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32
제 32 화
제2교시 [어서 와, 클레이즈는 처음이지?]
클레이즈. 세계 제일의 마법 대학이자 세계가 인정하는 교육기관.
이런 클레이즈가 비슈아드력 1771년을 맞아 새로운 응시생을 받았고, 그 결과 서른 명의 입학생이 정해졌다. 그리고 그중엔 사혈의 작은 변두리 마을, 소난에 사는 학생이 있었으니…….
“후후흐흐흐흐흐흣.”
바로 방년 19세의 한유림이었다.
그녀는 계속 음흉하게 웃으며 나무를 깎았다. 한 번 터진 웃음은 수맥이라도 발견한 듯 계속 실없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클레이즈에 합격하고, 은하에 의해 그 이야기가 온 마을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평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먹을 것과 각종 물건을 싸들고 유림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클레이즈를 졸업한 학생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지는진 안 봐도 뻔했기에 미리부터 친해지고자 접근한 것이었다.
소난에 혼자 사는 사람은 많았지만, 유림처럼 어린 시절부터 혼자인 아이는 적었다. 그 덕에 유림은 본의 아니게 마을 사람들에게 난감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 봐라. 주위에 어린애가 혼자 살고 있으면 얼마나 신경 쓰이겠는가. 그렇다고 챙겨주자니 가난해서 뭣하고, 안 하자니 양심에 걸리고. 어떻게 보면 그냥 접촉 없이 사는 게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유림은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큰 접촉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클레이즈에 입학했단 소식을 듣자마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유림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형편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딱히 나무라거나 ‘날 무시하더니 꼴좋다’라는 얄미운 마음을 가지진 않았다. 그냥 즐겁게 받기로 했다. 먹을 거든, 값비싼 물품이든 말이다. 지금 나무를 깎고 있는 이 단도도 선물로 받은 거였다.
확실히 비싼 게 좋긴 좋나 보다. 전에 있던 것은 날이 무뎌져 쉽게 깎이지 않았는데 이건 아주 매끄럽게 깎였다.
유림은 옷에 떨어진 나뭇조각을 털었다. 그러다 문뜩 흑색의 치마에 시선이 쏠렸다.
유림은 지금 클레이즈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재킷까지 완벽하게.
교복은 멋도 멋이지만, 어찌나 좋은 천으로 만들었는지 피부에 닿는 감촉이 예술이었다. 더욱이 입는 순간, 자동으로 치수에 맞게 크기가 변해 활동하기에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주었다. 치마라면 쳐다보지도 않는 유림이 흡족해하며 입을 정도였다.
어느새 두 뼘만 한 길이의 비녀로 변한 나뭇조각. 칼이 잘 들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마음에 들게 만들어졌다. 거기다 이번엔 좀 더 힘을 줘 숙성시킨 나무이니 쉽게 망가
지지 않을 것이다.
유림이 한참 자신의 역작에 흡족해할 때, 등 뒤로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비밀 공간인 이곳을 아는 이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분명 비 맞은 강아지처럼 방방 뛰며 달려오겠지. ‘림림!’거리며 말이다.
“림림!”
역시나…….
한 치도 틀림없이 자신을 부르며 다가오는 은하를 보며 유림이 혀를 찼다. 역시 너란 여자는 딱 생각한 만큼만 보여주는구나.
은하는 유림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며 뛰어왔다. 유림과 마찬가지로 클레이즈의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적당한 크기의 가방 하나만을 챙긴 유림과 달리 엄청나게 큰 트렁크와 크고도 묵직한 가방을 메고 있단 점이었다.
은하는 가쁜 숨을 내쉬며 유림 앞에 도착했다.
“림림, 많이 기다렸어?”
“응, 두 시간 전부터 기다렸어.”
뭐, 나무를 채집하기 위해서였지만.
뒷말은 상큼하게 삼킨 채 사악한 미소를 짓자 은하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혹시 얘가 내가 기다린 걸 알고 미안해서 그런가’ 하고 잠깐 생각했으나,
“웬일이야? 너나 나나 시간 약속 안 지키기로 유명한데. 림, 혹시 어디 아파?”
라는 말에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이 썩을 잡것. 시간개념은 나보다 네가 더 없거든?!
유림은 은하의 양쪽 볼을 쭉 잡아당겼다. 내가 요즘 참 친절하게 대해줬지? 그래서 네가 이런 발칙한 말을 떠드는구나.
“히- 아하(힝- 아파).”
