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37
제 37 화
짧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업을 마치고, 일과가 끝났다고 생각한 유림이 아쉬움에 투덜거렸다.
“난 좀 더 활발한 수업들을 생각했는데, 뭔가 너무 무난하다. 아쉬워.”
“그런가? 난 법학은 재밌었는데, 오전은 아니었지만.”
데몽의 말에 유림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용 자체로만 보면 재미는 있었다. 교수도 학식이 꽤 뛰어난 사람이었고, 수업 시간에 다뤄지는 내용이나 수업 방식도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진이 빠졌다.
뭐랄까, 두근두근함이 없달까?
어떻게 보면 자신이 헛된 망상을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 제1의 학교라는 점에서 뭔가 다른 교육 방식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세계 제1의 마법 대학이잖아. 뭔가 학생들끼리 놀다 건물 부수고 애들끼리 마법 써가며 싸우고 교수랑 전쟁하고 시험 때문에 교무실 테러하고 뭐 그런 일상을 기대했어.”
“……그런 학교는 어디에도 없다.”
“알아. 근데 왠지 그럴 거 같았단 말이지.”
유림은 가볍게 키득거리며 데몽과 함께 강의실을 나섰다. 지루한 이론 수업만 종일 들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피곤했다.
이후 기숙사에 도착한 유림은 가볍게 씻고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방에 돌아왔다. 건너편 방의 주인인 크라마와 슈는 어딜 갔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별다른 인사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유림은 주워 온 나뭇조각을 펼치며 예의 그 나무 인형을 만들었고 바닥에 앉아 시원한 안마를 받으며 데몽에게 빌린 책을 읽었다.
꽤나 조용한 하루. 첫날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런 감흥도 없이 쉽게 흘러간 하루였다. 아마 나머지 수업들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큰 차이 없이 무난하게 흘러갈 것이다.
가볍게 공부하고, 가볍게 실습하고, 가볍게 시험 보겠지.
결론을 말하자면 유림의 꿈이 원대했든 아니든 수업은 기대했던 만큼 큰 재미를 주진 못했다. 그랬기에 앞으로의 일을 안일하게 생각하며 그저 연금을 위해 무난히 다니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따르듯 화요일과 수요일 수업도 큰 탈 없이 지나갔다.
그래, 그때 유림은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 그랬어야 알 수 있었다. 왜 가장 지루한 공통 수업이 월요일 오전에 붙어 있었는지, 왜 교양 수업 때의 선배들이 그렇게 키득거린 것인지, 그리고 기숙사의 선배들이 왜 의미심장한 말들을 던진 것인지 말이다.
유림은 뒷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리고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뭐라고요?”
그 목소리에 공통 수업 ‘마나의 흐름’의 교수인 ‘세룬’이 답했다. 어린 체구에 어울리는 귀여운 목소리가 유림의 귓가를 두드렸다.
“뭐긴 뭐예요. 돈 내라니까요? 전 돈 받아야 수업해요.”
“……교수가 수업을 하는 건 의무 아닌가요?”
“헤? 교칙 몰라요? 클레이즈 제1 교칙.”
유림은 입술을 짓씹었다. 교칙? 알 게 뭐야. 기숙사에 그런 건 없었다고. 아니, 분명 의도적으로 없앤 거겠지. 그 빌어먹을 선배란 작자들이!!
유림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기 위해 심호흡했다. 그리고 교수 같지 않은 교수 ‘세룬’을 바라봤다.
그의 입에서 짜증 나리만큼 익살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모든 수업은 교수가 법이다’ 고로 이 수업은 제가 법입니다. 알겠죠? 그럼 알아서 눈치껏 기어, 이 미련한 신입생님들아.”
클레이즈의 제1 교칙.
‘모든 수업은 교수가 법이다.’
니미랄, 이거 만든 자식 나와! 나랑 싸우자.
1클래스의 공통 수업은 총 세 개였다. 월요일에 있는 ‘늄의 이론’, 목요일에 있는 ‘마나의 흐름’, 그리고 금요일에 있는 ‘형과 늄’. 그중 유림 일행은 목요일에 있는 공통 수업을 듣기 위해 제3 강의실 앞에 모여 있었다.
