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25
제 225 화
“야, 야, 야!”
“응?”
“너 찌 흔들려!”
“어?!”
은하가 고개를 돌렸다. 샤이의 말대로 찌가 크게 흔들리며 낚싯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한눈에 봐도 뭐가 걸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으아아아!”
은하가 다급히 낚싯대를 집어 들었다. 큰놈인지, 끄는 힘이 장난 아니었다.
열심히 이를 악물며 낚싯대를 잡아당겼지만, 얼음 위여서 그런 걸까. 정작 당겨지는 것은 물고기가 아닌 은하였다.
샤이는 은하가 점점 물 쪽으로 끌려가는 걸 보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은하에게 달려들었다.
“야, 이 멍청아! 네가 잡히면 어떡해!”
샤이는 은하의 허리를 붙들고 못 끌려가도록 잡아당겼다. 묵직한 느낌이 느껴졌다.
요 몇 달 쉬긴 했지만, 그래도 꽤 오랫동안 단련해 온 몸이라 보통의 또래보단 힘이 센 샤이였다.
그런데도 쉽게 당겨지지 않는 걸 보니 물고기가 문 게 아니라 어디에 걸린 것 같았다.
“야, 이거 아무리 봐도 걸린 거야. 물고기가 아니라고.”
“아니야! 물고기야! 우리 엄마가 호수 아래에 어마무시한 놈이 산다 그랬어! 분명 고래일 거야!”
“고래는 바다에 살아!”
“그럼 상어인가?”
“상어도 바다에…… 아닌가? 호수 상어는 있던가? 아씨, 몰라! 여튼 놔! 이건 우리가 못 잡아!”
“잡을 수 있어! 잡을 거야!! 잡아서 배터지게 먹을 거야!!”
거기서 뭘 또 얼마나 더 먹을 건데!!
샤이가 씩씩거리며 열을 내려던 순간 팽팽하게 당기던 줄이 뚝 하고 끊어졌다.
두 사람을 잡아끌던 엄청난 힘이 사라지자, 그 반동을 못 이긴 작은 몸이 뒤로 발라당 넘어가고 말았다.
“우악!”
“악!”
얼음에 뒤통수를 박은 샤이 위로 은하가 쓰러졌다.
샤이는 뒤통수와 가슴팍을 손으로 문지르며 웅크렸다. 골이 찌르르 하고 울렸고, 그와 동시에 한기가 올라왔다.
“으어…… 겁나 아파! 야, 박은하수! 내려가!”
통증에 눈물까지 맺힌 샤이가 소리를 지르며 은하를 밀어냈다.
은하는 끙끙 앓으며 몸을 일으켜다 끊어진 낚싯대를 발견하곤 울상을 지었다.
“으헹! 줄 끊어졌어.”
“지금 그게 문제냐?!”
샤이는 욱신거리는 뒤통수를 연신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문뜩 무언가가 허전하단 걸 깨달았다.
“어?”
손에 걸려야 할 게 만져지지 않았다. 그리고 흘러내린 머리칼이 손에 쭉 닿는 순간, 자신의 머리에서 비녀가 빠졌음을 알게 되었다.
어, 어디 갔지?
샤이가 다급히 고갤 돌렸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이게 어디로 간 거야…….”
“저기, 낚싯줄 갈 줄 알아?”
“몰라. 그냥 내 거 써.”
“정말? 근데 너 뭐해?”
“비녀 찾아.”
“비녀? 네 모자에 있는 그거?”
“어?”
“모자에 있어.”
은하의 말에 샤이가 황급히 모자를 뒤집었다. 그러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기다란 무언가가 땅으로 떨어져 굴러가더니 앞쪽에 멈추었다. 샤이가 그토록 찾고 있는 비녀였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아…… 다행이다.”
“히히. 나 진짜 네 낚싯대 쓴다?”
“그래. 써.”
샤이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비녀를 주웠다. 그러다 그만 앞으로 쭉 미끄러지고 말았다.
