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33
제 33 화
역시 잘생긴 놈은 어딜 가도 눈에 띄는구나.
디하르는 루아의 포옹으로 인해 엉킨 유림의 앞머리를 가볍게 매만졌다. 그의 부드러운 음색이 유림의 귓가를 두드렸다.
“붙었네.”
아…… 왠지 찌릿찌릿한 시선이 느껴지는데?
유림은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들을 애써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다행이다. 다신 못 보는 줄 알았어.”
“그런가?”
유림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지 디하르가 약간 삐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훈훈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유림은 저도 모르게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 있는 루아는 너 미쳤냐, 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리 웃던 유림은 이내 숨을 고르며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리고 디하르를 비롯한 모두가 가장 불안해하던 것을 꼬집어 말해주었다.
“걱정 마. 이제 안 숨어.”
“정말?”
응, 정말.
유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번이고 걱정하지 말라 말했다. 그러자 그제야 안심했는지 디하르와 루아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걱정 말라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림은 아직도 불안했다. 혹여 이 친구들이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을까 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있고 싶었다. 이기심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유림은 다시금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였다.
“한유림!!”
누군가가 유림의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짝! 소리와 함께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악!!”
유림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곰처럼 푸짐한 덩치를 가진, 일명 테오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붙었구나! 그리고 나의 루아도 붙었구나♥”
라며 말 떨어지기 무섭게 루아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이렇게 때려놓고 루아한텐 하트까지 날리는 꽃 미소냐?! 나의 루아는 개뿔!!
유림이 씩씩거리며 아픈 곳을 짚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등 정중앙이라 쉽게 만져지지 않았다. 결국, 울컥한 마음에 입술을 짓씹으며 테오의 정강이를 뻥 걷어찼다.
빡!
“으악!”
이번엔 우렁찬 타격음과 함께 테오의 비명이 주위를 울렸다.
왼쪽 정강이를 잡은 채 껑충껑충 뛰는 녀석. 마치 곰이 팔짝팔짝 뛰는 것만 같았다.
“개아파!”
“복수다.”
“너, 진짜!”
“나, 뭐!”
유림과 테오는 레이먼과 은하가 그랬듯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때 둘 사이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그만해라. 쪽팔린다.”
건방질 정도로 시니컬한 목소리, 바로 데몽이었다.
“데몽! 너도 붙었냐?”
유림이 저도 모르게 삿대질하며 소리치자, 데몽이 그런 유림의 손가락을 살포시 치우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당연한 소릴 하고 있어. 내가 아님 누가 붙어?”
정말로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삽시간에 싸해진 분위기였다(심지어 티격태격하던 은하와 레이먼도 조용해졌다). 그러나 정작 이 분위기를 만든 데몽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안경을 가볍게 고쳐 쓰며 자신감이 철철 넘쳐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림의 입가에 자동적으로 떫은 미소가 걸렸다. 마음 같아선 뭐라 한마디 하고 싶은데 저 당당함이 허세가 아닌 사실이어서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렇구나…… 근거 있는 자신감이 이런 느낌이구나.
“……저 자식은 묘하게 재수 없어.”
테오가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네 친구야.”
유림은 그런 테오의 말을 조용히 받아쳤다.
“알아. 그래서 더 재수 없어.”
그리고 테오가 다시 그 말에 조용히 답했고,
“……고생이 많다.”
유림이 또다시 그걸 받아줬다.
두 사람은 조금 전까지 서로 치고받았던(?) 사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보여주고 있었다.
데몽의 자신감에 싸움을 멈춘 레이먼과 은하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졸지에 바글바글해진 일행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찌르듯 륜의 목소리가 일행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여-”
서글서글한 미소와 함께 드러난 온화한 얼굴. 륜 또한 클레이즈에 합격했는지 한층 밝아진 미소로 그들을 반겼다. 그리고 그 미소에 답하듯 루아가 꽃처럼 방긋 웃었다.
“륜 씨도 붙었네요.”
