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3
제 3 화
“그럼 둘도 랑 출신이야?”
유림의 질문에 데몽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펠리탄, 테오는 루만 출신. 잠시 륜네 집에 놀러 가 있었는데 초대장이 그곳으로 날아왔어. 그래서 겸사겸사 같이 왔지.”
데몽의 대답에 유림이 응? 하고 두 눈을 깜빡였다. 데몽이 말한 그들의 출신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테오가 사는 루만은 리오카르단(서쪽 대륙)의 국가고, 데몽이 산다는 펠리탄은 레바리움(남쪽 대륙)의 국가였다. 같은 나라가 아닌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바로 옆 나라도 아닌 동, 서, 남 대륙의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다고?
보편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이해가 가지 않는 말에 유림이 다소 멍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자, 그 표정에서 유림의 생각을 읽은 데몽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머니들이 다 친구여서.”
그리고 그제야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 유림이었다. 요즘은 타국으로 시집을 가는 사람들도 많고, 이민 가는 사람들도 많으니 어머니들이 친구라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뭐, 흔한 것도 아니지만.
“어머님들끼리 소꿉친구인 거야?”
“뭐, 정확하겐 가문끼리 친한 거지.”
가문이란 말에 유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륜이 외조부의 유산을 받아 나름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건 륜네 외가가 부자란 소리였다. 그런데 그런 부잣집과 가문끼리 친하다고?
“그럼 둘도 꽤 괜찮은 집안인가 봐?”
어떻게 보면 꽤나 직설적이라 볼 수 있는 유림의 질문에 데몽이 미간을 살짝 구기며 말을 삼켰다. 데몽은 유림에게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앞에서 마차를 몰던 륜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데몽은 집안이 괜찮은 게 아니라 데몽이 괜찮지. 펠리탄 제국 소속의 수습 학자니까.”
“수습 학자?!”
“수습 학자라고?!”
유림과 은하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과도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놀란 표정으로 데몽을 바라봤다.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의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된 데몽은 륜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팔짱을 꼈다.
“아…… 저 바보가.”
반응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말 데몽이 펠리탄의 수습 학자라고
?
유림은 마른침을 삼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펠리탄이 어디던가. 비슈아드에 단둘밖에 없는 대제국 중 하나이자 세상의 중심이며, 가장 칭송받는 황제이자 영웅인 ‘지크레이 드아몽 펠리탄 히첼리에테’가 있는 곳이 아니던가. 그리고 펠리탄의 소속 학자라면 바로 이 영웅인 지크레이 황제를 섬기는 황실의 사람이란 뜻이었다.
어지간한 교수나 지식인들도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자, 지식의 보고라 불리는 학자들의 성지!
고작 열아홉이란 나이에 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성지에 들어가다니……. 물론, 정식이 아니라 수습 학자라 말했지만, 이 또한 대단한 건 매한가지였다.
유림은 데몽의 믿기지 않는 경력에 감탄하며, 기대감 가득 넘치는 눈으로 테오를 바라봤다.
“그럼 테오는?”
유림의 질문에 륜이 그랬듯이, 테오 또한 눈치 없이 입을 열었다. 아니, 오히려 데몽에게 질 수 없다는 듯 은근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난 뭐 학자나 부자는 아니고, 군인이야. 아버지가 장교라 어쩔 수 없이 열 살 때부터 군에 소속됐거든. 그렇다고 낙하산인 건 아니야. 정식으로 시험 봐서 들어갔어.”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유림이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대- 박! 얘네 대체 정체가 뭐야? 수습 학자가 있는 것도 놀라운데 아버지가 루만의 장교라고?!
루만은 리오카르단(서쪽 대륙)에서 가장 손꼽히는 군사 국가 중 하나였다. 애초에 두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3개국이 합쳐 건국된 막강한 나라가 아니던가. 물론 혁명단 때문에 내부적으로 갈등이 심하지만, 국가 자체는 부강했다. 그뿐 아니라 교육과 지략에도 힘을 많이 쓰는 나라라, 루만의 군인 대부분은 문무(文武)가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의 군인인 것도 모자라 아버지가 장교라니!
