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99
제 199 화
“데몽, 너 왜 그래? 혹시 어디 아픈 거야?”
레이먼이 불안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 다급함에 방을 살피던 디하르가 몸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곤 무언가 이상하단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몰라, 갑자기 이래.”
두 사람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데몽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그는 크게 심호흡하며 과거 유림과 했던 이야기와 스승 라단의 시체를 떠올렸다.
“야…… 디하르, 레이먼…… 하나만 묻자.”
“응?”
“분명…… 모든 연구원들이 불태워졌어?”
레이먼과 디하르가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확실해?”
“확실해.”
심장이 쿵쿵거리며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데몽이 기억하는 스승은 불에 타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또한 팔다리가 잘리지도 않았다.
피가 단숨에 빠져나간 것만 같은 몸뚱이와 흉포한 얼굴, 바싹 말라 모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났으며 온몸엔 시퍼런 멍과도 같은 자국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에 탄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럼 우리 스승님은…… 불에 타 죽은 게 아니야?”
가까스로 짜낸 목소리에 레이먼이 도통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반문했다.
“무슨 소리야? 라단 아저씨는 사고에 휘말려 돌아가셨잖아.”
“사고라니?”
“그래. 연구실에서 있었던 큰 사고.”
그러고 보니 유림도 사고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폭발이 일어나 핵심 연구실이 붕괴되었다고.
“그 사고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
“자세한 건 몰라. 우린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그 자리에 없어서…….
데몽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예전에 들은 이야기를 계속 생각했다, 잡힌 연구원들이 어떻게 되었냐는 자신의 질문에 유림이 했던 대답을.
“살아남은 연구원들은 처형당했어. 어떻게 죽었는진 몰라. 단지 꽤 엄중하게 처벌했다고 들었어.”
그래. 유림은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자신도 잘 모른다 했다.
그녀가 폭발한 연구실에 없었다면, 또 구출된 뒤에 정신이 없었다면 자신의 스승님이 그때 돌아가신 걸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근데 왜지? 뭐가 이렇게 께름칙한 거지? 난 뭘 의심하고 있는 거야?
데몽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레이먼의 어깨를 짚었다.
“디하르, 레이먼…… 하나만 더 묻자.”
목소리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유림은…… 우리 스승님이 사고에 휘말려 돌아가신 걸 알고 있었어?”
“응? 어. 당연히 알지. 유림은 사고 현장에 있었으니까.”
마치 누군가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것만 같았다.
“현장에…… 있었다고……?”
레이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유림과 샨은 그 자리에 있었어. 뭐, 다행히도 운 좋게 살 수…… 야, 너 왜 그래? 괜찮아?”
핏기가 가신 듯 창백해진 그의 안색에 디하르와 레이먼이 다급하게 물어왔다. 그러나 데몽은 그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유림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스승인 라단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내게 거짓말한 거지?
스승님이 처형당했냐는 그 질문에 유림은 ‘아마’라고 답했다. 확답은 아니었지만, 어감상 그건 분명 그렇단 뜻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여태 그리 생각했던 거고.
근데 왜지? 이건 숨길 일이 아니었다. 처형당하든, 폭발에 휘말리든 스승의 죽음은 변치 않으니까.
“데몽?”
옆에서 레이먼이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지만, 유림의 의중을 알 수 없었던 데몽은 그에 집중해 두 사람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
잘난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데몽의 키르가 진동을 울리며 통신을 알려왔다. 무의식적으로 키르를 꺼내며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야, 데몽!」
데몽이 반쯤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테오? 뭐야, 너 갑자기…….”
「야, 완전 웃겨. 나 3층이 아니라 이상한 곳으로 왔어. 그나마 다행인 건 루아랑 같이 이동됐달까.」
“너희도 이동되었다고?”
루아와 테오도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다니. 세 사람이 눈을 홉떴다.
놀란 건 그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는지, 통신구 너머에서 요란스럽게 떠드는 게 들려왔다.
「‘너희도?’ 설마 너도야?」
“너도가 아니야. 여기에 레이먼하고 디하르도 있어. 하민이는 교수님들이 있는 쪽으로 이동된 것 같아.”
「어……? 잠깐, 그럼 뭐야. 다들 이상한 곳으로 옮겨진 거야? 얼레? 왜 그러지? 어…….」
테오는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왜 그래?”
「아니, 난 륜이랑 은하하고 연락이 안 되기에 3층에서 시험을 보고 있나 했지.」
테오의 한마디에 불길한 느낌이 세 사람을 강타했다. 레이먼은 데몽의 키르를 낚아챘다.
“테오, 정말이야? 깜둥이랑 연락이 안 돼? 언제 했는데?”
「어…… 루아가 좀 전부터 유림이하고 은하한테 연락하고 있는데 둘 다 받지 않아.」
“아니야. 나랑 했을 땐 분명 됐어.”
그래. 분명 됐었다. 하진 교수님하고의 연락을 막 끊고 바로 은하에게 했었다. 그땐 받았다.
레이먼은 키르를 다시 데몽에게 건넨 뒤 제 것을 꺼내 은하에게 걸었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신호만 갈 뿐 연결되지 않았다.
