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46
제 246 화
통신구를 끊고 진유를 쫓아가는 테오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루아가 거대한 전기 덫을 사용할 때와 만일 그러지 못할 때를 대비해 여러 계획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나 시원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변수가 너무 많았고, 샨과 함께 해본 전적이 없어서 어떻게 맞춰 나가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자꾸 달려드는 괴물과 신물이 너무 성가셨다. 지금만 해도 추적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테오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괴물의 배를 가르고 무너진 잔해를 뛰어넘어갔다.
그때 샨이 불쑥 물어왔다.
“어떻게 할까.”
어쩐지 가슴을 후벼 파는 질문에 테오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미안하다. 아직 마땅한 게 안 떠올랐어.”
“도리어 내가 좀 미안하네. 내가 아니라 륜이 있었다면 좀 더 작전 짜기가 쉬웠을 텐데.”
유림과 은하가 그렇듯, 당연 테오도 데몽이나 륜과 함께 있는 것이 좀 더 원활하게 작전을 짤 수 있었다. 오랫동안 같이 다녔고, 또 서로의 특징을 잘 알기에 별도의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행동하는 게 가능했다.
“피장파장이지. 너도 요한이랑 왔으면 훨씬 더 나았을 거 아냐.”
테오의 말에 샨이 그건 그렇다며 작게 웃었다.
어쩌면 그의 말과 달리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요한일지도 모른다. 기술 특성상 저보다 요한이 좀 더 수월하게 진유와 대적할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지금에 알맞은 최상의 작전을 짜야 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샨의 실력을 알아야 했다.
“너 소환도 가능하냐?”
“엄지손가락만 한 신물 두 마리라면 소환할 수 있어. 근데 얘들은 탐색용이라 전투엔 적합하지 않아. 더욱이 지금 이 숲에 풀어놓는 건 잡아먹으라고 광고하는 꼴이니까.”
“1형 마법은 목계만 쓸 수 있는 거야?”
“뇌계랑 화계 조금 쓸 수 있어, 나무만큼은 아니지만.”
유림의 늄을 이식받은 영향인 걸까. 샨은 자연계 마법 중 유독 나무랑 상성이 좋았다.
“그 외에는?”
“기본적으로 8형 마법 빼곤 다 쓸 수 있어. 접촉만 하면 독을 쓰거나 반대로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가능하고. 3형은 좀 어렵지만 손, 다리, 이렇게 신체 부분부분이라면 단시간 강화도 가능해.”
정말 자잘하고도 잡다하게 하는구나…….
그래도 아까 1형과 7형 마법을 보니 다른 마법들도 꽤 쏠쏠하게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거기다 아슈팔이 직접 검까지 만들어준 걸 보면 검술 또한 어느 정도 가능하단 뜻이겠지.
어떤 의미로 그는 굉장히 균형이 잘 잡힌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공격과 수비, 마법과 체술.
그리고 테오는 신체와 공격에 특화된 타입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앞뒤 안 가리고 무식하게 싸우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무기에 속성을 부여할 때도 폭발이나 강화처럼 싸움에 도움이 되는 걸 주로 했었다.
“진유 교수님은…… 뭐를 잘하시더라?”
“소환?”
“그건 당연한 거고……. 넌 뭐 아는 거 없냐? 그래도 우리보다 1년은 더 다녔잖아.”
샨이 아주 잠깐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소환에 능통하고 지략이 뛰어나셨어. 다만 그에 비해 체술은 조금 부족한 거 같아.”
“체술이?”
“응. 클레이즈 행사 중에 각 교수를 필두로 하는 그룹 시합이 하나 있는데, 그때 보니 그런 거 같았어. 물론 교수님들이 제 실력을 다 내보이는 게 아니라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다른 교수님들이 하는 말도 그렇고, 어쨌든 평균적으로 타 교수님들에 비해 체술이 떨어지는 건 확실해.”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 말에 무언가 얻은 걸까.
