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49
제 249 화
탁.
완벽하게 샨과 테오의 앞에 착지한 인물이 바람에 흐트러진 옷을 가볍게 털며 정리했다.
다소 풍성한 소맷자락이 바람에 펄럭였다.
죽을 각오가 순간 의문으로 바뀌었다.
왜 이 사람이 여기 있는 걸까. 분명 온실에서 이사장님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두 사람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 작은 등을 바라봤다. 그러자 마치 이에 답하듯 세룬이 몸을 돌려 귀엽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야하~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했네요. 두 사람 다 무사한가요?”
“세룬 교수님…….”
“흐음~ 표정이 왜 그럴까. 꼭 귀신을 본 듯한 얼굴이네.”
“어떻게 여길…….”
“아, 그게 온실에만 있으면 재미없잖아요.”
하하하하.
그는 앞에 끔찍한 괴물을 둔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호쾌하게 웃어 보이더니 이내 표정을 싹 굳히며 덧붙였다.
“날 엿 먹인 다단 새끼도 잡아야 하고 말이지.”
눈앞의 괴물과 다른 의미의 섬뜩함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어쨌든 원군이 왔다는 사실에 안심이 돼서일까. 펜던트를 통해 해우가 소리치는 게 뒤늦게 들려왔다.
「둘 다 괜찮아? 무슨 일이야!」
“아…… 네, 괜찮아요.”
「그럼 당장 세룬 교수님 불러. 우리 중에 그거 잡을 수 있는 사람 케이랑 그분밖에 없어!」
해우의 목소리를 들은 세룬이 하하하하 하고 다시 웃어 보였다.
“나는 이미 왔는데 뭘 부르라는 건지 모르겠네. 그보다 왜 해우 목소리가 당연하다는 듯 우리 애들 통신기에서 들리는 걸까. 짜증 나게…….”
어쩐지 의문 같아 답을 해주고 싶은 샨과 테오였지만, 애석하게도 그 둘조차 왜 해우가 이 펜던트를 통해 통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두 아이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그럼 됐다는 듯 세룬이 괴물로 시선을 돌렸다.
그를 알아본 걸까. 시커먼 괴물이 낮게 짖으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세룬은 마구잡이로 휘는 검은색의 팔을 가볍게 피하며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중간에 결계 하나를 세워뒀다.
“은하나 재우가 있어야 하는데, 조금 아쉽네. 그래도 지식이란 건 많을수록 좋으니 둘 다 이 기회에 머릿속에 잘 집어넣으세요.”
“……네?”
“아주 가끔, 이렇게 상대방의 공포나 두려움에 반응해 크기를 키우는 애들이 있어요. 이런 애들은 한번 겁을 먹으면 그 이후엔 물리적이든 마법 공격이든 뭘 해도 소용이 없답니다. 그래서 소환 계통 아이들도 진땀을 빼죠.”
때아닌 수업에 두 아이가 다 된 전구마냥 눈을 깜빡였다.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일절 공포를 느끼지 않은 상태로 뚜드려 패는 것, 또 하나는…….”
코앞에서 내려치는 괴물의 팔을 뒤로 살짝 뛰어 피한 세룬이 몸을 돌려 걷어찼다. 그리고 손을 쭉 뻗은 후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대량의 정화-”
그의 손끝을 중심으로 새하얀 빛이 고리를 그리며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세상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포근하면서도 깨끗한 늄이 공기 속에 녹아들었고, 괴물의 공격으로 잔뜩 피폐해진 풀과 나무가 고개를 들며 싹이 돋았다. 꼭 빛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주변이 찬란하게 빛났다.
삐걱거렸던 몸과 바닥을 보이던 늄이 엄청난 속도로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샨은 조심스럽게 손을 펼쳤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의 알갱이가 손바닥에 닿더니 눈이 닿은 것처럼 녹아 사라졌다.
오랫동안 저를 무겁게 하며 괴롭혔던 늄의 고갈도 조금 채워지는 것 같았다.
존경할 수밖에 없는 기술에 샨이 고갤 들었다.
