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
제 2 화
레바리움의 공화국 중 하나로 국가의 반 이상이 사막으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 후덥지근한 나라 덴 이레프. 클레이즈가 있는 곳이라 불리며, 금지된 땅과 맞닿은 지형 특성상 경비가 삼엄하고 엄격한 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특징인 국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여러 의미로 유명한 이 나라의 상징인 사막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는 두 인영이 있었으니, 하나는 정신없이 뻗친 머리를 자랑하는 유림이었고, 또 하나는 까무잡잡한 피부가 한층 더 까무잡잡해진 은하였다.
유림은 기쁨에 겨워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앞을 바라봤다.
사막이었다. 덴 이레프의 상징, 사막!!
나무를 주워 인형을 만들고 그것을 팔아 번 돈으로 이동하고, 또 나무를 주워 인형을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이동하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무려 한 달 가까이나 걸린 그 고단한 여행은 통통했던 유림의 살을 쫙 다 가져가 버릴 만큼 혹독했다.
살을 빼려고 기를 쓸 땐 빠지지 않더니 역시 고생을 하니까 빠지는구나…….
유림과 은하는 눈앞에 펼쳐진 넓디넓은 사막에 눈물을 흘렸다. 안쓰러울 만큼 볼썽사나운 모습의 두 사람은 다 큰 처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꺼이꺼이 우는 중이었다.
“봤어? 사막이야! 엉엉, 내가 진짜 여기까지 오겠다고. 으헝헝헝! 나무를 몇 개나 판 거야, 엉엉엉.”
덴 이레프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유림과,
“엉엉엉, 배고파. 엉엉엉엉.”
밥을 내놓지 않으면 혈액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항의하는 장기들과의 전쟁에 아파서 우는 은하.
전혀 다른 이유였지만 처참하게 우는 건 같았다.
은하는 흘러내린 콧물을 손등으로 슥 닦으며 칭얼거렸다.
“림…… 나 배고파.”
“흐윽, 참아.”
“그렇지만 너무 배고파.”
“흑흑, 침 마셔.”
“침도 안 나온단 말이야.”
제 팔을 잡으며 떼를 쓰듯 칭얼거리는 행동에 유림이 한숨을 내쉬며 은하의 어깨를 토닥였다. 삐쩍 마른 것이 먹기는 어찌나 많이 먹는지 식비로 빠지는 돈이 장난 아니었다.
네가 먹은 돈을 아껴 차를 탔으면 이미 다섯 번은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유림은 은하를 무시하며 엉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비녀로 고정했다. 그러곤 두 뺨을 가볍게 때려 눈앞에 놓인 세상을 바라봤다.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로울 만큼 후끈한 열기, 하늘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온몸이 땀에 절어 찝찝하고 또 찝찝했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막을 건너면 바로 그들이 그렇게 가려 했던 ‘콜람’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일이 꼬여 시험을 보지 못하게 되면 억울해서 죽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은하야.”
“응?”
“배고프지?”
“응.”
유림은 은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입학시험은 9월 1일. 오늘은 8월 31일.
자신들이 초특급 마법사가 아닌 이상, 하루 안에 맨발로 사막을 건너 ‘콜람’에 도착해 클레이즈의 입학시험을 치르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
“은하야, 내가 마지막 사비 털어서 밥 사줄게.”
“진짜?!”
“근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유림이 은하를 향해 싱글벙글 웃었다.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이는 그 웃음에 은하의 등을 타고 불길함이란 놈이 슬금슬금 기어올라 왔다.
어째, 등골이 쎄- 한 것이 느낌이 영 아니었다.
“자, 은하야. 너의 자랑이 뭘까?”
“글…… 쎄?”
“후후훗, 소녀의 상큼함 아니겠니?”
갑자기 온몸에 한기가 돌면서 소름이 돋았다. 맙소사, 이 더위에 한기라니!
은하가 도망치려고 몸을 뒤로 뺐으나 곧 유림에게 양어깨를 잡히고 말았다.
“어…… 저, 저기 나 갑자기 배가 안 고파.”
“자, 은하야. 이제 좀 있으면 콜람에 가기 위해 잘난 집 아들들이 사막 마차를 몰고 지나갈 거야.”
“하하! 나 배 안 고파!! 진짜 안 고파!!”
“그러니까…….”
