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2
제 22 화
“조작된 초대장, 의심스럽잖아. 더욱이 내 이름을 보고 놀랐다는 건 작년에도 ‘한유림’으로 왔단 거지.”
“그럼…… 2년 내내 누가 조작된 초대장으로 유림을 불렀단 소리야?”
“내 추측은 그래.”
데몽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흥미롭다는 데몽과 달리 테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들은 클레이즈에 그냥 온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을 찾기 위해, 그리고 응징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 그들 앞에 조작된 초대장이 나타났다. 가볍게 넘기기에는 너무 걸리는 요소였다.
“데몽…… 그렇다는 건, 한유림이 ‘녀석들’과 한패라는 거야?”
“어이 어이, 단정 짓지 말라고. 거기다 유림의 태도를 보면 누가 자신을 불렀는지 모를 가능성이 커. 뭐, 클레이즈의 이사장을 제외하고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찾는 녀석들일 확률이 가장 높지만. 다른 이유로 제삼자가 보낸 것일 수도 있어. 어쩌면 정말로 오류가 난 걸지도 모르지.”
“희박해. 아니, 불가능해.”
“그래, 알아. 어쨌든 유림이 ‘녀석들’과 관련된 인물이든 아니든 누군가가 부른 것은 확실해, 그것도 2년 연속. 그렇다면 생각해 볼 것은 하나잖아? ‘왜’ 불렀을까-”
그래서 시작된 생각이었다.
조작된 초대장을 보낸 이는 어째서 유림을 부르려 했던 걸까? 꽤나 진지했던 고민. 그러나 그 해답은 마나 숨바꼭질에서 쉽게 풀 수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유림을 통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어떤 유형인지를 파악하며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데몽은 3차 시험이 시작하자마자 구름 고래를 잡기보단 팔찌 유형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그 결과,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 각각의 팔찌 색이 어떤 성향을 나타내는 건지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데몽은 유림과 루아에게 떠들기 전부터 어느 정도 각 팔찌의 형을 파악하고 있었다).
신체 강화나 무기 강화계는 노란색, 성물과 교감하거나 생명과 교감하는 애들은 초록색, 치유하는 애들과 대상의 늄을 휘저어놓는 타입은 파란색, 그리고 자신과 같은 계열이 붉은색이었다.
그러나 유림만큼은 알 수가 없었다. 자연계 마법사들이 붉은 팔찌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림은 자연계 마법사가 아니었고, 숲에서 만나는 붉은 팔찌마다 다 자연계였기에, 마땅히 대조해 볼 만한 특징도 없었다.
신호 피리나 나침반을 만드는 것을 보면 무기를 강화하는 계열인데, 그녀의 팔찌는 붉은색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떠보기였다, 그녀가 무슨 타입인지 알기 위해. 그리고 얻게 된 결과는 대단했다. 그런 위험한 실험을 해 볼 가치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결론은?”
“한유림이 흔한 타입은 아니라는 것. 걔 능력은 네 능력과 비슷해.”
“나랑?”
“그래,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지.”
“무슨 소리야?”
데몽은 테오를 바라봤다. 머리가 나쁜 녀석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응용력이 부족하다 보니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섰다.
“음…… 쉽게 비유를 해줄게. 어떤 성질이 1, 3, 5, 7의 늄을 가지고 있어. 너 같은 타입은 그 힘을 더해 사용하는 스타일이야. 즉, 여기에 ‘가’라는 늄을 더했을 때, ‘1, 3, 5, 7 + 가’가 되는 게, 네가 하는 방식이지. 숫자라는 것엔 변함이 없어. 네가 늄을 쓰면 발동되는 무기처럼 말이지.”
“그럼, 한유림은?”
“유림은 1, 3, 5, 7에 가의 늄을 더했을 때, 1, 가, 3, 5, 7이 되는 녀석이야. 즉, 특수한 기능이 추가로 붙는 것이 아니라 물질 자체의 성질이 바뀐다고 보면 돼.”
데몽의 말에 테오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숨을 삼켰다. 테오도 수업을 듣고 공부를 했기에 알 수 있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말이다.
“나무를 쇠로 바꾼 것처럼 성질 자체를 바꿀 수 있단 거야?”