“아프라고 잡아당기는 거야.”
“자모해떠(잘못했어).”
유림은 흥 하고 은하의 양 볼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손에 묻은 타액을 은하의 교복 상의에 스윽, 닦았다. 앗, 더러워! 라는 그녀의 짤막한 비명은 상큼하게 무시했다.
은하는 유림을 향해 가볍게 칭얼거렸다. 그러다 유림의 발밑에 있는 작은 가방으로 시선을 내렸다. 시험을 보러 갔을 때와 별반 차이 없는 짐이었다.
가볍게 어디를 가는 것도 아니고 최소 반년은 그곳에서 지내야 하는데 짐이 고작 저거뿐이라고?
“림, 짐이 이게 다야?”
“응, 이게 다인데?”
“가면 방학할 때까지 못 나오는데 뭐 없어? 옷이라든지 그런 거.”
“옷은 어차피 교복 입을 테니까 그냥 잘 때 입을 옷 몇 벌만 챙겼어. 생필품이야 가서 있는 나무 깎아다 만들면 되고.”
“그럼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거야?”
그 말에 유림이 씨익 웃으며 가방을 열어 보였다. 그곳엔 그녀가 숙성시켜 놓은 최고급 나무가 잔뜩 들어 있었다.
은하는 가방 내부를 빤히 보더니 뺨을 긁적였다.
“어, 음…… 있잖아. 나도 이상한 애인 거 아는데 이럴 때 보면 너도 좀 많이 특이한 것 같아.”
“칭찬으로 여기마.”
“으…… 음, 그래.”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은하의 모습에 유림이 피식 웃으며 시계를 꺼냈다. 현재 시각 12시 54분. 생각해 보니, 이 가스나 정말 아슬아슬할 때 왔다.
유림은 주머니에서 백색의 카드를 꺼냈다. 1시에 찢으라 했던 종이였다.
입학시험의 초대장을 찢는 순간, 이곳으로 이동된 걸 보면, 이 종이를 찢었을 땐, 분명 클레이즈로 이동될 것이다.
유림이 초대장을 찢을 준비를 하자, 은하 또한 주머니에 넣어놨던 종이를 꺼내 들었다.
“림림, 나 두근거려.”
“아, 나도 두근거려.”
“급식 맛있겠지?”
“……넌 그런 것만 생각하냐.”
“무슨 소리야, 림! 세상에 밥보다 중요한 건 없어!”
진심이 가득 담긴 은하의 말에 유림이 입을 다물었다. 뭐 중요하긴 하다만 너무 그렇게 강조하니 클레이즈의 목적이 급식 같구나……. 아, 적어도 너한텐 그게 목적이구나.
“그래그래. 뭐, 맛있겠지. 난 방이나 좋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기숙사 2인 1실이라 했지?”
“정확히는 4인 1실.”
“그거나 그거나!”
“누차 말하지만 달라.”
엄밀하게 말하자면 하나의 거실에 방 두 개가 붙어 있는 거였다. 즉, 2인 1실이 거실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방의 크기가 얼마나 클진 모르겠지만 쓰여 있는 내용과 갖춰져 있는 가구로 봤을 땐 제법 클 듯했다, 문제는 질이 좋은 방이냐 아니냐겠지만.
“으으~ 같은 방 돼야 하는데.”
“난 좀 떨어졌으면 좋겠다.”
“에에?!”
유림의 반응에 은하의 입에서 괴기 어린 비명이 튀어나왔다. 예쁘장한 애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뭔가 매우 웃겼다. 유림은 가볍게 쿡쿡거리며 은하의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신은 은하와 같은 방이 될 것이다. 이 바보의 천운은 어마어마하니 말이다.
맞은 이마가 아픈지 그곳을 슥슥 비비며 칭얼거리는 은하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면접 땐 이 녀석과 꽤 오랫동안 못 보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같이 입학한다니 기분이 좋았다. 뭐 나중엔 너무 귀찮아서 ‘그냥 떨어질 걸 그랬어’ 할진 모르겠지만.
유림은 내려놓았던 가방을 멨다. 슬슬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유림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시계가 1시를 가리켰다.
“1시다. 준비됐지?”
“응응!”
은하와 유림은 흥분 어린 표정으로 있는 힘껏 종이를 찢었다.
찌익.
종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금색의 가는 빛이 선을 그리며 두 사람을 감쌌다. 이윽고 그들의 몸이 가볍게 떠오르더니 이내 바람이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금빛 알갱이가 마치 그들의 앞날을 응원하듯 은은하게 퍼졌다.
