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57
제 257 화
사실 유림도 해우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싶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덴 케이가 이곳에 있는 게 더 의아했기에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나와 계셔도 되는 거예요?”
“그래. 3클래스 덕분에 모처럼만에 바깥공기를 쐬는군.”
“안 보인다는 넷 말이에요?”
덴 케이가 그렇다 답했다.
자세한 상황까진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내부의 적을 막을 동안 그들도 나름대로 무언가를 준비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좀 전에 있었던, 대량의 독기 변형도 선배들 덕분인 걸까.
어쨌든 이사장의 혈색이 좋아진 것 같아 유림은 다행이라며 고갤 끄덕였다.
히야스는 아직도 해우를 노려보며 짜증을 내는 중이었다.
“이중인격자가 왜 이렇게 뻔뻔하게 있는지 설명 좀 해보라니까.”
해우의 입을 타고 힘없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잠입한 거라니까…… 내가 너희를 배신할 리 없잖아.”
“웃기시네. 뭔 일 터지면 제일 먼저 뒤통수칠 놈 주제에.”
“……내가 그 정도로 신임이 없었어?”
“몰라 묻냐? 야, 덴 케이 넌 알고 있었냐?”
“내가 부탁했어.”
고개를 끄덕이는 덴 케이를 보며 해우가 옆에서 ‘부탁은 무슨, 협박이겠지……’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구리를 리리아가 도끼눈을 뜨며 가격했다.
‘컥, 이제 그만 때려. 진짜 아파!’, ‘넌 더 맞아야 해’ 등등의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것을 보니 직전까지 리리아에게 맞은 모양이었다.
유림은 시선을 다시 케이에게 돌렸다.
“해우 교수님은 왜 잠입시킨 거예요? 내부의 적이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서요?”
“그것도 있지만, 내부의 적의 의중을 알아내기 위해서가 더 크겠군.”
“의중이라뇨?”
“내부의 적의 정보를 흘린 사람.”
케이의 말에 유림은 축제 때 1클래스 애들과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내부의 적에 대한 정보를 내부의 적 중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렸다는 걸 말이다. 이사장님도 이 사실을 눈치챘던 모양이다.
그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정보를 흘린다는 건 썩 좋은 수가 아니었다. 하물며 그 일로 인해 내부의 적이 클레이즈 안에 있단 확신을 주지 않았던가. 어쩌면 데몽네나 샨이 그들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누가 흘렸는지는 알아내셨어요?”
케이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우가 내부의 적에 진입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작년 여름, 그니까 현 1클래스 애들이 입학시험을 보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알아낼 수 있는 정보라곤 몇 없었다.
솔직히 케이의 입장에선 그가 다른 핵심 인물들과 같이 얼음 서고에 갔던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생각할 따름이었다.
“다단은 놓친 건가?”
케이의 질문에 생각에 빠져 있던 유림이 퍼뜩 고갤 들었다.
“아, 눈앞에서 놓쳤어요. 죄송해요. 치명상이라도 입혔어야 했는데, 실패했어요.”
“얼음 서고로 도망쳤겠군.”
“네.”
1교사가 막혀 있는 현재, 다단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얼음 서고밖에 없어서인지 다들 크게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륜만이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정말로 도망치셨구나. 다단 교수님 성격이라면 깔끔하게 진 걸 인정하실 줄 알았는데…….”
하민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게…… 너무 빨리 도망친 것 같기도 하고…….”
이 중 다단과 가장 친하다 볼 수 있는 세룬은 말없이 턱만 짚더니 이내 시선을 들었다.
“다단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할 일부터 하죠.”
“할 일이라뇨?”
“정보 수집이요.”
세룬이 잡혀 있는 두 교수를 바라봤다.
유림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갔다.
1교사를 나타내는 비석 옆에, 끈으로 꽁꽁 묶인 두 사람이 바닥에 앉혀져 있었고, 그 뒤론 같이 온 듯한 교수들이 쓰러져 있었다. 사람 수를 세어 보니, 그새 해우와 함께 왔던 두 교수도 데려온 듯싶었다.
이즈네와 진유는 반쯤 체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번 계획의 총 책임을 진 자답게 앞장서 두 사람을 추궁한 건 테오였다.
그가 가장 먼저 물은 건 의외로 스승에 대한 것이 아닌 내부의 적 상황에 대한 거였다. 그들의 규모가 얼마인지, 누구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등.
중간중간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며 면밀하게 물어보는 태도가 어쩐지 꼭 붙잡힌 포로를 심문하는 것 같았다.
근데, 이렇게 묻는다고 그들이 쉽게 말해줄까.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양옆에 있던 은하와 히야스가 유림을 사이에 두고 속닥거렸다.
“말 안 해주면 어떻게 해요?”
“뭘 어째. 쥐어패야지.”
“그래도 말 안 하면요?”
“세룬 교수님께 맡겨. 저런 쪽으론 전문가시니까.”
“세상에. 세룬 교수님이 그렇게 대단했어요?”
“악명이 자자하시지. 위험한 인간이야.”
유림은 진유와 이즈네의 입을 열게 하는 것보다 이 둘의 입을 막는 게 먼저 아닐까, 하고 고민했다. 그때 진유가 말을 꺼냈다.
“내부의 적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과거의 사건 이후 모든 게 무너져 버렸거든요. 연구원들의 주축들도 다 사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의 와해됐죠. 아무리 꿈과 이상이 대단해도 13대 대귀족과 대치할 배짱은 없으니까요. 끝까지 남았던 인물은 대체로 클레이즈와 관련된 이들이고, 그 또한 우릴 중심으로 뭉친 이들이었으니 이번 일로 완벽히 맥이 끊기겠네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순순히 입을 여는 그의 모습에 유림을 비롯한 일행이 의외라는 눈을 했다. 이즈네 또한 놀란 듯했다.
