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12
제 212 화
“너도 우리가 불쌍해?”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농으로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샨은 마른침을 삼킨 뒤, 진지하게 고민했다.불쌍하냐고?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
“그치? 우리도 그래.”
그런가?
샨은 어쩐지 이상하면서도 말이 되는 논리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가슴 한쪽이 간질간질했다. 딱히 칭찬을 들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걸까. 허파에 바람이라도 들어갔는지 자꾸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왜 웃어?”
“아냐. 그냥 좀 기분이 좋아서.”
“헤에-”
샨의 실없는 소리에 루아가 따라 웃었다.
“네가 기분 좋다니까 나도 좋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좋은 거지, 내가 좋다 해서 루아가 기분 좋을 건 또 뭐란 말인가.
“어째서?”
“왜긴, 친구가 기분 좋으면 같이 좋은 게 정상 아니야?”
이거야말로 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거기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거라곤 고작 이름이 전부 아니던가. 근데 이런 사이를 가지고 친구라 할 수 있을까.
“너랑 내가 친구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자 루아가 울상을 지으며 샨을 바라봤다.
“아니야?”
아,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묻니.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는 샨은 애먼 뒷머리만 벅벅 긁었다.
“어…… 그렇다기보단…… 그냥 이런 경우가 좀 어색해서.”
“헐. 설마 샨 왕따야?”
그건 아닐걸……. 그보다 왜 친구가 어색하면 왕따인 거야?
샨이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짓자 그 얼굴이 웃겼는지 쌍둥이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레이먼은 샨의 어깨를 토닥였다.
“뭐, 샨이 이렇게 외롭다는데 우리가 놀아줘야겠네. 안 그래?”
“아니, 나 안 외로운데. 그냥 이런 상황이 어색한 거라니까?”
“흑, 이 오빠가 잘 챙겨줄게.”
“안 외롭다니까. 그보다 왜 네가 오빠야. 너랑 나 동갑이거든?”
레이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말을 곱씹더니 피식 웃었다.
“에이~ 거짓말. 네가 어떻게 우리랑 동갑이야. 이렇게 작은데.”
“한 대 때려도 돼?”
“아니, 안 돼.”
레이먼이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 디하르 뒤에 숨었다.
디하르는 그런 레이먼을 보며 쓰게 웃더니 시선을 샨에게 돌렸다.
“진짜 우리랑 동갑이야?”
“너도 아홉 살이야?”
“응. 우리 셋은 아홉 살. 요한만 열 살이야.”
아…….
어쩐지 조금 어른스럽다고 느껴졌는데 한 살 더 많아서 그런가 보다.
고작 한 살 차이로 어른스럽다는 걸 표하긴 애매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고아원 아이 중 가장 연장자가 아홉 살이었기에 열 살을 본 적 없는 샨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뜩 든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근데 너흰 여기 왜 있었어?”
자기야 고아원이 이 근처였으니 그렇다 치고, 귀족 아이들이 수행원 하나 없이 이런 곳에 있는 건 좀 이상했다. 더욱이 해가 저문 늦은 시간이 아니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묻자 루아가 허리에 손을 짚으며 당당히 말했다.
“우린 몰래 빠져나왔지.”
“빠져나와?”
“응. 비가 오기에 레이먼의 성물쇼 보려고 나온 거야.”
“아…… 하지만 안 위험해? 여기 산이잖아. 괴물이나 나쁜 사람들 나오면 어쩌려고.”
자기가 하기엔 좀 질문이 그랬다고 생각했는지 샨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네 아이다 그 사실을 신경 쓰진 않았다.
“괜찮아. 우리 넷 다 마법 빵빵하게 쓸 줄 알고, 또 이 산은 자주 와서 익숙하거든.”
샨은 후에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디하르의 모친의 묘가 이 산에 있었고, 때문에 네 아이는 이곳에 자주 와 놀곤 했었다. 물론 너무 멀리 가진 않고, 그 경계선이 이 폭포까지라 고아원을 발견하진 못했다.
어떤 의미로 봤을 때 샨과 아이들이 이곳에서 만난 건 우연에 가까운 확률이었다.
“그렇구나.”
샨은 자신과 정반대의 환경을 가졌음에도 그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빠져나왔단 사실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루아가 불쑥 물어왔다.
“있지, 샨. 너 내일 뭐해?”
레이먼도 디하르의 등 뒤에서 고개를 쑥 내밀며 물었다.
“맞다. 너 내일 뭐해? 안 바쁘면 또 여기서 놀자.”
“내일은 왜?”
“왜긴, 내일도 같이 놀았으면 해서 그렇지.”
“어?”
“이 산에 멋진 곳 엄청 많아. 날씨별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다르거든.”
“아…….”
“샨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고, 또 같이 놀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루아의 활기찬 대답에 샨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 하지만 나 언제 나올 수 있는지 몰라. 오늘도 진짜 우연히 나온 거거든.”
“대충도 몰라?”
“일단 낮은 안 돼, 시간이 나도 이렇게 늦은 뒤고.”
“그럼 괜찮아. 기다릴게.”
“……기다린다고?”
“응. 당연하지. 그게 뭐 어렵다고.”
그게 뭐 어렵다고…….
