 오르며 물었다. 루아는 손을 내밀어 테오가 쉽게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준 뒤 손가락으로 정중앙을 가리켰다.
“직접 봐봐.”
즐거워 보이는 루아의 표정에 테오 또한 들뜬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니아고의 상태를 확인한 순간 저도 모르게 경박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큭큭크하하하하하하!”
아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털을 벗어버리고 본연의 매끈한 몸을 노출하고 있는 니아고. 그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구수한 향기를 풍긴 채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부리 깃을 포함한 모든 털은 벼락에 의해 깔끔하게 빠져 고기가 되어 버린 니아고의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 마치 검은 접시 위에 올려진 맛깔스러운 닭구이 같은 모습에 테오가 배를 부여잡으며 엎어졌다.
“정말로 튀겨 버린 거냐? 대박이다. 큭크흐하하하하하하하, 냄새 죽인다. 저거 뜯어서 소금에 찍어 먹으면 소원이 없겠네, 큭큭큭.”
뭐가 그리 웃긴지 연신 킬킬거리는 테오와 그 옆에서 아, 진짜 내 번개는 짱이라니까 라며 당당하게 서 있는 루아.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매끈한 왼쪽 팔목을 보며 환하게 웃는 레이먼이었다.
* * *
유림 일행은 구름 고래를 향해 뛰었다. 어차피 루아와 레이먼을 만날 것이라면 팜르가 있던 호숫가보단 구름 고래 근처에 가 있는 게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유림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고래와 그 고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해우 감독관이 2차 시험을 통과한 애들이 160명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팔찌의 색당 평균 40명씩 있단 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고래는 네 마리이니 한 마리당 빨간 팔찌의 아이들이 열 명씩은 붙어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경쟁률 한번 어마어마하네…….’
유림이 구름 고래와 인원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쿠우웅!!
땅까지 전해지는 후끈한 열기와 하늘을 밝히는 강력한 빛,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구름 고래 한 마리가 땅으로 추락했다. 고래의 정수리에 있는 뿔은 깔끔하게 잘려 뭉툭한 부분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부러트렸어?!”
경악 어린 비명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젠장!”
유림이 짧은 욕설을 뱉자 은하가 조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빨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한 팀이 성공했다는 건, 다른 팀도 성공할 확률이 있단 거겠지. 원래 개척도 처음이 어렵지, 뒤는 쉬우니까.”
데몽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와 달리 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루아네는 괜찮을까?”
“걱정 마. 잘 찾아올 거야. 나무 나침반 줬으니까.”
나무 나침반? 유림의 말을 따라 하던 은하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아! 설마 그거?”
“응, 그거.”
그거라는 말에 데몽이 의아한 듯 유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뭔데?”
“말 그대로 나침반이야.”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유림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데몽은 그런 유림의 모습이 썩 내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나무가 어떻게 나침반의 성질을 가지냐고 묻고 싶었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기에 우선은 넘기기로 했다.
그는 둘을 가볍게 흘겨보곤 걸음을 재촉했다.
구름 고래는 붉은색 팔찌를 비롯한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공격받고 있었다. 미안하리
만큼 처절한 공격에 구름 고래가 그 꼬리를 휘두르며 크게 저항했다.
한 마리는 땅으로 내려와 있었고 두 마리는 하늘에 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땅에 떨어진 한 마리를 잡고 싶었으나 주위에 둘러싸인 열댓 명의 사람으로 봐선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개미 떼처럼 모여 있네.”
유림이 질린다는 듯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구름 고래의 주변에 존재했다. 타 팔찌와 달리 일대일이 아닌 일대 다수가 되어버린 상황.
은하는 자신이 했던 팜르 잡기와 달리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상황에 걱정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림, 이제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가서 잡아야지.”
“그치만 다들 이미 그룹을 지어서 잡고 있는걸? 괜히 나 도와주다 늦은 거 아니야?”
“걱정 마, 쟤들도 한 마리에 서너 팀이 붙어 있는 거니까. 요점은 시험에 합격하는 거야. 애초에 남이 떨어지든 말든 알게 뭐야.”
너무나도 유림다운 대답이었다. 그 말에 동의한 데몽은 피식 웃으며 둘을 바라봤다.
“그냥 아무거나 끼어들자.”
“찬성.”
시험이 시작된 지 약 두 시간이 지났고, 황혼빛의 하늘은 어느새 짙은 밤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들은 최대한 루아들이 빨리 오길 빌며 주위를 살폈다.
“공격하기 편하려면 높은 장소가 필요해. 데몽, 너 나무 탈 줄 알아?”
“자신은 없지만 탈 줄은 알아.”
“그럼 됐어. 레이먼이 온다 해도, 결국 날 수 있는 건 한 명이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우선은 다들 나무를 탄다는 가정하에 움직이자. 그보다 좋은 계획 있어? 루아의 벼락을 막을 정도면 엄청난 강도야. 무언가 공략할 만한 게 필요해.”
유림의 말에 데몽이 미간을 구기며 아랫입술을 핥았다. 단순하게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보단 이걸 말해도 되나 하는 것에 가까웠다. 데몽은 제법 그 사실을 고민하는 듯 보였는데, 몇 번 입을 열었다 닫는 것이 머릿속에서 계속 갈등하는 듯싶었다.
전과 다른 그의 태도에 유림이 대체 왜 그러냐는 듯 계속 바라보자, 결국 데몽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해.”
“근데?”
“그게 좀 위험하달까……?”
말끝을 흐리는 데몽의 모습에 은하와 유림이 서로를 바라봤다. 작전이 하나 있는데 위험하다니. 이 시험에 위험하지 않은 게 있었던가?
2차 OX 퀴즈도 말이 퀴즈였지 제법 위험한 시험이었다. 큰 식칼이 난도질하지 않나, 바닥이 쑥 꺼지지 않나. 지금 하고 있는 마나 숨바꼭질도 생각해 보면 그리 안전한 시험은 아니었다.
“데몽?”
유림은 한참 뜸을 들이는 그의 모습에 미간을 구겼다. 대체 그가 무엇 때문에 그리 고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유림, 발견!”
“유리이이임!!”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림은 시선을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는 왼팔을 흔드는 레이먼과 뭐가 그리 기쁜지 당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루아,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테오가 있었다.
왜 테오가 그들과 함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양쪽 팔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걸로 봐선 아무래도 시험에 통과하고 그들과 합류한 듯싶었다.
“잘 찾아왔네.”
“그럼~ 이게 있는데.”
라면서 루아가 유림이 주었던 나무 막대를 들어 보였다. 제법 쓸 만했는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유림의 뒤에 서 있던 데몽이 쌍둥이와 함께 등장한 테오를 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쳐다봤다. 아니, 먼저 끝났으면 자신이나 륜을 도와줄 것이지 왜 루아들과 함께 있단 말인가.
데몽은 하도 어이가 없어 뭐라 한마디 하려다, 루아 옆에 바싹 붙어 있는 테오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순간, 루아가 테오의 이상형에 엄청나게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군. 본능에 충실하게 움직였다, 이거지……?
데몽이 이를 빠드득 갈며 테오를 흘겨볼 때, 루아가 구름 고래가 추락했던 방향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보다 봤어? 아까 누가 뿔 부러트린 것 같던데.”
유림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봤어. 진짜 미치겠다…….”
정말로 미치겠는지 앞머리를 한껏 헤집던 유림은 문뜩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보다 너 아까 하던 말 뭐야? 위험한 방법이 뭔데?”
유림의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데몽에게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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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