유림은 싱긋 웃으며 발을 들었다. 그리고,
“가서 마차 하나 잡아와!!”
라는 말과 함께 은하의 몸을 돌려 엉덩이를 뻥 하고 걷어찼다.
“우악!”
거친 발길질에 짧은 비명과 함께 그대로 사막에 고꾸라진 은하는 모래 범벅이 된 얼굴로 울먹였지만, 쉽게 넘어갈 유림이 아니었다.
결국, 유림의 회유(?)에 은하는 밥 대신 모래를 씹으며 그들이 얻어 탈 마차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어수룩한 미소의 소년이 몰고 있는 사막 마차 한 대를 발견하게 되었다.
* * *
‘이륜’은 ‘랑’국에서 온 청년으로, 외조부의 유산 덕에 나이에 맞지 않게 제법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이었다.
갸름한 달걀형의 얼굴과 마른 근육으로 이루어진 비율 좋은 몸, 단정한 연녹빛의 머리와 짧게 친 앞머리, 그리고 살짝 휘어진 눈매가 그의 서글서글한 인상을 더욱 부각시켰다.
클레이즈의 입학시험 편지를 받은 그는 현재 콜람에 가기 위해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사막에서도 잘 굴러갈 수 있게끔 개조된 마차는 부드럽게 흩어진 모래 위에서도 흔들림 없이 달려갔다.
륜은 후덥지근한 열기에 턱 끝에 고인 땀을 훔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마차의 뒤쪽에 앉아 있던 덩치 큰 청년이 마부석 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젠장, 더럽게 덥네.”
족히 185㎝는 되어 보이는 큰 키와 길게 찢어진 눈, 반삭이라도 한 듯 짧은 잿빛 머리와 통통하게 붙은 살이 특징인 험악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륜과 함께여서 그런지 한층 더 험악하고 거칠어 보였다.
잠시 후, 그가 특유의 낮고도 굵직한 목소리로 륜을 향해 물었다.
“언제쯤 도착하냐?”
짜증이 가득 섞인 말투였다. 그리고 이에 답하듯,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단, 그것은 마차를 모는 륜이 아닌 그와 함께 뒤 칸에 앉아 있던 다른 청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루면 도착해. 오늘은 콜람의 옆 마을에서 지낼 거고, 내일 아침에 여유롭게 다시 출발할 예정이야.”
륜이나 덩치의 청년과 달리 차갑고도 딱딱한 목소리였다.
덩치의 청년은 그 목소리에 빈정이 상했는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막 대답을 했던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 더위가 무색하리만큼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남은 한 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는 담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 길게 흘러내린 푸른색의 머리 때문인지, 아니면 날카로운 턱 때문인지 서늘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동행한 두 사람에 비해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투나 행동으로 봐선 세 사람 중 가장 성숙하고 현명해 보였다.
“왜 바로 안 가고? 쉬었다 가게?”
덩치의 질문에 안경을 쓴 청년이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어, 미리 콜람에 갈 필욘 없으니까 옆 마을에서 쉬다 갈 거야.”
“그 옆 마을은 언제 도착하는데.”
“약 두 시간?”
“염병할.”
예상보다 많이 걸리는 시간에 청년이 짧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마차의 그늘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 움직임에 세워뒀던 거대한 대도(大刀)가 철그럭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뭐야 이게, 칙칙하게 사내놈 셋이서.”
“불만이면 내리든지.”
“미쳤냐? 이 더위에 내려서 걸어가게? 가만있어도 땀이 뻘뻘 나는데 어떻게 내려? 아씨, 입 여는 것도 더워. 젠장, 더워 더워! 몸이 땀에 절어 무겁다고.”
“그건 땀에 전 게 아니라 네 몸이 원래 무거워서 그런 거야. 이 기회에 살이나 빼.”
가차 없는 말에 덩치가 인상을 팍 구기며 욕설을 날렸다.
“닥쳐라, 데몽.”
“너나 닥쳐라, 테오.”
작은 청년을 향해 ‘데몽’이라 부르는 ‘테오’와 똑같은 욕을 고스란히 돌려보내는 데몽. 륜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쓰게 웃었다.
정작 가장 힘든 것은 마차를 모는 자신인데 어째서인지 뒤쪽에 있는 이들이 더 난리다. 거기다 저런 태도를 보니 아무래도 운전을 떠넘기긴 어려울 것 같다.
