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08
제 208 화
“모든 사람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니야. 그 이전에 싸움이 있었어. 그러다 연구원들이 죽고, 그 뒤에 폭발이 일어난 거야.”
은하의 말에 반쯤 굳어 있던 디하르가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잠깐만…… 좀 차분하게 이야기해 봐.”
그리고 뒤이어 루아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물어왔다.
“싸움이라니? 그런 게 있었다고……? 그, 그럼 연구원들은 왜 죽었던 건데? 사고는 왜 일어난 거고.”
“사고는 그 싸움 때문에 일어난 거라 들었어. 연구원들이 죽은 건…….”
은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울음을 꾹꾹 삼켰다.
“……늄의 이식…… 기억해?”
갑자기 바뀐 화제에 모두의 머리 위로 거대한 물음표가 그려졌다.
“갑자기 늄의 이식은 왜?”
“이사장님이 말씀해 주셨잖아…… 8형은 그게 가능하다고.”
그에 대해선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이사장님이 유림의 상태를 설명하며 모두에게 진실을 말해주었으니까.
8형은 늄의 이식이 가능한 사람들이며, 실로 히야스가 자신의 늄을 이식해 죽을 뻔한 유림이를 살렸단 것까지.
물론, 아직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특히 학자인 데몽이나 군인인 테오에게 있어 그 사실은 그들이 알고 있던 세계를 부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데몽은 은하가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어떤 가설 하나에 숨을 삼켰다.
심장이 바로 귀 옆에 있는 것처럼 쿵쾅거리는 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사고 이전에 죽은 사람들, 그곳에서 운 좋게 살아난 샨과 유림, 샨이 유림을 엄마라고 불렀다던 레이먼의 이야기, 히야스를 아버지라 부르던 안젤리카와 자신은 소유물에 속한다는 그의 말까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모든 정황이 단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설마…….
“이식을 한 거야? 한유림이 샨한테 늄을 이식한 거야?”
데몽의 말이 낮게 떨어졌다.
은하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샨이 죽을 뻔했고, 그래서 유림이 이식을 해서 살렸단 거야? 그거랑 스승님이 죽은 거랑 뭔 상관인데.”
“가만있어.”
“야! 히넨.”
“가만히 좀 있으라고!!”
데몽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은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바로 앞에 앉아 떨리는 제 손을 꽉 움켜쥐며 진정시켰다.
히야스는 유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늄을 이식했다. 그러니 샨이 단순히 다친 거라면 그녀 또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은하가 한 말이 너무나 이상했다. 애당초 단순한 이식이라면 그녀가 이렇게 울먹이며 말을 삼킬 리 없다. 더욱이 스승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말할 때 굳이 이 이야길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샨이 죽었던 거야?”
“흐윽…….”
“그래서…… 연구원들의 늄을 끌어다 살린 거였어?”
그래. 이것밖에 없었다.
샨이 죽었고, 유림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늄을 다 끌어다 샨을 되살린 것. 그 외에는 이 모든 게 설명되지 않았다.
“흐윽…….”
“정말…… 인 거야?”
은하가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행동에 디하르와 테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말도 안 돼!”
“너희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죽은 생명이 다시 살아난다니.
모든 생명은 늄의 소멸과 함께 생을 마감하며, 설령 그 잔상이 아무리 세게 남는다 해도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것은 이 세계가 이룩한 이래 가장 바꿀 수 없는 진리, 그리고 당연한 순리.
적어도 데몽이 아는 세상은 그랬다. 하지만 늄의 이식에 대해 알게 되며 그가 알고 있던 보편적 진리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여태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것조차 가능성이 생겼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하…….
“맞아…… 림이 샨을 되살렸어…….”
은하의 확실한 대답에 아이들이 작게 비명을 터트렸고, 데몽은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스승님의 시신을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다,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는 그 모습에. 그건 폭력도 아니었고, 마법으로 당한 것도 아니었으며, 독이나 저주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계속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그 이유가 이런 것일 줄이야.
“하하…… 제기랄…….”
데몽이 입술을 짓씹었다.
디하르와 레이먼, 그리고 루아는 경악에 잠긴 눈으로 은하를 바라봤다.
샨이 죽었고, 그런 그를 유림이 살려냈다는 것이 아무리 해도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로…… 샨이 죽었던 거야?”
“유림이 사람을 살렸다고…….”
“그렇다면…… 지금 샨은 대체 뭐야?”
늄은 고유하고 또 생명의 척도 그 자체였다. 때문에 샨이 죽었다는 건 그의 늄이 다했고, 지금의 샨은 유림의 늄과 타인의 늄이 뒤섞여서 만들어졌단 소리였다.
잔상의 일부라 볼 수 있는 유령조차 같은 모습에,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해도 생전의 생명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샨은 대체 뭐란 말인가. 유림처럼 타인의 늄을 자신의 늄으로 바꿀 수 없기에 그를 이루고 있는 것 중 제 것은 몸뚱어리밖에 없었다. 애당초 풍기는 늄의 기운이 이전의 샨과 같을 리 없지 않은가.
순간 그 사실을 깨달은 세 사람이 퍼뜩 요한을 쳐다봤다.
셋은 그때 어리고 늄을 잘 다룰 수 없어 모를 수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잔상을 찾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요한이 샨의 늄이 바뀐 걸 모를 리 없었다.
