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5
제 5 화
약 20분 전, 이즈네란 사람이 광장으로 뛰어들며 시험의 시작을 알리고 유림은 애들과 갈라져 초록색 문으로 뛰었다. 왠지 사람들이 가장 안 들어갈 것 같기도 했고, 멀리 가기 귀찮아 한 선택이었다.
유림이 초록색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을 땐 이미 백여 명의 사람이 먼저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나 많은 인파가 몰려 있음에도 싸할 만큼 조용하단 것이다.
침묵이 가득한 진중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긴장한 유림은 긴장이나 풀 겸 손을 주무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늄으로 구현된 공간에 들어온 것인지 벽과 천장이 온통 흑색으로 되어 있어 그 넓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고, 바닥은 때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백색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민짜는 아니었다. 정 가운데에 1m 정도의 두께를 가진 거대한 금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왼쪽엔 푸른색으로 ‘O’가, 그리고 오른쪽엔 붉은색으로 ‘X’가 크게 쓰여 있었다.
‘어째… 어디선가 많이 본 풍경이다?’
유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앞을 바라봤다. 유림의 시선이 가운데 선을 따라 쭈욱 이동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녀를 맞이한 건 다름 아닌 철로 된 이상한 기계였다.
정확히 선 위에 있는 기계는 사람과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치 철로 만든 인형 같았다. 그러나 평범한 것과 달리 눈코입이 존재하지 않았고, 등엔 거대한 톱니바퀴 하나를 달고 있었다. 톱니는 태엽처럼 치걱치걱 소리를 내며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소리가 멈추더니 기계의 배에 있던 램프에 푸른색 불이 들어왔다.
잠시 후, 낯선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반갑다, 클레이즈에 온 응시생 여러분. 나는 이 초록 방의 감독관 히야스라고 한다.]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매끈한 남성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작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유림 또한 놀란 가슴을 쓸며 기계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 시선을 알기라도 한 듯 기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아, 그렇게 놀랄 건 없어. 기계가 말하는 게 뭐가 그리 신기하다고.]딱딱해 보이는 광택의 고철과 달리, 들려오는 어투는 마치 장난기가 가득 묻은 어린아이의 목소리처럼 익살스러웠다.
[참고로 이게 내 본 모습은 아니야. 이 녀석은 상큼하고도 사랑스러운 안젤리카 중 하나지.]유림은 미간을 구기며 안젤리카란 고철을 바라봤다.
[이 녀석은 내 안젤리카 중 막내인 8호야. 그냥 안젤리카 8호라 부르지. 취미는 요리하기, 특히 다지기를 잘한다고.]키득거리는 목소리에 유림이 저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이 돼지 똥 싸는 소리는……?
유림은 왠지 모를 께름칙함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안젤리카 8호를 바라봤다. 그건 그곳에 있던 다른 응시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똥 씹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단 하나, 이 사태를 만든 안젤리카 8호만 빼고 말이다.
[끌끌끌. 안젤리카 8호의 다지기는 깔끔하다고. 떡갈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놀러 와. 녀석의 현란한 기술을 보여줄 테니까. 아, 그렇지만 구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안젤리카 6호를 찾도록 해. 안젤리카 6호의 주특기는 바비큐 구이 만들기거든. 녀석의 구이는 참 맛깔스럽지.]안젤리카인지 개젤리카인진 모르겠지만… 그래서 시험은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야?
[참고로 안젤리카에겐 형이 일곱 명 있어.]안젤리카, 남자였어?!
[그중 가장 큰 아이인 안젤리카 1호는 잔소리가 심해. 안젤리카 2호는 애가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려고만 하지. 그래서 1호랑 2호는 매일 싸운다고. 뭐 2호가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난 잘 알아서 살 거라 생각해. 안젤리카 3호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 자꾸 집을 부수려 해서 문제지, 체력이 엄청나게 좋거든. 그리고 안젤리카 4호는…….]“저기…….”
안젤리카 8호가 안젤리카 1호부터 한 명씩 나열하고 있을 때, 응시생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의 행동에 모든 이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해졌다. 안젤리카 8호에겐 눈이 없지만, 왠지 그도 그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뭐지?]안젤리카 8호가 차갑게 물어왔다.
“시험은…… 언제 시작합니까?”
