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40
제 240 화
바깥의 사정을 모른 채, 아이들의 부탁에 따라 얌전히 온실에 있던 세 교수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번개의 향연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대재앙이 따로 없네요.”
온실 중앙에 있어 보이는 시야가 천장 부근으로 한정되었지만, 루아가 마법을 화려하다 못해 과격하게 쓰고 있단 건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좀 전엔 어디서 큰 폭발이라도 일어났는지 엄청난 굉음도 들렸다.
“비슈아드의 멸망도 이보단 평화로웠을 거예요.”
어떻게 비슈아드의 멸망을 이곳에 갖다 붙이겠냐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너무 엄청나서 그런지 리리아도 하진도 반박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 상황에 대한 평이 고작이었다.
“……땅에서 올라가는 벼락이라니. 내 평생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루아의 능력이 대단한 건지, 그걸 이만큼 쓸 수 있게 한 아슈팔이 대단한 건지 모르겠네.”
“둘 다겠지.”
세룬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하하 소리 내 웃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애들을 걱정하더니만 바깥의 꼴을 보더니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리리아도 하진도 긴장이 풀렸네요. 설마 아이들의 부탁 잊은 건 아니죠?”
그제야 두 사람이 흠칫 몸을 떨었다.
삽시간에 어두워진 표정에 세룬은 정말이지 이 두 사람이 1클래스 아이들만큼이나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렇죠…… 아이들이 저렇게 위험한 짓까지 해대는데,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순 없죠.”
“재우는 찾았어요?”
세룬의 질문에 하진과 리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1클래스 아이들이 계획 보고를 하러 온 날, 홀연히 모습을 감춘 재우는 지금 이 시각이 되도록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다만 조금의 저항도 하지 않은 듯한 방의 풍경을 보며 탈출은 물론, 내부의 적이나 다른 위험한 사람이 데려간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얌전히 있던 애가 그럴 린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따라 나섰을 확률이 크다.
하진은 위를 올려다봤다. 성물 한 마리가 루아의 전기에 착륙하지 못한 채, 하늘을 이리저리 날고 있는 게 보였다.
해우가 주로 날 때 타고 다니는 녀석이란 걸 알고 있는 하진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석해우가 데려간 건 아닌 것 같으니 크게 신경 안 쓰기로 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세룬은 그리 답하며 테이블 아래 서랍을 주섬주섬 뒤졌다. 뭐 하나 싶어 쳐다보니 곧이어 그가 큼직한 종이 하나와 펜을 꺼냈다.
“아이들이 저렇게 움직이는데 우리라고 가만있을 순 없죠.”
세 개의 긴 세로선을 긋고 나서, 가로선을 짧게 짧게 그리는 걸 보며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은 리리아와 하진이 표정을 굳혔다.
“밖으로 나가게요?”
“딱 한 명만요.”
“하지만 아이들이 부탁한 게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 말 잘 듣는 교수였나요.”
대사가 심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두 사람 다 반박하진 않았다. 내심 나가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럼…… 한 명만 나가는 겁니다.”
“그래요. 딱 한 명만 나가요.”
“그럼요. 아이들 부탁도 있는데 딱 한 명만 나가야죠.”
나가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에 교수들 사이로 보이지 않는 기가 튀었다.
사다리를 다 그린 세룬이 위에 숫자를 적곤 당첨 자리를 적기 위해 시선 내리다 손을 멈췄다.
대놓고 그리는 바람에 사다리의 위치를 다 외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리리아와 하진도 외운 지 오래였다.
“음…… 이거 어째 여행 전과 상황이 비슷해지네요.”
쓸데없이 이런 쪽으론 머리들이 좋다니까.
그가 구시렁거리며 혀를 찼다.
아무나 와서 뽑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리 생각하며 펜 끝을 잘근잘근 씹을 때였다.
히야스를 보겠다며 들어간 덴 케이가 나온 걸까.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절묘하게 번호를 골라줄 사람이 등장했단 사실에 세룬이 반색하며 펜을 들었다.
“아, 케이. 와서 이것 좀…….”