유림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그들을 바라봤다.
한 놈은 갑부, 한 놈은 제국의(수습) 학자, 한 놈은 장교의 아들!
아버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봐요!
유림은 고개를 돌려 이런 복덩어리들을 잡은 은하를 바라봤다.
박은하수, 네가 천운의 소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 너는 뭔 짓을 해도 운이 팡팡 터지는 행운의 소녀였지. 어쩜 사람을 잡아도 이런 황금들을 잡냐. 내가 마을에 도착하면 밥 많이 먹게 해줄게. 네가 몇십 그릇을 먹어도…… 아니, 이건 좀 팰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돈 봐줄게.
유림은 팔을 들어 은하의 등을 힘차게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은하가 얼빠진 표정으로 옆을 바라봤다. 그러자 아주 환한,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환~ 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유림이 보였다.
퍽퍽퍽.
등을 두드리는 속도에 맞춰 은하의 머리가 연신 흔들렸다.
유림은 마지막으로 힘을 줘 은하의 등을 팍 하고 친 뒤, 고개를 돌려 앞의 두 사람을 바라봤다.
“얘들아.”
“응?”
“어?”
잘하면 꽤 괜찮은 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유림은 흡족한 표정으로 데몽과 테오의 두 손을 꽉 잡아 보였다. 마주 잡은 손바닥 너머로 딱딱한 굳은살이 느껴졌지만, 알게 뭐람.
“우리 열심히 해서 같이 클레이즈에 입학하자~”
꽃처럼 상큼한 미소가 유림의 얼굴에 번졌다. 테오는 이에 화답하듯 마주 잡은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마차를 몰던 륜 또한 모두 힘내자며 맞장구를 쳤다. 오직 데몽만이 뒤가 구린 표정으로 유림을 흘겨볼 뿐이었다.
하하하.
하하하.
끝없이 이어지는 행복한 웃음소리.
은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차의 구석으로 슬금슬금 몸을 옮겼다.
평소의 유림에게선 절대로 볼 수 없는 화사하고 상큼한 미소, 은하는 저 웃음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봉’을 잡았을 때 짓는 미소였다.
‘…….’
은하는 현실을 외면하기라도 하듯 고갤 돌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친구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 희생될 불쌍한 세 소년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현할 뿐이었다.
뭐,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위로이긴 했지만 말이다.
* * *
비슈아드력 1771년 9월 1일, 새벽 5시. ‘클레이즈’의 ‘교무회의실.’
클레이즈의 간부 교수들만 들어올 수 있는 1급 회의실이자 대학의 중요 결정을 하던 거대한 집무실에 불이 켜졌다.
허하리만큼 넓은 방은 매끈한 대리석 벽으로 꾸며져 있었고, 길게 트인 창문은 짙은 붉은색의 커튼으로 덮여 외부의 빛을 차단했다. 방의 정중앙엔 붉은색의 크리스털 구(球)가 허공에서 은은한 주홍빛을 뽐내며 방을 밝혔고, 그 아래엔 길고도 고풍스러운 테이블과 그것을 중심으로 아홉 개의 의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검은색의 질 좋은 가죽과 고급스러운 방석으로 이루어진 등이 높은 의자에는 금으로 된 장식이 등받이부터 손잡이까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등받이의 가장 윗부분엔 둥근 모양의 원판이 보였는데, 그 안엔 각기 다른 숫자가 세리프를 이룬 채 쓰여 있었다. 가운데 있는 것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의자엔 1~4, 그 맞은편엔 5~8의 숫자였다. 그리고 그런 요사스런 의자에 아홉 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클레이즈의 간부 교수라 치기엔 너무나도 젊은 외모였다. 스물다섯에서, 많이 봐야 서른 정도. 개중 한 명은 어린아이 같기까지 했다.
그들은 회의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편한 자세로 앉아 이 장소의 중심이자 이사장의 자리인 가운데 의자를 바라봤다. 잠시 후, 그곳에 앉아 있던 잿빛 머리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현 예비 신입생 상황은?”