현재 시각 9시 반. 수업 시작은 9시부터였으나 30분이 지나도록 학생들은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수업의 담당 교수이자 ‘4번 의자의 주인’인 ‘세룬’이 입구에 서서 아이들에게 수금(收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림은 이를 빠드득거리며 세룬을 바라봤다. 자신과 비슷한 키의 소년. 어쩌면 자신보다 더 작다고 볼 수 있는 그는 고개를 뻣뻣하게 들며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돈을 요구했다.
“제 수업은 매시간 기본 5,000젬씩 걷어요. 아, 참고로 알고 있죠? 동화가 하나당 100젬, 은화가 1,000젬, 금화가 10,000젬으로 불리는 거. 은화 다섯 개만 내면 돼요. 여러분 돈 많잖아요. 입학식 때 금화 다섯 개씩 받았으면서 뭘 아쉽다 그래요?”
세룬은 특유의 귀여운 얼굴과 손짓으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내용만큼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은화 다섯 개, 즉 5,000젬이 누구네 집 개 이름인가? 더군다나 매 수업마다 이렇게 받는다는 것은 한 달에 족히 은화 이십 개씩은 받겠단 소리가 아니던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말에 화가 났다. 가장 열받는 건 저 상큼한 미소와 함께 덧붙이는 말이었다.
“그래도 전 싼 편이에요. 다른 분들은 엄청 비싸~”
망할. 그럼 대체 이곳의 물가는 얼마인 거야?
은화 다섯 개. 물론, 금화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터질 일을 생각하면 돈을 아끼는 건 당연했다. 더욱이 이쯤 되니 다음 달 용돈이라며 지급될 젬의 양도 걱정됐다.
유림이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결국 포기한 학생들이 돈을 내며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개중엔 데몽 일행과 은하, 그리고 루아네들도 있었다. 오직 유림만이 복도에 혼자 남아 있었다.
유림은 자신을 얄밉게 바라보는 세룬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대로 돈을 내고 가기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으으으으! 내가 돈을 어떻게 모으는데, 수업 한 번에 은화 다섯 개라니! 이걸 들고 사혈에 가면 족히 한 달은 풍족하게 지낸다고!!
차라리 듣지 마? 수업 하루 정도 안 듣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
유림이 미간을 찌푸리며 수강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세룬이 약 올리기라도 하듯 입을 열었다.
“참고로 난 결석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중간고사 못 보게 할 거예요. 알죠? 중간고사 미응시자는 진급시험 자격 박탈인 거~☆”
아버지, 저 뒤에 별이 보이는 건 제 착각이겠죠?
유림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은화 다섯 개를 꺼내 세룬의 손바닥 위로 팍 소리가 나게 내려놨다. 한 달 풍족하자고 연금을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두고 봅시다, 교수님♥”
“아잉♥ 올 신입생은 화끈하네♥”
아아아악! 열받아. 뭐지?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 거야?!
유림은 입술을 짓씹으며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들어옴과 함께 세룬이 강의실 문을 닫고 강단 위에 섰다.
“반가워요, 제군들! 전 1클래스들에게 마나의 흐름을 가르칠 ‘4번 의자의 주인’, ‘세룬’이라고 합니다. 아, 참고로 이 의자는 각 형에 대한 대표 교수들에게 주어지는 칭홉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깜찍하게 생겼지만 사실 나이는 너희보다 많아. 그니까 반말하면 걷어찰 거야~”
세룬이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둘째 줄 창가에 앉았다.
짜증 났다. 특히 저 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는 말투가 화를 돋웠다. 단순하게 돈을 뺏겨서가 아니었다. 물론 이것도 이유 중 하나긴 했지만, 그보단 저렇게 학생들을 가지고 노는 세룬의 태도가 더 맘에 안 들었다.
유림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그리고 학구열이 넘쳐 나는 완벽한 학생의 모습을 취하며 세룬에게 집중했다.
그래, 두고 보자. 내가 기필코 이 수업을 씹어 먹어버리겠어. 그리고 무조건 허점을 잡아서 환불하고 말 테다!
유림이 열의에 활활 불타올랐다. 그녀는 데몽보다 더 뛰어난 집중력을 선보이며 수업에 참가했다. 그리고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지났을 때 장렬하게 전사하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졌다. 니미랄, 인간적으로 너무 잘 가르치잖아!