“그래, 보통 변형이나 강화의 능력을 가진 애들은 주로 모양을 바꾸지, 그 성질을 바꾸긴 힘들어. 생각과 달리 엄청난 늄이 들고 조작도 섬세하거든. 어떤 의미론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근본 그 자체를 바꾸는 일이니까. 근데 녀석은 대상의 근본을 바꿔. 거기다 잘 지치지 않지. 천연인 거야. 박은하수가 엄청난 회복량을 가지듯, 녀석도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테오는 데몽의 말이 맘에 들지 않는지 짧게 친 머리를 벅벅 헤집었다. 그런 뒤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갤 들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뭐야?”
“일단 륜한테는 말하지 마.”
“왜?”
“쓸데없는 부분까지 솔직한 녀석이라 의외의 복병이 될 수 있거든.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 채 유림에 대한 객관적인 평을 듣는 게 더 좋아.”
“나는 어떻게 해?”
“너는 나랑 유림에 대해 알아봐야지, ‘녀석들’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만약 있다면?”
테오의 말에 데몽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외모만큼이나 냉정하고도 싸늘한 말이 튀어나왔다.
“네가 아는 그대로 행동하면 돼.”
그가 내뿜는 오싹한 한기에 등으로 소름이 돋았다.
“……그래.”
테오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살짝 불안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녀석들과 관련이 없다면?”
“그땐 무조건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지.”
그 말에 테오가 눈을 크게 떴다.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라니?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테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자, 데몽이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꽤 위험해. 녀석들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졌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인물이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어.”
“……한유림이 우릴 도울까?”
“글쎄,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한유림이 우리 편이 되면 박은하수도 우리 편이 될 거라는 거야. 걔들 1+1이니까.”
그 말에 테오가 동의한 듯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그 둘은 미묘하게 붙어 다녔고 서로의 상태를 단박에 파악할 만큼 호흡도 좋았다. 더욱이 그 정도의 회복량이라면…… 확실히 큰 힘이 될 것이다.
테오는 가능하면 유림이 녀석들과 관련이 없기를 바랐다. 친해진 이들이 적이 되는 것도 싫었고, 다른 걸 떠나 그들의 능력이 꽤 탐났으니 말이다.
테오가 그렇게 유림을 잘 살펴봐야겠다 생각할 때, 갑자기 데몽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한유림이 우리 편이 되면 디하르도 우리 편이 되겠군.”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디하르의 이름에 테오가 하던 생각을 멈추고 데몽을 바라봤다.
“디하르? 걘 갑자기 왜? 거기다 쌍둥이는 왜 빼?”
“쌍둥이는 모르겠지만, 디하르는 확실해.”
“왜?”
그리고 그 질문에 데몽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글쎄, 왜일까?”
***
“다쳤다며.”
디하르는 유림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유림은 벼락을 맞고 큰 상처를 입었던 사람답지 않게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문인지 더 걱정스러웠다. 혹 속은 말이 아닌데 겉만 멀쩡한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제 괜찮아.”
유림은 디하르를 향해 피식 웃었다.
“위험했어.”
“알아.”
디하르는 아직도 유림의 상태가 걱정되는지 평소와 달리 잔뜩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이먼이나 루아에 비해 정이 많고 잔걱정도 많은 디하르였기에 이 이상 가면 온종일 저 표정을 봐야 할 것을 잘 알고 있는 유림은 갑자기 생각이 떠오른 척하며 말을 돌렸다.
“아, 그보다 열매는 어떻게 수확했어?”
“어떤 감사한 분께 도움을 받았어.”
“정말?”
“알고 보니 우리와 2차 시험을 같이 본 사람이더군.”
“진짜?”
“응, 내 얼굴을 기억하더라. 내가 떨어지려는 널 잡은 걸 봤대.”
젠장, 나름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인데. 그보다 누굴까, 이 정신없는 시험에서 상냥하게도 호의를 베푼 녀석은?
“왜 널 도와줬을까? 아, 혹시 네 외모에 반한 거 아닐까?”
“남자애였어.”
“쳇, 아쉽군.”
“앞으로 그러지 마.”
“어?”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아, 또 원점이야? 그만 좀 혼내라. 나도 내가 잘못하고 무모했던 거 알고 있어. 그렇지만 시간이 없었는걸, 정신도 없었고.
유림은 디하르를 올려다보면서 씩 웃었다. 정말로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허리에 손을 짚으며 말이다.
“디하르, 걱정하지 마. 난 멀쩡해. 그리고 네가 자꾸 이렇게 걱정하면 내 주치의의 실력을 무시하는 게 되는 거야.”
