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60
제 260 화
화살이 바닥에 비처럼 연달아 쏘아졌다.
다단은 어두운 데다 제법 거리가 먼 데도 정확히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입꼬리를 말았다.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았단 소린 들었지만, 그걸 떠나더라도 기본적인 감각이 뛰어났다. 제대로 된 기사나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이미 큰 공을 세워 이름을 알렸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그 특이한 능력이라니.
다단은 화살을 피하며 유림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젠장.”
금세 화살이 떨어진 유림이 나뭇조각 하나를 꺼내 움켜쥐었다. 그리고 조각난 부스러기를 다 화살로 변형했다.
작은 조각으로 만든 거라 높은 강도나 큰 위력은 자랑할 순 없었지만, 그를 공격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아니, 없어야 정상인데…….
“무슨 인간이 저렇게 빨라……!!”
화살이 날아가는 것보다 그의 움직임이 훨씬 빨라 좀처럼 맞지가 않았다.
아무리 3형이고 기사라지만 륜이나 디하르가 뛰던 속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쉬지 않고 화살을 쏘는 게 애석할 만큼 그가 단숨에 거릴 좁혔다. 그리고 그대로 도약해 뛰어올랐다.
자신도 그렇고 전에 안젤리카나 데몽도 책장 위로 올라왔던 적이 있기에 늄만 잘 쓰면 그게 가능하단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뿐하겐 아니었다.
“돌겠네, 진짜!”
이사장이 대놓고 지적할 만큼 다단과의 실력 차는 어마 무시했다.
힘, 체력, 능력, 신체, 그리고 가장 큰 건 경험.
때문에 정공보단 변칙적으로 많은 틈을 만들어가며 싸워야 했다.
유림은 활을 바닥에 내려친 뒤, 거대한 벽으로 변형시켰다. 그리고 두 자루의 검을 뽑아 들었다. 다단이 벽을 부순 건 바로 그 뒤였다.
파고드는 주먹과 무너져 내리는 벽의 잔해를 보며 유림이 그대로 높게 뛰어올랐다.
한 바퀴를 돌아 다단의 뒤쪽으로 넘어간 유림이 그대로 몸을 돌려 그를 걷어찼다.
분명히 온 힘을 다해 찼고, 그의 등이 발에 닿은 느낌은 났는데 때렸다는 감촉이 안 남았다.
역시. 멀끔한 모습으로 완벽하게 거릴 벌린 그가 검을 뽑아 들며 여유롭게 웃었다.
“생각보다 많이 늦었군.”
진짜 짜증 나네. 전임 교수들은 다 왜 이런 괴물 같은 인간들만 있는 거야.
이마의 혈관이 툭 불거질 정도로 인상이 구겨졌다.
“아아- 길이 좀 험해서 말이죠.”
“독기를 변형해 가면서 온 건가. 정말이지 8형의 능력은 감탄할 만해. 금지된 땅의 독기까지 변형할 수 있다니……. 세계가 알면 뒤집어질 거야.”
“해봤자 아주 잠깐인데요, 뭐.”
“그 능력으로 금지된 땅에 뭐가 있는지 알아볼 생각은 없나? 내가 아는 자네는 학구열도 제법 있는 걸로 아는데 말이야.”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어 죽을 뻔했거든요? 찾긴 뭘 찾아요.”
농이 아니라 진담이었다.
독기를 변형하는 것은 유림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힘들었고, 한편으론 지독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시큰거리는 눈, 불편한 호흡. 조금이라도 독기가 피부에 닿으면 따끔거리며 쓰라림을 호소했고, 사방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생명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땅.
뿌옇고 어둡고 하늘조차 보이지 않아 제가 땅 위에 서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하는 곳.
덴 케이가 미리 나침반을 주지 않았다면 독기 속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학구열은 무슨. 돼지 똥 싸는 소리 하고 있네.