어차피 내일이면 끝나는 거 오늘 하루만 내가 더 몰지 뭐.
륜은 물을 들이켜며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웬 소녀 하나가 달려와 마차의 앞을 막아선 것이.
“앗!”
륜이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황급히 고삐를 잡아 마차를 세웠다.
히이잉.
말이 크게 우는 것과 동시에 마차가 잔뜩 쌓인 모래 사이로 바퀴를 들이밀며 급정거했다. 요동치듯 흔들리는 짐칸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의 입에서도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우앗!”
“뭐야?!”
끼익.
이윽고 마차가 멈추고, 뿌연 모래 연기가 마차를 습격하듯 퍼졌다.
테오는 마차가 완벽하게 정차한 것을 확인하곤 퉤퉤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입과 코, 그리고 눈에 모래가 가득했다.
“퉤! 씨, 이게 뭔 일이야?”
데몽도 입에 고인 모래를 뱉으며 테오를 따라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얼굴 가득 짜증을 바른 채 앞의 상황을 살폈다. 그런 두 사람의 시야에 굽이진 짧은 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안경을 쓴 인상적인 소녀가 양팔을 쫙 벌린 채 그들의 앞을 막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으아…….”
“뭐야?”
“여자다!”
극명하게 다른 세 사람의 반응, 그리고 그에 답하듯 여자가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을 바라봤다.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 아주 안쓰럽고도 불쌍한 말이 튀어나왔다.
“사, 살려주세요…….”
박은하수, 처절한-유림에게서 살기 위한-구조의 목소리였다.
“이쪽은 테오, 앞에서 마차를 몰고 있는 녀석은 륜, 그리고 난 데몽이라 한다. 잘 부탁해.”
자신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가볍게 손을 내미는 데몽의 말에 유림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난 한유림, 이쪽은 내 친구 박은하수야. 마차 태워줘서 정말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마차도 없이 사막을 건너려 하다니…… 대단한 배짱이군.”
“하하하, 어쩌다 보니 말이지……. 여튼 정말 고마워. 제시간 안에 못 갈 줄 알았는데, 덕분에 늦지 않겠어.”
“뭐, 감사는 내가 아닌 마차 주인한테 하고…… 그보다 이름이 특이한데, 령에서 온 거야?”
“응, 소난에서 왔어.”
“소난?”
“아, 사혈의 변두리 마을. 지도로 봤을 때 북동쪽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작은 마을이야.”
그 말에 륜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는 고개를 돌려 뒤에 앉아 있는 유림과 은하를 바라봤다.
“사혈이면 그 비행 국가 아니야?”
“응, 맞아. 역시 우리나라, 쓸데없이 유명하다니까.”
“헤에~ 사혈 사람은 처음이야. 아, 난 원랑에서 왔어.”
“오, 진짜?”
륜의 말에 유림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그가 입고 있는 의복이 전혀 동쪽의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차만 레바리움(남쪽 대륙)에서 산 건가? 아니다. 원랑이 령(동쪽 대륙)의 나라치곤
레바리움의 문화나 생활 방식에 더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옷차림이 비슷하다 해서 이상할 건 없겠구나.
유림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튼 그런 곳에서 자신의 마차를 끌고 온 도련님?
“잘사나 봐.”
빙 돌리는 것 하나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놓고 묻자,
“응? 아, 외할아버지께서 재산을 좀 남기셔서.”
륜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유림은 그런 륜의 순박한 대답에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오오, 대박-!
기쁨에 두 눈을 반짝이며 륜을 바라봤다.
유림의 인간관계는 딱 세 종류로 분류된다. 하나는 은하처럼 정말 친한 친구였고, 나머지는 도움이 되는 인간과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중 가장 도움이 되는 인간이 돈 많고 빽 있는 이가 아니던가.
이런 값비싼 마차를 몰고 있기에 제법 살 거란 예상은 했지만, 설마 저렇게 말할 정도로 부자인 줄은 몰랐다. 거기다 어수룩해 보이는 외모가 왠지 이래저래 쓸모가 많을 것 같았다.
유림은 머릿속으로 륜을 ‘도움이 될 것 같은 인간’으로 정의한 뒤,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겠다 생각하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테오와 데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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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