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65
제 265 화
두 사람과 감동적인 재회를 한 유림이 클레이즈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약 보름 뒤였다. 그리고 두 계절 만에 밟은 클레이즈 땅에서 그녀가 처음으로 겪은 건 걱정을 빙자한 혼남이었다.
“너!!”
은하와 디하르의 연락을 받기 무섭게 학교로 복귀한 일행이 유림을 보며 소리쳤다.
“살아 있었으면 연락을 해야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통신구는 없었고, 편지는 보내는 족족 반송되었으니까.
거기다 거진 석 달가량을 침대 생활만 했기에 초반엔 아픈 몸 추스르기만으로도 급급했다.
유림은 자신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을 피력하고 싶었지만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쌍둥이가 엉엉 울어버리는 바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옮기라도 했는지 은하 또한 눈물을 터트려 눈만 깜빡이며 눈치를 살펴야 했다.
“미안…….”
우물쭈물한 목소리로 사과하자 쌍둥이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끌어안았다. 뒤이어 하민과 테오도 훌쩍이며 유림을 끌어안았고, 분위기에 편승한 륜과 은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같이 있던 해우와 리리아, 세룬도 다가가 모두를 얼싸안듯 끌어안았다.
“아니, 교수님들은 왜 같이 하는 거예요! 얘네 좀 말려봐요! 저 진짜 숨 막힌다고요! 잠깐, 지금 내 옆구리 찌른 사람 누구야!”
졸지에 여러 사람에게 안긴 유림이 바동거리며 소리쳤다.
“숨 막혀! 다들 저리 좀 비켜요!”
테이블에 앉아있던 케이와 하진은 물론 데몽과 디하르까지 모두의 모습에 소리 내 웃었다.
가까스로 모두의 품에서 빠져나온 유림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반쯤 풀렸고, 티셔츠의 한쪽 소매는 말려있었다.
“으… 진짜 이게 뭐야-!”
유림이 머리를 다시 올려 묶으며 투덜거릴 때 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유림.”
“네?”
“어서 와.”
“…….”
지금 타이밍에 그 말은 반칙 아니에요?
유림이 울컥한 감정을 추스르며 최대한 환한 얼굴로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친구들이 다시 달려들며 유림을 꼭 끌어안았다.
야, 하지만! 우악! 미치겠네! 내 머리에 머리 올린 놈 누구야! 무겁잖아!
또 한 번의 포옹 세례 속에서 빠져나온 유림이 헉헉거리며 잽싸게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또 그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데몽은 이대로 있다간 분위기의 흐름이 이상해질 것 같아 이 틈을 이용해 잽싸게 화두를 돌렸다.
“근데 어떻게 사혈에 있었던 거야?”
미리 들었던 디하르와 은하와 달리 모두 그 부분이 궁금했었기에 의아하단 얼굴을 했다.
유림은 어디서부터 설명할지를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음……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유림이 살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우연 덕분이었다.
기절하고 눈을 떴을 때, 하늘이 도운 건지 유림의 늄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기에 이 틈을 이용해 최대한 그곳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나갈 방도를 찾을 순 없었다. 순간이동을 할 만큼의 늄은 되지 않았고, 길은 무너져 나갈 수 없었다. 빼앗긴 늄 때문에 무너진 터라 변형도 무리였다.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그렇게 고민하던 도중 문뜩 어떤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기절하기 직전 떨어트린 키르의 색이 연보랏빛이었다는 걸 말이다.
정신이 혼미할 때의 일이었지만, 그게 착각이나 잘 못 본 게 아니란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 굴은 클레이즈의 영역 안에 있는 걸까? 친구들에게 통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기절하기 직전 떨어트린 키르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유림은 굴을 따라 걷기로 했다. 키르가 반응했으니 어쩌면 클레이즈랑 이어져 있을 수 있단 생각을 하며 말이다.