“아, 안녕하세요. 하하, 붙어버렸네요.”
륜이 멋쩍은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루아는 륜이 합격한 것이 정말로 기쁘다는 듯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 태도에 륜의 귀 끝이 살짝 붉어지고 테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 저 루아 씨…….”
“륜 씨, 면접 전에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면접을 잘 볼 수 있었어요. 꼭 인사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이동돼서 아쉬웠다고요.”
“아, 아뇨…… 제가 뭘. 그보다 손 좀…….”
그 소심한 부탁에 루아가 륜의 손을 놓았다. 자연스럽게 놓은 손이었지만 유림의 눈엔 왠지 루아가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라? 유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림이 알고 있는 루아는 본디 사람을 향해 저렇게 사근사근한 미소를 짓는 성격이 아니었다.
물론, 서로 약 8년간 헤어져 있었기에 장담할 순 없었으나 옆에서 레이먼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유림의 생각대로 예외적인 행동인 듯싶었다.
“이거 아는 사람은 다 붙었군.”
유림이 루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한숨 섞인 데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그러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입학시험 때 만난 인연이 다 모인 상황 아니던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은하, 보고 싶었던 소꿉친구인 루아, 레이먼, 디하르. 그리고 새로운 만남인 륜과 데몽, 테오.
사혈의 변두리 마을에서 조용히 살던 유림에게 뜻하지 않은 친구들이 늘어나 버린 것이다.
앞으로 자신의 생활이 어떻게 바뀔진 모르겠으나, 꽤나 시끄럽고 복잡하리란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즐겁고 유쾌하겠지.
유림이 무리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은하가 팔을 툭툭 건드렸다.
“그보다, 림.”
“응?”
“사람들이 아까부터 자꾸 우릴 쳐다보고 있어.”
“…….”
“…….”
“…….”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주위를 향했다. 값비싼 대리석으로 꾸며진 바닥과 벽,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천장을 가진 거대한 강당은 유림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참으로 멋진 장소였다.
“하하…….”
유림의 헛웃음이 강당을 울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마치 현실을 외면하려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유림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부는 황당한 표정으로, 일부는 지루하단 얼굴로 또 일부는 재밌다는 듯이. 그리고 그 사이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해우도 있었다.
“…….”
미묘한 침묵, 그 속에서 해우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화는 다 끝났어?”
설마 아직 더 떠들 게 남은 건 아니겠지? 라는 듯한 질문에, 유림을 비롯한 일행이 겸연쩍게 웃으며 답했다.
“……네.”
물론 앞서 떠들었던 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시원찮은 소리였지만 말이다.
“다행이네. 자, 그럼 이제 입학식을 시작해 볼까?”
해우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짝 소리와 함께 펑펑거리며 작은 연기 꽃이 피더니 이내 화려한 꽃다발이 아이들의 손으로 떨어졌다. 마치 입학 축하 선물이라는 듯 말이다.
“신입생 여러분-”
다시금 해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유의 밝은 음색과 미소. 이윽고 해우가 두 손을 번쩍 들며 아이들을 맞이했다.
“클레이즈에 온 것을 정말로 환영한다!”
* * *
환한 대낮이었음에도 커튼으로 인해 빛이 차단된 방은 음습하기 그지없었다.
꽤 넓은 방이었다. 그러나 길게 뻗은 소파를 제외하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지저분했다. 바닥엔 각종 고철과 이상한 약물들이 굴러다녔고, 책들은 질서 없이 쌓여 있었다. 돼지우리를 방불케 하는 곳이었다. 유일하게 말끔한 것은 방의 중심. 그러나 그마저도 두꺼운 방석을 깔고 앉아 정신없이 손을 놀리는 사내에 의해 꽉 차버리고 말았다.
제법 텁텁한 공기가 방 안을 감싸고 있었지만 상관없다는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 사내는 방 못지않게 지저분한 회백색 머리를 벅벅 긁었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와 눈 밑의 그늘이 유난히도 대조되어 보였다.
