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52
제 252 화
히야스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유림을 달랜 후, 고갤 들었다.
제 등장이 그렇게 놀라웠던 걸까. 다단이 눈을 홉뜬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단정했던 그의 얼굴이 저런 식으로 변한 건 또 처음이라 히야스는 저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었다.
“야- 재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고. 꼭 삼류 소설에나 나오는 고전적인 악당 같잖아.”
다단의 단정한 이맛살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히야스…….”
“너도 내부의 적인지 뭔지 라며? 듣고 좀 놀랐다. 고지식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한다는 짓거리가 그딴 쓰레기 짓이냐?”
마치 다단을 놀리듯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되지도 않는 탁상공론에 사로잡힌 또라이 집단. 재밌네. 케이가 열 내며 찾으려 할 만했어.”
한심과 경멸이 뒤섞인 그 미소에 다단이 미간을 구겼다.
히야스가 자세한 내막을 들은 건 눈을 뜬 직후였다.
왜 자신이 온실에서 자고 있는지 채 이해하기도 전에 아슈팔을 봤고, 곧이어 유리 천장 너머로 번개가 번쩍이는 걸 목격했다.
놀란 히야스를 보며 아슈팔은 그간의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다단과 진유, 이즈네, 그리고 해우가 내부의 적이며 지금까지 얼음 서고에 있었단 것, 클레이즈가 레아드시텐(금지된 땅)에 있단 것, 1클래스 애들이 내부의 적을 막고 있단 것까지 다 말이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히야스가 씩씩거리며 일어난 건 안 봐도 뻔했다.
제 몸도 못 가눌 정도로 휘청거리던 그는 아슈팔의 도움도 뿌리친 채, 결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태평하게 사다리 타기를 하고 있던 세 교수와 마주했다.
순간 이성을 유지하던 줄이 뚝 소릴 내며 끊겼다.
이 미친 인간들이 애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태연하게 사다리 타기나 하고 있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 테이블을 뒤엎었다.
나갈 생각으로 상기됐던 세 교수는 히야스가 깨어났다는 안도를 느끼기도 전에 그를 제압해야만 했고, 히야스는 패악이란 패악은 다 부리며 없는 힘으로 친구들의 면상을 걷어찼다.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해결한 것은 연장자인 세룬이었다.
그는 특유의 잔꾀를 부려 히야스를 잘 구슬렸고, 결국 그들의 소박한 내기 판에 끼어들게 하였다.
물론 히야스가 자긴 무조건 나간다고 주장하는 데다, 아이들이 세 그룹으로 나눠서 움직이는 것 같단 아슈팔의 말에 규칙이 살짝 바뀌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크게 나쁜 건 아니었다. 나갈 수 있게 된 사람이 한 명 더 늘었으니까.
어쨌든 그리하여 리리아를 제한 세 사람이 밖으로 나오게 됐고, 히야스는 아슈팔의 도움으로 무사히 유림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히야스를 지키기 위해 따라 나온 아슈팔은 점점 험악해지는 다단의 표정을 보며 히야스의 이죽거림을 막았다.
“교수님, 도발은 자제해 주시죠. 위험합니다.”
그리고 이 말에 뒤늦게 그도 함께 왔음을 깨달은 유림이 퍼뜩 고갤 들었다.
히야스한테 정신이 팔린 것도 있지만, 워낙 조용해 그 존재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이게 도발이냐?”
“더할 수 없는 도발입니다. 교수님의 비아냥은 기분이 정말 더러우니까요. 그리고 유림이 넌 늄 좀 생각하면서 써.”
“아, 맞다. 너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늄 쓰래.”
아슈팔에 이어 히야스까지 유림의 늄 운용을 타박했다.
히야스는 유림에게만 들릴 만큼 목소리를 작게 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내가 그렇게 펑펑 날려 먹으라고 내 늄 준 줄 알아? 날뛰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화가 여실히 담긴 목소리에 유림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 정도였어요?”
“그게 아니면 내가 미쳤다고 사람 뒤통수에 돌을 휘갈기겠냐.”
“…….”
그러고 보니 아까 디하르도 그랬었다. 너무 성급하다고. 늄 생각하면서 쓰라고…….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갑작스레 늘어버린 늄에 취해 그만 조절하는 걸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혹시라도 히야스가 준 늄을 갉아먹은 게 아닌가 싶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제 상태를 살피자, 그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이거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썼나 보네. 너 이 일 끝나면 수업 다시 듣자. 아무래도 좀 더 빡세게 할 필요가 있는 거 같아.”
수업이라니…….
아무리 히야스가 깨어나고, 전처럼 편히 대하는 것이 기쁘다고 그의 수업까지 반가운 건 아니었다.
유림은 10분도 안 돼 차게 식은 감동에 말라 버린 눈물을 훔쳤다.
디하르는 유림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분한 감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가 와서 유림을 말려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깨어나 준 건 정말 감사했고.
“이젠 정말 다단 교수님만 잡으면 되는군요.”
디하르의 말에 아슈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히야스 교수님은 괜찮으신 건가요?”
“그럴 리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디하르는 입을 다물었다. 전에 비해 기운이 흐릿하다 싶었는데, 역시 이렇게 움직이면 안 되는 상태인 모양이다.
어쩌면 유림과 히야스 교수님을 제1교사로 돌려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고민할 때 아슈팔이 불쑥 물어왔다.
“손은 괜찮아?”
예상외의 질문에 디하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고 계셨어요?”
“아픈지 계속 떨고 있잖아.”
가까이서 살피지 않는 한 모를 텐데…….
