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33
제 233 화
널찍한 방이었다. 한눈에 봐도 고풍스러운 벽지와 값비싼 가구들이 즐비했고, 과할 정도로 폭신한 이불이 침대 위에 깔려 있었다.
바닥에 깔린 흑색의 카펫, 그리고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 흠 잡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완벽한 방이었다. 단 하나, 창문이 없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아니다. 문도 잠겨 있으니 두 개군.”
재우는 잠긴 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급 시험 이후 이사장님의 명으로 갇힌 게 벌써 며칠인지…… 일주일을 넘긴 뒤부턴 날을 세는 것도 까먹어 버렸다.
뭐, 감옥이라기엔 과할 정도로 화려한 데다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꼬박꼬박 나오지만, 그렇다고 편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른 걸 다 떠나 심심해 죽을 것 같았다.
아주 가끔 리리아가 면회(?)를 오긴 했지만 길어야 30분이었고, 이것도 요즘 들어선 좀 뜸해져 슬플 지경이었다.
창도 사람도 없는 곳에 혼자 있으니 오죽 그러겠는가.
더욱이 그가 누구던가. 봉사 동아리라는 명목하에 매일 이곳저곳을 때려 부수며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그런 그에게 이곳이 편할 리 없었다.
“……때려 부수고 나갈까?”
두꺼운 철문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하던 재우는 이내 제 생각을 접고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나갈 수 있냐 없냐를 떠나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형과 내통한다는 의심을 남겨줄 거 같았다.
분명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러니 이런 곳에 가뒀을 테고.
“아, 진짜…… 형 때문에 이게 뭐냐고.”
긴 한숨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요새 그가 하는 생각은 하나였다. 내부의 적과 한통속이 된 자신의 큰 형.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클레이즈를 배신했을까.
비록 그가 호기심도 많고 학구열도 과할 정도로 넘쳐 나긴 하지만, 그런 사이비 같은 집단에 들어갈 만한 성격은 아니었다. 보기보다 실리주의자였고, 손해 보는 짓은 결코 안 하려 하니까.
더욱이 하진을 죽이려고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건 단순한 부상이 아니었다. 만일 자신이 때맞춰 도착하지 않았다면 분명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래…… 이건 장난이라 치기엔 도가 너무 지나쳤어…….”
그래서 더 믿기지 않기도 했다. 해우와 하진이 어떤 사이인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죽이려 할 수 있지? 그 정도로 내부의 적의 사상이 좋은 건가? 대체 뭐 때문에?
리리아에게 내부의 적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재우의 기준에 그곳은 정신병자 집단이었고, 범죄자 무리였으니까. 그 어린아이들을 잡아다 고통을 주는 몰상식한 곳에 뭐 얻을 게 있단 말인가.
“진짜 돌겠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재우는 답답함에 침대 위를 구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때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걸어둔 걸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리아인가 싶어 고개를 드는 순간 문이 열리더니 보고 싶으면서도 보기 싫은 얼굴이 나타났다.
“……하진이 형?”
괜찮아졌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아직은 좀 더 안정을 취해야 할 텐데.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나?
걱정을 섞어 바라보자 그가 마치 그 생각을 읽은 듯 입을 열었다.
“태평하군, 내 걱정을 다 하고 있고.”
어쩐지 조금 차가운 목소리였다.
“……움직여도 괜찮은 거야?”
재우의 질문에 하진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보여?”
“……아니. 안 괜찮아 보여.”
정말로 안 괜찮아 보이긴 했다. 혈색은 좋아졌지만, 전에 비해 좀 더 야위었다. 더욱이 잠도 잘 못 잤는지, 눈그늘도 짙게 그려져 있었다.
재우는 불편함에 애먼 시트 자락만 만지며 자리에 앉았다. 그사이 하진이 문을 닫고 의자를 끌고 왔다.
“석재우.”
“응.”
“도망 안 쳐?”
“…….”
도망 안 치냐니…… 대체 무슨 의도로 묻는 것일까.
“내가 도망쳐야 해?”
“아니. 그러라 할 줄 알았거든.”
그럴 줄 알았다도 아니고, 그러라 할 줄 알았다니.
의도가 뻔히 보이는 말에 재우가 인상을 팍 구겼다.
“……뭐야. 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해.”
화가 조금 섞인 목소리에 하진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재우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 하민을 보며 하나도 안 닮았다고 하지만, 실로 정말 닮지 않은 형제는 해우와 재우였다.
해우가 속을 알 수 없는 시커먼 녀석이라면 재우는 지독할 정도로 겉과 속이 같은 녀석이니까.
어떻게 교활한 해우의 밑에서 이 정도로 단순하고도 올곧게 자랄 수 있었던 걸까.
하진은 다리를 꼬며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단 하나야.”
“뭔데?”
“정말로 몰랐어?”
재우가 불쾌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리 단순해도 저 질문에 담긴 뜻을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형의 배신을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 미안하지만 난 그 또라이 집단이 있단 것도 몰랐거든?”
정말로 화가 났는지 재우의 목소리가 점점 격해졌다.
“형이 그 엿 같은 집단에 포함된 것도, 또 그들이 뭔가 노리는 게 있어 전대 교수님들을 살해하고 전임 교수가 된 것도, 그리고 유림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한 것도 리리아 누나가 말해줘서 알았어.”
“그래?”
하진은 턱을 쓸며 재우의 분위기를 살폈다.