모두가 궁금해하던 질문이 그 응시생의 입을 통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유림은 시선을 돌려 다시 안젤리카 8호를 바라봤다. 순간 그의 배에 있던 램프가 번쩍거리며 빛났다.
[아, 내 정신 좀 봐. 자네들이 시험 중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군.]긴장했던 초반과 달리 너무나 태연하게 태엽을 빙그르르 돌리며 말하는 안젤리카 8호의 모습에 유림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기가 차다고 해야 하나.
아니, 이 인간 대체 뭐지? 이 사람 진짜 시험 감독관 맞아?
유림은 뭔가 방을 잘못 들어온 게 아닐까 하는 고민에 미간을 찡그렸다. 그때 안젤리카 8호가 입을 열었다.
[좋아 좋아, 시험을 치르자고. 밖에서 이즈네의 설명을 들었겠지만, 올해 시험은 서바이벌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방에선 오직 35명 이하의 사람만이 살아서 다음 시험을 치를 수 있지.]안젤리카 8호가 연신 태엽을 감으며 떠들었다. 태엽 돌아가는 소리가 그의 목소리와 섞여 방을 울렸다.
[합격자 수는 무조건 35명 이하여야 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상관없다.]유림은 왠지 안젤리카 8호, 정확하겐 그를 통해 이야기하는 감독관이 웃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얄궂은 미소로.
[그리고 초록 방에 온 너희가 치러야 할 이번 시험은……!]유림은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치며 안젤리카 8호의 뒷말을 기다렸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어째…… 뭔가 좀 불안하다? 썩 좋은 시험은 아닌 것 같은데…….’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며 앞의 눈치를 살필 때, 안젤리카 8호가 램프의 빛을 한층 더 밝게 하며 크게 소리쳤다.
[바로 상식 OX 퀴즈다!!]“니미랄!!”
안젤리카 8호의 말과 동시에 짤막한 욕설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이런 염병, 상식 OX 퀴즈라니!
이건 유림의 전공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해 마법 대학에서 요구하는 ‘상식’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
젠장, 차라리 은하와 같은 방향으로 갈걸!
유림은 혀를 차며 인파의 뒤쪽으로 물러났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초반은 눈치 싸움으로 가야 했다.
몰라. 많은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정답이겠지. 클레이즈의 초대장을 받았다는 시점에서 늄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단 것이 인정된 거니까, 자신보다 잘 알면 알았지 모르진 않을 것이다.
유림이 그렇게 생각하고 뒤에 서서 앞을 노려볼 때 안젤리카 8호가 오른손을 가볍게 들며 첫 번째 문제를 불렀다.
[그럼 첫 번째 문제! 돌멩이도 늄을 가지고 있다. 제한 시간 5초!]갑작스러운 문제에 모두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돌멩이가 늄을 가지고 있냐고?
[오, 사, 삼…….]유림이 채 문제를 정리하기도 전에 안젤리카 8호가 시간을 세기 시작했다. 약간의 틈도 주지 않는 조급한 초읽기에 응시생들이 크게 당황하며 황급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림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문제를 다시 한 번 곱씹었다. 돌멩이가 늄을 가지고 있냐고? 모든 생명은 탄생과 함께 늄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건 세상의 모든 자연과 사물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기에 자연의 일부인 돌멩이 또한 늄을 가지고 있다. 애초에 돌에 관련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늄이 있기 때문이 아니던가.
[이, 일…….]유림은 재빨리 ‘O’가 그려져 있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시간 안에 안전하게 O의 칸으로 넘어온 유림. 그리고 칸으로 들어간 것과 동시에 안젤리카 8호의 입에서 마지막 초읽기가 진행되었다.
[영, 땡!!]땡!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가운데 그어져 있던 선 위로 거대한 식칼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다다다다다다다!!
마치 바닥이 도마라도 된 듯, 식칼이 잔상을 그리며 엄청난 속도로 가운데 선을 다지기 시작했다.
설마 특기라던 다지기가 이런 다지기였냐?!!
뭐든 썰어버릴 것만 같은 엄청난 속도와 날카로움으로 선을 다지는 거대한 식칼, 그 속도와 움직임에 미처 ‘O’로 넘어오지 못한 학생들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타앙!
잠시 후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식칼이 바닥의 중앙에 있는 금에 박혀 버렸다.
“…….”
