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9
제 29 화
“아, 네. 반갑습니다.”
유림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이사장이었다.
근데 무슨 이사장이 저렇게 젊다냐? 외모를 변형시킨 건가? 왜 가끔 고위 마법사들은 자신의 외모를 젊게 바꾸지 않던가.
“혹시 반말로 해서 불편한가?”
“아니에요. 그냥 편하게 대해주세요.”
“하하, 다행이야. 앞의 한 학생은 좀 불쾌해하더라고.”
왠지 그 학생이 데몽이 아닐까란 생각이 잠깐 든 유림이었다.
“시험 힘들었지?”
“아…… 괜찮았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질문에 유림이 두 눈을 깜빡였다. 제법 딱딱한 면접을 생각했었는데 제 생각과 달리 이사장이란 사내는 부드럽고 온화한 말투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면접이라기보단 대화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어제 저녁은 맛있게 먹었어?”
“네, 덕분에 과일을 원 없이 먹은 것 같아요.”
“잘 먹었네. 클레이즈에서 준비하는 과일은 늘 최고급이거든. 남기지만 않는다면 마음껏 먹어도 돼.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아침 전이겠군.”
“하하, 그러네요.”
생각해 보니 정말로 아침 전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4차 시험을 치르고 그 시험을 통과하자마자 면접실로 끌려오지 않았던가. 그러한 사실을 자각해서 그런지 갑자기 배가 고팠다.
“아침을 준비해 놨으니 면접이 끝나면 그걸 먹고 돌아가도록 해.”
돌아가? 어딜?
“그보다 한유림, 혹시 시험 도중 이상했던 일 없었어?”
그 말에 유림의 어깨가 살짝 굳었다. 그러나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케이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이상한 일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실 2차 시험이 끝나고 감독관 하나가 이상한 태도를 보여서 말이야, 혹시 학생 중에 어디 문제 있는 아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 말에 그가 말하는 감독관이 ‘히야스’란 걸 파악한 유림이었다.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럼 됐어. 자, 이제 슬슬 면접을 시작해 볼까?”
그 말에 유림이 경쾌하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 자신감도 있고. 클레이즈가 어떤 곳인 줄은 잘 알고 있지?”
“하하하, 알고 있으니까 왔겠죠?”
“의외로 초대장을 받았음에도 오지 않는 애들도 많아.”
“정말요?”
놀랍다는 듯 떠들고 있지만 사실 자신도 은하가 연금을 말하지 않았으면 오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속으로 가볍게 키득거리는 유림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궁금해졌어. 왜일까 하고 말이야.”
“오지 않는 이유요?”
“아니, 오는 애들의 이유.”
“…….”
유림은 두 눈을 깜빡이며 이사장을 바라봤다. 그는 깍지를 낀 채 그 위에 얼굴을 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유림을 향해 예의 그 중저음으로 물었다.
“너는 왜 클레이즈에 온 거야?”
왜 왔냐고?
“연금 때문에 왔어요.”
순간, 그 말에 케이와 이즈네, 그리고 또 다른 감독관이 굳어버렸다. 그들은 어라? 하는 표정으로 유림을 바라봤다. 여태껏 수없이 많은 응시생에게 이 질문을 건넸지만, 개중 이렇게 답한 이는 없었다. 물론, 부자가 되겠다고 오는 학생들은 있었으나 저렇게 대놓고 연금이 목적이라 한 이는 처음이었다.
케이는 흥미롭다는 듯 유림을 바라봤다.
“진짜?”
“네, 진짜예요.”
유림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케이를 바라봤다.
뭐지, 사실을 말했음에도 거짓말을 한 것 같은 기분은? 물론 루아와 이야기할 때에도 이런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들은 나름 자신을 잘 알고 있던 이들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처음 보는 이가 아니던가. 과연 이 말을 믿어줄지 의문이 갔다.
거짓말이 아니냐고 따져 물으면 뭐라 답하지?
유림은 이사장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고민을 단박에 날려주는 이사장이었다.