점점 흐려지는 말과 함께 세룬이 그만 펜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곧이어 펜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잉크가 바닥에 튀었다.
***
루아가 전기를 거둔 건, 륜과 하민, 테오가 빈 건물에서 해우를 어떻게 떨어트릴지 궁리할 때였다.
레이먼이 도와준 탓에 성물까지 공격이 닿은 탓인지, 아니면 바닥에 흐르는 잔류 전기 때문인지 해우는 쉽게 땅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혹시 날 수 있는 녀석 있어?”
테오의 질문에 하민이 릴페의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 난 나는 괴물들하고는 상성이 잘 안 맞아서…….”
“그럼 저 위에 있는 녀석을 잡을 수 있는 앤?”
“음…… 좀 위험한 애가 하나 있긴 한데, 얘는 나도 통제가 어려운 애라 우리의 계획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최후의 보루라는 소리에 테오는 일단 하민의 새로운 친구는 기억 밖으로 밀어냈다.
“이거 아무래도 직접 위로 가서 떨어트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네.”
“어떻게 올라가게? 저건 그냥 뛴다고 될 높이가 아니야.”
하민의 말에 곰곰이 고민하던 륜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아주 잠깐이라도 녀석의 정신을 흩트릴 수 있는 게 없을까? 솔직히 높이만 조금 낮으면 올라가는 건 가능할 거 같은데…….”
“정말로 가능해?”
“응. 근데 기회가 한 번밖에 없어, 받아줄 것도 필요하고.”
순간 그가 뭘 하려는지 깨달은 테오가 조금 불안한 눈을 했다.
륜은 그 시선을 외면한 채, 하민을 바라봤다.
“새디만큼 큰 애는 아니지만 떨어지는 걸 받아줄 만한 친구는 있어.”
“그럼 그건 걔한테 부탁할게. 어쨌든 방해할 게 필요해. 아주 잠깐이라도 성물의 움직임을 멈출 만한 거.”
세 사람은 그럴 만한 게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가장 좋은 건 무기였지만, 하민이나 륜이 가지고 있는 검을 저렇게 높이까지 던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테오의 검은 무게에서 탈락이고.
“창이나 활 같은 게 없나.”
있다 해도 다룰 수 없어서 문제려나, 라는 말을 덧붙이던 테오의 머리 위로 유림이 떠올랐다.
“한유림이면 할 수 있지 않나?”
“아, 맞아. 림 활 잘 쏘잖아.”
테오는 다급히 유림을 부르다 그녀가 아직 펜던트의 통신을 켜지 않았음을 깨닫고 은하를 대신 불렀다.
곧이어 이야길 전해 들은 유림이 펜던트의 통신을 켰다.
「나 불렀어?」
유림의 질문에 테오가 버럭 화를 냈다.
“너는 왜 통신을 끄고 다니는 거야!”
「미안미안. 건물 무너지는 소리 때문에 귀 아플까 봐 껐어. 잠깐, 루아랑 레이먼이랑 디하르도 통신 끈 거 같은데 왜 나한테만 화내!」
“넌 네가 하라고 했잖아!”
아주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테오는 유림이 욱하는 마음에 통신을 끊을까 싶어 잽싸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네 이즈네 교수님 처리했지?”
「응. 아마 누가 꺼내주지 않는 한 평생 못 나올 거야. 왜?」
“평생이라니…… 살벌한 자식.”
「끊는다.」
“어허,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어쨌든 진유 교수님 찾는 중이면 잠깐 이쪽으로 와서 도와줘. 해우 교수님을 추락시켜야 해.”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하민과 륜은 테오야말로 표현 한번 살벌하다 생각하며 유림의 대답을 기다렸다.
통신구 너머로 세 사람이 어찌할지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었기에 결국 셋 다 일단 이쪽과 합류하기로 했다.
얼마 안 있어 유림과 은하, 샨이 도착했고, 건물 옥상에서 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은하는 세 사람의 상태를 살핀 뒤, 가벼운 마법으로 기력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사이 은하와 샨은 위를 바라보며 상황을 살폈다. 해우의 성물은 온실 주변만 빙빙 돌고 있었다.