“으헥?!”
시야가 빙그르르 뒤집히는 것과 동시에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안 돼, 또 뒤통수를 박을 순 없어……!
맞은 곳을 또 맞는 것만큼 아픈 게 없다고, 샤이는 어떻게 해서든 뒤통수를 지키기 위해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몸을 굴려 팔을 뻗었다.
그 짧은 순간 완벽하게 자세를 바꾼 샤이는 자신의 반사 신경에 감탄했다.
“좋아! 완벽…… 엥?”
그러나 세상은 결코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했던가…….
샤이를 맞이하고 있는 건, 새하얀 빙벽이 아닌 차갑고 푸른 호숫물이었다.
뒤통수를 지키는 데 급급해 자신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 잊고 만 것이다.
“이게 무슨……!”
짤막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샤이는 그대로 고꾸라져 호수에 머리부터 빠지고 말았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호숫물이 튀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샤이의 낚싯대를 줍던 은하가 뒤를 돌아봤다.
얼음 위로 흘러넘친 호숫물과 사라진 샤이.
시린 겨울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은하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
아주 잠깐, 무서우리만큼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리 은하가 눈치가 없고 단순하다 해도 이 상황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이 백지장처럼 점점 창백해졌다. 곧이어 아이가 호숫가로 달려들며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
***
샤이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기 위해 팔다리를 열심히 허우적거렸지만 몸은 떠오를 생각을 안 했다. 오히려 꼬르륵 소리를 내며 점점 깊게 가라앉았다. 마치 호수 밑바닥의 무언가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죽을 것 같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쉼 없이 코랑 입으로 파고들었고, 그 탓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상상 이상의 고통에 샤이는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추위로 몸이 딱딱하게 굳어 인제는 허우적거리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손에 들린 비녀를 놓칠세라 주먹만 꽉 쥐었다.
그때 물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조심스럽게 눈을 뜨니 머리 위로 짙은 그늘이 하나 그려진 게 보였다.
수면을 등지고 있는 데다 시야도 흐려 거대한 그늘로 보였지만, 신기하게도 샤이는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생존 본능인 걸까.
샤이는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손 하나가 샤이의 허리를 낚아채 그대로 잡아끌었다.
잠시 후, 시린 바람과 함께 폐 속 가득 찬 공기가 들어왔다. 호수 밖으로 나온 것이다.
“푸하-!”
폐가 아플 만큼 거친 숨이 토해졌다. 샤이는 하림의 어깨에 매달려 숨을 몰아쉬었다.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온몸이 벌벌 떨렸다.
두 사람이 나오자 물가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은하가 펑펑 울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하림은 두 아이를 데리고 호수 밖으로 나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큼직한 나무 아래 샤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러기 무섭게 크게 소리쳤다.
“미쳤어?! 죽으려고 환장한 것도 정도가 있지……!”
‘……?’
갑자기 이게 뭔 소린가 싶은 아이의 머리 위로 하림의 호통이 떨어졌다.
“도망 못 치게 하니까 이젠 물에 빠져 죽으려고 했냐?!”
그는 샤이가 죽으려고 물에 들어간 거라 생각했는지 오들오들 떨며 연신 콜록거리는 아이에게 크게 화를 냈다.
샤이는 이걸 해명해야 할 거 같아 가까스로 입을 열었으나 하림의 호통이 먼저였다.
“아니…… 그게…….”
“죽을 거면 곱게 죽어! 제길! 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저기, 그니까…….”
“너 또 한 번만 그래 봐!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죽으면 죽여 버린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샤이는 그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한껏 일그러진 하림의 표정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추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걱정한 것이다.
정말로 화가 날 만큼 놀란 것이다.
떨림을 참기 위해 이를 꽉 깨문 모습에, 샤이는 우선 그를 안심시키는 게 먼저란 생각이 들었다.
뭐라 해야 하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더라?
살면서 이런 상황이 몇 없어 뭐라 말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샤이는 한참을 우물쭈물하며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렸다.