정말로 많이 걸었다. 다리도 아프고 허기도 지고 졸음도 쏟아졌다. 거기다 심각한 상처 때문에 오래 걷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돌벽의 색이 바뀌고 앞이 안 보일 만큼 어두워져 하나 남은 나뭇조각을 빛이 나게끔 변형해 가까스로 걸음을 이어갈 때였다.
어쩐지 조금 본 듯한 길이 나타났다.
그것은 사혈로 여행 왔을 때, 디하르와 왔던 굴이었다. 동굴 구경하다가 갑자기 다른 굴로 이동돼 빠져나가느라 고생했던 그곳 말이다!
“……그래서 디하르가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벽 타고 빠져나갔죠. 그 뒤엔 곧바로 졸도했고요. 정신을 차렸을 땐 달의 병원에 있었어요.”
커다란 충격이 모두를 덮쳤다. 클레이즈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덴 케이조차 모르던 일이었는지 숨을 삼킨 채, 눈을 홉뜰 뿐이었다.
“얼음 서고가 소난하고 연결되어 있다고?”
“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클레이즈와 소난이 연결된 사실에 가장 놀랐던 건 직접 그곳을 건넌 유림이었다. 금지된 바다의 아래를 건너온 게 아니던가.
“여기서부턴 그냥 제 추측인데요, 레아드시텐에 들어오는 데 성공해 얼음 서고를 발견했다던 그 8형 사람 말이에요. 아무래도 배가 아니라 지하의 길을 이용해서 간 게 아닐까 싶어요. 그 길이 과거서부터 있었는지 그 사람이 직접 만들면서 간 건지는 알 수 없지만요.”
금지된 땅의 바다는 대량의 독기를 머금었기 때문에 생명들이 살 수 없었다. 배도 뜰 수 없었다. 일정 거리를 지나면 지독한 독기에 배가 녹아내렸으니까.
물론 그 사람이 독기를 변형해가며 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클레이즈에서 얼음 서고까지의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도 엄청난 늄을 썼던 걸 생각하면 그 먼 거리를 배로 이동해 가는 건 무리 같았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그 굴은 한 번 조사해 보는 게 좋겠군……. 독기는? 아무 이상 없이 건넌 건가?”
“장담할 순 없는데 제 기억엔 변형한 적이 없었어요. 몸 상태가 최악이라 중간중간 졸고 걷고를 반복해서 무의식적으로 했을 수는 있지만요. 그래도 많은 양은 아니었을 거예요. 절벽을 올라갈 때 쓸 수 있을 만큼의 늄은 남아 있었거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처음엔 아슈팔만 데려가는 게 좋을 거야.”
리리아의 제안에 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림이 너도 같이 가자.”
무너진 굴의 입구를 과연 다시 개통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알겠다며 유림이 고갤 끄덕였다. 그러다 문뜩 무언가를 떠올린 듯 운을 띠었다.
“아, 그 전에 저 모두한테 할 말 있는데…….”
“뭔데?”
“좀 중요한 이야기라 히야스 교수님 계실 때 같이 할게요. 그보다 교수님은 어디 가셨어요?”
올 때 은하와 디하르에게 아슈팔이 학교에 남은 것을 비롯해 모두의 근황 이야기를 들었지만 히야스에 대한 건 자세히 듣지 못했던 유림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리리아와 해우 하진이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케이를 바라봤다.
그들의 침묵에 유림은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안 보이시기에 얼음 서고에 있거나 바쁜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무슨 일 있었어요?”
그리고 이 말에 케이가 히야스의 일을 전해주었다.
***
히야스는 북쪽 경계 앞에 앉아 멍하니 쇳조각만 만지작거렸다. 아슈팔은 그의 옆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연구생들이 1년에 네 번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연구보고서였다.
정말로 하기 싫은지 특유의 평화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없고, 짜증만이 얼굴에 가득했다.
사실 라의 문 열쇠도 다 만들었으니 아슈팔이 클레이즈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학교에 남아 있었다.
성실한건지, 단순한건지. 유림이라면 단박에 때려치웠을 텐데.
“…….”
또다시 우울함이 밀려들어왔다.
기분이 하루에도 수천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며 마음을 때렸다.