“해우 교수님은 계속 저러고 계시는 거야?”
“응. 도통 내려올 생각을 안 하시네.”
그리 중얼거리던 하민이 무언가 좀 이상함을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아까부터 온실 주변만 날고 계시지?”
“……그러게.”
이쪽 교수는 이미 당했고, 성물도 크게 다쳐 거둬들여야 했다. 하지만 해우의 늄이 바닥난 건 아니었다. 그가 이곳에서 소환한 성물은 한유림 쟁탈전이나 입학시험 때 보여줬던 급도 되지 않았다.
설령 그가 어딘가를 다쳤다면 저곳이 아닌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면 됐고, 동아리 교사가 무너지는 걸 보고 건물을 위험하다 여겼으면 다른 두 교수와 합류하면 됐다. 그도 아니면 다시 얼음 서고로 돌아가거나.
근데 왜 저러고 있는 걸까.
온실을 노린다기에도 뭔가 이상한데…….
“무언가 의미가 있는 행동일까?”
“글쎄…….”
유림과 하민이 곰곰이 고민하자, 복잡한 걸 딱 싫어하는 테오가 두 사람의 머리를 헤집었다.
“으으으-! 다들 뇌 좀 그만 굴려. 생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동을 못 하게 된다고. 거기다 우리 잡아야 할 사람들 더 있어.”
고민할 시간 없다는 뜻에 유림이 알겠단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나뭇조각을 꺼내 기다란 활로 변형시켰다.
입학시험 때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녀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구름 고래가 생각나네…….”
유림의 중얼거림에 은하가 주먹을 꽉 쥐며 의욕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림. 다치면 그때처럼 완벽하게 치료해 줄게!”
……안 다친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니?
떨떠름한 얼굴로 활시위를 몇 번 튕긴 유림이 륜을 바라봤다.
“그래서. 어떻게 올라갈 건데.”
“테오가 날 위로 올릴 거야.”
“…….”
아주 간결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별의별 고생을 함께한 탓일까. 일행은 그 짧은 말 안에 두 사람이 뭘 할지 절로 깨닫게 되었다.
이미 교수님들 뒷목 잡고 쓰러질 수준의 일을 벌인 데다, 말려도 할 걸 알기에 무식한 짓이라며 타박하는 이도 없었다. 오직 은하만이 다시금 두 주먹을 꽉 쥐며 의욕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륜! 네가 다치면 림한테 해준 것처럼 완벽하게 치료해 줄게.”
“그, 그래. 고마워.”
은하의 당부에 그제야 조금 걱정이 들기 시작한 륜이 한 자루의 검을 왼손에 든 채, 옥상 끝에 섰다.
테오도 그와 마주 보는 위치 끝에 서서 커다란 검이 디딤판이 될 수 있도록 비스듬히 세웠다.
샨은 하늘을 바라보며, 륜과 테오, 그리고 해우 교수님이 일직선상에 놓일 타이밍을 잡았다.
유림도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그 손끝에서 활과 이어지는 보랏빛 화살이 만들어졌다.
“머리 쪽으로 쏴, 아니면 날개 쪽으로 쏴?”
“코앞. 놀라서 머리를 들게 해야 해.”
“알았어.”
테오의 말에 유림이 한쪽 눈을 감은 채 성물을 겨냥했다.
약간의 기다림 후, 크게 활공하던 성물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왔다.
샨은 곧바로 륜을 불렀고, 그와 동시에 다리에 늄을 부여한 그가 테오의 검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테오는 그 타이밍에 맞춰, 검에 늄을 부여했다.
륜이 다치지 않을 정도, 하지만 높이 뛸 수 있도록 추진력을 더할 위력.
그리고 륜의 발이 검에 닿는 순간, 그가 온 힘을 다해 내던지듯 검을 높이 휘둘렀다.
“으아아압-!”
작은 폭음과 함께 륜이 높게 도약했다. 그리고 그를 뒤따라 유림의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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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