날카로우면서도 고집 있게 느껴지는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그의 질문에 2번 의자에 앉아 있던 여인이 다리를 꼬며 말했다. 굽이진 긴 머리와 투명한 피부가 고혹적인 여인이었다.
“령에서 152명, 레바리움에서 168명, 리오카르단에서 157명, 펜시리움에서 131명. 이렇게 해서 총 608명.”
웃음기가 섞인 그 음성에 7번에 앉아 있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순수한 미소, 그리고 크고 투명한 눈동자가 유달리 도드라져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나 많아?”
그의 말을 시작으로 한 명씩 입을 열었다.
“오~ 올핸 유독 많은데?”
“그럼 경쟁률이 몇인 거죠? 신입생은 무조건 서른 명만 뽑으니…….”
“약 20:1. 더럽게 많군.”
“하하, 너무 많으니 좀 당황스럽네.”
경쟁률을 들은 4번 소년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140㎝ 정도의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앳되고 동그란 얼굴 때문인지 열 살이 막 넘은 아이처럼 보였다.
그는 옆에 앉아 있는 듬직한 체구에 짧은 머리가 인상적인 3번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올해 인재가 많았던 걸까요?”
3번 사내는 그에게 최대한 예를 갖추며 답했다.
“아뇨, 반대로 너무 없었던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슷비슷한 녀석들이 잔뜩 뽑힌 거겠죠.”
“흠, 그건 그거대로 애매하네요.”
클레이즈의 한 해 신입생 수는 정확히 서른 명이었다. 그리고 그 서른 명을 뽑기 위해서 치러지는 시험은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전 세계의 열아홉 살 아이들에게 보내지는 편지 테스트, 두 번째는 마나 숨바꼭질, 마지막 세 번째는 심층 면접이었다.
응시생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점수를 합산해 등수를 매겼고, 이 중 1등부터 30등까지가 그 해의 신입생이었다.
평소였다면 많아도 200명이었기에 무난하게 치를 수 있었지만, 이번은 그 수가 너무 많았다. 600명을 상대로 면접과 마나 숨바꼭질을 한다니…….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려는 것처럼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난 몰라. 나머지가 알아서 해’라는 무언의 눈빛을 담은 채 말이다. 그때 가운데 앉아 있던 잿빛 사내가 그 침묵을 가르고 입을 열었다.
“시험을 바꾼다.”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해졌다.
그는 다리를 꼰 후 두 손을 깍지 껴 허벅지 위에 올렸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잿빛 머릿결이 은은하게 흔들렸다.
“올해는 입학시험을 바꾼다.”
순간, 짧은 정적이 그들 사이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바보 같은 목소리가 속속 튀어나왔다.
“에?”
“네?”
“응?”
“뭐? 내가 지금 무슨 헛소릴 들은 거지?”
“시험을 바꾼다뇨. 무슨 개소리예요.”
간간이 들리는 짧은 비명과 욕설. 사내는 그런 것들을 가볍게 무시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시험을 총 5차로 진행할 거야.”
시험을 바꾼다 했을 때와 별 차이가 없는 어투였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한층 더 격해졌다.
“미쳤군.”
“헐, 대박.”
“잠깐만요, 보스. 시험이 바로 오늘이에요! 대체 뭘 더 보잔 거예요?”
“어제 술 마셨어? 내가 시험 전날은 제발 마시지 말라고 했잖아.”
“바꾸는 걸 떠나, 그 많은 애를 어떻게 관리하려고? 점수 세는 것만 해도 장난이 아니라고!”
그들은 잿빛 사내, 아니, ‘케이’가 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정을 잔뜩 구기며 불만을 토로했다. 웅성거리는 소란이 회의실 안에 일어났다. 그러나 케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예의 그 모습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오히려 조용히 하라는 듯 테이블을 가볍게 툭 치며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다시금 정적과도 같은 침묵이 회의실 안에 내려앉았다. 이를 확인한 케이는 고개를 들어 앞을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아니, 내 말대로 진행한다. 대신 합계 방식은 안 할 거야.”
그리고 그가 나머지 뒷말을 이었을 때, 그악스러울 만큼 끔찍한 비명이 회의실 안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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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