여태껏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려 준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 없었다. 고아원의 수업이나 검진은 늦으면 늦는 대로 피해를 입었고, 밀라도 저를 기다려 주기보단 해달라는 게 많았다. 후랑은 기다린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이런 말을 듣는 게 처음인 것이다.
정말이지 오늘은 놀라운 일만 터질 예정인가 보다. 시간이 갈수록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기고 말을 들으니까.
“진짜 기다려 줄 거야?”
“당연하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오늘만 보고 헤어지는 건 아쉽잖아. 아, 근데 우리도 너무 늦게까진 못 있으니까 만일 먼저 돌아가거나 일이 있어서 못 나올 땐, 이 계곡 근처에 표시를 남길게. 팻말을 세운다거나 아니면 편지를 나무에 꽂아둔다거나. 어때?”
다른 아이도 동의하는지 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윽고 샨이 작게 답하자 네 아이가 맘에 든다는 듯 웃었다. 표정이 없는 요한조차 옅게 웃을 정도였다.
샨도 그들을 따라 웃었다. 고아원의 사람들이 봤다면 놀랄 만큼 환한 미소가 걸렸다.
웃음이 헤프진 않은데, 오늘은 왜 이렇게 허파에 바람 들어간 사람처럼 실실 쪼개는 건지.
이후 샨은 아이들과 편지를 남길 나무를 정해 표시했고, 그들과 또 보자는 인사를 남긴 뒤 헤어졌다.
나왔던 길을 되짚어 고아원까지 안전하게 도착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우비를 털어 숨기고, 진흙 묻은 신발과 옷을 닦은 뒤 방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다 자고 있었다.
살금살금 들어가 대충 이불을 펴 자리에 누우니 그 소리에 깼는지 후가 눈을 비비며 몸을 돌려 누웠다.
“샨…….”
화들짝 놀란 샨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으며 자연스럽게 이불을 덮었다.
“어……?”
“지금 온 거야?”
“으, 응.”
“다락방에 있었어?”
아무래도 샨이 다락방에 가 있다 생각했는지 후가 그리 물었다.
정말 별거 아닌 특혜라 생각했는데, 오늘만큼은 자신이 그곳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 덧붙여 후를 제한 다른 아이들이 갈 수 없음도.
“으응.”
“밀라가 또 뭐라 해?”
“아냐.”
“걔가 그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뭘 그리 신경 써.”
이미 밀라에 대한 건 싹 다 날아간 지 오래였다. 도리어 아직까지 네 아이를 만난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려 문제지.
차마 솔직히 말할 수 없었던 샨은 혹여라도 상기된 표정을 들킬까 싶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아니야. 이제 괜찮아.”
“그럼 다행이고.”
후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이불을 고쳐 덮었다.
“잘 자.”
“응. 너도.”
곧이어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샨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살짝 내리 끌었다.
어둠에 물든 베이지색 천장이 보였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 고요함이 가득한 밤.
내일도 만날 수 있겠지?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자꾸 올라갔다. 다리도 동동거리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하아…….”
나 오늘 잘 수 있을까? 빨리 자야지 내일이 오는데. 으으으으…….
샨은 그렇게 두근거림을 진정시키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시간은 돌고 돌아 다시 낮이 찾아오고, 또다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었다. 수업을 받고 검사를 하고 선생님들의 질문을 계속 들었다.
오후엔 독방에 갇혔던 밀라가 풀려나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밀라는 샨에게 눈치를 주며 어서 사과하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겼으나 애석하게도 샨은 조금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사과를 했고, 그 무엇보다 정신이 딴 데 가 있어 밀라가 주는 눈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 지금 샨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어젯밤에 만난 소중한 인연들. 너무나 즐거운 네 명의 친구들.
샨은 그들을 만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모든 일과가 끝나고 해가 저물었을 때, 어제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눈을 피해 또다시 고아원 밖으로 나왔다.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들떠 있었고, 뛰는 걸 싫어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한 시도 쉬지 않고 달려갔다.
세차게 뛰는 심장과 기대감에 잔뜩 부푼 얼굴.
가을 특유의 찬바람조차 봄바람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얼굴 한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아이들과 약속한 장소로 뛰어갔다.
그리고 폭포 앞에 도착했을 때, 샨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네 아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샨!”
“샨 왔다!”
“어서 와!”
“왔네.”
눈부실 만큼 환한 인사와 함께 말이다.
이후로도 샨은 계속 고아원을 몰래 빠져나가 아이들을 만났다.
고아원 사람들은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완벽하게 숨겼고, 또 태연하게 연기했다. 떨리는 것도 처음뿐이었다. 본인이 거짓말에 이렇게 능숙했나 싶을 정도로 샨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때문에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려던 선생들도 샨을 의심하진 못했다. 원래부터 밖에 대한 동경이 없었고, 말 잘 듣고 순종적인 아이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샨은 시간이 날 때마다 다락에 가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기에 보이지 않으면 그곳에 있는 거라 생각했다. 굳이 찾지 않은 것도 평소와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밤에만 나가던 것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낮에도 가게 되었고, 그 행동과 수법은 점점 대범해졌다.
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매일매일을 색다르게 만들었다. 그들과의 추억은 마치 환상과도 같았고 가지고 있던 상식과 세계를 부숴놓을 만큼 강렬했다.
샨은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워서 다른 것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
밀라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후에 이 일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그리고 그 대가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처절하단 것까지…….
그 어떠한 것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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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