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61
제 261 화
다단이 흠칫 놀라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뾰족한 송곳 모양의 얼음이 눈앞까지 치솟았다.
“윽!”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한 그가 혀를 차며 균형을 잡았다. 그때, 다시금 발아래의 얼음이 날을 빛내며 솟아올랐다.
일정한 규칙 없이 마구잡이로 연이어지는 공격에 그가 이를 갈았다. 금세 책장의 윗부분이 가시밭처럼 얼음송곳들로 뒤덮였다.
이대로 있다간 유림을 찾긴 커녕 공격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단이 방어적인 태세를 바꾸고 검을 고쳐 들었다. 그리고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치솟는 얼음송곳의 허리를 쳐냈다.
무지막지한 힘에 주변의 얼음이 깨지며 눈처럼 흩날렸고, 달빛에 반사돼 별처럼 반짝였다.
스파크가 튄 건 그 직후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머리 위에서 섬광이 번쩍이며 낙뢰가 떨어졌다.
“1형 마법?!”
그것은 어떤 의미로 그 무엇보다 효과적인 기습이었다.
다단의 머릿속에 8형은 타형의 마법을 못 쓴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상상도 못 한 공격에 그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유림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지는 것과 아래서 얼음송곳이 치솟는 건 동시였다.
다단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에 집중하느라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잊고 말았다.
발이 딱딱한 책장 대신 허공에 닿아 쑥 꺼질 때야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책장의 가에 서 있었단 것을.
“이런……!”
짤막한 외침과 함께 그가 아래로 떨어졌다.
아무리 3형에 신체 능력도 뛰어난 그라해도 착지와 추락은 큰 차이가 있었다.
더욱이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던 유림이 최적의 순간을 허무하게 날릴 리 없었다.
유림은 미리 던져두었던 데몽의 펜던트에 늄을 부여했다.
대량의 늄이 펜던트에 응집되었다. 그리고 연녹색의 빛과 함께 펜던트에서 수십 개의 얼음 가지가 무성하게 뻗어 올라 다단을 옭아맸다.
엄청난 기세로 뻗어 나간 가지들은 삽시간에 다단을 가둔 채, 덩굴처럼 뒤엉키며 책장을 뒤덮었다.
한참을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던 유림은 잠잠해진 주변과 얼음 가지에 걸린 다단의 검을 보고서야 숨을 골랐다.
“하아…… 죽겠다…….”
진이 다 빠져 머리가 핑그르르 돌았다.
타인의 늄을 빌려, 해당하는 형의 마법을 쓰는 건 생각보다 많은 조절을 필요로 했다.
보통의 8형은 타인의 늄을 쓸 때 그것을 자신의 늄으로 변형시켜야 하는데 이 기술은 좀 달랐다. 대상이 가진 늄의 성질을 보존한 채 변형하는 거랄까.
하긴. 설명 자체만으로도 모순인데 쉽게 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래도 연습 땐 좀 된 거 같은데…… 역시 실전에서 하려니 힘드네.”
거기다 후유증도 말도 못해, 차라리 독기 변형을 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유림은 끙끙거리며 륜의 펜던트를 입에 물고, 테오의 펜던트 줄을 오른손에 칭칭 감았다.
이제 다단을 끌고 클레이즈로 돌아가면 됐다.
라의 문 열쇠는 어디 있을까. 세룬 교수님은 눈에다 넣어 다녔다던데, 그도 그랬을까?
어제 라의 문을 발동한 그의 모습을 떠올려 봤지만, 딱히 무언가 힌트가 되는 건 없었다.
제길…… 라의 문 열쇠를 찾는 것도 일이네.
어떻게 해야지 라의 문 열쇠를 쉽게 뺏을 수 있을까 궁리하며 검을 잡은 그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1형 마법도 쓸 수 있는 건가.”
“……!”
낮은 목소리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다단이 유림을 힘껏 걷어찼다.
피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무자비한 공격이었다.