그는 한참이나 그리 뚝딱거리더니, 이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뒤를 돌아봤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으나, 신기하게도 손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직접 보고 한다 해도 믿을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치익.
끼익.
킹.
텅.
요란한 소리가 계속 방을 울렸다. 그러나 사내가 소리 때문에 미간을 찌푸린 건 아니었다.
사내는 소리가 나는 곳이 아닌, 자신의 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왜 그렇게 쳐다봐?”
중저음의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사내는 한층 더 인상을 구기며 자신의 등 뒤, 정확히는 뒤에 있는 소파에 느긋하게 누워 있는 또 다른 사내를 바라봤다. 클레이즈의 이사장이자 그의 친구인 덴 케이였다.
“안 가냐? 입학식이잖아.”
“가야지. 너는?”
“나? 나는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지.”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평소의 느긋함과 달리 사내, 아니, 히야스가 삐딱하게 말했다.
그는 앞에 놓인 고철이자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들인 안젤리카 7호의 팔을 끼워 넣으며 말했다.
“거기다 내 아들도 살려야 하고. 누가 신바람 나게 부숴서 말이지.”
“하하, 어쩔 수 없어. 이즈네의 성깔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제기랄, 그보다 얼른 가라. 이제 입학식 할 거 아냐. 고매하신 이사장님 없이 입학식이 되겠냐?”
“흠…… 그래, 가야지.”
말은 그렇게 하고 있으나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케이였다. 아니, 오히려 좀 더 편하게 눕기 위해 두 다리를 쭉 펴고 쿠션의 위치를 고쳤다.
히야스의 미간이 한층 더 구겨졌다.
“왜 안 가냐.”
“그냥, 너 화내는 게 재밌어서.”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속된 말로 ‘약 빨고 사는’ 히야스가 평소와 다르게 평범한 모습으로 있는 것은 꽤나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물론, 당사자인 그는 썩 내켜 하지 않는 재미였지만 말이다.
“가라, 진짜.”
“히야스, 왜 4차 때 개입한 거냐?”
그 말에 히야스가 대답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획 돌려 안젤리카 7호를 살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이즈네에게 들었던 추궁. 이즈네뿐만이 아니라 귀찮은 녀석 둘에게 더 들어야 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개중 대답을 들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때문에 ‘근신’이라는 이름하에 자신의 방에 갇히게 된 것이 아니던가.
히야스는 케이의 말을 상큼하게 무시하며 안젤리카 7호를 손봤다. 이즈네가 어찌나 열심히 패놨는지 관절을 다시 연성해야 할 것 같았다.
“그거 대답하면 나가주지.”
“…….”
“네 근신도 보름으로 줄여주고. 그래야지 한유림을 빨리 볼 것 아냐. 안 그래?”
그 말에 결국 히야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다시 케이에게로 옮겼다.
“후- 이상하다 했어. 네 녀석이 내 방에 이렇게 오래 있을 인간이 아니지. 정확히 뭐가 궁금한 건데?”
“한유림에게 왜 관심을 갖는지?”
“흐음…….”
그 질문에 히야스가 침음을 삼켰다. 그는 잡고 있던 고철에 늄을 부여해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고철은 마치 용광로에 들어간 철처럼 흐물흐물 녹더니 이내 모습을 바꿔 전보다 더 단단한 팔의 형태가 되었다.
“왜냐고?”
그리고 그 팔을 몸통의 관절 부분에 끼웠다.
철컥.
연성된 관절이 마치 퍼즐처럼 알맞게 맞춰졌다. 그는 반대쪽 팔과 다리도 마저 결합했다. 이윽고 처음 모습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탄탄한 몸을 갖게 된 안젤리카 7호였다.
히야스는 안젤리카 7호의 관절을 시험하기라도 하듯 그 단단한 팔을 들어 봤다. 그리고 마치 인사하는 것처럼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잠시 후,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태양에게 흥미가 생겨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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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