“멋진 이유네.”
……의외로 다들 잘 믿는구나.
“그럼 입학시험을 열심히 봤겠군.”
유림은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네. 근데 잘 봤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잘한 것 같아.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어?”
“네, 좋은 애들을 몇 만났어요.”
“2차 시험은 어느 문에서 치렀어?”
그 질문에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 유림이었다.
“초록 방이요. 안젤리카가 등장하는 OX 퀴즈요.”
“귀찮은 감독관이랑 만났네. 히야스는 이쪽에서도 꽤나 골치 아픈 교수거든. 뭐, 실력은 좋지만.”
“그런가요?”
“응, 입학하면 많이 배워.”
“하하하, 입학시켜 주시면 많이 배울게요.”
“좋은데? 면접은 제일 잘 보고 있는 것 같아.”
케이는 턱을 쓰다듬으며 옅게 웃었다. 한층 더 위화감이 짙어졌다.
“그런가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3차 때는 어땠어? 붉은색 팔찌였다며?”
“아시다시피 구름 고래 잡겠다고 열심히 날뛰었죠.”
“뿔은 잘 부러트렸어?”
“네, 좀 많이 다치긴 했지만요.”
그 말에 케이가 흥미롭다는 듯 되물었다.
“다쳤어?”
“네, 하지만 괜찮았어요. 친구가 도와줬거든요.”
“흠, 그 친구가 박은하수인가?”
“어? 알고 계시네요.”
유림은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나 웃는 낯과 달리 이상하게 불길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편했던 소파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왜지? 잠깐만 생각해 보자, 한유림. 면접이라 치기엔 너무 평이하지 않아? 안젤리카 7호가 직접 와서 말할 만한 것치곤 너무 약하고 일상적이잖아. 거기다 이런 걸로 어떻게 올바른 애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는 거야?
유림은 태연한 표정으로 케이를 바라봤다. 그러나 등에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4차는 어떠했어?”
순간 등을 타고 오싹한 기운이 올라왔다. 유림은 당혹 어린 눈으로 케이를 바라봤다. 아까부터 왠지 위화감이 든다 생각했는데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지금 자신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네’, ‘아니요’로 답할 수 없는 서술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저 스스로가 그가 원하는 말을 하게끔 말이다.
시험의 차수를 계속 거론하며 묻는 것도 이에 있었다. 히야스를 거론하면서 2차 시험에서 무슨 일이 없었냐고 묻는 것을 보면 분명 자신이 어느 문에서 치렀는지 잘 알고 있단 소리였다.
그뿐만 아니라 붉은 팔찌를 찼었다는 것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자신이 다쳤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애당초 정말로 몰랐다면 은하를 바로 거론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이사장이 2차 시험, 그리고 3차 시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묻는다는 건 4차 시험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알 확률이 있단 소리였다.
생각해 보면 그 부분도 이상했다. 왜 감독관인 히야스가 등장한 거지? 처음에는 그냥 별 시답잖은 시험이라 생각했는데 은하들의 태도를 보면 자신의 시험은 뭔가 이상했다. 더욱이 디하르의 상태로 봤을 때, 자신이 겪은 일은 너무나 평범했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히야스가 자신의 4차 시험에 개입해 그냥 통과할 수 있게끔 판을 바꾼 건가?
그래. 그렇게 보면 뭔가 앞서 말한 ‘감독관 하나가 이상한 행동을 해서’란 질문도 이해가 갔다.
뻔하지 않은가. 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감독관 히야스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4차 시험에 껴들어 자신과 이야기했다는 것을 말이다.
유림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덴 케이를 바라봤다.
지금 자신에게 떨어진 최고의 문제는 단 하나였다. 과연 이사장인 덴 케이가 자신이 히야스와 했던 모든 대화를 알고 있느냐, 아니면 단지 히야스가 끼어든 것만 아느냐.
그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에 따라 유림이 해야 할 행동도 달라졌다.