수업은 재밌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배가 뒤집어질 정도로 웃겼고 분위기와 집중력도 최고였다. 우선적으로 교수인 세룬이 책상 위에 올라가서 강의하는 것 자체가 신선했고, 첫 주여서 가볍게 설명만 한다는 것치곤 너무나도 흥미로운 내용으로 모두의 시선을 불러 모았다. 마치 앞서 들었던 수업들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결국, 환불을 위해 두 눈에 불을 켜던 유림은 그 사실도 잊고 수업에 빠져들었고, 끝났을 즘에는 자신의 몸에 흐르는 마나가 이 정도로 환상적인가 하는 생각에 흥분할 정도였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설명할 것이 바로 이 키르.”
그는 학생들에게 입학식 때 받은 키르를 꺼내라 지시했다. 그의 움직임에 모든 아이가 키르를 꺼내 들었다. 유림 또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마나란 것은 사람마다 상성이 달라. 적성에 따라 형이 다르듯 말이지. 그러다 보니 사람마다 유독 상성이 좋은 물질이 하나씩 있어. 누구는 금속이 되고 누구는 천, 누구는 특정 음식이 될 수도 있어. 또 물이 될 수도 있고, 바람이 될 수도 있고. 아, 이때의 물질은 자연계 마법사들의 상성과 다른 의미야.”
세룬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촉진제라고 볼 수 있는 물질을 찾는 것은 늄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지. 내 힘을 최고로 이끌어낼 수 있단 거니까. 하지만
그걸 알기란 쉽지가 않아. 모든 물질을 다 시험해 볼 수도 없고 의외로 항상 붙어 있어서 이건 줄 모르고 지나는 경우도 많으니까.”
세룬은 자신의 키르를 가볍게 만졌다. 그리고 허공에 살짝 띄워 올렸다.
“하지만 ‘키르’만은 예외야. 주인에 상관없이 매끄러운 늄을 사용할 수 있는 촉진의 역할을 하는 구슬이지. 주원료는 비밀. 사실은 나도 몰라. 이 부분은 이사장만 알고 있거든.”
그 말에 유림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키르를 만지작거렸다.
“아직은 초반이라 키르를 사용할 일이 별로 없어서 크게 효과를 보진 못할 테지만, 한 3주만 지나면 사용할 일이 늘어날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숙제!”
세룬이 귀여운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키르를 사용해 자신의 실력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확인해 볼 것. 단, 몸의 상태를 잘 살피며 해야 해. 까딱하단 방전돼 일주일은 누워 있어야 할지 모르니까.”
그의 말에 학생들이 ‘네’라며 우렁차게 답했다.
힘찬 목소리와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는 학생들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세룬이 활짝 웃어 보였다. 한없이 아이 같은 웃음이었으나, 어째서인지 그 모습이 참으로 교수답고 다부지다 생각한 유림이었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모두 다음 주에 봐요. 아, 그리고 4형 아이들은 잠깐 남아줘요. 내일 있을 전공 수업 때 챙겨야 할 준비물이 좀 있거든.”
그 말과 함께 유쾌하고도 유익했던 세룬의 수업이 끝났다.
유림은 수업이 끝난 것을 확인하곤, 키르를 주머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찌나 신기한지 지금 당장에라도 키르를 실험해 보고 싶었지만, 괜히 눈에 띌까 싶어, 밤이나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유림이 가방을 메고 갈 채비를 하자, 은하가 팔을 툭툭 치며 말했다.
“림, 먼저 가.”
“응?”
“나 남아야 해.”
그제야 은하가 4형임을 기억해 낸 유림이 기다려 줄까 싶어 물어봤지만, 괜찮다는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진짜 안 기다려 줘도 되는 거지?”
“응, 괜찮아. 어차피 나 오후 수업 있어.”
아, 그랬지.
유림은 오후 수업이 없었다. 쉽게 말해 이 수업을 끝으로 즐거운 자유 시간인 것이다.
이렇게 된 거 데몽이 빌려준 책이나 마저 읽을까?
“그럼 먼저 간다.”
“응, 먼저 가! 아, 내 간식 빼놔!”
평일 오전마다 나오는 기숙사 간식을 챙겨달란 은하의 말에 유림이 키득거리며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은하를 향해 ‘간식이 뭔지 봐서-’라는 말을 남긴 채 말이다.
===============
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