불확실한 걸 기다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구나.
뒷목을 벅벅 긁으며 한숨을 푹 내쉴 때 아슈팔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짜증나네요. 이렇게까지 하기 싫은 건 처음입니다. 그만두고 싶어요.”
“그만두면 뭐하게?”
“대장간이요.”
“…….”
히야스는 제자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꼈지만, 평화주의를 외치는 주제에 대장간을 차리고 싶다는 꿈만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살상무기를 취미로 만드는 녀석이 상냥하게 농기구나 식기를 만들진 않을 거 아닌가.
어째서 제 제자들은 이렇게 별난 걸까. 생각해보니 케이도 특이했고, 저도 꽤나 괴짜 소리 듣고 살았다.
“……8형의 특징인 건가.”
“뭐가요?”
“별나고 특이하고 제멋대로인 거.”
“……저는 아닌 것 같지만, 교수님하고 유림이는 맞는 거 같습니다.”
너도 포함되거든? 내가 아니겠지.
히야스는 작게 구시렁거리며 아슈팔이 작성하는 연구보고서를 바라봤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틀린 부분을 지적하려 할 때였다.
“교수님!”
꿈에서나 듣던 목소리였다.
히야스의 고개가 빠르게 뒤로 돌아갔다.
사복을 입은 유림이 무릎에 손을 짚은 채, 크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히야스는 저가 헛것을 보나 싶어 다시 돌아보기도 하고, 눈을 비비기도 했다. 그러나 유림의 환영은 사라지긴커녕 점점 가까워졌다.
바로 등 뒤까지 다가온 유림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왜 여기 있어요!!”
히야스는 그제야 유림이 진짜 제 앞에 있음을 깨달았다.
“한유림…….”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듯 의자나, 컵, 담요를 비롯한 간단한 생필품들이 주변에 잔뜩 쌓여 있었다.
식사도 여기서 했는지 빈 그릇들도 보였다.
속이 상해 눈물이 치솟아 오르려 할 때, 히야스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물었다.
“너 왜 그쪽에서 오냐? 이쪽에서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하? 지금 그게 중요해요!”
“중요하지! 내가 너 기다리겠답시고 여기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데!”
“언제 올 줄 알고 계속 기다려요!”
“언제든!”
“…….”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유림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빈말이 아니라 히야스는 저가 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설령 그것이 몇 년 후의 일이라 해도 말이다.
기분이 뭉클했다.
뭐랄까.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자신을 걱정하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많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구나.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었어.
“앞으론 안 늦을게요. 걱정도 안 끼치고요. 그니까. 교수님도 이렇게 기다리지 마세요. 알겠죠?”
유림의 말에 히야스가 옅게 웃었다. 그걸 바라보는 아슈팔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순순히 떨어지는 대답에 그제야 유림이 표정을 풀고 작게 웃었다.
“그보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다른 곳을 통해서 온 거냐?”
“저 1교사 라의 문 타고 왔어요.”
“뭐?!”
히야스와 아슈팔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자세한 건 가면서 말할게요. 그 전에 어디 한 곳만 들려요.”
“어딜?”
히야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물었다.
유림이 허리를 짚으며 쓰게 웃었다.
“저만 기다리고 있는 바보 데리러요.”
***
유림은 레이먼이 알려준 대로 정보부 동아리방을 찾아갔다. 대외적인 부실은 동아리 교사에 있었지만, 요한과 샨이 자주 있는 곳은 다른 교사라 했기에 유림은 잘 오지도 않는 2클래스 교사 꼭대기 층의 나선 계단을 타고 다락으로 올라갔다.
다락이란 말에 낮거나 좁을 거라 생각했는데 꽤나 쾌적했다.
“왔어?”
유림이 올 걸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삼각형 모양의 창에 기댄 채 서 있던 요한이 말했다.
“샨은?”
“저 안에.”
요한이 옆의 상자 더미를 가리켰다. 마치 가벽을 만든 것처럼 상자가 좁은 틈을 남긴 채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유림은 그 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는 샨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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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