유림은 케이를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4차는 좀 싫은 시험이었어요. 안젤리카가 또 등장했거든요. 거기다 자꾸 귀찮게 해서 화가 나는데 감독관이라 화를 낼 수도 없었어요.”
“그래?”
그의 말끝이 올라갔다. 표정을 보니 비꼬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뻔했다. 가능한 거짓말을 하지 않되 필요 없는 내용은 다 빼버리는 것이다.
유림은 태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나와서 보니 저만 화가 난 시험이 아니더라고요. 은하는 물속에 빠지고 또 다른 친구는 남자만 득실거리는 곳에서 빠져나왔대요. 뭐, 그건 좀 웃겼지만.”
“안젤리카가 히야스 감독관의 로봇인 건 알지?”
“네, 알고 있어요. 본인 스스로 히야스 감독관님이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럼 히야스랑 직접 이야기를 해봤겠네. 앞서 말했듯 녀석이 좀 괴짜라 많이 귀찮았을 텐데 잘 통과했어.”
유림은 그 대답에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히야스와 자신이 한 대화의 내용을 모르고 있다.
“그러게 말이에요. 용케 빠져나왔다 싶어요.”
“오~ 꽤 좋은 근성이군.”
살짝 민망한 칭찬에 유림이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케이는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일단 케이가 자신과 히야스가 한 대화의 내용을 모르는 건 확실했다.
이건 유림에게 있어 꽤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있었던 일을 숨기기 위해 평범한 이야기만 했다간, 도리어 그 사실에 의문을 느끼고 자신이 거짓말했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떠들거나 침묵할 수도 없고. 으음…… 어디까지 말해야 하지?
유림은 자신의 잔머리란 잔머리를 다 끌어모아 이 면접을 통과할 궁리를 했다. 그때, 갑자기 케이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예의 느긋한 표정으로 유림을 바라봤다.
“흠…… 역시 생각처럼 쉽진 않네. 난 두뇌파는 아닌가 봐.”
“네?”
“귀찮은 건 질색이니 직구로 나가자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면접은 큰 의미가 없어. 너에겐 말이야.”
“……!”
유림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키며 눈을 홉떴다.
와…… 이건 좀 예상 못 했던 반응인데. 큰일 났다. 이거 다른 의미로 잘리게 생겼어.
유림은 쓰게 웃으며 케이를 바라봤다.
“사실 난 좀 궁금해. 왜 히야스가 너를 신경 쓰는지 말이야. 그 사실은 잘 알고 있겠지? 내가 대화하고 있는 한유림은 바보가 아니니까.”
유림은 얼굴을 채우고 있던 웃음을 지웠다. 그리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뭐가 궁금하신 거예요?”
“자네가 궁금해. 정확히는 히야스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의 자네가.”
“……제가 입학시험을 치르면서 느낀 게 하나 있는데, 저 생각보다 인기가 많네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관심을 다 가져주시고.”
“후훗, 좋은 거지.”
“아뇨, 좀 귀찮은 것 같아서요.”
유림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상대방이 저렇게 나오면 자신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건 내공이 다르잖아. 저렇게 나오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이겨.
저 정도의 내공이면 그 질문에 내가 어떻게 느끼고, 또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도 충분
히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유림은 계속 뒷머리를 긁적였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약 1분 정도의 침묵이 흐르고, 유림이 아랫입술을 핥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나요?”
“그래.”
“저도 모르겠어요. 왜 그 감독관이 저한테 신경을 쓰시는지요.”
“짚이는 건 없나?”
유림은 고개를 저었다.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신도 그가 왜 자꾸 끼어드는지 알고 싶었다. 그나마 추측할 수 있는 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대장이 가짜임을 알고 있다는 거? 그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대장이…….
“…….”
순간, 유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온몸이 돌이라도 된 듯, 바싹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내 찜찜했던 무언가가 단어로 형성되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유림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마치 엉켜 버린 실타래처럼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은 사실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꿀꺽. 마른침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꽉 쥐어지는 손과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은 단 하나였다.
대체 히야스는 어떻게 자신의 초대장이 가짜인 것을 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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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