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94
제 194 화
“어?”
디하르는 미간을 구기며 앞을 바라봤다. 분명 3층의 검은 방으로 들어갔는데 어째서인지 다시 1층 문제의 방으로 내려와 있었다. 거기다 레이먼과 데몽까지 이 방에 있었다.
“디하르?”
“어? 진짜. 디하르다.”
그를 발견한 두 사람이 다 된 전구마냥 눈을 깜박였다.
1층으로 돌아온 것도 모자라 디하르까지 등장하다니. 시험의 일환이라 치기엔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데몽은 말을 내뱉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멍청한 질문을 했는지 깨달았다.
자신들도 왜 여기 있는지 알지 못하는데, 디하르는 오죽하겠는가.
“갑자기 여기로 이동됐어. 너희도야?”
“응.”
“설마 1층이랑 같은 방식의 시험인 건 아니겠지?”
“그러기엔 풍경이 너무 살벌하지 않냐? 문제도 다 풀려 있고.”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온 함정들을 보며 데몽이 쓰게 웃었다. 실로 이곳의 양각 문제들은 모두 다 풀어진 상태였다. 다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디하르의 말에 데몽이 난처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설마 공식 시험, 그것도 클레이즈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일 진급시험에서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뭐, 방법은 두 개겠지. 교수님께 연락하고, 여기서 기다린다와 아니면 처음 들어왔던 그 입구를 통해 아예 탑 밖으로 나간다. 근데 나가는 건 괜히 실격 같으니 그냥 연락하자. 어때?”
“그래. 그렇게 하자.”
데몽은 키르를 꺼내 진급시험 담당 교수인 하진에게 연락했다.
몇 차례 신호음 후 그가 통신을 받았다.
「누구지?」
어쩐지 평소보다 살짝 날이 선 목소리에 데몽이 깍듯하게 말했다.
“교수님, 저 히넨입니다.”
「그래, 히넨. 무슨 일이지?」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문제?」
“저와 디하르, 그리고 레이먼이 1층의 문제 방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니까 3층의 개별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다시 1층으로 돌아왔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같은 조원인 레이먼과 함께 오게 되었어요. 디하르는 혼자 왔습니다. 거기다 방의 문제는 다 풀려져 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열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혹시 이게 시험인 건가요?”
「그럴 리가. 너희는 또 왜 그리 간 건지 모르겠군.」
‘너희는 또’라는 말에 데몽과 디하르가 ‘어라?’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진의 어투를 보니 이동에 문제가 생긴 게 자신들만은 아닌 듯싶었다.
그는 그 사실을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통신구를 통해 하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몽, 너 지금 디하르랑 같이 있어?」
“어? 이하민?”
「나도 이상한 곳으로 이동됐어. 그래서 지금 형하고 같이 있고.」
“뭐야? 이거 우리만이 아니었잖아.”
뭔진 모르겠지만 문제가 단단히 생긴 모양이다.
「디하르, 혹시 거기에 림도 있어?」
“아니, 없어.”
「그럼 림은 제대로 올라간 건가?」
걱정이 잔뜩 어린 하민의 목소리에 유림은 괜찮을 거라 말하고 싶은 디하르였으나 어째서인지 선뜻 그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하자 그게 전달되었는지 하민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을 거야. 그치……?」
“그래…….”
힘없는 대화가 오갔다. 그때 다시금 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선 너희는 그곳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가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다급하게 통신을 끊는 하진의 목소리에 레이먼과 데몽, 그리고 디하르가 시선을 교환했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
짙은 어둠이 계속 이어졌다.
유림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문 안쪽에서 그녈 맞이한 것은 어둠이 짙게 내린 복도였다.
앞이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지만, 비 오는 날의 밤하늘처럼 어둑해 걷는 걸음에 저도 모르게 자꾸 힘이 들어갔다.
‘아…… 진짜, 애도 아니고. 왜 어두운 거에 쪼는 거야?’
유림은 벽에 손을 댄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지 평소와 달리 계속 예민하게 반응했다.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고 손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거기다 쫓기는 짐승마냥 모든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었다.
기분도 그랬다. 조금 무섭고, 불길했다. 한편으론 이상하단 생각도 들었다.
“뭐야…… 대체 언제까지 걸어야 해?”
유림은 무서움과 불안감을 달랠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내 별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데 집중했다.
빨리 도착하길 간절히 빌며 말이다. 그리고 이런 유림의 생각에 동의해 주듯 방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에 잠겨 있어 정확한 크기를 가늠할 순 없었으나, 적어도 1층의 그 방보단 넓어 보였다. 덧붙여 좀 더 추웠다.
유림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도착하긴 했는데…… 이제 뭘 하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특별한 게 보이진 않았다. 1층처럼 무언가 힌트나 문제가 될 만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2층처럼 팻말이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나타나는 것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오직 공허할 정도로 넓은 방과 짙은 어둠뿐이었다.
‘어?’
순간 유림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아주 미약하지만, 기척이 느껴졌다.