서늘한 바람 소리와 함께, 장내에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정답은 O! X로 간 친구들 다음에 보자고~ 뾰로롱~]라는 개 같은 안젤리카 8호의 말과 동시에 X 쪽의 바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방 안을 울리는 비명, 그리고 무너지는 바닥과 함께 정체 모를 어둠 속으로 꺼지는 응시생들. 그 처참한 광경을 보며 살아남은 이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
“…….”
초반에 말했던 ‘살아남길 바라’가 이런 거였다니……. 하하하…… 이런 미친.
유림은 당혹감에 연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안젤리카 8호를 바라봤다. 어색하게 올라간 왼쪽 입꼬리에서 경련이 일었다.
[끅끅끅끅~! 자 그럼 두 번째 문제!!]요사스런 웃음소리와 함께 두 번째 문제를 내려는 안젤리카 8호. 유림은 그 모습에 최대한 선 쪽으로 다가갔다.
이번 시험만 이런 거겠지? 설마 나머지 시험이나, 학교 자체가 이러진 않겠지? 아아, 돌겠네.
미친 시험… 연금… 세금 없는 연금… 미친 시험… 연금…….
유림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달랠 겸,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리고 들려오는 두 번째 문제에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제기랄! 연금이 뭐라고!!
* * *
광장의 몇 배나 될 법한 거대한 백색의 땅. 은하는 그 위에 올려진 진수성찬을 멍하니 바라봤다.
살면서 한 번 맛볼까 말까 하는 으리으리한 음식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아리따운 여인과 멋진 남자들, 거기다 평생을 쓰고도 남을 금은보화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이 방이 뭔 방인지는 모르겠으나 천국이 분명할 거라 생각한 은하는 고개를 붕붕 끄덕이며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아, 냄새 죽인다.
옆에서 엄청나게 잘생긴 미남들이 함께 놀자며 부르고 있었지만, 은하의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오직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산해진미뿐.
‘으으, 배고파. 근데 나 분명 시험을 보러 왔는데…….’
그녀는 한 손엔 포크, 한 손엔 나이프를 집으며 주위를 살폈다.
여자애들은 뭐가 저리 좋은지 미남과 값비싼 옷, 보석을 보며 얼굴을 붉혔고, 그 반대쪽에 있는 남자애들은 양쪽에 미녀 한 명씩을 낀 채 맛난 것을 먹으며 신선놀음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은하와 같은 문으로 들어오게 된 테오도 앉아 있었는데, 유독 많은 미녀를 끼고 있는 것이 꼭 욕심 많은 탐관오리 같아 보였다.
뭐… 여자라면 끔뻑 죽는 애라 했으니까.
은하는 데몽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눈앞에 놓인 오리구이를 접시에 덜었다.
엄마, 여기 너무 좋다.
코끝에 느껴지는 향긋한 냄새와 잘잘 흐르는 윤기에 군침이 절로 넘어갔다.
스윽.
은하는 조심스럽게 살점을 떼어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황홀한 표정으로 오리구이를 맛봤다.
“우아…….”
입에 들어오는 순간, 육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씹으면 씹을수록 짙어지는 향과 부드러운 식감은 살살 녹는다는 게 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혀를 행복하게 해주는 고기
특유의 맛이 은하를 절로 미소 짓게 하였다.
은하는 행복한 표정으로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너무 맛있어서 그런지 손이 멈추질 않았다.
그보다 진짜 여기 뭐지? 난 분명 시험을 보러 왔는데 왜 이렇게 많은 음식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그 예쁜 선생님이 서바이벌이라 했는데…….
은하는 출구로 보이는 문을 바라보며 계속 고기를 씹었다. 손과 입이 연신 썰고 삼키기를 반복했다.
늦으면 림한테 맞을 거야. 몇 명까지가 합격선인진 모르겠지만 한 다섯 명 정도 나가면 그때 나가야지. 그러려면… 음… 빨리 먹어야겠다.
자신이 내린 답이 마음에 드는지 은하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시간을 잠깐 확인하더니 손을 들어 엄청난 속도로 음식들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오리고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고기와 음식들이 은하의 입속으로 무참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렇게 거침없이 쓸어 마시던 은하가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간 것은 과일을 제외한 모든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뒤였다. 물론, 여자들에게 흠뻑 빠져 있는 테오를 끌고 나가는 것을 잊지 않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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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