정말이지 저 평화로운 인상에서 어떻게 이런 예리함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괜찮습니다. 버틸 수 있어요.”
“안 아픈 건 아니란 거네.”
“…….”
디하르는 약간의 틈 후 괜찮다고 짧게 답했다.
아슈팔도 더 추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디하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은 그의 팔 상태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무리 이쪽에 전투 가능한 인원이 셋이나 있다 해도, 다단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욱이 지금 히야스는 전투는커녕 뜀박질도 버거운 상태였다. 세룬이 체력을 회복시켜 주지 않았다면, 유림을 찾아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애당초 쉽게 나을 수 있는 상처가 아니지 않은가, 생명력이 대폭 깎인 것도 있고.
히야스의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알리는 게 썩 내키진 않지만, 아무래도 한 명은 그를 계속 보호해야 할 것 같았다.
아슈팔은 소매 단추 하나를 뜯어 검으로 변형시키며 말했다.
“유림아, 교수님 잘 챙겨.”
그리고 이 말에 뒤늦게 현실은 깨달은 유림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히야스 앞에 섰다.
지금은 이렇게 감동의 재회를 나눌 시간이 아니었다. 하물며 다단은 히야스를 죽이란 말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 사람 앞에서 정신을 놓고 있다니.
유림은 이를 꽉 깨물며 긴장을 다잡았다.
유림이 분위기를 싹 바꾸며 제 앞을 막아서자 히야스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작은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뭐하냐, 한유림.”
“교수님 지킵니다. 제 뒤에 얌전히 계세요.”
“얼씨구.”
꼴에 저를 지킨다니. 심지어 아슈팔과 디하르도 이쪽을 신경 쓰고 있다.
나 참,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아주 절 병자 취급하고 있다.
본질 마법이 능숙한 8형에게 보유한 늄의 양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까먹은 건가?
“야, 난 덴 케이랑 다르거든? 유지해야 할 게 없다고.”
“네?”
히야스는 주머니에 있던 쇳조각 하나를 꺼내 약간의 늄을 부여했다.
늄이 진동하는 감각과 함께 쇳조각이 길게 이어지더니 눈 깜짝할 새 5척은 되어 보이는 기다란 봉으로 변했다.
히야스가 싸우려는 걸 깨닫자 아슈팔이 크게 소리 지르며 그를 막았다.
“교수님!”
“걱정하지 마, 안 죽으니까.”
그는 봉을 크게 한번 휘두르더니 이내 양어깨에 걸치며 다소 껄렁하게 웃었다.
“몸 상태가 쬐끔- 안 좋지만. 그래도 싸울 만은 할 거야.”
“흐릿한 늄에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으로 잘도 떠드는군.”
다단의 목소리엔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실로 누구라도 그의 상황이라면 히야스의 저런 태도가 가소롭게 느껴질 것이다.
유림과 아슈팔조차 그가 무리수를 두는 걸로 보이니 말이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객기를 부리는진 모르겠지만, 지금의 넌 내 적수가 못 돼. 안젤리카를 불러라, 히야스.”
“미쳤냐, 내가 걔를 부르게. 이게 날 바보 취급하네.”
“그러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는 건 너야.”
웃는 어조 속에 느껴지는 섬뜩함에 세 아이가 반사적으로 자셀 취했다.
당사자인 히야스만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여유롭게 웃어넘겼다.
“그건 해봐야 아는 거고.”
어때?
히야스가 도발하듯 가볍게 턱짓했다.
다단은 아무 말 없이 히야스를 응시했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에 유림이 마른침을 삼켰다.
누가 먼저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시린 겨울바람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다단은 느릿하게 눈을 한 번 깜빡이더니 작게 웃었다. 그러더니 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유림은 물론 나머지 세 사람의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졌다.
“뭐하냐?”
“애석하게도 시간이 다 돼서 말이야.”
“뭐?”
“어서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는군.”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채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새하얀 빛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하늘로 쏘아졌다가 폭죽처럼 빛을 터트리며 사그라졌다.
신호탄이었다.
내부의 적의 위치는 이쪽이 다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신호탄이 올라온 곳은 일행이 지키거나 전투를 한 곳도 아니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다른 일이 있었던 걸까?
다단에 정신이 팔려 다른 아이들의 근황을 모르는 유림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펜던트를 꺼냈다.
무언가가 크게 깨지는 소리가 들린 건, 막 입을 열려 할 때였다.
마치 두꺼운 유리 표면을 망치로 깨부수는 것처럼 쩌적거리는 소리가 연신 귀를 두드렸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온실이었다. 유림과 디하르는 반사적으로 온실 방향을 쳐다봤다. 거리가 꽤 있는 데다 나무가 있어 그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딱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진 않았다. 늄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들리는 이 께름칙한 소린 뭐란 말인가.
1교사에 있는 아이들한테도 이 소리가 들리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림은 아이들을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때 온실 너머의 하늘에 긴 선이 그려졌다.
“저, 저게 뭐야?”
“……금?”
질문에 대한 답은 곧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클레이즈를 뒤덮고 있는 새파란 하늘이 가지를 치듯 긴 선을 그리며 쩍쩍 갈라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치 부스러기가 떨어지듯 작은 틈 사이로 검은색의 무언가가 후두둑 떨어졌다.
하늘에 생긴 균열. 그 틈새로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검붉은 색의 연기. 뚝뚝 떨어지는 검은색의 가루. 계속 귀를 울리는 쩍쩍 갈라지는 소리.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금지된 땅의 독기를 막고 있던 결계가 깨지고 있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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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