자신들을 죽음의 공포까지 내몰았던 괴물이 우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점점 그 부피를 줄이며 땅에 질척하게 퍼졌다.
세룬은 그것을 쭉 잡아당기더니 다시금 늄을 부여했다.
괴물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흡사 순간 이동처럼 말이다.
이윽고 모든 것을 끝낸 세룬이 손바닥을 탈탈 털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둘 다 되는 대단한 사람이죠~☆ 자! 다 끝났습니다~”
“…….”
“…….”
앞으로 할 말이 없다는 건 이럴 때만 써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실력 차가 이렇게 날 수 있을까.
아무리 상성의 문제라고 해도, 그리고 처치하는 방법을 안다 해도 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은 분명하게 나뉘었다.
세룬은 그중에서 전자였다. 실력도 지식도 능력도 갖춘 사람.
만일 자신이라면 해결 방법을 안다 해도 괴물이 풍기는 위압감에 짓눌려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대단하세요…… 어떻게 저런 걸…….”
테오의 순수한 감탄에 세룬이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별거 아니에요. 죽인 것도 아니고.”
“죽인 게 아니라고요?”
“네. 이런 괴물은 물리적으로 죽이는 게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그저 진을 잔뜩 뺀 다음에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낸 거랍니다.”
“죽일 수도 없는 앨 잡아 왔다고요?”
“네.”
“왜요?”
“재밌잖아요. 상대방이 공포감만 느끼면 무적이 되는 것도 그렇고, 정화에 약한 것도 그렇고. 그래서 케이랑 가서 잡아 왔어요.”
세룬은 마치 무용담을 떠들 듯, 그때 중심에 잘못 들어갔다가 케이랑 죽을 뻔했다고, 그래도 한 놈 잡아와서 다행이지 않냐며 덧붙였다.
테오는 각종 단어가 목구멍에 걸린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한유림이 전에 이 학교 교수들은 병신력을 기준으로 뽑는 거 같다고, 제정신인 사람이 하나도 없다며 울화통을 터트렸었는데, 그 말이 조금…… 아니, 좀 많이 이해됐다.
“어쨌든 저놈은 일단 처리했고, 두 사람 다 다친 곳 없죠?”
“아, 네.”
이미 애저녁에 다 치료되었다, 그것도 엄청 말끔하고 멀쩡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을 보며 세룬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진유에게 걸어갔다.
대량 정화의 사정거리 때문에 의도치 않게 같이 회복된 그가 세룬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리 늄을 봉인했다 해도, 저 정도의 밧줄이면 힘으로 끊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테오가 뒤늦게 아차 하며 달려가 억지로 끊으려고 하면 폭발하는 성질을 부여했다. 그때 세룬이 진유의 무릎을 꾹 밟으며 익살맞게 웃었다.
“야하~ 꼴~ 좋다. 그렇게 뒤통수를 치고 나르더니 고작 1클래스 둘한테 당한 거야? 전임 교수 꼴이 말이 아니네~ 아, 이젠 전임 교수도 아니죠? 미안미안.”
약을 올리듯 속을 살살 긁는 어투에 테오는 물론 샨까지 행동을 멈췄다.
정말로 즐거운지 꽃이라도 나올 것처럼 얼굴이 활짝 펴 있었다.
“저 녀석만 아니었어도 쉽게 안 당했을 겁니다…….”
“그걸 불러온 시점에서 네 무식함을 증명한 거랍니다~☆ 감당도 못 할 걸 왜 끌어들여. 너희 넷 다 저거 상대도 못 하면서.”
빠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 봐도 뻔하지. 우리가 안 보이니까 나오게 하겠다고 소환한 거죠? 나오면 내가 저것부터 처리할 걸 아니까. 근데 그사이에 애들한테 당할 건 생각 못 했어요? 정말이지 한심하다니까. 이왕 불러왔으면 화끈하게 늄 팡팡 쓰면서 애들 제압하든가, 그게 아니면 안전한 곳에 찌그려 있든가,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비웃음을 가득 담아 한심함을 지적하자 진유가 노골적으로 표정을 구겼다. 세룬이 다시금 힘을 줘 그의 무릎을 세게 밟았다.