“설마…… 요한, 너 알고 있었어?”
레이먼의 질문에 요한은 아무 답이 없었다.
그저 무언가를 고민하듯 내리깐 시선으로 한참 침묵을 유지하더니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었던 것까진 몰랐지만. 이식에 관해선 알고 있었어, 샨한테서 그 역겨운 인간들의 향이 풍겼으니까. 그리고 샤이의 표정을 보고…… 걔가 무슨 짓을 했다는 것도 눈치챘지.”
생소한 이름에 하민이 미간을 구겼다.
“샤이? 샤이가 누구야?”
“유림의 본명. 정확히는 ‘샨’. 그저 우리가 두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유림을 ‘샤이’라고 불렀어.”
“그럼 둘이 이름이 같은 거야?”
“그래. 정확히는 유림이 자신의 이름을 준 거지만.”
그 말에 은하가 바들바들 떨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샨은 림에게 특별한 사람이었어…….”
그녀가 그를 살리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타인의 생명을 쓴 건 어쩌면 그 때문이리라.
“림이 그랬어, 자기 때문에 샨이 죽었다고. 그래서 그때 충격이 너무 커서, 또 너무 슬퍼서……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대.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림은 구출되었고, 루아네 집에 있었다고 했어. 왜 샨이 살아 있는지…… 또 자신들이 어떻게 구출되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어.”
은하는 유림을 대변하는 것처럼 크게 말했다. 마치 그녀의 억울함과 슬픔을 대신 토해내듯 말이다.
“림은 몰랐어.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그러다 죽은 연구원들의 시체와 샨이 림을 ‘어머니’라고 불렀을 때에야 알 수 있었어. 자기가 죽은 샨을 살렸다고…… 연구원들의 늄을 강제로 뺏어서 샨에게 이식했다고. 그제야 안 거야.”
당시 유림은 은하와 하림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피를 철철 흘리던 상황에서도 냉소적으로 웃어넘겼던 그녀가 처음으로 펑펑 울며 말했다.
“자기가 해선 안 될 짓을 했다고…… 사람을 죽였고…… 샨의 존재를 기만하고 또 한 번 죽였다고 후회했어. 절규했고 절망했어. 그래서 과거를 버리기로 한 거야. 아무것도 기억 안 하고, 자기 과거를 죽이려고 한 거라고…….”
결국, 은하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사혈에 온 거야…….”
마치 답답한 속내를 토하듯 계속 말을 내뱉었다.
“림은 그때부터 누가 죽는 걸 무서워해. 그 무엇보다 아는 사람이 죽는 걸 제일 무서워해. 그리고 친할수록 본인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큰 공포를 느껴.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어.”
레이먼은 다시금 은하에게 다가가 우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쉬이 진정하지 못했다.
“림은 무서웠대. 샨한테 그랬던 것처럼 너희한테도 똑같은 짓을 할까 봐. 너희를 기만하고 죽여 버릴까 봐 너무 무서웠대.”
눈물이 가득 찬 목소리는 비통에 가까웠다.
“그래서 죽으려고 했어. 그래서 사혈로 온 거야. 림은 죽기 위해 사혈에 온 거야.”
은하는 계속 그렇게 울며 말했다.
“림은 모든 걸 다 버리려 했어-”
***
생각해 보면 유림의 인생은 참으로 복잡하고 시끄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평탄치 못한 일이 계속 이어졌으며 그것은 그 작은 아이의 모든 것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이상함을 깨달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건 애당초 시작이 그랬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유림의 인생이 바뀐 건…… 즉, 그녀 스스로의 가치관과 인식을 바꾸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유림이 고아원으로 탈바꿈한 실험장에서 실험을 받던 때.
그렇다. 이 이야기의 모든 시작은 유림이 ‘유림’이란 이름을 받기 전, 즉 ‘샨’이란 이름으로 불렸을 때부터 시작한다.
‘샨’은 고아였다. 부모가 누구인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세상을 자각했을 땐 조금 특별한 고아원이었고, 그곳에서 교육을 빙자한 실험을 받고 있었다.
자신이 왜 실험을 당하는지는 몰랐다. 그에 대한 의문도 없었다.
애당초, 그것이 실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진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샨에게 다른 삶이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일상에 큰 여흥과 의문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왜 이 많은 아이들이 같은 장소에서 각기 다른 생활을 하는 걸까- 정도의 궁금증만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 때문에 고아원의 선생들이 그녀를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의심이 없고, 그저 간단한 보상만 있으면 하란 대로 다 하는, 말 그대로 좋은 실험체였으니 말이다.
그런 샨이 의문을 가진 것은 뒤늦게 가족이란 개념을 깨달은 아홉 살의 일이었다. 그때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의문을 가졌고 알고 싶어 했지만, 슬프게도 그 누구 하나 답을 내주지 않았다.
결국, 샨은 그 의문을 마음속 깊이 숨겨두기로 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공부를 하고, 훈련을 받고, 가끔 정기적인 검사를 받으며 이상한 약을 먹었다. 때때로 피를 뽑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그리고 똑같은 아침.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동갑내기 하나가 아침부터 샨을 붙잡고 마치 떼를 쓰듯 보챘다. 아주 질기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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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