정말이지 돈을 준다 해도 두 번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정 원하시면 직접 가보시든가요.”
유림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작은 키를 이용해 재빠르게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 검을 휘둘렀지만, 번번이 그에게 막히고 말았다.
검도 학교에서 쓴 것보다 긴 장검이라 조금만 실수해도 날이 스칠 것 같았다.
“젠장.”
유림은 다단이 내려치는 검을 비스듬히 틀어막았다.
두 팔을 이용해야 가까스로 막을 수 있다니.
하물며 발밑은 미끄럽고, 날은 어둑해서 그의 공격 하나하나를 전보다 예민하게 읽어야 했다.
“자네를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
“무슨 생각을요.”
“생명의 늄을 변형하는 건 자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8형 전부가 가능한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헤에- 그래요?”
유림이 그의 검을 쳐낸 뒤, 왼쪽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다단은 검을 틀어 이를 막았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귀를 찔렀다.
“자네만 가능한 건가? 아니면 8형 전부가?”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유림은 최대한 능청스럽게 대했다.
다단에게 늄의 이식을 비롯한 생명의 변형이 저만 가능하다는 인식을 주어야 했다.
“정말로 모르는 건가?”
그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작게 웃었다.
“하긴, 다른 사람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지. 내가 볼일이 있는 건 자네니까 말이야.”
그가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 두 개를 들어 가까스로 막은 유림이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힘을 실을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내가 본 자네 기록엔 쥐 같은 작은 동물들이 고작이었지.”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기에 그가 제 기록을 봤다는 건 놀랍지도 않았다.
“그거 사생활 침해예요.”
입으론 뻔뻔하게 대꾸하며 어떻게 제압할지 머리를 굴리던 유림의 귀로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사람도 변형한 적이 있나?”
그 순간만큼은 능청을 떨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흠칫 굳고 말았다.
아차 하고 혀를 찼을 땐 늦었다.
“어떻게 했지? 무엇을 변형했나.”
“……소설 쓰세요? 그게 가능했다면 제가 이렇게 처박혀서 안 살았죠.”
“반대로 가능했기에 처박혀 산 게 아닌가?”
유림이 침묵을 지키자 다단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자네에 대한 자료를 보고 여러 조사를 했지, 그날 사고에 대한 것도. 가장 이상한 건 시신이었어. 시신을 옮긴 사람들 말론 그 형태가 마치 일반적인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아닌 거 같다더군. 그래서 생각했지. 자네가 그들을 변형시켜서 죽인 게 아닌가 하고.”
반은 정답이었다, 변형시켜서 죽인 건 아니지만.
그보다 샨에 대한 건 아직 눈치 못 챈 건가.
“……이 학교는 다들 추리력이 너무 뛰어나서 안 되겠어.”
샨에 대한 의심만이라도 피하고자 유림이 부러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추측이 맞다고 유도하는 것이 8형의 비밀이나 샨에 대한 것을 숨기는 방법이었다.
“자네라면 반대로 더한 것도 할 수 있겠지?”
“어떤 거요?”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에 유림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반문했다.
“늄의 크기를 키우는 것.”
“하?”
“수명을 늘리는 것도 가능할 거야.”
희열에 찬 그 목소리에 어쩐지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인간은 어쩜 이다지도 한결같이 헛된 것에 목메는 걸까.
“그것 때문에 저를 부른 거예요?”
“그래. 자네가 이곳에 오길 기다렸지.”
“그거 말고 클레이즈로 부른 거 말이에요.”
다단이 놀랍다는 듯 숨을 삼켰다.
“당신이죠? 내부에 적의 정보를 이사장님께 흘린 사람.”
클레이즈에 내부의 적이 있단 건 내부의 적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사장님께서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단 건 그만큼 능수능란한 사람이란 것이었고, 때문에 전임 교수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해우는 스파이였고, 이즈네는 이런 걸 흘릴 성격이 아니었다. 하물며 유림이 엿들었던 당시 그 이야기를 깨닫고 가장 놀라 했었다. 그러니 그녀가 범인일 리 없다.