“뭐야…… 왜 안 받아…….”
조급함에 손톱을 깨물었다.
유림을 시작해 륜과 은하까지.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그들의 불안도 점점 커졌다.
디하르는 삽시간에 난장판이 된 일행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무언가. 자신들이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마치 유리가 깨지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기운이 거대한 바람마냥 주위를 휩쓸었다.
샨과 요한을 비롯한 3클래스 다섯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두 교수를 바라봤다.
그들이 충돌까지 일으켜 가며 기를 썼음에도 부수지 못한 결계를 고작 30초 만에 깨버리다니.
가장 놀라운 건 결계의 핵을 찾아 그 짜임 자체를 무너뜨린 히야스의 능력이었다. 물론, 본인의 말대로 30초가 한계였지만 이토록 견고한 결계의 균형을 전체적으로 깨트린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미야와 코니룸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실상 따지자면 몇 살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실력 차가 이렇게나 크다니…… 부럽다 못해 경이로울 정도였다.
“제기랄, 역시 뭐가 있긴 있군.”
히야스가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결계가 깨지는 것과 동시에 4층 탑에서는 기분 나쁜 늄의 기운이 계속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제 보니 외부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기운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결계를 친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로 인해 학교에 있는 모든 교수, 아니, 학생 대부분이 눈치챌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무언가가 크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이다.
히야스와 리리아는 앞장서서 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젤리카와 3클래스 다섯 명이 그런 두 사람을 뒤따랐다.
탑 안은 어두컴컴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음습했다.
히야스는 벽을 쓸며 탑의 늄을 읽었다. 시험의 절차대로 이동하게끔 설정된 것이 꼭 어린아이가 어지럽혀 놓은 방처럼 헤집어져 있었다.
교수들만이 이동하는 복도로 들어간 리리아는 지도를 보고 달리는 것마냥 복잡하게 이루어진 길들을 요리조리 빠져 지나갔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재우가 무언가를 살피듯 인상을 구긴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코니룸은 탑이 기분 나쁜지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봐, 샨. 유림이 늄 잡히냐?”
“아니요…… 잡히지 않아요.”
“뭐? 아니, 왜?”
왜인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궁금했다.
탑의 기운을 차단하고 있는 결계가 깨졌으니 늄이 잡혀야 하는데, 안에 들어와서도 그러지 않고 있다. 요한도 마찬가지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더 이상한 건 은하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의 늄은 잡힌다는 것이었다.
“역시 유림이만 안 잡혀.”
요한의 말에 샨의 표정이 더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워졌다.
설마 유림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일까…….
자연스럽게 떠오른 최악의 상황에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끔찍한 상상 하지 말자. 정말로 최악의 상황이 생긴 거라면, 도리어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을 거야. 내부의 적에게 유림의 시신은 필요가 없으니까…….’
어떤 면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기에 무사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디일까…… 이 탑에서 그러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어디지?’
샨이 입술을 짓씹으며 머리를 굴렸다. 그때 히야스가 안젤리카를 작게 부르더니 오른쪽의 샛길로 몸을 틀었다.
샨은 직감적으로 그가 유림을 찾으러 간다는 걸 깨닫고, 그를 따라 몸을 돌렸다.
“에?”
“어?”
뒤따르던 코니룸과 미야는 두 길 중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 따라오라는 요한의 손짓에 그를 따라 리리아가 간 길로 향했다.
리리아는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재우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꼴을 보니 아무래도 해우의 늄을 느낀 듯싶었다.
부모, 자식 사이나 형제간에는 늄의 기운이 비슷해서 그런지 남들보다 더 또렷하게 그 기운과 잔상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체질 때문인지 석씨 일가는 유독 서로의 늄을 더 잘 인지했다.
“석재우, 해우 찾았어?”
리리아의 말에 재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너무 이것저것 뒤섞여 있어. 근데 이상하게 이쪽에서 형의 늄이 느껴지는 거 같아.”
느껴지는 거면 느껴지는 거지, ‘같아’는 또 뭐란 말인가.
“너 해우 늄이라면 기똥차게 찾았잖아.”
“그니까 이상하단 거지. 형은 없는데 형의 늄이 느껴지니까. 일단 정확한 건 가봐야지 알 거 같아.”
“너 혼자는 못 보내.”
“내가 애도 아니고…….”
“너 애 맞아. 그래서 안 돼.”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단호한 말에 재우가 혀를 찼다.
리리아는 그런 재우를 바라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잘 들어. 지금부터 두 명씩 나눠서 움직일 거야.”
마치 부관에게 명령을 내리듯 그녀가 힘을 줘 말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의 원인을 찾는 게 아니야. 1클래스 아이들을 안전하게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너희는 이 탑에서 시험을 치러봤고, 2클래스 때 훈련차 몇 번 왔으니까 교수들이 다니는 길을 얼추 알 거야. 그 길을 이용해 각각의 방을 돌아다니며 1클래스들을 찾는다. 그리고 찾는 족족 밖으로 내보낸다. 알았어?”
리리아의 말에 미야와 코니룸, 그리고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아는 사람을 둘씩 묶기 시작했다.
===============
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