“건방지게 누구 앞에서 눈에 힘을 줘요. 어서 힘 안 풀어요?”
점점 더 세게 밟으며 자존심을 팍팍 깔아뭉개는 세룬의 모습에 두 아이는 식은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전직 신관. 명망 받는 클레이즈의 교수. 근데 하는 짓은 동네 양아치 저리 가라니…….
더는 보기 힘들기도 해, 샨은 몸을 돌려 펜던트를 통해 일행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때마침 세룬 교수님이 도착했고, 괴물은 처리했다고. 그리고 다들 무사하다고.
하민과 해우가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귀도 좋은 세룬은 그 속에서 또 해우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매섭게 테오를 보며 명령했다.
“해우가 왜 같이 있는지부터 설명하라 그래요.”
목소리에 낀 분노를 느낀 걸까. 해우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만나서 설명해 드릴게요…….」
썩 내키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거면 됐다는 듯 세룬이 고갤 끄덕였다.
그는 머릿속으로 대충 상황을 정리하더니 세 사람에게 제1교사 앞으로 오라 명했다.
그리고 다시금 진유의 무릎을 세게 밟으며 말했다.
“자- 그럼. 같이 갈까요? 가서 남은 이야기나 마저 해보자고요.”
싸늘한 그의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
한편, 1교사에 있던 아이들은 좀 전 유림과 은하가 나타났을 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마치 그간의 분노를 표출하기라도 하듯, 하진이 난사에 가까운 수준으로 얼음 화살을 땅에 메다꽂고 있었다.
제1교사까지 진입한 트롭텍스 두 마리가 처참하게 처리된 것은 물론, 끊임없이 밀려들던 신물과 괴물들의 사체가 산처럼 쌓였다.
데몽은 그걸 측은하게 바라봤다.
하진이 이곳에 도착한 것은 일행이 트롭텍스와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트롭텍스는 상성상 물리적인 공격이 잘 들지 않았기에 자연계 마법사인 데몽과 루아가 주로 상대했고, 은하와 레이먼이 이 둘을 엄호하며 1교사를 지켰다.
때문에 트롭텍스와 신물, 괴물들을 처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적들은 끝없이 밀려오는데 확보한 교수는 이즈네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 싸우며 이러다 늄을 애먼 곳에 다 써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과 함께 하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론 지금과 같았다.
학살. 학살. 학살.
“……종말인가?”
“멸망 아냐?”
“둘 다 같은 뜻이잖아…….”
옆에서 은하와 쌍둥이가 멍청한 소리를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 정도로 앞의 풍경은 너무나 참혹했으니까.
이윽고 모든 것을 끝냈는지 하진이 땅으로 내려왔다.
신바람 나게 몸을 움직인 그는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을 확인하더니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 루아와 데몽을 향해 말했다.
“너희 둘. 마법을 사용하는 데 쓸데없이 힘이 많이 들어가더군.”
과할 정도로 마법을 난사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데몽은 어쨌든 그의 도움으로 늄을 비축했단 사실에 고개 숙여 감사했다. 솔직히 곤란하던 차에 잘 맞춰 오긴 했다. 다만 그가 왜 지금 이곳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근데 교수님은 왜 여기 계시는 거죠?”
원래는 온실을 지키기로 한 거 아니냐는 추궁에 하진이 참으로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나왔다.”
그니까 왜 나왔는지를 묻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음이 안 됐나 싶어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짓자 이를 읽은 듯 하진이 뒷말을 이었다.
“너희를 못 믿어서 나온 건 아니야. 거기다 한 명은 착실하게 케이를 지키고 있어.”
원래는 한 명만 나갈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한 명만 빼고 나오게 되었다는 말은 함구하기로 했다. 덧붙여 나갈 방법을 몇 번이나 바꾸느라 늦었다는 것도.
“하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마. 리리아가 확실하게 케이를 붙잡고 있으니까.”
확신에 찬 대답에 데몽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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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