제 생각대로 재우는 해우의 일에 대해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한편으론 당연했다. 해우가 제 살처럼 아끼는 동생을 이런 위험한 일에 끼게 할 리 없으니까. 어쩌면 이렇게 감금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해우의 입장에선 좋은 일일지도 몰랐다. 지 동생 잘 보호하고 있어 줬다고.
“…….”
하진이 아무 말 없이 저를 살피자 그 불편함에 재우가 이를 갈았다.
학교 건물을 때려 부숴도 형한테 혼나는 것 외엔 없었던 자신이 이렇게 친한 형한테 범죄자 취급까지 받다니.
결국, 불쾌함을 참지 못한 재우가 항변하듯 투덜거렸다.
“억울해 미치겠네. 나 진짜 아니거든? 내가 우리 형하고 내통하고 있었으면 형을 살렸겠어? 솔직히 내가 그 타이밍에 간 거 운이거든? 나 아니었으면 형 죽었어. 물론, 형이 날 안 믿는 건 알겠지만…….”
“믿어.”
제 말을 가르고 들려오는 하진의 목소리에 재우가 눈만 깜빡였다.
“……믿어? 진짜 믿어?”
“그래, 넌.”
넌.
짧게 덧붙이는 말에 재우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해우가 하진을 죽이려 했으니 그가 해우를 못 믿는 건 당연한데, 어쩐지 조금 서운하단 생각이 들었다.
“형…… 우리 형하고 싸울 거야?”
하진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재우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형이라면 우리 형 말릴 수 있잖아.”
“하- 내가 나한테 칼을 꽂은 녀석을 말려야 해?”
“그니까! 그 정도로 형이 이상해졌단 거잖아. 그니까 형이…….”
“석재우, 그 자리에 하민이가 있었어.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
안다. 하민이도 위험했을 수 있단 뜻이겠지.
자신도 그 상황이었다면 똑같이 분노하고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임을 알기에 재우는 말을 삼킨 채 시선을 내렸다.
시계의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거슬릴 만큼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진은 저를 쳐다보지도 못하는 재우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그래.”
“……푹 쉬어. 약 꼬박꼬박 먹고, 잠도 좀 자고.”
이 와중에도 제 건강 상태를 살피는 재우의 모습에 하진이 작게 웃었다. 눈도 못 뜨는 세룬도 제 상태를 걱정하더니 구금 중인 재우도 이런다.
“너나 푹 쉬도록 해.”
하진은 재우에게 짤막한 인사를 남긴 뒤, 그대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재우가 다시금 침대 위로 쓰러졌다. ‘철컥’ 하고 걸쇠가 잠기는 것이 암담한 제 미래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리리아 누나 말론 형이 어떻게 해서든 한 번은 클레이즈로 온다는데, 괜찮을까? 형하고 하진이 형 싸우겠지? 아…… 형이 잡혔으면 좋겠지만, 다칠 거 생각하면 미치겠다. 설마 죽이진 않겠지?’
섬뜩한 상상에 마른침을 삼킨 재우가 그러진 않을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한 거냐고, 이 화상아…….’
머릿속에서 자꾸 해우가 다치는 모습이 반복돼 마음이 심란했다.
재우는 머리털을 잡아 뽑을 정도로 세게 움켜쥐며 딱따구리처럼 머리를 침대에 박았다.
그때 다시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재우가 화들짝 놀라며 고갤 돌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뚝 하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
오늘은 무슨 날인 걸까? 평소에도 보기 힘든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너무 예상외의 인물이 쳐들어와, 당황해 버린 재우는 잔뜩 엉망이 된 머리를 움켜쥔 채, 눈만 깜빡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방문자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케이에게 간략한 상황 보고를 한 유림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그를 찾아뵙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뒤늦게야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고, 날이 밝기 무섭게 샨을 제한 일행이 온실에 모였다. 그곳엔 이사장은 물론, 리리아와 세룬, 그리고 하진도 함께였다.
곧이어 테오가 커다란 클레이즈 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쳐 보였고, 마치 작전을 지시하는 참모처럼 전날 일행에게 했던 계획을 교수님들 앞에서 아주 차분히 설명했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교수님들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나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
정적과도 같은 침묵 속에 유림은 눈만 데구루루 굴렸다.
테오의 모든 설명이 끝났음에도 그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유는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눈에 붕대를 감고 있는 세룬이 기가 차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니들 미쳤어요?”
존대도 반말도 아닌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임에도 정확히 테오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다시금 물었다.
“제정신 아니죠?”
“아니요. 저희 멀쩡합니다.”
“다들 동의했고?”
“그럼요.”
이 모든 일의 지휘자인 테오가 확고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제야 세룬을 비롯한 모두가 1클래스 아이들이 이 계획을 진심으로 실행할 것임을 깨달았다.
리리아는 어디서부터 이를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며 정체불명의 앓는 소리를 냈다.
“으아아으…… 얘들을 어쩌면 좋아.”
“어떤 의미론 파격적이네.”
태평하게 곰방대를 뻑뻑 피우는 케이의 모습에 리리아가 테이블을 박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렇게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잖아! 너희 목숨 두 개니? 아니면 충격받아서 머리가 어떻게 됐어? 이런 미친 생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거야!”
리리아가 저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걸 처음 듣는 디하르가 작게 움찔거렸다. 하지만 테오는 아무렇지 않은지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사실입니다. 지금 저희 전력으로 이것보다 빠르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건 없어요.”
“실패하면?”
“실패해도 상관없습니다. 저희의 일차적 목표는 그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피해를 주는 거니까요.”
평소 장난기 많고 까불까불한 테오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리리아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좀 전에 들은 계획을 다시 곱씹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무모했다. 아니, 무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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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