뭐지? 이쪽으로 오는 거 같은데…… 설마 대련인가?
사실 개인전이란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대련이나 사냥 비슷한 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오는 것은 자신의 상대일까?
몸이 안 좋으니, 제발 쉽게 끝나길 간절히 바라며 유림이 몸을 낮추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언제고 비녀를 꺼낼 수 있게 오른손을 반쯤 올린 채 말이다.
곧이어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시계추처럼 일정한 속도로 방을 울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유림이 식은땀을 흘렸다.
‘사람? 인형이나 괴물 같은 게 아니야? 잠깐잠깐. 그럼 누구지? 1클래스 애들은 오늘 시험 때문에 구두 신고 온 애 없잖아. 그 외에 내가 아는 사람 중 구두를 신고 여기 올 만한 사람은 없는데? 설마 괴물이나 아니면 일반 교수님이 오는 건가?’
상대에 대해 전혀 예상할 수 없자 심장이 좀 더 세게 뛰기 시작했다.
쿵쿵쿵.
또각또각.
유림은 마른침을 삼켰다.
서서히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는 한 사람. 안개 너머처럼 희뿌옇던 윤곽선이 점차 선명해지더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완전히 모습을 나타냈을 때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부르고만 유림이었다.
“……이즈네 교수님?”
클레이즈의 5형 교수, 이즈네. 그녀가 앞에 있었다.
***
쿵.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샨은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가 불안감에 심하게 떨렸다.
“샨? 왜 그래?”
샨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미야가 그를 불렀다. 트롭텍스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녀석이 갑자기 낯빛이 파리하게 변해 있었다.
미야뿐만이 아니었다. 코니룸과 재우 또한 그의 이상을 눈치챘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살폈다.
“뭐야? 얘 왜 그래?”
“어이, 샨?”
코니룸이 샨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너 왜 그래?”
“……이상해요.”
“뭐?”
“선배…… 이상해요. 림의 늄이 갑자기 잡히질 않아요.”
“……무슨 소리야?”
“림뿐만이 아니야…… 혹시 몰라 은하의 늄도 늘 잡고 다녔는데 잡히질 않아요.”
코니룸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바라봤다.
“시험 때문에 그런가 보지.”
“아뇨, 그럴 리 없어요.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림의 늄을 놓칠 리 없어요.”
괜찮을 거라 말하려던 코니룸은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린 샨의 안색에 말을 멈췄다.
샨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몸을 돌렸다. 그의 돌발 행동에 함께 있던 세 사람이 크게 당황하며 쫓았다. 나무 위에서 상황을 살피던 요한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아래로 내려온 지 오래였다.
요한은 걸음을 빨리해 샨의 팔을 붙잡았다.
“시험 중이야.”
“가야 해.”
“아무 일 아닐 수도 있어.”
“너는 잡혀?”
“……아니.”
“근데 아무 일 아니라고?”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는 말에 요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샨의 미간이 구겨졌다.
뭔가 평소의 요한과 달랐다. 아주 미묘한 차이였지만, 워낙 변화가 없는 녀석이다 보니 설명하기 힘든 위화감이 들었다.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듯 샨이 눈을 크게 떴다.
“너…… 설마, 무슨 짓을 한 거야?”
“…….”
요한이 입을 꾹 다물었다. 긍정보다 더한 침묵.
샨이 요한의 어깨를 붙잡고 그를 다그쳤다.
“그래, 이상하다 했어. 예상보다 일이 너무 빨리 터졌어.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떠봤을 뿐이야. 그 여자가 정말 내부의 적이거나 그들과 관련이 있다면…… 너랑 유림이 아는 사이라는 것에 반응할 테니까.”
요한의 말에 샨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자신의 입학 자체가 미끼였기에 이렇게 떠보는 게 이상하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 시기에, 그것도 그가 직접 움직였다는 게 너무 당혹스러웠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설마 나 때문에 그런 거야?”
“…….”
“요한.”
“잠깐, 너희 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샨이 요한을 다그칠 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재우가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며 물었다. 그는 샨과 요한을 번갈아 노려봤다.
“내부의 적이라니? 설마 너희, 그 녀석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마치 내부의 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듯한 어투에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홉뜨며 그를 바라봤다. 정말로 놀랐는지 표정변화가 없는 요한의 얼굴마저 노골적으로 바뀔 정도였다.
아무리 그가 전임 교수의 동생이라 쳐도 내부의 적에 대한 건 모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덧붙여 해우란 인간 자체가 동생에게 그런 이야길 할 사람이 아니었다.
한편이면 이런 식으로 말했을 리 없고……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재우 선배…… 내부의 적에 대해 알고 있어요?”
“내가 먼저 물었잖아. 너네 그 녀석들하고 무슨 관곈데. 혹시 지금 유림의 늄이 잡히네, 아니네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거냐?”
“……아마도요.”
“젠장.”
재우가 낭패감 섞인 얼굴로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코니룸과 미야는 이 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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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