몸을 돌리는 게 전부였던 유림이 그의 발길에 저만치 날아가 책장에 등을 박았다.
정통으로 맞은 배가 엄청난 고통을 토해냈고,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륜의 펜던트를 물고 있었던 건 천운이었다. 다행히도 자신의 몸을 어느 정도 강화할 수 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늑골 대여섯 개는 기본으로 부러졌을 것이다.
“……하아…….”
단정하면서도 일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검을 꽉 잡은 채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자 흥미가 가득 담긴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다단이 보였다.
젠장, 대체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분명 그럴 틈이 없었는데.
“이번엔 3형 마법인가 보군…….”
3형 전임 교수여서 그런 걸까. 자신과 접촉한 순간은 아주 짧고, 또 완벽한 방어가 아니었음에도 제가 륜의 늄을 빌려 쓴 걸 기차게 알아냈다.
“히야스도 케이도 타형의 마법은 못 썼는데 말이야…… 역시 자네가 특이 체질인 건가?”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요, 아무리 저라도 타형의 마법은 못 쓰거든요?”
“그럼 좀 전의 그건 뭐지?”
“친구들의 늄을 좀 빌린 것뿐이에요……!”
유림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다단은 가볍게 이를 피했다.
“빌린 늄이라…… 그렇군. 펜던트에 담은 늄을 사용하는 건가.”
그것이 더 그의 흥미를 자극한 걸까. 그가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너무…… 세게 걷어찬 거 아니에요?”
“잔꾀가 하도 많다 보니 막으려면 이럴 수밖에 없더군. 미안하네.”
천연덕스럽게 저런 말도 참 잘한다.
유림은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그가 떨어트린 무기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다단이 다른 무기를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건 없었다.
어쨌든 이거 하난 확실했다. 이 남자를 잡아가려면 단순히 가두거나 포박하는 것으론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작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또 잔머리를 굴리나 보군.”
“……!”
“팔다리 하나 부러진다고 마법을 못 쓰진 않겠지.”
그가 그대로 주먹을 내리꽂았다.
유림이 숨을 삼키며 재빨리 옆으로 굴러 도망쳤다.
위력을 알리듯 그가 내리친 바닥이 움푹 파인 채 균열을 일으켰다.
“…….”
이런 미친 인간을 봤나. 이게 어떻게 팔다리 하나 부러지는 위력이
란 말인가.
입을 턱 하니 벌려 경악하는 유림을 보며 다단이 마치 칭찬하듯 짧게 말했다.
“빠르군.”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공격했다.
유림은 필사적으로 그의 주먹과 발을 피했다.
난타에 가까운 무자비한 공격에 숨 고를 시간도 없었다.
유림이 이를 꽉 깨물며 검을 교차해 다단의 공격을 막았다. 검날과 그의 주먹이 검에 닿는 순간 엄청난 섬광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콰앙-!
“으악!”
반동에 뒤로 저만치 굴러간 유림이 다시금 책장에 등을 부딪치고 나서야 몸을 멈췄다.
테오의 늄이라 그가 자주 쓰는 기술을 흉내 내봤는데 그 위력이 어마 무시했다.
테오 이 괴물 같은 자식.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버티는 거야.
“으으윽…….”
이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말자…….
그렇게 소박한 각오를 다질 때, 갑자기 무언가가 쑥 하고 다가왔다. 다단의 손이었다.
유림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다시금 굉음이 일며 폭발이 일어났다.
“우악!!”
몸이 뒤로 밀리며 또다시 책장에 처박혔다. 정통으로 부딪힌 등이 아픔을 호소했다.
오늘 내 등이 몇 번 아작나는 지 모르겠다.
“으으으으…….”
유림은 고개를 내저으며 정신을 차린 뒤, 륜과 루아의 펜던트를 입에 물고 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폭발의 위력에 튕겨져 나간 건 다단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별도의 동요도 없이 능숙하게 공격에 대응했다. 매끄럽게 피했고, 종종 팔의 보호구로 검을 막은 뒤, 반격을 가했다.