* * *
“빨리 준비해! 의자 상태 다 확인했지?”
“네! 확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조명도 조심해 주고. 아, 혹시 모르니 아이들이 들어올 좌표 부근에 딴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9월 5일 수요일. 신입생을 맞이하는 기쁜 날이자 새로운 시작의 날인 클레이즈의 입학식이 정신없이 준비되고 있었다.
많은 교사와 학생회 임원들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강당에 모여 신입생을 맞이할 준비를 했고, 일부 관계자들이 주변을 살피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1시가 채 5분도 안 남은 상황. 입학식의 관리를 맡은 해우는 시간을 확인하며 주위를 살폈다.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완벽하게 정리된 강당이었으나 워낙 꼼꼼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는 옆에 있는 학생을 불렀다. 총명해 보이는 눈매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차분한 생머리가 인상적인 소녀로, 클레이즈의 현 학생회장인 미야였다.
“미야,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이곳에서 계속 살펴줘.”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 이사장님을 슬슬 모셔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 말에 해우가 난처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입학식의 핵심 인물인 이사장 덴 케이가 보이지 않은 지가 어언 반나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작정하고 숨은 듯싶었다. 물론, 입학식을 빼먹을 위인은 아니었으나, 괜히 늦어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표본이 될까 걱정스러웠다.
제 생각을 차마 대놓고 말할 수 없는 해우는 학생회장인 미야의 걱정을 가볍게 웃어넘겼다.
“괜찮을 거야. 이제 슬슬 신입생들이 올 테니 환영할 준비나 하자고.”
“네.”
해우를 향해 미야가 씩씩하게 답했다. 해우는 그녀에게 한 번 웃어준 뒤 신입생들이 도착할 장소로 향했다.
강당의 뒤쪽 바닥엔 거대한 원이 마치 진처럼 그려져 있었다. 학생들이 편지를 찢는 순간, 도착하게 될 장소이자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자리였다.
원 주위엔 많은 사람이 모여 들뜬 표정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1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거대한 원 안에 환한 빛이 떠올랐다.
* * *
유림은 두 눈을 깜빡이며 앞을 살폈다. 카드를 찢고 거대한 빛에 휩싸인 지 어언 30초. 빛이 사라지고 서서히 드러난 시야에 ‘드디어 클레이즈구나!’라는 마음으로 두근두근해 하는 유림을 덮친 건,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더해진 과격한 포옹이었다.
유림은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상대방의 이름을 크게 외치고 말았다.
“루아?!”
유림의 소꿉친구이자 8년 만에 만난 소중한 인연, 루아였다.
예상대로 당당하게 클레이즈에 합격한 루아는 같은 흑색의 교복을 입은 채 잔뜩 상기된 얼굴로 유림을 반기고 있었다.
“역시 붙었구나! 갑자기 이동돼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또 이렇게 영영 못 만나는 줄 알았다고!”
목청 좋게 떠드는 루아의 모습에 유림이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니 아무런 예고 없이 이동되는 턱에 연락처를 공유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루아가 합격했다니. 유림은 생각보다 기쁜 마음에 부드럽게 풀어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다 나머지 두 사람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아! 레이먼하고 디하르는?”
루아가 입꼬리를 말며 옆을 가리켰다. 그러자 언제부터 저랬는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레이먼과 은하가 보였다.
“깜둥이!”
“시끄러, 뽀송이!!”
왠지 은하가 조용하다 했더니만 저기 있었구나.
뽀얀 피부의 레이먼과 까무잡잡한 피부의 은하. 그 둘이 같이 있으니 서로의 피부색이 더욱 대조됐다.
유림은 두 사람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다 그 옆에 서 있는 디하르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디하르 또한 유림을 발견했는지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클레이즈의 여성용 교복은 유림도 입었고 은하가 입고 있는 것도 봤지만, 남자 교복은 레이먼과 디하르를 통해 보는 게 처음이었다.
유림은 깔끔하게 차려입은 디하르를 보며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헐, 디하르 교복 대박.”
어떻게 저렇게 잘 어울리지?
여성 교복의 짧은 재킷과 달리 코트처럼 길게 뻗은 남성용 교복은 진중함과 멋스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더욱이 워낙 키가 크고 비율이 좋은 디하르가 입어서 그런지 교복이라기보단 예복이나 정복 같아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디하르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 후, 유림과 루아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의 움직임에 주위에 있는 여성들의 시선이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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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