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9
제 19 화
데몽을 바라보고 있는 다섯 쌍의 눈동자. 그는 자신에게 집중된 이 상황이 썩 내키지 않는지 시선을 살짝 깔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위험한 방법이라니?”
루아까지 껴들며 묻자, 그냥 넘어가는 건 무리라 생각한 데몽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 그대로야. 고래 뿔을 부러트릴 방법이 하나 생각나긴 하는데, 그게 좀 위험한 방법이라서…….”
정말로 위험한 방법인 듯 그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유림은 일단 그 내용이나 들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뭔데?”
“……일단 뿔을 얼리는 거야.”
허공에 떠 있는 고래의 뿔을 얼린다고? 데몽의 계획에 놀란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가능해?”
“하늘에 있는 구름의 수분이면 넉넉해, 뭐 내가 조금 높은 곳에 있거나 구름 고래가 낮은 곳에 있어야 하지만. 하여튼 문제는 구름 고래가 너무 예민하단 거지. 뿔이 얼기 시작하면 격하게 움직일 거야. 아니, 지금 상태론 벌써 격하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지.”
그 움직임이 어떤지를 잘 알고 있는 유림이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구름 고래는 꽤나 격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처음 생각했던 건 내가 얼리고 루아 씨가 벼락을 떨어트리는 거.”
유림과 루아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꽤 괜찮은 생각인데? 얼음이면 전도성도 높잖아. 충분히 가능하지 않아?”
“그래, 그 정도면 가능하다 생각하는데?”
“아니, 힘들어. 벼락은 확률상 거의 뿔의 위로 떨어질 거 아냐. 구름 고래의 뿔 구조는 빙그르르 돌아가는 나선형 구조야. 위에서 떨어지는 힘은 힘들어.”
“……그럼 어떻게 해?”
“누군가가 중간에 피뢰침 역할을 할 만한 걸 꽂아야 해.”
그 말에 레이먼의 눈이 커졌다.
“그니까 네 말은 네가 얼린 뿔에 누가 피뢰침을 꽂고 그 위에 루아가 벼락을 떨어트리면 된다는 거 아냐. 근데 피뢰침을 어떻게 꽂아? 설마 직접 올라가서?”
“그래.”
“위험하지 않아?”
가장 먼저 반론을 제기한 건 테오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앞에 모인 이들을 바라봤다. 데몽과 루아만 봐도 붉은색 팔찌가 어떤 계통인지 쉽게 유추되었기에 구름 고래의 미
션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이 작전의 난이도는 너무 높았다. 정확하겐 위험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데몽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위험해, 그래서 위험하다 말한 거고. 지금 다른 방향을 생각 중이야.”
“다른 건 뭐 있어?”
“지금 우리 조합으로썬 없어. 구름 고래는 신물이야. 성물이면 레이먼에게 부탁해 보겠지만, 신물은 힘들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레이먼이 할 수 있는 교감의 범위는 성물이 전부였다. 물론, 힘을 쓰면 신물도 가능하긴 하지만 그건 계약에 의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이렇게 독립적인 신물들과는 불가능했다.
“우리 지금 약 사오십 분 남지 않았어?”
“이것저것 준비하고 중간에 끼어들면 더 빠듯할지도 몰라. 거기다 만일 계획이 실패할 경우, 다른 방법으로 도전하는 것도 계산해야 하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할 때, 옆에서 묵묵히 생각하던 유림이 대뜸 입을 열었다.
“내가 할게.”
유림의 말에 다섯 쌍의 눈동자가 유림을 향했다. 유림은 그들에게 선포하듯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할게, 그 피뢰침 박는 거.”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레이먼이 반대했다.
“안 돼.”
“레이먼.”
“절대 안 돼. 말처럼 쉬운 내용이 아니야.”
“아니, 내가 할게.”
이번엔 데몽이 미간을 찌푸렸다.
“불가능이야.”
“왜?”
“뿔이 얼기 시작하면 고래가 격하게 움직일 거야. 그 상태에서 피뢰침을 꽂는 건 무리야. 아니,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 뒤가 너무 위험해. 타이밍을 생각하면 얼리고 찌르고 벼락 내리고가 거의 한순간에 이뤄진다고 봐야 해.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피뢰침을 꽂는 사람이 다칠 확률이 높아. 까딱하다간 번개를 직통으로 맞을 수 있어.”
