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86
제 186 화
“아니, 내가 이사장님이 뭔 색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
유림이 짜증을 버럭 내며 들고 있던 펜을 집어 던졌다.
방에 들어오고 약 40분. 유림과 하민, 그리고 디하르는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다.
어려운 난도에 틀리기를 몇 번, 살 떨리는 함정도 슬슬 익숙해졌건만 이런 황당한 문제는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찍을까?”
머릿속으로 무지개색 중 하나를 고를 때, 하민이 제 코앞에 솟아나 있는 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거 먼저 푸는 걸 추천할게.”
“…….”
번뜩이는 창끝을 보며, 결국 유림은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다른 거 풀자…… 다른 거 다 풀고, 이거 풀자. 함정을 괜히 늘리지 말자…….
그렇게 다음 문제를 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한참 동안 씨름하던 문제를 푼 디하르가 물어왔다.
“이쪽 수학 문제는 다 풀었어. 천장 쪽 문제는 어떻게 할까?”
그 말에 유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아무리 천장이 낮다 해도 유림과 하민의 키로는 턱도 없었다. 그나마 디하르가 까치발을 서면 아슬아슬하게 닿았는데, 이 많은 걸, 심지어 불편한 자세로 다 풀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사다리를 하나 만들까?”
“나뭇조각 아껴 써야 하는 거 아니야?”
“흥청망청 쓰는 것만 아니면 괜찮을 거야. 정 뭣하면 여기 있는 화살로 변형시키고. 어떤 형태로 만들까? 높은 게 좋겠지?”
“응. 이왕이면 앉을 수 있는 걸로.”
유림이 얼추 높이와 모양을 가늠하며 주머니에서 나뭇조각을 꺼냈다. 하민이 말을 건 것은, 그걸 막 사다리로 변형하려 할 때였다.
“림, 음각이 글자를 파서 새긴 거지?”
“응.”
“그럼 튀어나온 건?”
“양각.”
“……있지 림. 나 지금 이상한 거 발견했어.”
그 말에 두 사람이 하던 걸 멈추고 하민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하민은 두 사람이 바로 옆에 왔음에도 바닥에 있는 황금 타일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데 그래?”
“왜 이것만 글자가 튀어나와 있을까.”
“뭐가?”
하민이 ‘이거 말이야’ 하며 타일을 툭툭 가리켰다. 실로 그곳엔 여태 그들이 풀어왔던 것들과 달리 양각으로 쓰인 문제가 있었다.
“진짜네.”
“저쪽에도 이런 게 하나 있었거든? 그땐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보니 좀 이상해서. 너흰 못 봤어?”
“그러고 보니 나도 아까 그런 거 하나 본 거 같…….”
순간 세 사람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세 개의 시선이 미묘하게 얽혔다. 그러더니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각으로 된 문제를 찾기 시작했다.
비상식적으로 많은 타일과 그곳에 새겨진 문제. 그리고 그 사이에 숨겨져 있는 양각 글귀. 뻔하지 않은가.
다 풀 필요 없이, 그저 양각 문제들만 찾아 풀면 되는 것이다.
“젠장, 이놈의 학교는 무슨 탐정 양성 학교야? 제발 창의력을 이런 데 쓰지 말라고.”
정말이지 여러 의미로 사람 골 아프게 하는 학교였다. 어떤 의미론 지극히도 클레이즈 다웠다. 방 하나가 하나의 거대한 문제니 말이다.
“으아- 생각할수록 더 빡쳐! 제발 쉽고 간단하게 내라고!!”
흥분해서 그런지 문제를 푸는 속도가 빨라졌다.
일부러 그런 걸까. 정말 다행히도 양각으로 된 문제들은 바닥에만 있었다. 그 덕에 불편하게 천장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일은 없어졌다. 더욱이 난도도 그리 높지 않아 큰 문제없이 풀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바닥을 기듯 타일을 쓸며 문제를 찾아나갔다. 그리고 하민이 마지막이라 추정되는 문제를 다 푼 순간, 방이 작게 울리더니 입구와 마주 보는 벽 쪽에 직사각형 모양의 선이 그려졌다. 이윽고 문 하나가 세 사람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디하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수고했다는 팻말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였다.
“오오…… 계단이 나왔어.”
“이런 거 참 잘 만들어…….”
하민과 유림이 순수한 감상평을 내뱉는 사이 이상한 장치가 없음을 확인한 디하르가 괜찮단 뜻으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하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깨의 힘을 뺐다.
“으아~ 드디어 1층 통과다. 대체 여기서 시간을 얼마나 쓴 거야.”
그리고 그 말에 시간을 확인한 유림이 비명을 내질렀다. 한 시간이 훌쩍 넘었기 때문이었다.
나름 똑똑한 조합이기도 하고, 또 위층에 뭐가 나올지 모르기에 최대한 빨리 올라가려 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유림의 입을 타고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림, 올라가자.”
“응.”
그래도 한 시간 반이 안 넘은 게 어디냐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한 유림은 목도리를 다시 칭칭 고쳐 맨 뒤, 두 사람을 따라 계단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간 2층에서 그들을 맞이한 건, 엄청난 규모의 미로와 머리 위로 거대한 물음표를 그린 채 저들을 바라보고 있는 테오와 륜, 그리고 루아였다.
***
조과 발표되었을 때, 데몽과 마찬가지로 뒤로 나자빠진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테오. 바로, 그가 그랬다.
