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44
제 244 화
검이 살을 파고드는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눈앞에 흩뿌려졌다.
다단은 제 목을 움켜잡았다. 아슬아슬하게 급소를 빗겨나간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듯 흘러나왔다.
“하…….”
방심에 혀를 차는 이쪽과 달리 유림은 회심의 일격이 반쯤 실패했음에도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한편으론 좀 더 이 싸움을 오래 할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일까. 다단은 혹시 그녀가 자신을 일부러 봐준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께름칙한 생각에 미간을 찌푸리는 사이, 그의 배를 걷어찬 반동으로 거리를 벌린 유림이 검을 고쳐 잡기 무섭게 바로 달려들었다.
다단이 이를 꽉 깨물며 필사적으로 검을 들었다.
두 자루의 검이 쉼 없이 다단을 몰아붙였다. 마구잡이로 보이는 것과 달리 공격은 강약 조절이 뚜렷했고, 한 합 한 합 예리함을 빛내며 교묘하게 허점을 파고들었다.
유림을 본 이래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집중력에 다단이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내가, 너를 많이 무시한 모양이구나.”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싶어 눈살을 살짝 찌푸릴 때, 갑자기 눈앞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놀란 유림이 잽싸게 몸을 물렸다. 뒤에 있던 은하도 놀라 그만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으엑~?”
“뭐, 뭐야, 저게?!”
두 사람의 입에서 괴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작은 불덩이 몇 개가 긴 꼬리를 그리며 다단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불 마법도 쓸 줄 아세요?!”
유림이 기가 막힌다는 듯 묻자 다단이 제 목의 상처를 가볍게 불로 지져 지혈했다.
아플 법도 한데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는 그 모습에 유림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1형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건 가능하지.”
“돌겠네, 진짜…….”
형 위주, 그리고 개인 각각의 재능을 중점적으로 키우고 발전하는 클레이즈의 수업 방식에 익숙해져 그만 잊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늄을 쓸 수 있는 마법사는 해당 형의 마법 말고도 여러 가지의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재능이나 적성에 따라 할 수 있는 범위와 위력이 달라지겠지만, 불가능하진 않았다.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마법사들의 경우 다양한 분야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쓰곤 했다.
솔직히 클레이즈처럼 마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학교나 전공처럼 형을 나눴지, 보편적인 마법사나 일반인들은 이를 분리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결론을 말하자면, 클레이즈의 교수들도 다른 형의 마법을 쓰는 게 가능할 것이다.
여태 안 썼던 것뿐이지!
“할 말이 없다, 진짜.”
“이건 반칙 아니야? 난 치료 마법 말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나도 억울해 미치겠다. 누구는 아예 못 쓰거나 피 토하는데 저렇게 대놓고 쓰고 있으니!”
유림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나뭇조각 세 개를 꺼냈다. 그리고 다단이 날려 보낸 불덩이를 피하며 바닥에 집어 던졌다.
늄을 부여하자, 나뭇조각이 점점 그 부피를 늘리더니 유림이 자주 애용해 써먹던 목각 인형으로 변했다.
“오-!”
유림보다 한 뼘은 커 보이는 녀석들을 보며 불덩이를 요리조리 피하던 은하가 감탄했다.
전에는 조각을 조합해서 만드는 식이었는데, 인제는 저 작은 하나만으로도 저렇게 크게 만들 수 있다니.
“히야스 교수님 늄 짱!”
“아니지, 이건 내 실력이지!”
하나는 은하가 있는 쪽으로 보낸 유림이 두 목각 인형의 엄호를 받으며 다단의 공격을 피했다.
“머릿수를 늘린 건가?”
“교수님이 기술을 늘렸으니, 전 수라도 늘려야죠.”
“재밌군.”
다단이 허공에 불덩이를 몇 개 더 띄웠다. 그것은 조금 전의 것보다 좀 더 컸고, 온도도 높은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아아- 진짜. 그런 거 반칙이라니까…….
유림이 쓰게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유림과 다단의 싸움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데몽과 쌍둥이의 얼굴이 놀라움에서 감탄으로 바뀌었다.
목각 인형이 더해진 연계 공격은 좀 전 은하와 합을 맞출 때보다 더 다양하고 변칙적인 수를 쓰게 해주었다.
목각 인형은 다단이 쓰는 자연계 마법이 불임에도 그을리기만 할 뿐 타들어가지 않았고, 토막 나거나 부서져도 몇 초 안 있어 다시 재생됐다.
유림은 그것을 때때로 칼로, 어떨 땐 방패로 이용하며 싸웠다.
데몽은 상상을 뛰어넘는 전투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안젤리카와 싸웠을 때도 무지막지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지금은 차원이 달랐다. 만일 바닥에 덫이 깔려 있지 않았다면, 얼음 서고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변 지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공격적이고 가히 파괴적이기까지 했다.
일행이 감탄하는 것도 당연했다. 다만 단 한 사람, 디하르만큼은 유림의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표정을 굳혔다.
“점점 빨라지고 있어…….”
중얼거림과도 같은 말에 루아와 데몽이 고갤 돌렸다.
디하르가 아랫입술을 짓씹더니 제 셔츠 자락을 찢었다. 그러곤 오른손과 검의 손잡이를 함께 묶었다. 은하가 치료를 해줬지만,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 데다 아까처럼 검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로 매듭 끝을 잡아당기는 디하르를 보며 레이먼이 당황했다.
“싸우게?”
“유림을 말려야 해.”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말린다고?
“무슨 소리야? 쟤를 왜 말려. 그리고 지금 저 판에 어떻게 끼어들어.”
다단의 공격이 다양해지고, 이에 맞춰 유림도 현란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은하와의 접촉 또한 좀 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디하르가 어찌 저 안에 낀단 말인가.
