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51
제 51 화
어쩜 이렇게 거지 같은 일이 연달아 터질 수 있을까. 아무리 세상이 예측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라 해도 이쯤 되니 뭔가 문제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 예상치 못한 삼파전.
환장할 정도로 한층 더 화려해진 구성에 유림의 정신이 아주 잠깐 가출했다 돌아왔다.
“뭐야…… 왜 저 녀석도 오는 거야?”
코니룸이 유림을 향해 쏘듯 물었다. 졸지에 짐을 하나 끌고 오게 된 유림은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며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왜 몰라? 네가 달고 왔잖아.”
책망하는 듯한 그 말에 유림은 어쩐지 억울해졌다.
아니, 내가 달고 싶어서 달고 다니냐? 쫓아오는 걸 어떻게 하라고?
저 남자가 누군진 잘 모르겠지만, 코니룸과 미야의 표정이 심하게 구겨진 걸로 봐선 그들에게도 썩 반가운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아나… 이번엔 또 무슨 일인 거야. 이 상황은 또 뭐고.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거기다 요 며칠 제대로 자지 못해 그런지 졸려 죽을 것만 같았다.
유림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며, 세 사람을 살펴봤다. 그때 미야가 단아하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재우…… 너까지 끼는 거였어?”
석재우? 유림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위로 했다. 어쩐지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유림이 한참 그 이름을 고민할 때, 재우가 미야를 향해 키득거리며 말했다.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도박장이 울렸다.
“야- 미야. 학생회도 있었다니. 큭큭 좋아 좋아! 이편이 구미가 더 당기니까!”
구미라니…… 사이에 낀 제 의사는 역시 없는 겁니까?
“와- 학생회에 봉사 동아리까지. 한유림 인기 많네.”
아니, 그니까 그 인기 난 필요 없는데 내 의사는 없는 거냐고.
유림은 저 인간들이 선배만 아니면 진작 턱주가리를 날려 버렸을 거란 생각을 곱씹었다. 그때 코니룸이 유림을 향해 휘파람을 불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휘유~ 그럼 그 인기녀의 선택을 들어볼까?”
“네?”
유림의 반문에 코니룸이 다리를 꼬며 입꼬리를 여유롭게 말았다.
“너 우리 도박장 들어올 거잖아. 여기에 있는 두 사람 앞에서 네 입으로 말하라 이거지.”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야와 재우가 미간을 구기며 끼어들었다.
“잠깐, 코니룸. 유림은 아직 그쪽에 들어간단 말 안 했어.”
“미안하지만, 이쪽도 그냥 넘어갈 생각 없는데?”
정색하며 달려드는 두 사람의 모습은 유림이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지를 만큼 매서웠으나, 정작 그 시선을 받고 있는 코니룸은 여유롭기만 할 뿐이었다.
“미야, 네가 태워 버리긴 했지만, 유림이 서류를 들고 온 시점에서 이미 도박장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석재우, 미안한데 제삼자는 좀 빠져, 무식한 티 내지 말고.”
코니룸이 미야와 재우를 한 명씩 꼬집으며 떠들자, 두 사람이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쏘아봤다. 심지어 재우는 이까지 갈았다.
“그건 학생회 권유를 받기 이전의 일이고.”
“미안하지만 한유림은 우리 봉사 동아리야. 이건 절대적이라고.”
유독 절대적임을 강조하는 재우의 말에 이번엔 미야와 코니룸이 그를 쏘아봤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향해 그가 어깨를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왔으니까.”
“미친.”
“좀 닥쳐 줄래?”
곧바로 두 사람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온 건 당연했다.
세 사람은 질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유림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단순하게 시작된 그들의 한유림 쟁탈전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에게 쌓여 있던 감정까지 건드렸다.
“봉사 동아리라니……. 학생회에서 제일 무너트리고 싶은 동아리 중 하나라는 걸 잊은 거야? 쓸데없이 이곳저곳 나서지 마.”
미야가 재우를 한심하다는 듯 훑어보며 말했다. 그 오만한 행동에 재우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우리가 뭐 어때서? 멍청하게 교칙과 권위만 들이미는 답답이들보단 낫다 싶은데?”