“괜찮아.”
“무리야.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해.”
“시간 없어.”
“그래도 무리라니까.”
“아, 내가 하겠다잖아.”
유림의 짜증 어린 목소리에 데몽이 표정을 확 구겼다. 안 된다는 것에 왜 이렇게 미련을 갖는 것일까.
데몽은 유림을 바라봤다. 뭐라 한마디 할 생각으로 쳐다봤건만, 정말로 마음먹었는지 도리어 자신을 향해 표정을 굳히고 있는 녀석이었다.
유림은 데몽을 노려보듯 바라보더니 목소리에 힘을 줘 말했다.
“내가 할게. 나밖에 안 되는 일이야.”
“한유림.”
“왜 그래? 어차피 다쳐 봤자 치료하면 그만이야.”
“죽을 수도 있어.”
“아니, 안 죽어.”
데몽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젖혔다.
“좋아. 네가 한다고 치자. 그럼 피뢰침 역할을 할 긴 쇠 창은 어디서 구하게? 낙뢰를 맞으면 망가질 테니 우리 무기를 빌려 쓰는 것도 무리야. 대체 이곳에서 그런 물건을 어떻게 구하겠다는 건데? 거기다 그런 큰 걸 들고 고래 위에서 어떻게 버티겠다는 거야.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아니, 가능해. 가능하니까 내가 한다는 거야.”
유림과 데몽 사이로 팽팽한 기류가 부딪쳤다.
분위기가 찬물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확고한 유림과 데몽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머지였다.
그때 환호성과 함께 또 한 마리의 고래가 뿔을 잃고 땅으로 추락했다.
뒤돌아 직접 보진 않았지만, 소리로 그 사실을 확인한 유림이 다시금 힘을 줘 말했다.
“시간이 없어.”
“…….”
“합격이 우선이야.”
단호한 말에 데몽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유림의 말이 맞았다. 더는 시간이 없었고, 가장 중요한 건 합격이었으니까.
“알았어.”
결국, 데몽이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데몽은 지금 높은 나무 위에서 구름 고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한 마리와 땅에 떨어져 있는 한 마리. 그들의 계획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땅에 있는 고래는 포기하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지금 하늘에 떠 있는 고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여섯 명 정도밖에 안 되는 데다 고래 위에 직접 올라타 그 뿔을 자르기 위해 씨름하는 사람이 없단 것이다.
이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질까? 성공한다 해도 유림이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피뢰침도 걱정됐다. 유림은 걱정할 거 없다 했지만, 그녀의 손에 피뢰침을 대신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차라리 이 시간에 다른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빠르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만큼 좋은 기회도 없는데…….
데몽은 안경을 고쳐 쓰며 옆의 나무에 올라가 있는 루아를 바라봤다. 그녀가 그의 표정을 읽었는지 부드럽게 웃으며 그를 불렀다.
“데몽.”
긴장을 풀어주는 미소. 데몽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누가 다치든 그녀의 말대로 ‘합격’만 하면 되니까.
“타이밍을 놓치면 힘들어요. 유림이 고래의 등에 떨어지는 순간, 뿔을 얼릴 겁니다. 그러니 루아 씨도 꽂는 것과 동시에 바로 벼락을 날리세요. 단 한 번에 갑니다.”
“네.”
두 사람은 다시 고개를 돌려 구름 고래를 바라보며 늄을 모았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 한순간의 기회를 잡기 위해 말이다.
두 사람이 위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유림과 레이먼은 날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레이먼은 유림을 빤히 쳐다봤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는 예나 지금이나 완고했고 억척스러웠다.
이런 고집은 안 부려도 되는데. 대체 클레이즈가 뭐라고…… 마음 같아선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그 못지않게 유림이 합격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기에 차마 대놓고 그러지도 못했다.
“레이먼.”
“응, 알았어.”
유림의 말에 레이먼이 팔을 앞으로 뻗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늄의 기운. 산뜻한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기분 좋은 상쾌함. 청명한 그 느낌에 꿀꿀했던 기분이 눈 녹듯 녹아버렸다.
평소였다면 시전 시간도 꽤 길고 위험도 적당히 큰 기술이었지만, 감독관의 힘으로 늄이 활성화되어 있는 숲이어서 그런지 별다른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휘이이.