“자, 잘못…… 어요…….”
딱히 죄책감이나 죄의식이 든 것도 아닌데, 왜 사과가 먼저 나왔는지는 샤이로서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잘못…… 했어요…….”
이가 딱딱 부딪혀 끊겨 나오는 목소리에 하림의 얼굴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곧이어 그가 샤이를 꼭 끌어안았다. 따뜻한 온기가 아이를 감쌌다.
“하아…… 진짜 놀랐잖아…….”
그가 샤이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로 놀랐는지 손은 가늘게 떨렸고,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샤이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아…… 정말 놀라셨구나…… 나를 진짜로 걱정했구나…….
샤이는 하림을 안심시키기 위해 팔을 뻗어 그의 등을 안았다.
“죄송해요…… 근데 진짜 죽으려 했던 거 아니었어요. 비녀 줍다가 실수로 빠진 거예요.”
“……뭐?”
“근데 제가 수영을 못해서…… 못 나온 거예요.”
“…….”
하림이 그대로 몸을 떼더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샤이는 왜 그러나 싶어 그를 바라봤다. 곧이어 호통이 다시금 귀를 찔렀다.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샤이는 두 귀를 막으며 눈을 감았다. 화를 동반한 하림의 잔소리가 계속되었다.
“바보냐?! 그깟 비녀가 뭐라고 주우러 가!! 그리고 할 거면 조심히 하든지. 왜 멍청하게 물에 빠지는데!! 젠장! 날도 추운데 밖엔 또 왜 나온 거야!! 좀 안전하게 놀 수 없어?! 그냥 따뜻한 데서 편히 있으라고!! 내가 집에 갔을 때 너 없어서 얼마나 놀란 줄 알아?!”
하림은 마치 놀랐던 속내를 토해내듯 한참 혼내더니 이내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갤 떨궜다.
“아침부터 고분고분해서…… 안심시켜 놓고 도망치려는 줄 알았단 말이다…….”
“…….”
가뜩이나 없던 할 말이 더 없어졌다.
샤이는 하림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내가 그렇게 뒤통수치고 도망칠 것처럼 보이나? 아니, 도망치려고 기를 쓰긴 했는데…… 그래도 나한테 잘해준 사람 속이고 갈 정돈 아닌데…….
“……제 신용도가 그것밖에 안 되나요?”
“신용도는 개뿔. 너한테 그딴 게 있긴 해? 거기다 은하가 자꾸 너 죽었다고 그래서…… 아씨…….”
엥? 이건 또 무슨 돼지 똥 싸는 소리야?
샤이는 이게 뭔가 싶어 은하를 바라봤다. 그러자 은하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흑…… 난 네가 웃길래…… 너 원래 안 웃잖아. 완전 슬프게 웃었는걸. 그래서 내가 낚싯대 가지러 간 사이 물에 뛰어든 줄 알았단 말이야.”
“…….”
은하는 아직도 진정이 되질 않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멍청한 생각이냐고. 바보 아니냐고.
반박하고 싶은 부분이 가득한 말이었지만, 샤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은하를 향해 팔 하나를 내밀었다. 그러자 은하가 샤이를 향해 와락 달려들었다.
옷이 다 젖어 찝찝할 법한데도 꼭 끌어안은 채 엉엉 우는 걸 보며, 샤이가 그 작은 등을 토닥여 주었다.
“미안……. 걱정 끼쳐서 미안해.”
그리고 하림을 보며 다시 말했다.
“죄송해요. 앞으로 안 그럴게요.”
아이의 사과에 하림이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너…… 지금 한 말 꼭 지켜. 진짜 또 걱정 끼치면…….”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샤이는 고개를 숙여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꽉 다문 잇새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아저씨, 울어요?”
“아저씨 아니야!”
‘아니’라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샤이는 그런 하림을 보며 작게 웃었다.
왠지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다. 눈물이 날 정도로 말이다.
====================
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