“웃겨 정말, 봉사 동아리가 뭐 잘난 게 있다고. 말이 봉사 동아리지 건물 부수고 시설 망가트리는 게 전부 아냐?”
“이래서 답답이들은 안돼. 우리는 좋고 반짝반짝한 건물로 다시 지으라는 깊은 마음으로 때려 부수는 거라고. 이거야말로 참된 봉사 아니냐?”
“하하하- 거 참 좋은 취지네.”
“그럼. 그니까 한유림은 우리 부로 와야 해.”
“칭찬과 욕도 구별 못 하는 한심한 인간 같으니라고. 네 형이 훌륭한 해우 교수님이라는 게 아깝다.”
미야의 말에 유림이 엥? 소리를 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재우가 해우의 동생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유림은 어째서 그의 이름이 그렇게 익숙한지를 깨달았다. 석해우, 석재우. 형제라는 걸 증명하듯 두 사람의 이름이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아니, 근데 하민이도 그렇고 저 재우란 선배도 그렇고 뭔 교수 동생이 이렇게 많아? 여기 세계 제1의 마법 대학 아냐? 설마 능력도 유전되나? 그것도 아니면 부정 입학?
유림은 미심쩍은 얼굴로 재우를 바라봤다. 형제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름 말곤 비슷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때 재우의 표정이 심각하단 말이 아까울 정도로 심하게 구겨졌다. 그의 최대의 약점이자 강점. 그리고 절대적인 존재인 해우의 이름이 거론되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한데 툭하면 형 걸고 넘어가는 거 좀 하지 말지? 내가 우리 형님을 무~ 진장~ 좋아하긴 한데, 비교당하고 싶진 않거든?”
그가 목소리를 낮게 깔면 말했다. 주변 온도를 최소 3도 이상은 떨어뜨릴 정도로 서늘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미야와 코니룸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럼 그 좋아하는 형님을 위해 얌전히 지내던가.”
“그래. 그리고 미야, 너도 조용히 해. 여긴 내 동아리방이라고.”
“코니룸, 미안하지만 이번 건은 접으라고 했어.”
“답답이, 너도 빠져.”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이마를 탁 치는 코니룸을 보며 유림은 정말 돌아버릴 것 같은 사람은 댁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만큼 당찬 성격이 되지 못했기에 마른침과 함께 불만도 삼켜 버렸다.
“한유림은 우리 학생회로 끌고 갈 거야.”
“웃기시네. 엿이나 먹어라. 한유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봉사 동아리거든?!”
“저기 미안한데, 둘 다 닥쳐 줄래? 유림이는 이미 도박장으로 온다고 했다니까?”
아니, 그냥 셋 다 닥쳐 주면 안 될까? 나 진짜 귀가부 하고 싶다고.
차마 선배라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거리는 유림을 사이에 둔 세 사람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이 심하게 뻑뻑했고, 유달리 피곤한 몸이 이상을 호소했다.
몽롱하고 졸리고. 며칠간 쌓인 피로가 한 번에 다 풀린 건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조금 전 도박장에 들어선 순간 모든 게 다 끝났다며 긴장을 놓지 않았던가.
좀 쉬고 싶은데…… 이렇게 계속 싸울 거면 다 싸우고 부르면 안 되나? 어차피 저 셋이 가장 귀찮은 사람들이니까, 그냥 자기들끼리 결론 내면 되잖아.
얼레? 그러고 보니 그러네. 굳이 여기서 이럴 필요 없잖아. 그냥 돌아가도 되는 거 아냐?
하면 할수록 타당(?)해 보이는 생각에 유림이 손을 번쩍 들며 처음으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요!”
유림의 목소리에 여섯 개의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유림은 그 부담스러운 눈길을 애써 무시하며 쓰게 웃었다.
“이만 기숙사로 돌아가면 안 될까요?”
“안 돼!”
“무슨!”
“가긴 어딜!”
그럼 제발 날 앞에 두고 싸우지 마!
단호할 정도로 단박에 튀어나오는 대답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그러나 이 또한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유림은 한숨으로나마 대신 화를 달랬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예의 그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전 저기 구석에서 자고 있을 테니까 다 끝나면 깨워주세요.”