바람이 휘몰아치고, 청명한 기운에 숲에 숨어 있던 성물들이 그 작은 머리를 내밀며 레이먼을 바라봤다.
주변에 기분 좋은 마나가 휘몰아쳤다. 서서히 드러나는 푸른빛의 알갱이. 눈에 띌 정도로 크고 많아진 푸른 입자가 레이먼의 주위에서 감돌았다. 그리고 그의 앞에 거대한 형태를 만들며 모였다.
“모르무르.”
레이먼이 명랑한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그러자 그 말에 반응하듯 푸른 알갱이에서 거대한 날개가 솟아났다. 그리고 서서히 그 형태를 드러냈다.
2m 50㎝는 돼 보이는 큰 키와 길게 뻗은 몸통을 가진 새하얀 새. 쫙 펴진 날개는 장정 셋은 태울 정도로 넓었으며, 그 부리와 발톱은 단단한 흙빛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부리와 날개깃의 끝은 레이먼의 눈동자와 같은 쪽빛으로 은은하게 물들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청명하고 투명해 보였다.
바람의 성물 ‘모르무르’. 세상에서 가장 높이 나는 성물이라 칭해지는 그는 다부진 푸른색의 눈동자로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림은 레이먼 앞에 서 있는 모르무르, 애칭 모르땅을 바라봤다.
어렸을 적에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 비해 엄청나게 자란 모습이었다. 성물이 자란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준 녀석답게 말이다.
“우리 셋째 엄청 컸지?”
레이먼이 자랑하듯 모르땅의 턱을 쓰다듬었다. 유림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응응’거렸다.
레이먼이 세 번째로 계약한 성물. 그때는 어깨에 이고 다닐 정도였는데 지금은 타고 다닐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다. 나중엔 저보다 더 커질까?
유림이 모르땅에 대해 감탄하고 있을 때 레이먼이 유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자, 유림.”
“응.”
유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물의 늄에 교감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만지기는커녕 볼 수도 없는 것이 성물의 기본 특징이다. 그러나 교감자의 허용에 한해선 그들과 마찬가지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다.
레이먼은 지금 유림을 허용하고 있었다. 모르땅의 등 뒤에 탈 수 있게 말이다.
유림은 레이먼의 도움으로 모르땅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먼저 앉아 있던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 보니 셋째는 처음 태워주네.”
“응, 첫째는 탔었는데.”
“걘 워낙 크니까.”
레이먼이 가볍게 키득거리며 모르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기분 좋은 손짓에 모르땅이 그르릉거리며 웃어 보였다.
“모르땅, 날아.”
그리고 그 말에 모르땅이 날개를 쫙 펴며 허공을 향해 도약했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 뛰어올라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거센 바람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숲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높게 올라간 두 사람
은 어느새 발밑에 있는 구름 고래를 바라봤다. 밤하늘엔 벌써 달이 걸렸다.
“몇 분 남았지?”
“몰라. 삼사십 분 남았나?”
어쩌면 더 빠듯할 수도 있었다.
유림은 레이먼에게 좀 더 구름 고래 근처로 가달라 부탁했다.
구름 고래의 근처엔 적잖은 인원이 뿔을 부러트리기 위해 공격하고 있었다. 그 격한 공격에 구름 고래가 괴로움을 토해내는 것처럼 요동쳤고, 졸지에 그 꼬리에 맞을 뻔한 유림과 레이먼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몸을 젖혔다.
“으아!”
“위험!”
모르땅이 뒤로 살짝 물러나며 짐승의 울음소리를 냈다. 발톱이 바짝 서 있는 것이 화가 난 듯싶었다.
“모르땅, 안 돼.”
키이익.
“쉿, 옳지. 자, 괜찮으니까 화 풀어.”
레이먼은 모르땅의 뒷목을 쓸며 달랬다. 그사이 유림은 구름 고래의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의 존재가 반갑지 않은 건 구름 고래만이 아니었는지 주위에 있던 응시생들도 두 사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자신이야 남에게 어떤 평을 듣든 상관이 없었지만, 괜히 레이먼까지 피해를 보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됐다.
“레이먼, 나 내려줘.”
“뭐? 지금은 위험해. 좀 잠잠해지거든 내려.”
“아니, 지금 내려줘.”
유림은 주머니에 챙겨두었던 나뭇조각을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피리를 불듯 크게 불어 재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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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