“너무 순순히 말해주시는데요…….”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늄의 진리를 직접 연구하고 알아내는 겁니다. 그걸 못 하게 된 이상 이 단체에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죠.”
테오는 그의 어투에 거짓이 없음을 깨닫고 고갤 끄덕였다.
“……나머진 지금 어디에 있죠? 얼음 서고에 간 인물들이 전부는 아닐 거 아닙니까.”
“당연하죠. 그렇게 위대한 지식을 아무에게나 보일 순 없으니까요.”
해우 또한 여덟 명을 제한 나머진 클레이즈 밖에 있다고 덧붙였다.
역으로 말하자면, 내부의 적의 중심은 그곳에 간 여덟 명이 전부란 소리였다.
유림은 정말로 그들의 규모가 얼마 안 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안심했다.
“아까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었는데, 지금 우리가 하는 건 딱히 없습니다. 아니, 그 견고한 얼음을 녹이는 게 최대의 목적이었죠. 실패했지만.”
“……밖에 있는 이들은 어디 있죠?”
“우리가 보내줄 자료를 기다리며 연구하고 있겠죠.”
연구. 그 단어에 어릴 적 실험실에 잡혀갔던 여섯 아이가 움찔하고 떨었다.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할 기억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설마 또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걸까.
유림이 이를 빠득 갈며 살기를 내뿜자 히야스가 머리를 쓰다듬고, 은하가 작은 손을 잡아왔다. 진정하라는 듯한 두 사람의 태도에 유림이 긴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연구란 게 정확히 뭘 뜻하는 거죠? 고아원의 실험 같은 건가요?”
테오의 질문이 의외였던 걸까. 진유가 작게 웃었다.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요?”
“딴소리 말고 어서 대답하세요.”
“그냥 평범한 연구입니다. 고서를 조사하고, 늄을 연구하는 학문적인 일이죠. 그런 큰 사건이 터졌는데 곧바로 비슷한 실험을 하는 건 무리니까요. 그럴 만한 인력과 시설도 없고요.”
데몽이 쌍둥이를 쳐다봤다.
파랗게 질렸던 얼굴에 약간의 안도가 스쳤다.
“……잔당의 위치와 리스트는 교수님께 따로 받아내면 되겠네.”
이에 관련된 일은 길어질 것 같으니 나중에 시간 내서 하자는 말에 테오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한유림…… 아니, 샨에 대한 정보를 어디까지 알고 계시죠?”
“한유림? 샨? 그게 무슨 소리죠?”
진유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반문했다.
분위기를 보니 능청을 떠는 게 아니라, 정말로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테오는 질문의 대상을 이즈네로 옮겼다.
“이즈네 교수님은 알고 계시죠? 교수님 말고 또 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죠?”
4층 탑에서 유림이 샨임을 알아챈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이즈네는 시선을 피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테오의 뒤에 서 있던 세룬이 그녈 불렀다.
“이즈네.”
세 음절 안에 담긴 고압적인 어투에 이즈네가 흠칫 떨더니, 이내 모든 걸 실토했다.
“……샨에 대한 자료는 제 어머니께서 제게 보낸 겁니다. 그걸 본 사람은 저 외엔 없고요.”
“확실합니까?”
“확실해…….”
순간 이즈네가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오묘한 표정에 테오와 데몽이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시죠?”
“…….”
“빨리 대답하세요.”
아이들이 재촉하자 이즈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딱 한 번, 다단이 찾을 자료가 있다며 제 연구실 창고에 온 적이 있어요.”
“다단 교수님께서 유림에 대해 알고 있단 소린가요?”
“확신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걸 봤단 언급은 안 하셨어요.”
유림의 실험 기록은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8형에 대한 내용을 봤다면 분명 특이하게 생각했을 터, 그런데도 안 물어봤다는 건 못 본 건가?
테오가 턱을 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때 유림이 입을 열었다.
“봤을 거야.”
“뭐?”
“다단 교수님은 분명 나에 대해 알고 있어.”
확신에 찬 목소리에 데몽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으로 바라봤다.
“아까, 얼음 서고로 도망치기 전 내가 히야스 교수님의 늄을 가져간 거냐고 했어.”
찬물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것은 일반 사람의 상식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도 8형의 비밀을 들을 때까지 타인의 늄을 뺏어간다든가 사용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림의 연구 기록을 봤다면 얘긴 달라진다.
그때 유림이 했던 연구는 생명의 늄을 뒤흔드는 일이었으니까.
“그럼 위험한 거 아니야? 다단 교수님 도망치게 둬도 돼?”
은하가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었다.
테오는 지끈거리는 두통을 달래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찌 되었건 다단은 그냥 놔두면 안 됐다.
“두 분은 얼음 서고로 갈 수 있나요?”
“열쇠는 다단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도 못 가겠죠.”
진유나 이즈네는 물론, 해우까지 얼음 서고를 오갈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았지만, 다단이 이를 막았다면 이동은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일행은 확인할 것도 없이 다단이 이를 막았음을 확신했다.
해우의 배신에, 다른 사람들은 다 붙잡혔는데 그냥 둘 리 없지 않은가.
“결국, 직접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
테오의 중얼거림에 데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도 없잖아.”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건 하민이었다. 그가 걱정이 가득 묻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