데몽이 너무 격하게 반응해서 그렇지 솔직히 심정만 따지고 본다면 그가 좀 더 비참했을지도 모른다. 륜과 루아와 한 조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테오는 아직 륜과 풀지 못한 상태였다. 거기다 루아와도 조금 어색하고 서먹했다. 더 웃긴 건 루아와 륜, 이 둘도 축제 때의 고백으로 인해 아직 어색함이 남아 있단 것이다.
한 명만 다른 사람이었어도 이렇게 숨 막히진 않았을 텐데.
결국, 이 세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시험에 집중해야만 했다.
공부 쪽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 예상보다 2층에 빨리 갈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정말 문제만 풀었으니까. 그리고 운 좋게도 셋 다 바닥의 문제만 잡는 바람에 1층 방의 숨겨진 조건을 알아내지 못했음에도 2층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테오는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라갈 때마다 속으로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최대 여섯 시간이나 이런 숨막힘을 경험해야 한다니……!
왜 하필 두 사람과 한 조가 된 걸까. 오죽하면 은하와 레이먼과 한 조가 된 데몽이 부러울 정도였다.
‘새로운 시련이냐, 아니면 이 기회를 빌어 어색함을 풀라는 하늘의 계시냐.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거지? 자연스럽게 말 걸어? 아니, 자연스럽게는 또 어떻게 하는 건데?!’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있었을 땐 이 정돈 아니었는데, 셋만 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젠장. 아무나 좋으니 눈앞에 나타났으면 좋겠다.’
간절한 그의 바람을 하늘이 들어준 걸까. 2층에 올라가고 얼마 안 있어, 옆쪽 다른 길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유림이네 조였다.
“야-!!”
테오가 그 어느 때보다 활짝 핀 얼굴로 유림이네 쪽으로 달려갔다. 륜과 루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림은 어째서 이 세 사람이 여기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뭐야, 너희가 왜 여기 있어?”
“그건 우리가 할 말이라고.”
“2층은 다 연결된 건가?”
유림이 주변을 넓게 둘러봤다. 그러나 보이는 거라곤 자신들이 올라온 계단과 루아네 조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는 계단이 전부였다.
“2층은 두 조가 함께하는 건가? 전원 합격이 가능하다 했으니 대련은 아니겠지?”
“뭐든 상관없어. 그냥 너희가 여기 있는 게 너무 좋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쳐다보는 유림을 향해 루아가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 문뜩 유림이 아직도 자신의 목도리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덥다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내라 그런지 제법 따뜻했다. 그런데 아직도 목도리를 동여매고 있다니. 심지어 코트도 단추를 다 잠근 채였다.
루아는 유림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다행히도 열은 없어 보였다.
“뭐해?”
“열 있나 해서.”
“멀쩡합니다.”
“근데 왜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어, 너 답답한 거 싫어하잖아.”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그러는 거야. 코트도 그렇고.”
“정말?”
“응, 정말.”
그제야 다행이라는 듯 옅게 웃었다.
유림은 시선을 옆 쪽으로 향했다. 남자애들은 이미 미로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이지 엄청난 규모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흡사 히야스가 만든 지하 훈련장의 미로 같았다.
……젠장. 히야스 교수님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졌어.
유림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혀를 찼다. 그때 하민이 모두를 불러왔다.
“얘들아, 잠깐 이쪽으로 와봐!”
시선을 돌리니 미로의 입구로 추정되는 곳 앞에 서 있는 그가 보였다, 덧붙여 제법 큼직한 팻말과 그 위에 붙어 있는 하얀 종이도.
일행이 하민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종이 위에 흑색 먹으로 쓴 글이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이게 뭔데?”
“안내문.”
하민의 짧은 대답에 유림이 소리 내 팻말의 글을 천천히 읽어내렸다.
“1클래스 여러분. 2층에 도착한 것을 환영합니다. 본 층은 두 조가 한 팀이 되어 진행하며, 규칙은 아래와 같습니다. 하나, 3층으로 향하는 문은 미로를 빠져나가야지만 갈 수 있습니다. 둘, 3층으로 가는 문은 잠겨 있으며, 이를 열 수 있는 열쇠는 미로 안의 작은 생명들에게서 얻을 수 있습니다. 셋, 작은 생명들에게 당해 쓰러질 경우 출발 지점으로 자동 이동되며, 10분간 미로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넷, 본 미로는 첫 번째 입장자의 진입 순간부터 시간이 카운팅되며 두 시간 안에 모두가 출구에 도달하지 못할 시 두 팀 다 실격 처리됩니다.”
“…….”
유림이 글을 다 읽는 것과 동시에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루아였다.
“있지, 저 작은 생명들이 신경 쓰이는 건 나뿐이야? 뭔데 저렇게 자꾸 등장해. 심지어 당한다는 건 공격도 한단 소리 아니야?”
그리고 이에 디하르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것도 그렇지만 난 저 10분이 더 신경 쓰여. 잘못했다간 미로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질지 몰라.”
테오도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제일 중요한 건 마지막 아니냐? 두 시간 안에 못 나가면 두 팀 다 실격이래. 이거 한 명만 못 나와도 다 탈락인 거라고.”
“어쨌든 두 시간 안에 열쇠를 얻어서 미로를 탈출하는 게 핵심이네.”
하민의 정리에 유림이 이마를 짚었다. 정말이지 이놈의 학교는 이런 걸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마법 학교가 뭐 이렇게 응용을 밝히냐, 그냥 치고받고 싸우면 간단한 것을. 입학시험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유림은 폐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내쉬며, 바로 옆에 있는 미로의 입구를 손으로 가리켰다.
“일단…… 들어갈까?”
그리고 그 말에 일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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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