테오가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샨, 너 약 5분 정도만 혼자 신물이나 괴물들 막아줄 수 있냐?”
갑자기 그건 왜 묻냐는 샨을 향해 테오가 간략하게 무엇을 할지를 설명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작전처럼 참으로 무식하면서도 간단했다. 그리고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샨은 다른 방법을 생각하자며 그를 회유할 수가 없었다.
우선적으로 그가 너무나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마치 그 작전에 도화선이 되듯 두 사람이 드디어 진유를 따라잡았기 때문이었다.
“찾았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 테오가 크게 소리쳤다.
진유가 두 사람을 확인하곤 조금 낭패의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하민이처럼 괴물이라도 타고 달리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뛰어다니셨구먼.”
“그러게. 거기다 장소도 좋아.”
클레이즈에 있는 작은 분수 광장. 덫이 될 교사는 주변에 없었지만, 괴물과 신물도 몇 없었다.
번거롭게 방해할 녀석들도 없고, 시야도 뻥 뚫려 진유를 찾기도 쉬웠다.
속도가 생명인 작전이었기에 두 사람은 진유가 소환진을 펼쳤음에도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였다.
“부탁한다.”
샨의 짤막한 말에 테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부탁은 자신이 해야 하는데, 왜 그가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왠지 아까부터 해야 할 대사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말로.”
테오의 답을 끝으로 샨이 다리에 늄을 부여했다. 아주 잠깐의 심호흡 후, 그가 크게 도약했다. 삽시간에 진유와의 거리를 좁히는 그 추진력과 탄성력에 테오가 입을 벌리며 감탄하는 사이, 샨이 진유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땅을 짚고 늄을 부여했다.
뱀처럼 생긴 신물이 소환진에서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샨 주변으로 정전기가 일며 거대한 스파크가 터졌다. 여러 곳에서 터지던 스파크는 마치 심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덫에 옮겨붙더니 이내 길을 타고 강력한 전기를 내뿜었다.
그의 마법은 루아처럼 능숙하거나 커다란 위력을 가진 것이 아니었기에 비록 그 범위가 10m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진유를 주춤거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이를 피해 그가 뒤로 도망간 순간, 바닥의 돌이 갈라지더니 거대한 나무뿌리가 솟아올라 반구 모양의 감옥을 만들었다.
좀 전 신물 두 마리를 가둬 버렸을 때와 같았다. 다만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그 안에 갇힌 인물이 신물이 아닌 진유와 테오라는 것이다.
“……후.”
테오의 계획대로 확실하게 두 사람을 안에 가둔 샨은 저에게 달려든 신물을 피한 뒤, 나무 감옥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다.
머릿속으로 좀 전 테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을 진유 교수와 함께 가두라고. 그리고 외부에서 누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지켜달라고.
그것은 진유를 막는 것이지만 동시에 테오가 갇히는 일이기도 했다. 만일 진유가 그 안에서 위험한 괴물이라도 소환한다면 역으로 당하는 것은 그가 될 테니까.
하지만 테오는 조금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진유 교수님이 신물을 소환하는 것보다, 내가 그 목을 부러트리는 게 빠르니까.”
라고.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얼마 안 있어, 짤막한 비명과 함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샨이 나무 감옥을 부순 건, 약속한 5분이 지난 뒤였다. 주변의 괴물들을 얼추 정리하고, 테오가 끙끙거리며 진유를 포박한 후이기도 했다.
늄을 쓰지 못하도록 구속구까지 발에다 채운 테오가 뒤늦게 안심한 듯 바닥에 드러누웠다.
“괜찮아?”
샨의 질문에 테오는 고개를 내저었다.
인중을 타고 흐르는 피조차 닦을 수 없을 만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근육이란 근육이 다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몸은 늪에 빠진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땅에 착 붙어버렸다.
“으어…… 역시 3형 마법은 나랑 안 맞아…… 이건 몸이 너무 아파…….”