내내 눈치만 보고 있던 애가 한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당돌한 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유림은 ‘너 지금 뭐하고 있냐?’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세 사람을 향해 다시금 말을 꺼냈다.
“아쉽게도 요 며칠 제대로 못 자서요. 진짜 조금만 잘게요.”
“…….”
“…….”
“…….”
“그럼 이야기들 나누세요.”
라며 마치 세 사람을 부추기듯 손까지 가볍게 짤짤 흔든 유림. 그녀는 자신이 낸 답이 무척 마음에 드는지 가벼운 걸음걸이로 코니룸이 애용하는 긴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옆에서 떠들 세 사람의 목소리가 좀 시끄럽겠지만, 그래도 뭐 피곤하니까 잘…… 자겠지?
유림은 소파에 몸을 더 파묻고 편한 자세를 취했다. 그때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좋아. 어차피 선택은 한유림이 하는 거잖아? 그니까 본인한테 직접 선택하라 하자고. 어때?”
“나쁘지 않네. 난 자신 있어.”
“좋아, 좋아! 나도 응해주마!!”
엥? 유림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동그란 눈이 다 된 전구마냥 깜빡였다.
머릿속으로 세 사람이 한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돌리니, 나름대로 합의점을 찾은 그들이 맞은편 소파에 나란히 앉아 유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졸지에 선배가 앉고 후배가 누워 있는 웃긴 상황이 연출됐다.
유림은 사람을 참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괴롭힌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유림.”
코니룸이 부르자 유림이 시선이 자연스레 그를 향했다.
“골라. 어디에 들어올 거냐.”
고르라니…… 이게 무슨 점심 메뉴냐? 고르라고 딱 고르게?
제 상황을 무시한 채, 오직 선택만을 재촉하는 그 모습에 유림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음… 그니까 저보고 고르라고요?”
“그래.”
“응.”
“어.”
참으로 단결 안 되십니다. 고작 한두 음절인데 어떻게 셋 다 대답이 다르시나요.
유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앞에 있는 코니룸과 미야, 그리고 재우를 바라봤다.
한쪽은 도박장, 한쪽은 학생회, 한쪽은 봉사 동아리.
동아리의 장이라는 사람들이 묵묵히 제 대답만 기다리고 있는 꼴이 웃겨 비웃어주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여기서 잘못 답했다간 학교생활이 내내 거지같아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꼭 골라야 하나요?”
한쪽을 고르면 나머지 두 쪽에서 날 죽일 거 같은데?
쓰게 웃으며 눈치를 살피자 그 말에 미야가 미간을 팍 구겼고, 코니룸이 살의를 담아 웃었으며, 재우가 자릴 박차고 일어나 삿대질했다.
“골라! 한유림! 네게 다른 선택권은 없어! 여기 있는 동아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아니, 그니까 난 자유를 선택하고 싶다고요!”
“선택이 곧 자유야!!”
웃기지 마! 어떻게 선택이 자유야, 이 망할 인간아!!
아, 미치겠다. 진짜 이걸 어째?
유림은 이마를 짚으며 진지하게 자신의 앞날을 생각했다. 도박장, 학생회, 봉사 동아리. 장단점은 하나씩 있었다. 우선 도박장은 생활이 편했고, 학생회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봉사 동아리는 사람들이 단순해 보이는 게 빠져나가기 쉽고 동아리장이 교수 동생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장점들에 비해 ‘자유’가 없다는 너무나도 큰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셋 다.
유림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안락한 자유와 평안이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연금이 필요한 거고,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 이런 귀찮은 일이 생기다니…….
젠장, 이사장님께 보고하러 가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동아리는 무슨 동…….
……어?
“…….”
순간 유림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삽시간에 핏기가 싹 가셨으며, 당혹에 잠긴 두 눈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유림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달력을 찾았다. 그리고 날짜를 확인한 순간, 저도 모르게 짤막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헐, 망했다.”
동아리 사건으로 너무 정신이 없어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바로 오늘이 덴 케이에게 보고하러 가는 목요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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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