진유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연구할 수 없다고 내부의 적 상황을 대놓고 떠벌리는 그가 일부러 정보를 흘려 의심하고 방해하게 둘 리 없지 않은가. 그의 입장에선 조용히 숨는 것만큼 안전한 건 없었다.
그러니 남은 사람은 다단 한 명.
그렇다면 그는 왜 이 정보를 흘렸을까.
이것에 대한 것을 몰라서 여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제가 교수님의 늄을 변형해 줬으면 좋겠어요? 수명도 늘려주고요?”
이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탐냈던 것이다. 늄의 진리, 과거의 영광. 그 모든 것을 뒤엎는 것. 타고난 모든 것을 바꾸는 본질 변형.
그래. 이 때문이다. 이 정보가 흐르고 흘러 나나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를 처리하기 위해 클레이즈에 오거나 조사를 시작할 테니까.
이를 역으로 추적하면 나를 찾는 것도 어렵진 않았다. 거기다 결과적으론 내가 왔으니 그의 계획은 성공한 거였다.
“완벽하게 영생을 사는 것만큼 매력적인 꿈도 없지.”
“하. 헛된 꿈에 빠져 사시네.”
가장 이성적이고 지적이라 생각했던 교수가 사실은 제일 돼지 똥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화가 나면서 짜증이 일었다.
그리고 왜 이곳에 와야 ‘옛일을 떨쳐 버릴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이 인간은 원장과 똑같았다.
어릴 때야 그의 허무맹랑한 꿈을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 또한 다단과 마찬가지로 저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열 살 전후에 사라지는 늄을 다시 되살리고, 한정된 늄의 크기를 늘리거나 줄이고. 끝내는 망가진 장기나 신체적 결함도 고치고 나이 또한 바꿀 수 있는…….
어떤 의미로 보면 그때 넘어간 건 제 자료뿐만이 아니었다. 원장의 헛된 희망도 함께 이어졌다.
“제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요.”
“그래. 지금 바로는 쉽지 않겠지. 그래서 더더욱 아쉬워, 그때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연구가 계속 진행되었다면 지금쯤은 가능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아쉬움을 여실히 드러내는 모습에 유림이 이를 갈며 분노를 터트렸다.
당장에라도 저 머리를 쳐내고 싶었다.
자신들이 어떤 지옥 속에서 살았는지 알긴 할까?
“내가 할 거라고 생각해요?”
“하게끔 만들어야지.”
“어떻게요?”
“어떻게든.”
어떻게든이라니.
“진짜 하는 말 하나하나가 사람 열받게 하네요…….”
유림은 재빠르게 검을 쳐낸 뒤 거릴 벌렸다. 그리고 책장 아래로 뛰어내려 갔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다단이 미간을 좁혔다.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걸까?
유림은 화살들을 요리조리 피해 좀 전 그가 있던 자리로 달려 나갔다.
무엇을 하는지 바라보던 다단은 그가 미리 켜둔 불을 끈 걸 보곤 유림의 계획을 깨달았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려는 거였다.
책장 위의 달빛을 고스란히 받아 코앞은 볼 수 있었지만, 아래는 달랐다. 하물며 책장의 그림자까지 길게 이어져 있지 않은가.
기척을 숨기는 데 탁월하고, 체구가 작은 유림에겐 아주 유리한 수였다.
“이런…….”
하도 잔꾀를 많이 부리는 녀석이다보니 섣불리 내려갈 순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놓칠 수도 없는 법.
다단은 책장을 뛰어넘어 유림이 간 곳을 쫓아 달렸다.
갑자기 스산한 느낌이 든 건 다음 책장으로 넘어가려 할 때였다.
무언가가 저를 따라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감각을 예민하게 세우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바닥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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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