아무리 그가 기사고 검술에 능하다 해도, 이 판에 끼어드는 건 누가 봐도 무리였다. 까딱하다간 양쪽의 균형이 무너져 서로에게 독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디하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유림의 호흡을 한번 정리해 줘야만 했다.
“저렇게 싸우다간 몸이 못 버틸 거야.”
데몽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어째서?”
“너무 빨라.”
그가 몸을 일으키며 뒷말을 덧붙였다.
“은하가 해줄 수 있는 건 체력과 어느 정도의 늄 회복이야. 근데 지금 유림은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 움직이고 있어. 저건 유림이의 근력이나 기력이 감당할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야.”
거기다 은하와의 접촉이 줄어들면서 상태 회복의 텀도 길어졌다. 문제는 그럼에도 유림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단 것이다.
알면서도 무리를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싸움에 고양되는 바람에 그조차 인식을 못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를 해치운다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었기에 저렇게 무리해서 움직여선 안 됐다. 더욱이 그녀는 몸 상태와 늄을 조절해 가면서 쓸 필요가 있었다. 경계가 허물어진 순간, 그녀가 사용하는 건 늄이 아닌 목숨이 되니 말이다.
디하르가 유림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고,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데몽은 뒤늦게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깨닫고 미간을 구겼다.
“망할…….”
“뭔데? 왜 그래?”
데몽은 레이먼의 질문을 듣지 못했는지 작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목각 인형의 보호로 다단의 불 마법을 피하곤 있지만, 이에 급급해 유림과의 거리가 제법 벌어졌다.
디하르가 유림의 호흡을 정리한다면, 데몽은 은하가 움직일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대한 늄의 기운이 덮친 건 그때였다.
다단과 검을 겨루는 데 정신이 없던 유림조차 흠칫 떨며 몸을 굳힐 정도였다.
그것은 여태 겪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곧이어 하늘을 비롯한 사방에서 시야를 메울 만큼 수많은 마법진이 형성됐다. 신물과 괴물들의 통로, 즉 소환진이었다.
“말도 안 돼…… 이럴 늄이 남아 있다고?”
좀 전에 그렇게 많은 소환물을 꺼내놓고서……?
믿을 수 없단 얼굴로 굳어버리는 유림을 보며 다단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이런…… 정말로 시간이 다 되어버렸군.”
그게 무슨 뜻이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이에 답을 주듯 다단이 가볍게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이제 애들은 빠질 시간이란 뜻이지.”
마치 유림을 놀리기라도 하듯, 어마어마한 수의 신물이 제1교사를 중심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
테오와 샨이 진유를 찾은 건 유림이 목각 인형을 만들 즈음이였다.
발견한 장소는 우습게도 동아리 교사.
이즈네가 안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샨의 말에 어쩌면 그녀를 구하러 갔을 수도 있다는 테오의 추측이 딱 하고 들어맞은 거였다.
운이 좋게도 진유가 아직 무너진 교사 밑에 깔린 이즈네를 구출하기 전이라 둘을 잡아야 하는 성가신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좀 전 엄청난 수의 소환물을 꺼내지 않았던가. 늄을 어느 정도 이상은 썼을 테니, 무리한 소환은 불가능할 것이다. 상대하기도 좀 수월하겠지.
이를 증명하듯 진유가 두 사람을 보며 약간 낭패감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제 앞에 두 마리의 신물을 소환했다.
이족 보행을 하는 푸른색의 신물이었는데, 애석하게도 샨과 테오의 지식에 없는 생명이었다.
“으아. 내가 진짜 외모 가지고 뭐라 하는 거 완전 싫어하는데, 얘넨 너무 무섭게 생겼다!! 신물이면 좀 우아하게 생겨야 하는 거 아니야?!”
신물이 들었다면 편견이라고 할 만한 이야길 소리치며 테오가 저에게 달려드는 푸른 신물의 턱주가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샨은 별다른 답을 달지 않고 무너진 잔해 안으로 들어가려는 진유를 막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제 앞을 가로막는 신물 한 마리에 의해 발이 묶이고 말았다.
해우가 성물을 소환해 두고 함께 싸우는 성격이라면 진유는 뒤에서 얌전히 그들을 부리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인지 진유의 소환물은 상대방을 처치한다기보단, 주인을 지키는 것에 더 초점을 두고 움직였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막힌 건 이 때문이었다.
“테오, 네가 이 둘 맡아.”
“아씨. 한 놈도 버거운데 그게 가능하겠냐? 이 자식들 질척거려서 싸우기가 불편하다고!”
툭 까놓고 말해 해우나 다른 교수랑 싸우는 게 더 나을 편이었다.
긴 팔로 동선이란 동선은 다 막고, 심지어 중간중간 육체가 투명해지는 바람에 검이나 폭발도 별 효과가 없었다.
“으아아- 나 오늘 대진운 진짜 없네. 6형이고 7형이고, 정말이지 소환 계통이랑은 안 맞는다니까-!”
테오의 비명을 뒤로한 채, 샨은 주변을 둘러봤다.
어차피 최종 덫이라고 할 수 있는 동아리 교사는 무너뜨렸으니 이 근처의 땅이 조금 망가진다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 판단한 샨이 신물을 쳐 낸 뒤, 소리쳤다.
“테오, 뒤로 물러나!”
“뭐?”
“어서!”
테오는 검을 땅에 부딪쳐 작은 폭발을 일으킨 뒤, 그 반동으로 물러났다.
그러기 무섭게 땅속에서 푸른빛의 싹들이 트더니 이내 거대한 나무 덤불이 되어 서로 엉켜 나갔다.
흡사 커다란 움집처럼 돔 모양으로 신물 두 마리를 가둔 나무 감옥을 보며 테오가 다 된 전구처럼 눈만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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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