장기전으로 가면 질 것이 뻔했기에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전에 륜이 가르쳐 준 3형의 마법을 써봤는데, 후유증이 장난 아니었다.
거기다 위력을 끌어올리려고 형별 토너먼트 때 크라마가 했다는 것까지 응용하지 않았던가.
몸이 성하면 되레 이상한 거였다.
샨은 테오에게 다가가더니 그 어깨를 짚고 가볍게 늄을 부여했다. 뚜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던 몸이 점차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만일 샨이 이렇게 다양한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테오도 무리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직 잡아야 할 교수가 둘이나 더 있었으니까.
어떤 의미론 그의 잡다한 능력이 순식간에 진유를 제압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짧게 감사 인사를 한 테오가 기지개를 쭉 켠 후, 팔다리를 주물렀다.
“목뼈 부러트린다더니 살아 있네.”
“아, 그냥 허리 척추랑 늑골만 부쉈어. 목 부러트렸다가 재수 없게 죽으면 어떡해. 캐내야 할 정보가 산더미인데.”
남은 내부의 적 잔당은 물론, 스승님의 완벽한 복수를 위해선 과거 그에 관련된 인물들을 모조리 다 알아내야 했다. 유림이 일으킨 폭발로 대부분이 죽었다고 하지만, 살아남은 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처리는 그것을 다 안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그래도 고이 잡는 것은 내키지 않아 꽤 심각하게 뼈를 부러트렸다. 아마 전처럼 움직이긴 힘들 것이다. 재활도 오래 해야 할 테고, 어쩌면 아예 못 걷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테오는 입하고 뇌만 멀쩡하면 됐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 어떻게 할까? 특별한 작전 없으면 난 다시 림하고 합류했으면 하는데.”
“그래야지, 나도 륜하고 하민한테 가봐야 하고. 물론 그전에 이분부터 어따 안전하게 모시고 가야겠지만…….”
건물 아래에 가둔 게 아니고선 다 7교사에 가둬두기로 했는데, 이곳과는 거리가 꽤 먼 데다 신물과 괴물들이 바글바글해 그곳까지 옮기기엔 조금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아무 데나 뒀다간 내부의 적이 구하러 올 수가 있는데…….
어디 마땅한 곳이 없나 생각하던 테오의 귀로 진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이럴 줄 알았으면…… 몸을 사리는 게 아니었네요…….”
테오와 샨이 흠칫 떨더니 표정을 굳혔다.
설마 저 상태가 돼서도 입을 열다니…….
“한 가지 충고하죠…….”
간헐적으로 기침을 터트리던 그가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빨리 도망치는 게 좋을 거예요…….”
도망치라고?
속을 알 수 없는 말에 샨과 테오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녀석은 늄 냄새에 아주 민감하거든요…… 두 분의 마법에서 늄 냄새를 맡았을 거예요…….”
기침 사이사이로 들리는 말은 거짓이라기엔 느낌이 좀 이상했다. 다른 걸 다 떠나 그의 표정이 그랬다.
어쩐지 지나치게 긴장한 듯했다.
무언가 실수를 직감한 것처럼.
떠보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도망치기 위해 하는 술수도 아니다. 정말로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좀 전 클레이즈의 신물과 괴물을 소환했을 때처럼, 무언가가…….
“……지금 무슨 소릴…….”
이상한 낌새를 확신한 테오가 진유를 다그쳤다.
그때였다.
오싹한 감각과 함께 선뜩선뜩한 느낌이 척추를 찔렀다.
다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고, 식은땀이 등을 흠뻑 적셨다.
그것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혐오와 공포가 교묘하게 섞인 섬뜩함.
무언가가 뒤에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숨조차 쉴 수 없는 이 압박감은 뭐란 말인가.
거세게 쿵쾅거리는 고동 소리 사이로 반쯤 포기한 듯한 진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이미 늦은 것 같네요…….”
시린 한기처럼 서늘하고 음습한 기운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 위로 드리웠다.
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