유림이 입꼬리를 말며 은하를 가리켰다. 그 가리킴을 받은 은하는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디하르를 향해 자신의 유능함을 어필하고 있었다. 물론, 그 행동에 한층 더 불안해진 디하르였지만, 이 이상 말을 계속하면 두 사람 다 썩 좋아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불만을 삼키며 유림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알았어.”
“좋아 좋아. 그럼 이제 이동하자. 슬슬 시험 끝날 때 되지 않았어? 시험 감독관이 있는 곳에 가자고.”
유림 특유의 밝고 경쾌한 음성. 그 음성에 디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시험 감독관인 해우는 이즈네에게 건네받은 프로필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딱히 주의 깊게 보고 싶단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애초에 입학시험이 진행되면 될수록 대부분의 아이들이 떨어질 테고, 그보단 시험을 살피는 게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본다 해서 딱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
해우는 파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옆에 있는 보조 감독에게 살짝 귀찮다는 투로 물었다.
“숨바꼭질 합격자 중에 초록 문 출신 몇 명이야?”
“네 명입니다.”
“넷밖에 없어?”
“원래 그쪽 합격자 수가 적었으니까요.”
그 말에 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펜을 꺼내 들었다.
“누구누구인지 이름 좀 말해봐.”
“‘혜르디크 티리안’ 양, ‘이덴 디하르’ 군, ‘한유림’ 양, ‘이하민’ 군. 이렇게 넷입니다.”
“이하민? 잠깐, 설마 하진이 동생 하민이?”
해우의 질문에 보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하진. 클레이즈의 간부 교수이며 첫 번째 의자의 주인이자 해우의 절친한 소꿉 친우였다. 덧붙여 함께 클레이즈에 입학하고 졸업한 동기이기도 했다.
그의 막냇동생이 자신의 동생보다 한 살이 어렸기에 올해 열아홉이란 것과 하진을 닮아 능력이 출중하단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입학시험을 볼 줄은 몰랐다.
“대박. 하진이가 시험 보는 거 허락할 줄은 몰랐네, 난 보지 말라 할 줄 알았는데. 이 위험한 곳에 왜 불렀대?”
“해우 교수님의 동생분들도 클레이즈에 있지 않습니까? 물론 한 분은 졸업하셨지만.”
“걔랑은 다르지. 난 동생을 아끼는 거고, 녀석은 팔불출인 거고. 거기다 난 우리 막둥이는 안 보냈다고. 뭐, 능력이 안 된 것도 있지만.”
사 형제의 장남인 해우와 삼 남매의 장남인 하진.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 다 대단한 팔불출이었다. 물론 해우 자신은 그 정도가 아니라 하고 있지만, 보조가 봤을 때 둘의 증상은 피장파장이었다.
“……그렇습니까?”
차마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 없었던 보조는 시선을 살짝 외면한 채 그 말에 동의했다.
“그 자식, 진짜 지독한 팔불출인데. 나중에 전임 교수 정할 때 누군지 몰라도 죽어나겠군. ……설마 내가 맡진 않겠지?”
해우는 불길함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합격자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쳤다.
케이의 성격상 하진의 동생을 나한테 맡기진 않겠지. 내 동생들도 하진이한테 배우지…… 아니다, 한 놈은 배웠지.
그는 이미 졸업한 첫째 동생을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진짜 안 걸렸으면 좋겠는데…….”
하진의 유난스러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해우는 진심으로 그렇게 빌며 합격자를 바라봤다.
여자 둘, 남자 둘. 마치 맞추기라도 한 듯 딱 떨어지는 성비였다.
그는 볼펜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동그라미가 쳐 있는 인물들을 살폈다. 딱히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이는 프로필이었다.
히야스가 이상한 행동을 한 게 하민이를 보고 한 말 아냐? 걔가 입학하면 하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들들 볶을 테니. 이제 우린 다 죽었다, 뭐 그런 의미로.
흠…….
아무리 생각해도 하민이를 제외하곤 특별해 보이는 학생이 없었다.
해우는 파일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서 무엇하랴, 어차피 입학시험은 진행 중이고 히야스의 속내는 여자들의 속마음보다 알아내기 어려운 것을. 그냥 나중에 직접 일이 터지는 것을 보는 게 빨랐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마나 숨바꼭질 마감이군.”
3차 시험 시간이 끝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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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