몸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변형하는 그 탓에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유림은 륜의 늄을 빌려 몸을 날렵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기회를 엿봐 루아의 늄을 빌렸다.
다단의 바로 귀 옆에서 스파크가 터지며 엄청난 전기가 일었다.
화상을 입을 정도의 따끔거림에 다단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방어 태세로 바꿨다.
유림은 그대로 검을 가로 그었다. 그리고 파고드는 순간, 무언가 화끈한 통증이 아랫배에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았다.
유림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갈색 손잡이의 작은 단도가 제 배에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어느 틈에…….
저가 칼에 맞았다는 걸 인식해서 그런 걸까.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통증이 덮쳤다.
유림은 저도 모르게 상체를 숙이며 몸을 뒤로 물렸다.
“젠장……”
설마 숨기고 있는 무기가 단도일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륜의 늄은 신체 반응속도를 향상하는 데만 쓰고 있어서 방어를 못 한 것이 미처 실수였다.
칼날이 보이지 않게 깊게 질린 손잡이를 중심으로 옷이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이에 정신이 팔린 순간, 다단이 그대로 유림을 내려쳤다.
상상도 못 할 통증이 머리를 강타했다.
이마가 깨졌는지 관자놀이를 타고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고, 멀미가 인 것처럼 어지러워 제대로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유림이 가쁜 숨을 내쉬며 자세를 잡았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피가 자꾸 시야를 가렸다.
다단은 그런 유림을 봐주지 않았다. 곧바로 유림을 걷어차 저만치 날려버렸으니까.
짤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혼미한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으며 유림이 하민과 레이먼의 펜던트에 있는 늄을 가져다 제 것으로 변형했다. 그리고 다단이 달려오는 순간에 맞춰 내던진 나뭇조각에 집중했다.
콰아아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나뭇조각이 크게 팽창하며 거대한 벽을 이루었다.
책장의 높이를 웃돌 만큼 두껍고 탄탄한 벽이 유림과 다단 사이를 막았다.
거대한 댐을 만들듯 점점 늘어나는 벽에 다단이 혀를 찼다.
대량의 늄을 사용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듯 벽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도망쳤나…….”
벽 너머로 점점 멀어지는 인기척을 느끼며, 다단이 혀를 찼다.
***
유림은 얼음 서고에 있는 수많은 굴 중 한 곳에 숨어들었다. 벽의 찬기가 뼈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를 악물며 검을 단숨에 뽑아낸 유림이 거센 기침을 하며 몸을 숙였다.
정말이지 말이 안 될 정도로 아팠다.
이사장님께 이 기술을 배운 건, 그리고 은하의 늄을 빌린 건 정말 천운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을 테니까.
이런 상태로 독기를 해독하고 클레이즈로 돌아가는 것도 무리겠지.
유림은 은하의 펜던트를 쥔 채, 다친 상처 부위에 집중했다. 느리게나마 피가 멎으며 상처가 점점 아물어 가는 게 보였다.
확실히 익숙한 늄이어서 그런 걸까. 은하의 늄은 다른 친구들의 것에 비해 좀 더 쓰기가 수월했다. 물론 완벽한 치료를 하는 건 무리였다. 거기다 빵빵하게 넣은 게 무색할 만큼 늄이 금세 동났다.
그래도 다른 늄을 쓸 때처럼 고도의 집중력이나 어지러움이 없는 건 좋았다.
“으으…… 진짜 아프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친구들의 기술을 이용해 그의 허점을 노리는 건 실패했다. 거기다 남은 친구들의 늄은 디하르와 샨이 전부. 물론 루아와 륜 그리고 테오의 늄도 남았지만 조금밖에 남지않아 위력이 센 공격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거기다 샨의 늄은 다시 되돌려 줄 생각이었기에 실상 쓸 수 있는 늄은 디하르의 것이 전부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늄도 독기를 변형하는데 써버려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이 방법밖에 없는 건가…….
유림은 숨을 내쉬며 다음 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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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